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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1 회


삼성사수난기

 

《성종실록》 제15권 임진(1472) 2월 계유조

황해도 관찰사 리예의 장계

《신은 그전에 내린 전하의 지시에 따라 문화현의 옛 늙은이들인 전 사직 최지와 전 전직 최득강에게 물어서 삼성당의 사적을 알았으므로 조목별로 적어 보고올립니다.

…삼성당에는 환인천왕이 남쪽, 환웅천왕이 서쪽, 단군천왕이 동쪽을 향하게 모두다 신주를 모셔놓았습니다. 민간에서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옛적에는 다 목상이 있었으나 우리 왕조의 태종때에 하륜의 제의로 여러 사당의 목상을 없애버릴적에 세 성인의 목상도 규례대로 없애버렸습니다. …》


어느날 해질무렵이였다. 황해도 문화고을 관아안마당으로 동포(맹사성의 호) 맹사성과 사헌부 집의 하진이 들어섰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불시에 나타난 조정관리여서 그런지 현령 박함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였다. 일행의 주장은 붕어사자로서 하진이고 동포는 수행중 한사람이였다. 주객의 인사마당에서 동포는 박함과 눈길이 마주치게 되자 《모르는척 하오.》 하는 뜻으로 슬그머니 눈을 끔쩍해보였다.

인사가 끝나고 자리에 앉자 하진은 불안스레 주위를 둘러보면서 이번 하행의 까닭을 밝혔다.

《본헌소속 구월산 삼성당의 환인, 환웅, 단군 세개의 목상들을 전부 없애버리라는 어지가 내렸소.》

《예?!》

박현령은 어찌나 놀랐던지 엉거주춤 일어서기까지 하였다. 하진은 그를 본체 않고 엄하게 덧붙였다.

《소문을 내면 좋지 않을게요.》

이날 저녁 하진일행은 객사에 려장을 풀었다.

날이 어두웠다. 일부러 하진과 떨어져 다른 방에 들었던 동포 맹사성은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누가 볼세라 조심조심 찾아간 곳은 내아 현령의 침소였다. 두 친구는 반갑게 맞절을 하고나서 손을 잡았다. 이들은 온양고을태생으로 막역지우였다. 리별 2년만의 상봉이였다. 먼저 맹사성이 량해를 구하였다.

《이보게 자순(현령 박함의 자), 내 아까 자네한테 눈짓을 한건 우리 두사람이 동향친구인줄을 하진이 알아서는 안되겠기에 부득이 실례를 했으니 그리 알구 언짢은 속을 풀게.》

《원, 별소릴 다. 우리사이에야 아무런들 뭐라는가. 그래 까닭이 뭐야. 어처구니없는 어지와 무슨 상관이 있을테지?》

《차차 숨을 좀 돌려가며 얘기하세나. 한두마디로는 안되니까. 그래 자네 량친께선 다 무고하신가? 내 자네와 한박우물을 먹으면서 자랄 때 그분네들의 사랑을 많이도 받았지…》

맹사성은 여유있게 운을 뗐으나 박함은 벌컥 성을 냈다.

《남은 속이 타는데 셈평 좋다! 그래 삼성당의 성인목상들을 없애란다니 이게 웬놈의 도깨비감투끈인가, 응? 륙갑이 곤두서두 분수가 있지. …그러지 않아두 속이 달아서 내 이제 방금 자넬 찾아가려던 참이야.》

눈에 열이 오른 박함은 방바닥을 두들기며 한걸음 나앉았다. 맹사성은 그의 앞에서 사실을 숨길수도 없고 또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는 나직하게 《말도적질 쥐새끼가 없을가?》 하고 우선 경계의 눈치부터 보였다.

《여기야 뭐 시골이라 서울과야 다르지. 하긴 몰라. 구운 게도 다리를 떼고 먹어야 하는게 세상사니까.》

둘은 뒤골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난 이 맹랑한 판에 끼여들지 않았더라도 어차피 여길 찾아왔을걸세. …》

맹사성은 장침에 엇비슷이 기대앉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운명을 며칠 앞둔 어느날 부친은 맹사성을 불러앉히고 간곡한 유언을 남겼다.

《이애, 자명(맹사성의 자)아, 너 명심해듣거라. 이 아비는 구월산 문화고을의 삼성당을 한번도 찾아보지 못한 죄를 졌구나. 나도 조선사람이라 단군성왕님의 후손이 적실한데 시조님을 한번도 찾아뵙지 못했으니 이 어찌 자손된 도리라 하겠느냐. 나는 이제 그 무거운 죄를 안고 황천길을 어렵게 가게 됐다. 이애야, 너는 반드시 삼성사에 절을 올려 이 불초한 아비의 평생 한을 단군님존전에 고해다오.》

아들은 가슴이 뜨끔했다. 아버지의 죄는 곧 아들의 죄가 아닌가.

맹사성은 말을 배우던 인생의 첫 시기부터 부모와 친척들 그리고 스승들에게서 겨레의 시조인 단군을 받들어야 한다는 정신으로 길들어졌다. 철이 들기 전에 벌써 그는 온 겨레가 단군을 첫 조상으로 모시고 그의 후손임을 자랑으로 여기는줄 똑똑히 알게 되였으며 그 과정에 저도 모르는 사이 자신도 그들과 같은 긍지를 지니게 되였다. 단군이 성업을 이룩하였기에 이 땅에는 조선이란 나라가 서고 나라가 섰기에 겨레는 수수천년 풍파도 많았던 장구한 세월 하나의 혈통을 보존할수 있었으며 이 하나의 혈통은 나라와 민족의 번영을 이룩하고 존엄을 당당히 빛내이고있기에 시조단군은 마땅히 민족의 상징으로 길이 받들어야 한다고 맹사성은 굳게 믿었다. 결국 단군은 온 겨레의 마음의 사직(社稷)이다. 하기에 우리 선조들은 아득한 태고로부터 그분이 천신이 되여 하늘로 올랐다고 전해지는 구월산에 사당을 짓고 단군의 혼령을 모셔온것이 아닌가. 때문에 부친의 유언은 아들에게 큰 충격으로 되지 않을수가 없었던것이다.

부친작고후 거상중에는 움직일수가 없었다.

삼년만에 몽상을 털고 기제사까지 필한 다음에는 삼성사를 찾아갈 준비를 서둘렀다. 했으나 벼슬에 적을 둔 몸이다보니 임의롭지 못했고 더구나 본국도(전국지도)편찬성원으로 발탁된 후로는 그 일이 어찌나 긴장한 노력을 필요로 하는지 도저히 틈을 낼수가 없었다.

며칠전이였다. 의정부 록사로 있는 처남이 슬그머니 찾아와 귀속말을 하였다.

《하대감(우의정 하륜)이 구월산 삼성당의 세 성인목상들을 모조리 없애자는 건의를 상감께 올려 윤허를 받았다오.》

《뭐라구?! 얼빠진 소리!》

처남은 황급히 그의 입을 막았다.

《아, 매형. 조심하우. 함부로 떠들다간 생벼락 맞으리다. 새나가선 안될 소린데요. 뭐!》

적지 않은 힘을 들여서야 겨우 자신을 억제한 사성은 마치 처남이 망동의 장본인이기라도 한것처럼 《그럴 까닭이 뭐라던가?》하고 꾸짖듯이 물었다.

《단군천왕과 같은 천신을 우리 나라에서 섬기는건 대의명분에 어긋난다는거죠.》

《대의명분이라니?!》

《명나라와 같은 천자국에서나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는거지 천자가 없는 우리 나라에선 그럴수 없다나봅니다.》

《원, 저런?!》

사태가 이쯤되고보면 불의지변을 빚어낸 원인이 뻔드름하다.

끝끝내 분심을 이길수 없은 그는 욕설을 터뜨리고야말았다.

《백주에 도깨비짓을 해? 청청하늘이 내려다본다! 저 하늘아래에서 밥먹는것들이 뉘 자손들인데 어디다대구… 단군천왕은 우리 조선사람들 마음속 사직이란 말이야, 마음속 사직! 사직을 허물고…》

《아, 매형. 고정하우 제발. 벽에도 귀가 있고 〈설저유부〉라 혀밑에도 도끼가 있소!》

《…》

이 급변한 정황속에서 사성은 한동안 마음이 갈팡질팡하였다.

