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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 회


신 지 글 자


단군이 부루나에 도읍을 정하고 고조선을 세운지 몇년이 지난 어느 가을날이였다.

이날 단군은 여러날동안 사냥으로 열지 못하였던 정사모임을 열었다.

단군은 매해 들에서 곡식을 거두어들이고 산과 들에 살찐 짐승들이 뛰노는 가을철마다 의례히 나라의 주요한 관리들을 이끌고 며칠동안 사냥을 벌리군 하였다.

이날 나라의 주요신하들이 모인 정사모임에서는 그동안 쌓인 나라의 여러 문제들을 처리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의논하였다.

모임이 끝날무렵에 단군은 반렬에서 앞자리에 서있는 마가 신지에게 눈길을 멈추었다.

모든 관리들은 얼굴들이 검실검실하고 몸에는 탄력이 있어보였으나 신지만은 얼굴빛이 새하얗고 후리후리한 몸은 후줄근한데다 구부정한것 같아 기운이 없어 보이였다.

신지의 이런 모습을 보는 단군의 마음은 측은하였다.

신지만이 이번에도 사냥에 따라나서지 못하였다. 그러니 신지는 나라가 세워진이래 단 한번도 사냥에 나서지 못한것이다.

신지가 이렇게 사냥에 한번도 따라나서지 못하게 된것은 신지가 맡고있는 마가의 직책때문이였다.

마가의 직책은 임금의 지시를 받아 아래에 전하고 또 아래에서 올라오는 모든 일을 받아 임금에게 아뢰는것이였다. 당시까지 글자가 없은것으로 하여 마가는 임금의 지시나 아래에서 보고되는 모든것을 머리에 다 기억하고있다가 전하여야만 했으므로 더구나 궁궐을 뜰수 없었던것이였다.

신지를 한동안 내려다보던 단군은 조용히 말했다

《마가, 그대 내 말을 듣거라.》

《녜. 듣소이다.》

《그대가 이번 사냥에도 따라나서지 못한것은 참 미안스럽게 된 일이로다.》

《황송하나이다. 허나 신은 맡은 일에서 조금도 겨를을 낼수 없으므로 도리여 사냥에 따라나서지 않는것을 다행으로 여기고있소이다.》

《제 속을 가리우고 하는 대답이로다. 나라를 세우기 위한 수많은 싸움터에서 수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범처럼 산과 들을 날으던 그대가 어찌 사냥을 마다할수 있었겠느냐.》

《나라의 큰일을 맡은 몸으로서 어찌 그쯤한 일을 묵새길수 없겠나이까.》

《그대의 그 마음 고맙다만 그대의 몸이 되여가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 좋지 않구나.》

《녜?》

《그대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얼마간 대신 보게 할터이니 그대는 래일부터 말미를 받고 사냥에 나가 기운을 돋구고 머리도 폭 쉬울지어다.》

《…》

이로써 정사모임은 끝나고 모두 흩어져갔으나 신지만은 오래도록 자리를 뜨지 못하였다.

단군의 이와 같은 념려에 신지의 가슴은 뭉클하고 눈굽이 뜨거워 선듯 일어설수 없었다.

이튿날 아침 신지는 모두 자기 맡은 일만으로도 바빠하는데 어떻게 자기 일을 더 맡기겠는가고 하면서 사냥떠나라고 내린 지시를 거두어주기를 간절히 청하였다. 그러나 단군은 신지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리하여 신지는 그 다음날 단군이 붙여주는 군사 수십명을 데리고 드디여 사냥을 떠났다.

몇년만에 처음으로 갑옷을 차려입고 군마를 타고 산과 들을 달리는 신지의 마음은 한없이 상쾌하고 즐거웠다.

참으로 남아로서 말을 타고 화살을 날리는 즐거움이야말로 역시 세상에서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것을 새삼스레 느껴지였다.

그는 그동안 누리지 못한 사냥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려는듯 밤늦게까지 군사들이 튕기여주는 짐승들을 쏘고 또 쏘았다.

이렇게 첫날 사냥에서 잡은 짐승을 가지고 어느 한 마을에서 군사들과 함께 하루밤을 즐거이 보낸 이튿날이였다.

이날도 날밝기 전에 사냥에 나섰다.

이날엔 큰짐승을 잡아보자고 험하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실개천이 흐르는 어느 한 골안에 들어섰을 때였다.

물을 먹으러 내려왔던 살찐 두마리의 큰사슴이 군사들의 몰이소리에 튕겨나 골안으로 도망치고있었다.

《사슴이 나타났다!》

군사들의 환성이 울리였다.

신지는 전통에서 화살을 꺼내여 시위에 메우면서 사슴을 쫓았다.

두마리의 사슴이 화살촉끝에서 오르내리였다.

