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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 회


제5장 대오는 전진한다


1


길장쇠는 집에서 키우던 돼지며 염소의 고삐를 끊고 모두 산에 풀어주었는데 제가 뜻밖에 《우리》속에 든듯싶었다.

그는 아동단병실이라는데에 총이 있어 그곳에서 다른 총을 바꿔주려는줄 알았다.

그런데 제또래의 아이들만 와글거렸다. 제 식구밖에 몰랐던 장쇠는 사람멀미에 정신이 다 헛갈려지는듯싶었다.

그는 맨 구석켠만 찾았다. 밤에는 또 바깥에 나가 혼자 자려고 하면 경비서던 애가 《누구야?》 하고 야무지게 소리질렀다. 밖에서 자려고 한다는것을 알고는 딱 잘라매였다.

할수없이 병실에 들어온 장쇠는 애들과는 멀리 바람벽에 붙어누웠지만 도무지 잠들수 없었다. 여러 아이들의 숨소리가 잠을 다 앗아갔던것이다.

누운 자리가 어찌나 옹색스러운지 몰랐다.

날이 밝아올 때면 《기상!》 하는 소리가 병실안을 채우더니 요즘은 밖에서 울리는 나팔소리가 귀청을 째는듯싶었다.

아이들은 벌떡 일어나 운동장으로 쓸어나갔다. 장쇠는 어쩌는수없이 느릿느릿 애들의 뒤꼬리를 물었다.

애들은 산으로 올리뛴다. 그리고는 강에 나가 세면을 한다.

장쇠는 머리가 어리어리해서 거부기걸음만 쳤다.

장쇠는 자기를 이리로 데려온 중대장을 만나 총을 주겠는지 어쩌겠는지 딱히 알고 여기서 들구빼야겠다고 결심했다.

장쇠는 분단장이라 불리우는 기송동지에게 상을 찌붓하고 덜퉁스레 말했다.

《나를 중대장 만나게 해줘.》

기송동지는 한 동무를 장쇠한테 붙여주었다.

중대장앞에 선 장쇠는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나한테 총을 주십시오.》

《내가 언제 주겠다고 했나?》

장쇠는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우겼다.

《내가 가졌던 총이 있지 않습니까?》

《그건 전리품이야.》

장쇠는 전리품이라는게 뭔지 알아듣지 못했다.

김학철은 입가에 빙긋이 웃음을 지었다. 그는 말이 적으나 남자답게 호방한 구석도 있는 사람이다.

김학철은 장쇠를 보는 순간 눈을 별스레 번뜩거리는게 배짱도 있어보였다. 나이가 차면 쌈깨나 할것 같았다. 그래서 대원보고 아동단병실에 데려다주라 했고 이어 최춘도회장에게도 알렸던것이다.

이녀석을 호락호락 다루었다가는 시간만 잡아먹을것 같았다. 그래서 김학철은 얼굴에 엄한 표정을 짓고 힘있게 구령을 주었다.

《뒤로 돌앗!》

장쇠는 그런 구령을 처음 듣지만 아무튼 돌아서라는 명령인줄은 깨달았다. 그래 엉겁결에 돌아섰다.

다음구령이 뒤통수를 쳤다.

《앞으로 갓!》

이리하여 길장쇠는 중대장실에서 쫓겨났다.

한편 강진혁은 아동단입단식날 구공청 아동단책임자이신 김정숙동지를 만난 다음 마음의 안정을 잃었다.

내려가라는 명령이 금시 떨어질것 같았는데 며칠 지나도록 아무일 없었다.

박귀남이 울먹해서 한 말이 그의 귀안에 그냥 박혀있었다.

《형, 가지 마. 가야 전의 내 신세가 돼.》

박귀남을 처음 만났을 때의 몰골도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진혁은 기송동지의 눈치를 흘끔흘끔 살폈다. 자기가 다른 애들을 추긴것을 혹시 분단장이 알지 않을가 하여 그애들한테 슬그머니 물어보니 펄쩍 뛰였다. 그래서 어지간히 마음을 놓았다.

기송동지는 병기창에서 여러 도구들을 가져온 다음 식당에서 쓸 나무를 해오는 일에 다섯명씩 올려보내군 했다. 가져온 낫이 다섯가락이였던것이다.

혁명정부에서는 유격구의 방비를 위해 절대로 가까이의 생나무를 베지 못하게 했다.