도저히 어쨌으면 좋을지 종잡을수 없는 가운데 어인 까닭인지 처남의 귀띔이 어떤 역모의 일단이거나 아니면 전혀 다른 사건의 오해일것이라는 생각이 점점 굳어졌다. 아무리 큰 나라를 섬기는 버릇에 환장이 됐다기로서니 그들의 비위나 맞추자고 제 조상의 얼굴에 침을 뱉는 망동이란 도저히 있을수 없는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승정원에 닿아있는 줄을 당겨 은근히 진가를 알아보았다. 삼성사 성인상들의 비참한 운명, 이것은 엄연한 시실이였다. 어느날 누군가 어지를 받들고 구월산으로 내려간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였을 때 맹사성 그자신이 얼이 빠진듯 멍청해지고말았다.

여러날의 고민끝에 드디여 다음과 같은 결심을 내렸다.

단군상이 배신자들의 칼을 맞기 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조를 찾아뵈옵자. 내 이렇게 못하면 단군후손으로서 명분이 없고 부모의 유지에 랭담한 불효로 저승에 가서 아버님을 만날 면목이 또한 없다. 그런데 최후의 도리를 지키자면 하진을 따라가는수밖에 없다. 본국지도편찬에 황해도일경 특히 명산인 구월산답사가 필요하다고 그럴듯이 구실을 하나 만들어내면 아무런 의심이 없이 수행이 허락될것이다. 이런 든든수에 붙지 않고 그저 그러루한 리유를 내대고 앞서 떠난다면 이를 수상히 여겨 뒤를 캐는자들이 생겨날것이다.

하진에게 붙어가면 참변이 일어나기 전에 혼자서 찾아뵙기 힘들수 있고 여차하면 하진의 눈길을 피하지 못해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할수도 있다. 그러나 이 기회는 하늘이 마련한 기회로서 결코 놓쳐서는 안된다. 아무튼 가놓고보자. 거기에는 자순이 있으니 도와줄것이다. …

《…내 이렇게 돼서 이 슬픈 걸음을 하게 되지 않았겠나.》

사성은 서글프게 말끝을 맺으며 울분의 한숨을 연송 후후 내쉬였다.

《자손이 된 정성으로 조상을 찾아뵙자던노릇이 그 조상을 해치는 형리의 행색이 되여 떠나지 않을수 없었은즉 자네의 속도 어지간하겠구만. 이 행차길에 나설 때부터 고개를 못 들었을테지. 하늘땅이 무서웠을테니까.》

박함은 사성의 떨리는 무릎우에 손을 얹으며 측은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자순, 자네야말로 내 친굴세. 내 아픈 속을 그리 알아주니.》

동정에 목이 마르던 사성은 친구의 손을 덥석 잡으며 진심으로 사의를 표하였다. 량자가 다 쓰린 마음을 말로는 달랠길이 없어 입을 열지 못하였다. 무거운 침묵이 깃들었다.

가냘픈 초불마저 그들의 심정을 건드릴세라 저어했음인지 고요히 타오르고 뒤뜰 귀뚜라미들도 조심조심 쓸쓸히 울어댔다.

어느덧 박함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사성은 그를 보니 참고참아오던 비분이 걷잡을길 없이 솟구쳐올랐다. 가슴이 미여지는듯 숨이 막히고 친구를 따라 눈물이 앞을 가렸다. 미구에 박함은 아무래도 못 견디겠던지 가슴을 두드리며 비통하게 부르짖었다.

《이보라구 자명, 난 이 문화현에 삼성사가 있기에 원노릇이 보람이였네. 삼한땅 그 어디에도 없는 삼성인 사당을 구월산만이 모시지 않았나 말이야. 하긴 단군님께서 천신이 되여 구월산에서 승천하셨다고 전해오니까 사당을 다른데야 모실수 없긴 하네만…

내 이제야 무슨 보람에 여기서 살겠나. 마음속 사직이 허물어졌으니. 아, 단군상을 없애다니? 없애자고 발설한 입이야 입이 아닌 밑구멍이거나 오랑캐일시 적실해.

어이구, 이런 변이라구야. 개천이래 단군님 계시여 조선이 있고 민족정기가 이루어졌지. 그래서 이 땅에 태를 묻은 사람들은 만대를 물려오면서 단군님의 뜻을 겨레의 넋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겠나. 하. 그런데 더 잘 모시지는 못할망정 뭐, 무엇이 어쩌구 어째? 민심은 곧 천심이라 단군님을 받드는 만인의 정성이 천심이 분명커늘 감히… 감히…》

박함은 그만 억이 막혔던지 아니면 뒤말을 차마 혀끝에 올리기가 끔찍했던지 입을 다물고 못다한 말의 대신이런듯 주먹으로 가슴을 쿵쿵 쳤다.

《자순이, 진정하게. 천도가 무심해서 이런 괴변이 생긴걸 어쩌겠나.》

《진정이라… 진정도 류만부동이야. 난 하집의가 단군상을 없애는 그 마당에서 칼로 목을 찔러죽고말테네. 천심을 짓밟은 죄악을 막지 못하고서야 살아서 뭘 한단 말인가… 하긴 내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는다 해도 하늘이 용서 안할테지.》

《나 역시 같은 심정이네만… 아첨에 환장이 된 하륜이와는 좀 달라서 상감께서는 삼성인목상들 처리와 함께 구월산 삼성사제사를 페지하라고 하교는 하시면서도 제사만은 앞으로 평양에서 규례대로 행하라 하셨으니 이 아니 다행인가…》

《뭐? 다행? 자네 그 오지랖넓은 소릴랑 좀 그만두라구.

제사를 평양으로 옮길 푼수면 목상은 왜 없앤다나? 근본은 내던지구 무슨 빈껍데기 제사냐 말이야. 알량할 놈의 눈감고 아웅이로군. 거기서 제사를 해야 한다면 목상들도 옮겨다놓고 해야 순리가 아닌가! 흥! 조상에는 마음이 없고 팥죽에만 정신이 팔린듯이 제 나라, 제 민족의 얼은 안중에 없고 큰 놈의 나라에 비위맞출 생각뿐이니 제정신은 정배보내구 남의 정신에 사는 얼간망둥이 같은것들.

지금은 민심이 두려워서 쉬쉬해가며 범행을 하지만 오래지 않아 반드시 세상이 끓을테니 그걸 롱락하자구 평양제사소릴 내돌린단 말이야. 그건 말하자면 민심을 낚으려는 미낄세, 미끼!》

《…》

친구의 말인즉 자신의 속생각이라 사성은 할 말이 없었다. 구태여 위로한답시고 중언부언해야 실없는노릇이다. 하지만 실수가 없도록 각성시키는 의미에서 한마디 비쳤다.

《하정승(하륜)은 이 음모를 꾸며놓기는 하고도 속이 켕기는 모양이야. 그래 사전에 사달이 나지 못하도록 삼성사로 내려보낼 하향붕어사로는 제 심복을 골랐는데 그가 바로 친생질 하진일세.

하진이란 위인인즉 제 아재비와 똑같아. 권모술수에 능하고 모략에 귀신인 그자가 눈에 독이 올라 살피고있는줄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되겠네.》

이튿날 아침이였다.

조회가 끝나기를 기다려 박함을 만난 하진은 오늘 당장 삼성사로 가서 세 성인의 목상을 불살라버리자고 독촉하였다.

박함은 이런 경우를 예견하여 맹사성과 어제 밤 미리 짜놓았던 계략대로 그를 구슬렸다.

《이보우 하집의, 막중국사를 아무 날이나 시행할수야 없지 않소. 내 그래 간밤에 일진을 보았는데 길수는 오늘이 아니라 명일에 들더란 말이요. 한즉 오늘 하루 하공은 모처럼 떠난 길에 구월산 명소를 유람하는게 어떻소?》

《…》

하진은 불길한 징조를 예감한듯 꺼림직한 눈길로 박함을 쳐다볼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맹사성은 긴장되였다.

(넘어가지 않는구나. 지독한 놈 같으니.)

박함이 한마디 더 보탰다.

《하공, 아무래도 오늘은 안되겠는데 온 하루를 적적히 지낼거야 없지 않소.》

하진은 쌀쌀히 잘랐다.