《좀더 가까이…》

신지는 말에 박차를 가했다.

그는 애타게 기다리다 맞다든 이 짐승을 좀더 씨원하고도 통쾌스럽게 단 한살에 꺼꾸러뜨리려고 겨냥을 바재였다.

골막바지까지 몰리워간 사슴은 산등성으로 올리뛰였다.

신지는 경사진 막바지로 말을 몰아 오르면서 사슴을 쫓아가다 사슴이 등마루에 오르는 순간 활시위를 힘껏 당기면서 겨냥하였다.

그런데 경사지로 숨가삐오르는 말잔등이 들까부는 바람에 겨냥이 흔들리였다.

그리하여 흔들리는 말잔등의 률동에 맞추어 다시 겨냥하면서 화살을 날리려는 순간 그만 두마리의 사슴이 등마루너머로 홀까닥 사라졌다.

《아차.》

순간을 놓친 신지는 활을 내리우고 말고삐를 잡아채며 등마루에 다그쳐 올랐다.

등마루에 오른 신지는 말을 더 몰지 못했다.

방금 넘어온 사슴들은 온데간데 없었다.

아무리 사방을 살펴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등마루에서부터 두가닥의 골짜기가 열려져 사슴이 어느 골짜기로 빠져내렸는지 가늠도 할수 없었다.

《허, 맹랑한걸.》

신지는 다 잡았던 사슴을 놓친것이 아쉬웠다.

그는 뒤따르는 군사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여봐라.》

《예- 이》

《사슴을 놓쳤다.》

뒤미처 올라온 군사들도 아쉬운 기색으로 골안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자. 어서 나누어 골안을 훑어라.》

그러자 군사들이 두 골안에 나누어 내리며 소리쳤다.

《후-여!》

골짜기가 험하고 가파로와 몰이군사들의 걸음이 굼떴다.

신지는 군사들의 걸음을 재촉시키고 또 사냥의 흥을 돋구려고 소리쳤다.

《사슴을 먼저 찾는자에게 상을 줄테다.》

이 말이 골안에 쩌렁쩌렁 메아리치자 뒤이어 군사들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였다.

《후-여!》

《후-여!》

군사들은 저마다 먼저 사슴을 발견하고 상을 받자는 심산에서 더 활기를 띠였다.

그러나 오래도록 사슴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렇게 한동안 지났을 때였다.

《여기 있소이다.》

한 골짜기에서 군사의 웨침소리가 들렸다.

신지는 곧 말을 몰아 그 골짜기로 내려갔다.

《어데 있느냐?》

신지는 소리친 군사에게 다우쳐 물었다.

《아직은 보이지 않으나 여기에 발자국이…》

《발자국?》

신지는 소리친 군사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골안에서 흘러내리는 물에 밀리여 쌓인 넓은 모래불우에 두마리의 사슴이 지나간 발자국이 력력하였다.

《발자국을 보고있다고 소리쳤나?》

《그러기 말일세.》

《그러면 상은 발자국에게 주어야겠구만…》

뒤따라 모여온 군사들이 비웃으며 떠들었다.

소리쳤던 군사는 얼굴이 벌개서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사슴발자국을 보는 신지에게는 사슴을 놓쳐버린 아쉬움이 사라졌다. 발자국의 발견으로 사슴을 다시 찾으리라는 희망이 들었던것이다.

사슴이 간 곳을 말해주는 발자국이 고맙게 생각되였다.

그래서 사슴의 발자국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있을 때였다.

《있소이다. 있소이다. 사슴이 저기 있소이다.》

사슴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소리쳤던 그 군사였다. 신지는 머리를 들어 군사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무성하게 우거진 덤불속에 누런 사슴의 몸뚱이가 약간 보이였다.

돌을 던져도 맞힐 정도의 거리였다.

덤불속에 몸을 숨긴 사슴들은 까딱하지 않았다. 참으로 발자국이 없었더라면 사슴을 찾아내지 못하였을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신지가 덤불속의 사슴을 바라보고있을 때였다.

《어서 살을 날리시오이다.》

《어서 쏘시오이다.》

군사들이 사방에서 벅적 고아대며 소리쳤다.

군사들이 고아대는 소리에 놀란 사슴들이 넝쿨속에서 뛰쳐나와 도망치려 하였으나 몸뚱이와 다리가 넝쿨에 감기여 허우적거리고있었다.

넝쿨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사슴들과 발앞에 놓여있는 사슴발자국들을 번갈아 보던 신지는 움직일줄 모르고 멍하니 서있었다.

이러는 사이에 한마리의 사슴이 간신히 넝쿨속에서 몸을 빼여 달아나고 뒤이어 다른 한놈도 몸을 빼고있었다.

이를 보는 군사들이 안타까이 소리쳤다.