아이들은 몇고개 넘어가서 삭정이나무를 베여와야 했다.

강진혁은 늘 박귀남과 짝을 무어 나무하러 다니군 했다. 귀남의 덕을 보려는것이다.

그런데 귀남은 전과 달라졌다.

《형, 형도 나무를 해. 내 손만 바라지 말구.》

강진혁은 울뚝 분이 치밀어올랐다.

(이자식 건방지다. 나한테 과자랑 얻어먹을 땐 언젠데.)

사실 박귀남은 강진혁을 여전히 친형처럼 여기며 안타까와 일러주는 말이였다.

그러나 강진혁은 그 말을 여간 고깝게 듣지 않았다. 그는 입을 쓰겁게 다시며 삭정이를 낫으로 걸어쳤다. 삭정이의 긴 가지끝이 눈을 찌를듯싶어 덤벼치며 물러서군 했다.


김기송동지는 날이 어슬어슬해질 때에야 시간을 낼수 있었다.

채에 얻어맞은 얼음판우의 팽이처럼 종일토록 돌아가야 했다.

그전에 집에 있을 때는 집안의 막냉이로 밥만 먹고나면 밖에 뛰쳐나가 실컷 뛰놀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동단의 분단장이며 아동단병실의 주인이다. 쌀을 타오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간참해야 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유격구에서는 늘 쌀이 딸렸지만 아동단병실에만은 푼푼히 주군 했다.

김기송동지는 신호나팔을 한손에 들고 병실뒤의 산턱에 올라섰다. 실컷 나팔을 불고싶었던것이다.

산턱 아래켠에는 유격대병실 두채가 수림속에 몸을 숨기고있었다.

얼핏 떠오른 생각에 기송동지는 웃음을 지었다.

(유격대에는 아직 신호나팔수가 없다. 그러니 나를 나팔수로 데려갈수도 있어.

그러지 않아도 나를 좋게 보는 김학철중대장이 내가 나팔을 잘 분다는것만 알면 대뜸 데려가려 할거야.)

기송동지는 어깨가 으쓱 들렸다.

내 나이에 유격대나팔수가 되다니. 아마 여러 현에 수많은 유격대가 섰다지만 나같은 꼬마나팔수는 처음일게야.

제김에 뜬 김기송동지는 유격대병실에서 나팔소리를 곧추 듣게 방향을 잡았다. 재간껏 여러가지 신호곡들을 불었다.

유격대쪽의 산에서 뚜렷한 메아리가 울려왔다.

김기송동지는 중대부에 김학철중대장이 앉아있을가 하고 마음쓰게 되였다. 들으면 분명 누가 부는 나팔이냐고 물을것이다. 유격대원중에 내가 나팔을 분다는걸 알 사람이 없으면 중대장이 이리로 사람을 띄울지도 모른다.

김기송동지는 흥바람이 나서 나팔을 더 요란스레 불었다.

그러던 기송동지는 번개치는 생각에 허벅다리를 탁 쳤다.

(야, 멋있구나!)

신호나팔이 자신의 배짱과 맞는다고 생각된것이였다.

기상나팔, 그것은 《빨리빨리 깨여나라! 앞장서 달려나오라!》, 행진나팔은 《더 힘껏 발맞춰라! 더 기운차게! 기운차게!》, 돌격나팔은 《돌격, 돌격! 앞으로! 원쑤를 향해 맨 앞장에서 돌격! 돌격!》

유격구에 들어와 모든 일에 앞장서려는 김기송동지는 신호나팔이 신통히 자신의 성미를 닮았다고 생각되는것이였다.

기송동지는 갑자기 신호나팔이 짝패동무처럼 여겨져 안주머니에서 광약을 꺼내 그러지 않아도 번쩍거리는 나팔을 사랑담아 더 닦았다.

그러는데 유격대원 한명이 이쪽으로 올라왔다.

중대장이 알아보라고 해서 올라오는게 분명했다. 이제는 유격대에 들어가게 됐구나. 이 나이에 유격대원이 어디야! 하고 생각한 기송동지는 승이 나서 나팔을 더 불어댔다.

산의 올리받이를 타고 올라오는 사람은 중대장 전령병 손석일이였다.

김기송동지는 손석일을 안다. 유격대식당에서 자다보니 그와 자주 마주쳤다. 불깃한 얼굴에 눈이 억실억실하고 씨원한 인상을 주는 신대원이다.