《어지를 받들고 미행으로 내려온 봉명지신이 유람이라니. 난 여기서 명일을 기다리겠소.》

급기야 박함의 얼굴이 굳어졌다. 사성은 속이 조였다. 어쩐지 하진이 자기 본심을 눈치채고있는듯이 생각되였다. 문득 《벽에도 귀가 있다.》던 처남의 경고가 귀전에 살아왔다.

하진이란 이 악한이 제놈의 어느 심복을 시켜 간밤에 내뒤를 따랐더란 말인가? 그럴수 있다. 하다면 우리 둘이 한 말중에 한두마디라도 도적질했을것이다. 그것이 하진의 귀로 옮겨지는 날엔 큰 변이다.

그때는 틀림없이 자순과 나는 어지를 희롱한 죄에 걸려 처형될것이다. 상감은 단군상을 없애려 하는데 일부러 그를 찾아가 올리는 인사, 이것은 어지에 대한 반기로 인정되며 파면을 면치 못한다. 사태는 위험에 빠졌다!

그러나 맹사성은 자신을 타일렀다.

(그까짓것 무서울게 없다. 뜻을 지킨 죽음은 사나이의 죽음이야!)

죽기를 각오하니 참말 무서울것이 없었다. 이 마음속 선언은 마음을 안정시켰고 이는 곧 사색을 정돈시켜 출로를 찾아냈다. 그는 여유작작히 미소를 지으며 천연스레 둘러댔다.

《집의 하공, 박공이 듣기 좋으라고 그렇게 한 말을 오해하시는군. 예서 구월산 월정사가 지척인데 하루 기다리는 사이 공이 거기 가서 본조의 창성을 위한 치성을 드리도록 하는게 어떤가고 아까 박공이 내게 의견을 묻더란 말이요. 그래서…》

그의 의도를 깨달았던지 박함이 제꺽 발을 달았다.

《하공, 내가 말을 곧바로 해야 할걸 에돌다보니 오해가 생겼소. 고려왕조의 명복은 은률 정곡사가 맡아 빌었는데 본조에 이르러서는 흔히 우리 고을 월정사가 새 왕조의 흥왕을 기원하오. 그래 그걸 념두에 두었는데. 허! 허!》

하진은 그래도 미타한듯 머리를 기웃거리더니 한참만에야 겨우 《그럼, 내 잠간 다녀올테니 그사이 불상사가 없도록 만전을 기하오. 만약.》 하고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뒤말을 생략한 이 《만약》이 위협경고의 시사인줄은 누구에게나 명백하였다.

박함은 즉시 보교를 대령시키고 한편 하진의 왕림을 선통하는척 하면서 먼저 심복하인 하나를 월정사로 띄워보냈는데 그 진목적은 친한 절 주지로 하여금 하진일행을 해가 지도록 붙들어두어달라는 당부를 전하는데 있었다. 가마에 오르면서 하진은 사성에게 《자네도 함께 가세나.》 하고 동행을 요구했다. 맹사성은 지도편찬에 필요한 현지확인이 더 중하다는 공무를 구실로 그의 입을 막아버렸다. 드디여 하진은 떠났다.

아슬아슬 뒤집힐번 한 모의가 성공하자 안도의 숨을 시원하게 내여쉬는 두 친구의 이마에는 땀이 흥건하였다.

맹사성은 길차비를 서둘렀다. 오늘 해전에 소증산의 삼성사에 절을 올리고 돌아오자면 다그쳐야 했던것이다. 그가 평민들의 수수한 바지저고리를 갈아입고나서 솜씨서툰 행전을 치느라 끙끙거리고있을 때 어디론가 사라졌던 박함이 나타났다.

《나도 같이 가려네.》

《아따, 이 사람. 나 혼자 가기로 어제 밤에 약조하지 않았나.》

《그야 그렇지. 하지만 그 고통스러운 길을 자네 혼자만 떠나보내고싶지 않아. 고독하면 슬픔이 더 커진다니까. 그리구 나 역시 마지막으로 한번 더 단군님을 뵙고싶으이. 처자들까지 다 데리고 갔으면 좋겠네만 남의 눈이 무서워 차마 그렇게는 못하겠네.》

곡진한 박함의 대답은 눈물에 젖은듯 목이 메였다. 그의 지극한 마음에 사성은 가슴이 뜨겁도록 감동이 컸고 또한 제편에서 몹시 함께 가고싶기도 하였다. 참말 친구와 함께라면 고통이 덜할것이였다.

그러나 그에게 화가 미칠 만일의 경우를 우려하여 동의하지 않았다. 하진이 륙조삼사가운데 다른 공관 관헌이면 혹 모르겠지만 남의 숨은 죄를 들춰내는것을 전업으로 하는 사헌부의 집의이다. 다름아닌 바로 그가 곁에 있는 조건에서 이 밀모는 드러나기가 첩경이다.

들장만 나는 날에는 사태는 험악해진다. 하륜이 독을 쓸것은 물론이고 성질이 조폭한 임금이 틀림없이 다 잡아죽이려들것이다.

궁정안에서 비밀을 루설한자들까지 모조리 들춰내여 주리를 틀것이라 처남도 무사치 못할것이다.

이 땅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선이래 수천년을 내려오면서 온 겨레가 마음속 사직으로 안고 사는 단군이여서 비록 목상일지언정 그에 대한 폭행은 결코 간단한 세상사변이 아니거니와 설사 그것이 작다 하더라도 새로 왕권을 틀어쥔 임금(태종 리방원)은 집권 초시기부터 본때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도를 넘겨 형장을 들것임에 틀림없다.

정포은을 비롯하여 고려유신들을 무자비하게 쳐죽이는 혈로에 앞장섰던 방원, 왕자리를 다투어 형제들끼리 골육상잔을 서슴지 않아 궁성을 한태줄의 피로 물들인 이른바 《왕자의 란》의 주모자 방원…

지금의 왕이 이러한 폭군일진대 오늘 문화현에서 우리 밀모의 탄로는 그 운명이 명약관화하지 않는가.

으시시 소름이 끼친다. 박함 그자신의 말마따나 《구운 게도 다리를 떼고 먹는게 세상사》렷다. 그래서 《우리 밀행이 들장나는 경우 하진이 잡아먹자 하겠는데 나때문에 공연한 자네까지 횡액을 당하면 어쩔려구.》 하고 박함앞에 손을 내저었다.

《날 생각해줘서 고마우이. 하지만 겨레의 시조가 화를 입는 란리통에 나 하나 횡액이 대수겠나. 그건 그렇구, 이런 길은 벗과 함께 다니는것도 하나의 멋일세. 단군님을 죽마고우가 함께 뵈면 좀 좋은가!》

《자넨 정말 좋은 사람일세.》

《거 새삼스럽다!》

박함은 옷깃을 활활 벗어던지고 부득부득 토목겹바지저고리를 꿰여입었다. 둘은 누가 곁에서 봐도 잘 모르도록 삿갓을 눌러 쓰고나서 말에 올랐다. 물론 견마는 구종도 없는 외홀태기 자견이였다.

문화고을(오늘의 삼천군 고현리)에서 삼성사가 자리잡은 소증산(안악군 패엽리)까지는 삼십리가 잘된다. 두사람은 제나름의 생각에 잠겨 절반길을 말없이 갔다.

새파란 가을하늘에 드문드문 널린 햇솜구름들은 이제 자기밑에서 벌어질 괴변을 두고 못내 슬픔을 금할수 없는듯 장엄한 산기슭에 점점이 그림자를 끄을며 머뭇거릴뿐 멀리로는 떠날줄 모르고 울창한 숲도, 컴컴한 골짜기도 조상의 비운앞에서 억이 막힌마냥 답답한 적막속에 침울하였다. 사위에는 말발굽소리만이 뚜걱뚜걱 단조롭게 울린다.

비애를 애써 눅잦히는지 먼산만 바라보며 잠자코 가고있던 박함이 드디여 울분을 터뜨렸다.