손석일의 어깨에 누런 끈이 메여져있다. 몸을 옮기는데 따라 등뒤에서 나팔이 언뜻거린다.

나팔을 보자 기송동지는 얼떠름해졌다.

손석일은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숨이 찬지 산턱에 털썩 주저앉았다. 기송동지는 선채로 석일이 어깨에 멘 나팔을 여겨보았다. 요전날 적과 전투를 했다더니 로획한 모양이다.

손석일은 활달한 천성그대로 직방치기로 기송동지에게 말했다.

《너 나팔을 잘 부는구나. 나한테 나팔을 배워주지 않을래?》

너무나 뜻밖의 말이였다. 유격대에서 오라 할줄 알았는데 나팔을 배워달라니 손맥이 탁 풀렸다.

불쑥 꿰여진 소리가 나갔다.

《난 불줄 몰라요.》

손석일은 밝은 표정을 흐트리지 않았다.

《그건 무슨 소리야? 실컷 듣구 올라왔는데.》

《글쎄 난 불줄 모른다지 않나요.》

기송동지는 입이 비죽해서 옆으로 돌아섰다.

손석일은 표정을 바꾸며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섰다.

《좋다. 배워주기 싫으면 그만두렴. 난 한고향아이가 돼서 올라왔는데… 생각과는 다르구나.》

손석일은 억실억실한 눈에 열기를 실으며 털썩털썩 아래로 다시 내려갔다.

기송동지는 뒤통수를 한대 맞은것 같았다.

(뭐? 한고향?…)

기송동지는 자라면서 한고향사람을 별반 만나보지 못했다. 그런데 손석일이 지금 한고향이라고 하지 않는가. 기송동지는 손석일이 어떻게 나를 알가 하는 의문도 갔으나 아무튼 한고향사람을 괄세한건 큰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김기송동지는 따라내려가며 소리쳤다.

《형, 내가 잘못했어요. 좀 얘기나 듣자요. 내가 회령이 고향인건 어떻게 알았어요?》

《너의 누나한테서 들었다.》

말을 돌멩이 던지듯 한다.

《뭐라구요?》

기송동지는 다시한번 놀라며 손석일의 손을 올리끌었다. 그 손을 모질게 뿌리치던 손석일은 암만해도 나팔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뿌루퉁해서 따라올라왔다.

기송동지는 정말 안됐다고 다시한번 사죄했다.

김기송동지와 손석일은 나란히 앉았다.

《형, 우리 누나를 어떻게 알아요?》

《쌍봉촌에서 만났지.》

《쌍봉촌이요? 거기야 적후가 아니나요?》

《너의 누나가 거기 지하공작 나왔더구나.》

기송동지는 누나가 지하공작을 자주 다닌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손석일이 기송동지에게 물었다.

《너의 누나 어느 학교에 다녔니?》

《예?》

기송동지는 말문이 막혔다. 야학밖에 다닌게 없다고 대답하기가 멋적었다. 그러나 누나가 못된 세상을 만나서 그렇지 제 잘못이랴 하는 배짱에 곧이곧대로 말했다.

순간 손석일의 눈이 커졌다.

《그래? 그런데 그렇게 수준있게 말한단 말이야?》

그의 말은 이러했다.

회령에서 소학교를 졸업한 그는 밥벌이에 들어가기 전에 삼촌네 집에 가본다며 쌍봉촌으로 건너왔다. 한 녀성공작원이 마을사람들앞에서 얘기한다기에 거기에 끼여들었다.

그런데 자기 나이밖에 안된 처녀가 어찌나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두드려대는지 그는 집에도 알리지 못하고 김정숙동지의 뒤를 따라 유격대에 들어왔던것이다.

김기송동지는 누나에 대한 자랑이 가슴에 그들먹이 차올랐다.

기송동지와 석일은 이어 허물없는 사이가 되였다. 같은 회령사람이라는 정이 마음을 하나로 얽어주었던것이다.

한살때 어머니의 등에 업혀 두만강을 건넜던 기송동지는 고향에 대한 표상이 없었다.

그러나 피줄처럼 끌리는게 고향이다. 그래서 아버지와 어머니, 형님과 누나에게 고향에 대해 자주 물었다.

태줄을 묻은 회령 오산덕은 봄이면 백살구꽃이 어찌나 만발했는지 오산덕등판이 온통 흰구름에 싸인듯싶었다고 했다.