《자명, 내 말 좀 듣게… 난 아무래두 모르겠거던. 남달리 대가 센 상감께서 어찌하여 호정(하륜의 호)의 말이면 사족을 못쓰나 말이야. 이번 일도 그렇거니와 허다한 어지가 거반다 호정의 뜻이 아닌가 말일세. 나라정사는 상감께서 채를 잡는지 아니면 호정이 채를 잡는지 분간을 못할 지경이라니까.》

이 원망은 물론 사성에게서 대답을 받고저 한 물음이 아니라 제딴의 비분이 일으킨 자탄이였지만 하륜을 눈에 든 가시처럼 여겨오던 맹사성이여서 오늘 속이 통하는 친구앞에 그를 욕하고싶은 생각이 강렬히 일어났다. 아울러 친구가 벼슬자리에 앉아있는 조건에서 군신관계의 비사들도 알고있을 필요도 없지 않으리라 믿어져 친구를 돕는 의미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상감님께서 호정의 말을 잘 받아들이는데는 까닭이 있네. …》

하륜이 충청도 관찰사로 임명되였을적에 리방원(태종)이 정안군으로 있으면서 작별인사를 하러 그를 찾아갔다. 여러 손님들이 방안에 가득한 가운데서 방원이 앞으로 나아가 주인 하륜에게 술을 권하려 하였다. 그가 잔을 들고 바투 다가섰을 때 하륜이 취한채 술상을 뒤엎어서 방원의 옷을 흠뻑 버리여놓았다. 방원이 크게 노하여 휭하니 돌아가버렸다. 하륜이 난색을 짓고 여러 손님들에게 《임금의 아드님이 화를 내고 갔으니 내가 몸소 쫓아가서 사과를 해야겠소.》 하고 량해를 구하고는 드디여 총총히 뒤따라갔다. 방원의 하인이 그를 먼저 알아보고 상전에게 《지금 저기 신임충청감사가 뒤쫓아오나이다.》 하고 여쭈었으나 방원은 들은체도 본체도 않고 그냥 내처 자기 집에 이르러 대문앞에 말을 내렸다. 하륜도 뒤따라 말을 내렸다. 방원이 안문으로 들어갔다. 하륜도 안문으로 따라 들어갔다. 방원이 그제야 의심이 나서 뒤를 돌아보며 《왜 그러시오?》하고 물었다. 《사세가 위급합니다. 아까 제가 술상을 엎은것은 전하가 목전에서 그렇게 전복될 위험이 있다는것을 의미합니다.》 하고 하륜이 가만가만 설명하였다. 크게 놀란 방원이 침실로 그를 데리고 들어가서 자세한 사연을 알아본데 이어 수습방도를 물었다.

《저는 부임령을 받았으므로 여기서 오래 머무를수가 없습니다. 이제 안산군수 리숙번이 자기 고을 군정들을 거느리고 서울로 올라올것입니다. 그가 전하를 돕도록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나는 임지에 가서 준비를 갖추고 때를 기다리겠으니 일이 벌어지는대로 저를 불러주십시오.》

하륜은 떠나갔다. 방원이 안산군수 리숙번을 불러 자기의 위태로운 처지를 알리고 수습대책을 물으니 그는 《그것은 손바닥뒤집기나 다름이 없습니다.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하고 선선히 대답했다.

드디여 리숙번은 방원을 받들고 그의 하인무리들과 자기의 안산군정들을 시켜서 군기시를 빼앗은 다음 전부 무장을 갖추고 경복궁을 포위했다. 방원이 남문밖에 장막을 치고 그가운데 앉았는데 그아래 빈 장막을 또 한개 쳐놓았다. 거사에 참가한 많은 사람들이 빈 장막을 가리키며 누가 앉을 자리인가고 의문을 내돌리고있는중에 별안간 나타난 하륜이 그 빈 장막안으로 유유히 들어갔다.

《…상감께서 동생 방번과 방석 그리고 대신들인 정도전, 남은을 쳐죽이고 형 정종을 몰아낸 다음 등극을 꾀함에 있어서 하륜은 이렇듯 큰 공을 세웠네. 자순, 이만하면 호정이 어떤 인물인가를 알만 하지? 상감님과 호정의 인맥관계는 세상이 알아서는 큰일날 비밀일세. 자네만 알아두고 경계하라구.》

《알겠네. … 그렇단 말이지. 한즉 하륜은 상감님을 떡주무르듯 하겠구만. 그러니까 오늘의 삼성사재변은 아직 약과겠다?》

《넉넉히 그럴수 있지.》

《변괴로다!》

《…》

비사를 돌이켜보느라니 더욱 억이 막혀 말할 기력을 잃어버린 두 친구는 다시금 제나름의 속생각에 파묻힌채 단군문앞에 이르렀다.

서쪽에 높이 올려다보이는 구월산 주봉(사황봉)에서 동쪽으로 뻗어내린 두갈래의 산줄기사이에 크지 않은 벌이 펼쳐졌는데 가장 좁다란 목을 성벽같은 돌담으로 건너막고 벌 한복판으로 통하는 길에 문정각을 세웠다. 이것이 단군문이다. 여기에서 삼성사는 서북쪽으로 사오리가량 상거한 나지막한 산마루에 자리잡았다.

삼성사는 삼성당, 삼성전, 단군묘, 단군사, 천왕당 등의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웠다.

삼성사는 험준한 남서북 삼면의 산악과 동남면 담장으로 둘러싸였다. 결국 삼성사는 어마어마한 산세, 천연담장으로 보호된셈이였다.

삼성사일경은 단군천왕의 성지로서 누구든 함부로 범하지 못하도록 산악 삼면으로 보호하는 한편 나머지 평지에다는 담장을 크게 쌓고 문을 세웠다.

이것만 보더라도 우리 선조들이 단군을 얼마나 숭배하여왔는가를 족히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도성의 성문처럼 웅장한 단군문 오른쪽에는 흰 돌로 정교히 깎아세운 하마비가 위엄있게 서있었다.

맹사성은 공손히 말에서 내리며 우연히 고개를 돌리는데 하마비 맞은켠 또 다른 비석이 눈에 띄웠다.

《영보사태(永歩思台)》

비문을 읽는 그의 생각은 깊었다. 단군이 이 땅에 남긴 자취를 길이길이 잊지 않는다는 민족의지의 글발앞에서 좀처럼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두 친구는 걷잡을길 없이 숭엄해지는 마음으로 단군문안에 첫걸음을 들여놓았다.

아, 태고적부터 오늘날 이때까지 얼마나 많은 이 나라 자손들이 경건하게 옷깃을 여미며 이 문안으로 들어섰겠는가. 그 어느 력사시대에 설사 당대의 왕은 모를지언정 단군천왕에 대해서는 누구나 잘 알던 그들이 이제는 다시 이 문안에 들어서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니 맹사성은 끓어오르는 비분을 억제할수가 없었다. 박함 역시 같은 아픔으로 모대기는마냥 고개를 푹 떨군채 눈 한번 바로 들지 못하였다. 그래서 사성은 가슴이 더욱 쓰렸다.

무거운 한걸음한걸음 삼성사를 가까이할수록 이 불의지변을 빚어낸 인간 아닌 인간들이 저주로왔다.

머리검은 짐승(사람)은 은공을 모른다더니 이 훈계야말로 그네들을 가리킴이 아닌가. 그들탓에 이 동포 맹사성은 조상림종의 문안객신세가 돼버렸으니 통분한지고!

소증산동쪽 끝머리의 좁은 골안을 따라 한참 오르느라니 소소리높은 세그루의 은행나무밑에 기와집 한채가 나타났다.

박함은 사성에게 저 집은 사당지기(사직祠直) 최득순의 집이라는것, 최득순의 조상들은 옛적부터 대를 물리며 단군사당을 성의껏 지켜온 좋은 집안이라고 소개하였다.

그의 말소리를 들었던지 그네들과 동년배쯤 되여보이는 최득순이 울밖으로 나왔다. 그는 삿갓을 쓴 보통행색의 두 손님을 무

심히 바라보다가 별안간 사색이 되여 《사또님, 어디 행차하시오이까.》 하고 박함앞에 너푼 엎드렸다.

《이 사람 최사직, 내가 온줄 누구도 알아선 안되겠네. 귀신까지도 말이야. 그럴 까닭이 있어 이렇듯 변복을 했으니.》

최득순은 부들부들 떨면서 아무런 대꾸도 못하였다.

《이 사람 오늘 괴이하다. 전에없이 입은 붙어가지고 떨기는 왜?… 자넨 걱정할게 없으니 마음놓고 우릴 어서 전으로 안내

하게.》

박함이 재촉을 해서야 최사직은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떠듬떠듬 외웠다.

《사… 사또님, 소인 죽을죄를 졌소이다. 아… 아뢰옵기 황송망극하온데… 저… 전중 세 성인의 목상들가운데서 단군천왕님이… 어제 밤사이에… 간 곳없이 그만 사라졌소이다. …》

《뭐, 뭐라구?!》

두사람의 입에서는 비명에 가까운 놀란 웨침이 한꺼번에 튀여나왔다.

…부랴부랴 삼성전으로 올라갔다. 과연 동쪽을 향하여 앉혔던 단군상이 없다. 두사람은 창졸간에 돌처럼 굳어졌다.

남방, 서방을 향하여 모셔진 환인천왕과 환웅천왕 두 목상은 단군상을 잃은 재변에 가슴이 아픈듯 눈물을 흘리는것처럼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만약 저들에게 오감이 있다면 단군상이 도적맞을 때 얼마나 기가 막혔으랴. 어쩐지 남은 두상의 흐느낌소리가 들려오는듯 맹사성은 눈물이 앞을 가리고 가슴이 아파서 차마 그들을 두번다시 바라볼수가 없었다.

얼어붙었던 박함이 비통하게 부르짖었다.

《아득한 옛적부터 수많은 왕조가 바뀌면서도 알지 못했던 변괴가 하필 오늘 이 마당에서 일어나다니, 하늘도 무심타!》

단군상의 실종,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참으로 단군이 천신이여서 조정으로부터 재앙의 마수가 뻗치려 하는줄 남먼저 알고 승천하셨는가? 그렇다면 그처럼 큰 천행이 다시 없으련만. 누가 손을 대였을가? 무엇때문에? 하늘도 귀신도 아닌 생사람이 손을 댔다고 하자. 하다면 어떻게 사헌부 집의인 하륜의 조카 하진이 어지를 받고 내려온 바로 오늘을 틈탔단 말인가? 우연일치? 우연일치치고는 사건이 너무도 사개가 맞물려있다. 조정비밀이 새여나갔다면 이 지방 어느 서민들가운데서 누가 선손을 썼겠는데 왕궁어전처럼 엄엄하고 신성불가침한 이곳으로 어찌 감히 뛰여들수 있겠는가. 세 성인상앞에서는 누구도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하는 법이거늘 통채로 들어내다니, 얼마나 큰마음을 먹었으면 또 얼마나 사정이 절박하였으면 이처럼 엄청난짓을 저지를수 있단 말인가…

맹사성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풀지 못할 수수께끼였다.

…최사직을 앞세우고 사당에서 되돌아나온 두사람은 얼마쯤 내려오다가 숲속에 몸을 숨겼다.

누가 본다면 단군상의 실종을 저들자신과 련결시킬 우려가 있었던것이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소리가 이런 때에 적당하지 않겠는가.

맹사성과 박함은 서두르지 않고 관권냄새도 피우지 않으며 천천히 여러가지로 물어보았으나 최득순은 의심이 가는 사람도, 그 어떤 징후도, 눈길을 끌만 한 흔적도 전혀 없다고 딱 잡아떼듯이 대답하였다. 맹사성은 의심이 사직이 그한테로 돌아갔다.

(대를 물려오는 사당지기. 성실한 보호자가 사건현장 코앞에 있으면서 전혀 아무런 감촉도 받은게 없다니, 그럴수 없어.)

하여 그는 한번 은근히 찔러보리라 마음먹었다.

《내 보기에는 아무래도 밀지를 누가 먼저 어떻게 냄새를 맡고 화를 면케 할 선의밑에 선손을 쓴것 같구만.》

마치 이런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고있었던듯 최득순이 얼른 받았다.

《소인도 그렇게 짐작하고있소이다.》

맹사성은 자신있는 그의 표정을 보고도 못 본척 외면하면서 일단 다음과 같이 인정하였다.

(사건에는 이 사람이 관련이 있다. 멀리든가까이든.)

그러나 조금도 내색은 하지 않고 《귀신의 조화인지, 사람의 작간인지 그렇게만 됐으면야 이 아니 다행인가.》 하고 솔직한 심정을 비친데 이어 《행불행 고하간에 왈가왈부만 해서야 뭘 하겠나. 이젠 뒤수습을 의논하세.》 하고 론의의 곬을 다른데로 트려 했다.

《뒤수습이라? 어떻게? 명일 아침이면 하집의가 역모군들이라도 들춰낸듯 눈알이 뒤집혀 날칠 판인데. 수습도 여유가 있어야 하지, 여유가! …이제 오는 아침엔 들장이 나서… 어휴!》

박함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듯 입을 다물어버렸다.

좀 멀찌기 떨어져 앉지도 못한채 서성거리고있던 최득순이 《사또님, 너무 근심마옵소이다. 사직소인 하나 벌을 받으면 족할줄 아옵는데 소인 각오가 되여있소이다.》 하고 조용히 박함을 안심시켰다.

(저 하나 벌받을 각오가 되여있단 말이지. … 여기에 뭔가 있지 않는가. 아무리 사당지기소임을 지녔다 하더라도 제 잘못이 아닌 다음에야 무엇때문에 선선히 각오를 하겠는가. 죄가 있어도 빠지려고 할터인데.)

맹사성은 최득순의 이번 태도에서도 역시 앞서에 관계자로 좋게 본 인상을 확인할수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로 하여금 앞으로 피치 못할 뒤수습에 실수가 없도록 미리 각성시켜두는 의미에서 설명을 가하였다.

다른 때라면 단군상의 실종이 가볍게 취급될수도 있겠지만 하필 어지가 내린 이때, 더구나 어지를 받든 사자가 당지에 도착한 날 비로소 터진 이 사건은 틀림없이 어지에 대한 반기로 인정될것이다. 쥐든새든 누가 어떻게 밀지를 냄새맡아가지고 선손을 썼다고밖에 달리는 믿을수 없도록 사건이 맞물려있지 않는가.

임금은 궁성안의 비밀루설자들을 수색하겠지만 한편으로 일은 여기서 터졌으니 당연한 리치로 이곳 사람들에게 벼락을 들씌울것이다. 범인을 잡는다면 벌은 그에게 한정되고말것이나 못 잡는 경우 지금의 임금이 어떤 임금인가. 그의 분노는 반드시 의심스러운자들의 목을 모조리 쳐야만 잦아들것이다. 자고로 오로지 정숙과 위엄만이 깃들어있던 이 신성한 곳에서 불원간 전고미문의 아우성이 터지고 피가 흐르게 될것이다.

《애매한 사람들이, 설사 범인이라 하더라도 나는 그를 의로운 사람으로, 자손다운 자손으로 생각하는데 그 좋은 사람들이 백주에 당할 참변을 어찌 보고만 있겠나. 자순이, 우린 이를 결단코 막아야 하네!》

《암, 물론이지. 이 마당에서 발을 뺀다면야 우리가 무슨 사람이겠나. 단군성왕님앞에 면목도 없고… 그런데 방도가 있어야 막을게 아닌가. 참, 방치놓고 딱하다구야.》

《…》

맹사성은 결심에 앞서 잠간 생각을 더듬었다.

어쩐지 최득순에게 마음이 끌린다. 그가 전혀 《모른다.》 하더라도 사람됨됨이 도움을 받을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간다.

믿음이 가든 의심이 가든 이러나저러나 매듭을 이 사람을 통해서 풀어야 한다.

《자순이, 여기 일은 나와 저 사직에게 맡기구 자넨 돌아가게.》

박함은 벌한테 쏘이기라도 한듯 와뜰 놀랐다.

《자네 거 제정신 가지고 하는 소린가!》

맹사성은 그가 순순히 돌아갈 사람이 아닌줄 잘 알고있었다. 자순 그는 위험천만한 사지판에 친구 혼자만 떼여놓고 저는 꼬리를 사릴 그런 위인이 결코 아니다.