쉬는날이면 회령거리 사람들이 거기로 천렵하러 자주 나왔고 학생들은 원족을 오기도 했다고 한다.

오산덕고향집가까이에는 토기가마와 토기점이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열두발깊이의 우물이 있었는데 어찌나 맑고 찬지 지나가던 사람들은 드레박물을 마시고야 지나군 했다.

고향집뒤에는 세곡령골짜기들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합쳐져 강을 이룬 팔을천이 흘렀는데 그 물은 맑고 깨끗해 거리사람들도 거기에 와 빨래를 했다. 물고기도 많아 오산덕에 와 천렵놀이를 했던것이다.

팔을천건너에는 탄광들이 보였고 자그마한 화력발전소가 들어앉아 있었다. 거기에서 나오는 전기는 일본놈들과 부자놈들만 썼다.

팔을천기슭에 두채의 지붕이 뾰족한 서양집이 서있었는데 그건 일제강점과 함께 기여든 미국선교사들의 집이였다. 거리에 교회당과 그리스도교학교, 자혜병원을 세웠다.

회령사람들은 《백태정선작업》에 목을 걸고 살았다.

백태란 만주콩을 이르는 말이다. 왜놈들은 백태에서 화약원료를 뽑기 위해 기차로 일본에 실어가다가는 회령에 부려놓고 정선작업을 시켰다.

둥근상에 펴놓고 온 식구가 달라붙어 1등품에서 3등품까지 고르고 짜개진 콩과 섞인 돌까지 갈라 바쳐야 했다. 타간 콩의 무게와 조금만 달라도 도적놈취급을 당하기때문이였다.

로일전쟁후에 왜놈들은 많은 고적과 유적을 마스고 병영과 군사시설, 군수도로를 건설하느라 피눈이 되여 돌아쳤다.

1916년부터 공병 19련대를 주둔시키고 두만강에서 여러 배들을 조립하는 훈련, 분해하는 훈련, 한줄로 련결하여 다리를 놓는 훈련을 벌렸다.

그러다나니 배길이 막혀 고향을 떠나 살길을 찾아 헤매던 불쌍한 백성들이 망양나루둘레에 쫙 널렸다.

왜놈들은 그후에 악질적인 보병 75련대를 회령에 들여앉혔다.

이런 참담한 현실을 더는 볼수 없어 김기송동지일가는 강을 건너 중국땅에 자리잡게 되였던것이다.

김기송동지는 손석일에게 물었다.

《형, 지금 회령형편은 어떻나?》

손석일은 긴 한숨을 지으며 대답했다.

《말할게 있니? 온통 왜놈천지지. 회령거리를 정거장통, 은좌통, 남문통, 군영통, 본건통… 이렇게 가르는데 본건통과 군영통에는 조선사람들이 얼씬할수 없어. 왜놈병영과 사택으로 빼곡찼어. 지금 회령인구중에 왜놈이 3분의 1이 남아. 덕흥리에는 비행장까지 닦지 않았니.》

《그럼 여기에 날아오는 왜놈비행기중에 덕흥리에서 날아온 비행기도 섞여있겠어요?》

《두말 하면 잔소리야.》

김기송동지는 낯빛이 어두워졌다.

(고향이 온통 왜놈세상이 됐구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고향땅쪽을 바라보시며 힘겹게 남기신 말씀이 가슴을 아프게 에이였다.

《나라를 꼭 찾고 나를 고향땅에 묻어달라.》

기송동지의 목소리는 물기에 잠겼다.

《형, 내가 아는껏 나팔을 배워줄게.》

《정말?》

손석일의 눈이 기쁨의 불꽃을 튕겼다.

《정말 아니구요. 난 아까 깜찍한 생각을 했댔어.》

손석일은 눈을 슴벅거렸다.

기송동지의 어조는 진지했다.

《나는 유격대에 나팔수가 없으니 내가 거길 가면 어떨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거든.》

손석일은 활기를 띤다.

《그래? 그럼 내가 중대장한테 말해줄가? 내가 배워야 너보다 못할거란 말이야.》

《아니야. 누구나 배우면 내 수준은 얼뜬 돼. 나는 분단장으로 선거받지 않았어. 그러니 그 일을 잘할 생각만 해야지 뭐.》

손석일은 눈을 빛내며 기송동지의 손을 잡아쥐였다.

《알고보니 넌 정말 좋은 애로구나!》

손석일은 나팔공부시간을 약속하고 기송동지와 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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