《자네 말이 명담일세. 정말 정신차릴 겨를이 없는것도 사실이네만, 그러나…》

《그러나구 뭐구 여러 소리 말게! 자네야말로 돌아가야 될 사람이야. 여기 주인은 나란 말이야, 나! 천도깨비 지은 죄에 벼락을 맞는 자네 꼴을 난 못 봐!》

박함은 성이 나서 부진부진 사성의 등을 떠밀었다.

사성은 그를 타일렀다.

여느때와 달라서 지금 고을관장이 리유없이 임소를 비우면 틀림없이 하진은 의심할것이다. 그가 원래 의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인줄 모르는가. 그의 의심을 사는것은 제손으로 제 눈 찌르기로밖에 달리는 될게 없다.

《…내 이제 사직과 힘을 합쳐서 무난히 처리할테니 믿고 떠나게. 설사 자네가 여기에 붙어있다한들 뾰족한 수야 없지 않나.》

《…》

박함은 주춤거렸다. 사직이 얼른 곁들였다.

《사또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이 선생님의 말씀대로 따르시면 랑패가 없을줄 아오이다.》

이것은 저를 믿으라는 뜻으로 사성에게 느껴졌다.

박함은 공감이 되였던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최득순에게 대를 물려받으며 오로지 단군신에게 일생들을 바친 가문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힘을 써달라는 당부를 남긴데 이어 《이 선생은 나와 형제나 같은 동향친구 동지춘추관사인데 이번에 하진의 수행으로 내려오셨네.》 하고 맹사성을 소개해준 다음 총총히 떠나갔다.

최득순은 맹사성을 자기 집으로 안내하였다. 맹사성은 어쩐지 선뜻 집안으로 들어가기가 저어되여 둘레부터 살펴보았다. 수백년이 잘되는듯 무겁게 실린 기와골의 이끼는 마치 이 집이 구월산의 나이와 같다고 일러주는듯싶었고 하늘을 찌를듯이 높이 솟은 집뒤 세그루의 은행나무들 역시 장구한 세월 이 집을 지켜온 주인들의 기품처럼 고상하게 느껴졌다.

두어아름드리 은행나무껍질에 들어붙은 이끼를 보았을 때 자못 놀라움을 금할수가 없었다.

(내 언젠가 누구한테서 《은행나무는 천년을 묵어야 이끼가 돋는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거니.)

이런 생각에 이어 《한즉 참으로 오래된 집이로군!》 하는 경탄이 절로 새여나왔다.

그 말을 들은 최득순이 대답을 했다.

《예. 그러하오이다. 고려 태조시기라고 전해오기는 합니다만 딱히는 잘 모르겠으나 옛적에 삼성사를 이 소증산에 모신데 이어 우리 해주 최씨가문의 아흔아홉대 선대조상인 최달성어른께서 이 집을 지으시고 초대사직으로 계셨소이다.》

그의 목소리는 저희네 최씨일족이 마치 삼공륙경을 배출한 삼한갑족가문이기라도 한듯 자못 자랑스럽게 불렀다. 사성은 감동이 컸다.

아, 백대를 내려오며 시조신을 받들다니! 십년이면 강산이 변하기마련이다. 인심이라고 해서 어찌 례외가 되랴. 어찌 보면 제일 잘 변하는것이 인심일것이다.

《인심은 조석변》이란 말이 결코 우연치 않다.

그렇다. 세상만사란 이런 법이거늘 하물며 심산궁곡에서 사당지기를 한가문에서 백대를 이어오다니! 이는 말처럼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천명으로 그 직분을 맡았다 하더라도 한가문이 그토록 오랜 세월 불변할수 없다. 사직이, 이는 결코 헐하거나 흥미있는 직분이 아니다. 따분하기 그지없고 절해고도의 정배살이에나 비길수 있는 고생이다.

인간세상과는 인연을 끊은듯 한 심심산중에 벗이라야 수목일뿐 고적하기 그지없다. 산짐승의 생활이다. 아니, 짐승들도 무리를 지어 살기마련이거늘 하물며 인간이 세상과 떨어져 살려니 그 고통 여북하겠는가. 주림에는 살이 마르지만 고독에는 애가 마르기마련일진대, 알리로다, 이 최씨일가는 이웃들과 정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생활속에서 사람답게 삶을 누릴줄 몰라서가 아니다. 겨레의 마음속 사직(社稷)으로서의 단군신을 받드는것이 그 무엇보다 중하기에 고독을 락으로 삼고 한뉘를 바쳐오는것이리라. 하기에 그의 묻지 않은 대답이 이처럼 자랑스러울수 있는것이 아닐가…

생각을 더듬을수록 감동이 새로와진 맹사성은 사직이에 대한 믿음이 더욱 굳어졌다.

불당처럼 깨끗한 방안에 들어서니 맞은편 바람벽에 드리워진 두폭의 족자가 첫눈에 안겨왔다.

《(弘益人間)홍익인간》

《(理和世界)리화세계》

(아, 단군성왕님의 치도근본!)

끓어오르는 격동과 함께 어느덧 마음이 엄숙해졌다.

마치 흑룡(黑龍)이 날아오르는듯 기세장쾌한 여덟개의 글자를 바라보느라니 단군이 근엄한 자세로 앞에 앉아있는듯싶었다.

맹사성, 그는 단군의 모습을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첫째 가는 가보로 중시되는 단군의 화상이 아버지의 서탁앞에 걸려있었는데 그림의 바른쪽 웃가장자리에 《솔거》라는 락관이 뚜렷하게 박혔다.

그밖에도 여러곳에서 단군화상을 늘 보아온 그였다.

때문인지 지금 이 고색짙은 족자에 단군의 모습이 생생하게 어리는것이였다. 그렇다. 단군의 의지를 이렇듯 가풍으로 삼고있는 이 집에서는 결코 졸장부가 나올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사람을 모르게는 그 어떤 귀신도 삼성당에 손을 대지 못할것이다.

안댁이 간소한 주안상을 들여왔다. 역시 옛스러운 륙모소반우에는 버섯, 도라지, 고사리무침접시 셋과 구수한 냄새가 군침을 돋구는 된장공기에 얹은 마늘 여라문쪽이 안주의 전부였고 얼굴이 들여다보이도록 얼른거리는 반병들이에 껄쭉한 탁배기(막걸리)가 한절반 들어있었다. 사성은 어쩐지 고향 온양외가에 나들이를 온듯 가슴은 어느덧 애틋한 향수에 젖어들었다.

주인내외는 《귀객에게 대접이 초라해서 부끄럽다.》고 못내 미안해하면서 나무랍더라도 많이 들라고 부디 권하였다.

맹사성은 소박한 주인들의 인정이 고마왔고 지어 혈육같이 따뜻한 친근감에 목이 메여올랐다.

아마도 이 감정은 첫인상으로부터 족자에 이르기까지 거듭되여온 호의의 연장이였던지는 몰랐다.

하여 그는 주인이 권하는대로 달게 먹으면서 (아닌게 아니라 터분한 탁배기도, 산뜻한 산채들도 모두 입안에서 살살 녹는듯 맛이 기막혔다.) 자기가 서울을 떠나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를 조금도 숨기지 않고 낱낱이 털어놓았다. 정이 통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남이 가진 진정의 자물쇠에 대해서는 오직 자신의 진정만이 열쇠로 될수 있기에 신분의 높은 담장을 허물어버리고 고향친지앞에서처럼 진심을 보이였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였다. 별안간 최득순이 넙적 엎드려 절을 하였다.

《아하, 이 사람 왜 이러나? 취한것 같지는 않은데?》

맹사성은 그를 붙잡아 일으키며 놀라와했다.

《선생님처럼 단군성왕님을 진정 조상으로 받드시는 뜻높은분이 여기 오셨으니 시조께서는 무량한 감개에 락루를 금치 못하리로소이다. 정말 고맙소이다. 선생님의 이번 왕림을 나라에서 전년들에 내려보내던 향축(제사에 쓰는 향과 축문)에 어찌 비기겠소이까. 이 구월산사람들이 선생님께서 오신 뜻을 알게 된다면 진정 기뻐하리로소이다. 이 소인, 그네들을 대신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인사를…》

목이 메여 말끝을 맺지 못하는 최사직의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맹사성은 후더워오르는 마음속에 내가 과연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다, 저 눈물은 저자신과 마음을 같이하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아닐수 없고 보다는 단군상이 무사하다는 암시가 아닐수 없다고 확신하였다.

믿을만 한 사람들과 뒤수습대책을 의논하고 올테니 그동안 기다리라는 부탁을 남기고 최득순은 떠났다. 그가 없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웬 건장한 사나이 하나가 흠뻑 땀에 젖은 말을 끌고 나타났다. 그는 박함의 서찰을 전하였다. 박함은 쓰기를 이 사람은 나의 심복부하군관인데 한꺼번에 대여섯을 능히 당하는 력사이다, 완력행사가 필요한 정황이 생기거나 박함 나에게 급히 통고할 일이 생기면 이를 맡을 사람이라고 하였다.

(자순이, 고맙네!)

해가 질무렵 최득순은 중늙은이 셋을 데리고 돌아왔다.

그들은 끌고 온 소길마우에서 거적때기를 제껴버리더니 큰 절구통만 한 통나무 하나를 값진 보물 다루듯 조심히 안아내렸다. 최득순과 그를 따라온 사람들은 맹사성에게 이 통나무로 단군목상을 하나 새로 만들어 하진의 눈을 속여버리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

이 제안이 어찌나 큰 충격을 가했던지 맹사성은 한동안 얼이라도 나간마냥 굳어진채 서있어야 하였다. 격동의 순간이 지나간 다음에도 자기의 기쁨을 다르게는 표현할수가 없어 다만 《고맙소. 참으로 기특한 생각이요.》라고 했을뿐이였다. 그런데 하늘의 구원같은 방도가 생겼어도 근심거리가 또 있었다.

《명일 아침까지 하집의가 믿을수 있도록 꽤 만들어낼수가 있을가? 내 알기에는 여느 목상을 하나 깎는데 흔히 백날은 걸린다 하던데?》

최득순이 얼른 안심시켰다

《념려마소이다. 일이란거야 사람이 할탓에 달렸습지요. 이 사람들은 결사의 각오가 돼있으니 해낼수 있소이다. 게다가 목각재간들이 어지간한지라 믿을만 하오이다.》

통나무토막을 웃방에 들여놓고 사방에 초불을 밝혔다.

최득순까지 합쳐 네사람이 팔소매를 걷어부치고 끌을 잡았다. 한쪽벽에는 단군화상을 걸어놓았다. 넷이 저마끔씩 맡아가지고 부리나케 쪼아댔다. 잠시후 그들의 이마에는 팥죽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잔등이 화락하게 젖어들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허리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맹사성은 일손을 도울수가 없어 마음이 괴로왔다. 량반의 체면만 아니였더라면 수건을 들고 그들의 땀이라도 씻어주었을것이

였다.

새벽 첫닭이 홰를 칠즈음 머리와 가슴의 형태가 거반 잡혔다. 이제부터 몇갑절 더 어려운 세공작업이다.

밝을 때까지 도저히 끝낼것 같지 않아 맹사성은 속이 탔다.

최득순이 의견을 내놓았다.

《선생님도 사또님과 함께 하집의를 동행해얍지요?》

《그러하오. 그한테 털끝만 한 의심도 주지 말자면 동행해야 등탈없지.》

《털끝만 한 의심이 화근일수 있으니 선생님은 고을로 돌아가소이다. 사또님께서 뜬눈으로 밤을 새셨겠는데 위로도 드릴겸…》

《?!》

사성은 다시금 그가 돋우보였다. 확실히 용의주도하고 궁리가 밝은 사람이다. 지도편찬이라는 구실이 있기는 하지만 거사당일에는 마땅히 수행원의 구실을 해야 할것이요, 더우기는 임의의 정황에서 박함을 돕기 위해 그와 같이 있을 필요가 있는것이다.

하지만 일판을 떠날수가 없었다. 일거리가 범벅판으로 될가보아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것이였다. 그의 심정을 가늠했던지 모두들 한마디씩 건넸다.

《선생님, 이왕 저희들을 믿으시고 벌린 일인데 끝까지 믿으사이다.》

《성패에는 선생님이 곁에 계시나 안 계시나 매일반인데 그럴바 치고는 순리를 따라얍지요.》

《우리들도 단군의 자손들이거늘 선생님이 안 계셔도 우리 결코 소홀치 않소이다.》

참으로 의리깊은 사람들이였다. 맹사성은 이들에게 무엇으로 감사를 해야 할지 알수가 없어 기쁘기 그지없는 마음이 자못 무거웠다. 드디여 그는 박함이 보내주었던 군관과 함께 말을 탔다.

…하진일행은 거의 한낮때에 이르러서야 단군문밖에 이르렀다. 어뜩새벽부터 분주탕을 피우는 하진을 맹사성과 박함이 배를 맞춰가며 이 구실 저 구실로 질기게 부린 늦장이 은을 낸것이였다. 맹사성과 박함은 하마비앞에서 말을 내렸다. 하진은 꿈쩍하지 않았다. 맹, 박 두사람은 눈꼴이 시였으나 꾹 참고 먼저 문안에 들어섰다. 뒤에서 하진이 역증내는 호통이 들렸다.

《여봐라. 이젠 단군을 조상으로 섬기지 않아도 될터인데 웬놈의 하마야, 하마가! 어서 가지 못할가.》

교군군들은 마치 망두석으로 변한듯 움직일줄 몰랐다.

하진은 얼굴이 수수떡이 되여 하는수없이 가마를 내리면서 주리대를 안길테라고 교군군들에게 을러댔다.

맹사성과 박함 두 선비는 한걸음두걸음 속을 끓였다.

새 단군목상이 어느 정도 완성되였을가? 밤새워 들패던 사람들이라 혹 깜박 졸던 서슬에 다된 코끝이나 귀바퀴를 끌로 잘못 찍어내지나 않았는지? …골짜기를 따라 최득순의 집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두사람의 이마에는 땀발이 더욱 굵어졌다. 벌써 이리 다 왔는가. 어쩌면 산골의 험한 삼십리길이 이다지도 가깝더란 말인가.

사직이의 집에서부터 한마장쯤 떨어져 삼성당이 자리잡은 치받이언덕밑에 장작더미가 쌓여있었다.

박함은 데리고 온 관노들에게 《너희들은 내 가마를 가지고 올라가서 세 성인님들의 목상을 고이 모셔내려오라.》고 가까스로 분부했다.

이 순간부터 두사람은 얼굴을 들지 못하였다.

《꽈르릉!》

시퍼런 저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덮칠것 같아서였다. 아니다. 이들은 벼락에 앗길 목숨이 두려워서가 결코 아니였다. 이 천추에 씻지 못할 범행을 막아내지 못하고 동참하는 죄, 여기에는 천벌이 오히려 가벼울줄 너무도 잘 아는 이들이였다. 단군의 후손일진대 그 조상앞에서는 불효하고 단군이 겨레의 사직일진대 그앞에서 불충한 죄, 아니 효와 충을 지켜 한목숨 내던지지 못하는 배신자라는 죄의식이 하도 가혹하여 도저히 하늘땅을 볼수가 없는것이였다. 그러면서도 삼성사로 올라갔던 관노들이 되돌아 내려왔을 때 슬그머니 눈길을 아니 들수가 없었다.

비록 불충불효의 죄는 크지만 성인들에게 최후의 눈인사라도 올리고싶은 충동이 불길처럼 일어났던것이다.

걷잡지 못할 힘에 끌려 눈을 들던 두 친구는 흠칫 놀랐다.

세 목상에 올린 금박물이 모두 똑같이 생생하지 않는가! 자세히 하나하나 뜯어보지 않고서는 어느것이 새로 만든것인지 분간이 어렵도록 착색이 한결같았다.

맹사성은 가슴이 뜨거웠다.

(하진의 눈을 홀리려고 최득순이 새로 몽땅 한색을 입혔구나!)

눈물이 나도록 고마왔다.

하진이 가마우에 나란히 놓인 세 성인목상앞으로 다가갔다.

맹사성은 은연중 손에 땀을 쥐였다. 박함의 얼굴은 돌처럼 굳어졌다. 하진은 음모를 눈치채고 어떤 단서를 들춰내려는듯 한상한상 깐깐히 살폈다. 그의 눈길이 점점 날카로와졌다. 맹사성은 속이 한줌만 했다. 그와 박함의 불안에 떠는 눈길이 하진의 뒤허공에서 잠간 부딪쳤다.

드디여 하진이 표독한 기색으로 쌀쌀히 물었다.

《사당지기! 금박은 왜 새로 다같이 올렸느냐?》

순간 주위는 얼어붙은듯 조용해졌다. 바늘떨어지는 소리도 들릴것 같은 숨막히는 정적이 한초한초 흘렀다. 맹사성은 어진듯 한 최득순을 일별하며 하진의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사람이 죽었을 때 입관에 앞서 목욕을 시키는 법이지요. 내가 사당지기에게…》

《…》

삼성사 세 성인의 목상들을 불태워버린 하진은 쉬여가라는 박함의 호의를 뿌리치고 부랴부랴 상경길에 올랐다.

아마도 벼락을 맞을가보아 겁이 났던지 모른다.

단군상의 행처는 어디겠는가?

풍파를 겪고나니 더욱 절절해지는 관심이였다.

맹사성은 당초의 본뜻을 이루기 전에는 구월산을 떠날수가 없었다. 단군상이 어디에 잘 보존되여있다고 믿어지는 이상 결단코 부친의 유언을 실행해야만 하였다. 따라서 그것은 단군의 자손이 된 량심의 가르침이기도 하였다.

단군상이 아주 없어졌다 하더라도 차마 발길이 돌아서지 않겠거늘 있는줄 알고서야 어찌 그냥 돌아가랴.

아울러 이번의 불의지변을 막아낸 이곳 사람들을 꼭 만나보고싶었다. 내 단군의 후손으로 이 땅에 태를 묻은 조선사람이 분명할진대 겨레의 넋을 지킨 의인지사들을 모른다니 말이 안된다. 미더운 그들, 충성스러운 그들앞에 진심으로 허리굽혀 절을 하고싶은 심정이였다.

자신이 임금이라면 그들모두의 이름을 낱낱이 《충신록》에 올리고 정문을 세워 표창하였을것이다.

이날 저녁 맹사성은 띠를 풀어놓고 박함의 후한 대접을 맘껏 받으면서 이런 심정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술은 목으로 넘어가고 진정은 목밖으로 흘러나왔다.

박함은 연송 고개를 끄덕였다.

《옳거니! 내가 친구 하나만은 정말 잘 두었지. 나도 그 생각뿐일세. 헌데 서울 가서 김서방 찾기지. 그들을 어떻게 찾나. 목숨을 내놓고 의거한 사람들이라 필경 목숨을 내놓기 전에는 저들의 밀행을 발설치 않을텐데.》

《자순, 최사직을 다시한번 믿어보세.》

《그래? 그의 행적을 미루어 그가 다 알상싶다? 근리한 생각이야. 좋아. 다시 찾아가보세나.》

…최득순은 맹사성과 박함의 청을 듣고는 두세마디안에 단군상의 행처도 그 관계자들도 전혀 모른다고 딱 잡아뗐다.

했으나 두 점잖은 선비들이 하도 거듭거듭 부탁을 하자 나중에 아닌보살은 하면서도 《…좀 짚이는데가 있긴 한데, 이제 산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보고 오겠다.》며 뿌옇게 사라졌다. 기다리기에 지친 다음에야 돌아온 최득순은 단군상이 보관된 석굴을 알아냈노라고 반가운 소식을 전하면서 길잡이로 나섰다.

삼성사뒤 험준한 산길을 한참동안 걷고난 일행은 땀을 식히느라 쉬게 되였다. 서늘한 참나무그늘밑에 자리를 잡자 맹사성이 물었다.

《이보게 최사직, 이제야 뭐 다 알게 된 사실이라 숨길게 없겠으니 묻는건데. 삼성사의 세 성인상을 없앤다는 말을 어떻게 들었소? 손을 쓰기 전에 소문이 나면 필경 서울이 끓고 온 나라가 끓을것이라 그게 두려워 엄한 비밀에 붙인 어진데 어떻게 알았소?》

《선생님, 소인은 선생님이 반드시 이를 물으실줄 알고있었소이다. 그것은…》

그저께 한밤중이였다. 잘 아는 관노 하나가 숨이 턱에 닿게 삼십리 밤길을 달려왔다.

《큰변났소. 지금 조정에서 봉명사자가 고을로 내려왔는데 사또님께서 사색이 되셨소. 내가 여기로 떠나기 직전이요. 우리 모친이 안전께서 주무시기에 앞서 늘 자시군 하는 탕약을 가지고 찾아갔다가 침소문틈으로 새여나오는 사또님의 〈… 삼성당의 목상들을 몽땅 없애란다니 이게 웬놈의 감투끈인가!〉 하는 노성에 그만 깜짝 놀랐다오. 우리 모친은 내게 황급히 이 말을 전하면서 삼성사가 란리를 겪게 됐는데 가만있으면 어쩌냐고 내 등을 떠미시기에 이리 오지 않았겠소.》

이 소식에 경풍할듯 놀란 최득순은 그달음으로 마을사람들을 찾아가 심중히 의논하고 선손을 썼다. …

이야기를 다 듣고난 맹, 박 두 선비는 무량한 감개에 사무쳐서 참들 잘하였다고, 과연 자손들답다고, 그대들이야말로 숨은 층신들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득순은 어린애처럼 낯을 붉히고 몹시 점직해하더니 동쪽으로 환하게 트인 벌을 그윽히 바라보며 자신에게 이르는 말처럼 조용조용 뇌이기 시작하였다.

우리들가운데 자손구실에 대해서 생각한 사람은 없다. 이번 거사를 충의로 본 사람은 더구나 없다. 우리의 구월산사람들은 자자손손 오천년이래 우리 나라를 영구히 우리 나라로 되게 하시고 우리 겨레를 영구히 우리 겨레로 되게 하신이가 바로 단군성왕님이시기에 그 성덕을 잊을수 없고 그 못 잊음이 우리 백성들의 얼이기에 얼을 앗기지 않고 조상들처럼 제정신을 가지고서 떳떳이 살려니 그 일에 뛰여들었을뿐이다. …

소박한 인간의 진정은 맹사성의 가슴을 뜨겁게 울렸다. 눈굽마저 젖어올라 손이 저도 모르게 얼굴로 올라갔다.

안색이 신중해진 박함은 최득순의 투박한 손을 소중스레 부여잡고 마치 지금 어디엔가 있을 그 의로운 사람들을 찾아내려는듯 저 멀리 들판을 쭉 훑으며 마음속의 감회를 터놓았다.

《참으로 장한 사람들이요. 뭐가 제정신인가를 알고있거던. 단군상을 숨겨모신 밀모가 드러나는 날에는 장본인, 그 련루자 할것없이 모조리 삼대멸족될텐데도 여기 사람들은 서슴지 않았으니 이 아니 장하오!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 세상에서 가장 중한건 제 한목숨인즉 뉜들 목숨 아까운줄 모르랴만은…》

곡진하게 울리던 진정은 목이 메여 끝을 맺지 못하였다. 그는 조선민족의 원시조 단군상을 재난으로부터 구원한 사람들의 씩씩한 기백앞에 머리가 숙어드는지 고개를 수그린채 걸음을 떼였다. 아니, 시조의 모습을 한시바삐 뵈옵고싶어 조급했던지는 모른다.

맹사성은 시조를 뵈올 순간이 시시각각 다가올수록 점점 숭엄한 감정에 휩싸여들었다. 힘있게 걷고있는 최득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뒤따라 걷고있는 맹사성의 귀전에는 그의 진지한 목소리가 끊임없이 울리고있었다.

《…오천년이래 우리 나라를 영구히 우리 나라로 되게 하시고 우리 겨레를 영구히 우리 겨레로 되게 하신이가 바로 단군성왕님이시기에 그 성덕을 잊을수 없고 그 못 잊음이 우리 백성들의 얼이기에…》

세상과 동떨어진듯 심산궁곡에서 사당을 지키는 사람과 그의 이웃들 지어 가장 천하게 버림을 받는 관노와 그의 어머니 관비에 이르기까지 시조의 넋을 지키는것을 백성의 도리로 여기고있으니 민족의 넋은 바로 백성들이 지키는것이다.


리 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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