《사슴이 도망친다.》

그래도 신지가 멍하니 서서 보기만 하니 군사들은 하는수없이 창을 들고 몸을 빼고있는 사슴한테로 달려갔다.

《가만, 잡지 말어라.》

신지는 큰소리로 군사들을 멈춰세웠다.

군사들은 달려가다말고 서서 몸을 빼고 달아나는 사슴과 신지를 번갈아 보면서 의아해하였다. 신지는 의아해 바라보는 군사들을 다 모이게 하였다.

《오늘 사냥은 이만하겠다.》

그리고 군사들을 둘러보았다.

《아까 사슴발자국을 찾은자가 누구냐?》

《저올시다.》

《이리 나서라.》

그 군사가 한걸음 나섰다.

신지는 그에게 자기의 활과 전통을 벗어 내주었다.

《약속한대로 주는 상이다.》

《녜?》

그 군사는 어리둥절하여 주저하였다.

군사가 활과 전통을 받자 신지는 그길로 군사들을 데리고 궁궐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다시 사냥에 나가지 않았다.

신지가 사냥갔다가 다 잡을번 했던 사슴도 쏘지 않고 놓아주고 궁궐에 돌아와서는 다시 사냥하러 나가지 않았다는 괴이한 이야기가 군사들속에서는 물론 궁궐관리들속에 돌면서 별의별 뒤소리들이 나돌았다.

《신지는 그동안 활쏘는 법도 잊어버려 사냥에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구만.》

《신지는 그동안 몸만 약해진게 아니라 마음도 약해졌는 모양이지. 사슴 하나 불쌍해 죽일 용단을 내지 못했다니…》

이러한 소문과 뒤소리가 드디여 단군의 귀에까지 전하여졌다.

《그것 참, 이상한 일이로다.》

이렇게 생각된 단군은 어느날 신지가 일하는 방으로 조용히 찾아갔다.

《그대는 어이하여 사냥하다말고 돌아왔느냐? 그동안 일에 치우치다나니 사냥재미도 잃어버린게 아니냐?》

《아니오이다.》

《그럼 어째서 다 몰아놓은 사슴도 잡지 않고 놓아주었더냐?》

단군의 이런 물음에 신지는 그때 사슴을 잡을수 없었던 사연을 실토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날 소인은 차마 사슴을 쏠수 없었나이다. 그날 처음 나타난 사슴을 쫓다가 제 잘못으로 그만 놓쳐버렸는데 다시 사슴을 찾은것은 그것들이 남긴 발자국이였나이다.

순간 사슴을 다시 발견한 기쁨은 컸으나 다음순간 차마 사슴을 쏠수가 없었나이다.》

《어째서?》

《오늘에 와서 솔직히 말씀드림이 죄송스러우나 소인은 지난날 사냥에서 사슴을 따르다 놓쳐버렸을 때처럼 전하께서 내린 지시가운데 오래된것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다시 물으러 오는 사람한테 대주지 못한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나이다. 사슴은 흔적을 남기여 놓쳐버린 자기를 다시 찾게 하여주었으나 소인은 한번 잃어버린 어지를 다시 되살려낼 재간이 없음이 사슴보다 못하다는 부끄럼이 들었나이다.》

《사슴보다 못하다?!》

《그렇소이다. 이때 소인은 들은 지시나 소인이 한 일을 사슴처럼 뒤날에 다시 되살려내게 하는 흔적을 만들어놓아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여 사냥을 거두고 즉시 돌아왔나이다.》

《그래 그 흔적을 남기는 방법을 어떻게 찾아낸다는것인가?》

그러자 신지는 방 한구석에 쌓아놓았던 대쪽무지에서 몇개 쥐여다 단군에게 보였다.

그 대쪽에는 서로 다른 모양의 선과 점들이 그어져있었다.

《소인이 그날부터 밤마다 생각해본것이나이다.》

《여기에 그은것들이 무엇이냐?》

《우리가 하는 말에 각기 뜻과 소리가 다르듯이 이 선과 점들이 말과 뜻을 대신하게 하면 어떤 말이든지 대쪽에 옮겨놓을수 있고 그후 아무때이건 이 대쪽을 보면 그 어느때 한 말이라도 다시 알아볼수 있게 될것이나이다.》

《그것 참, 신통한 생각이로다.》

《그러면 임금이 내린 어지나 아래에서 올라오는 보고를 이런데 옮기여두면 우리 하는 일이 한결 쉬워질뿐아니라 우리가 한 일을 먼 후대에게도 오래도록 전할수 있을가 하나이다.》

《그렇다. …》

단군은 신지의 방 한구석에 가득 쌓여있는 대쪽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그리고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다가 크나큰 기쁨과 감탄이 어린 기색으로 신지의 두손을 뜨겁게 잡아주었다.

《참말로 좋은 생각을 하였다. 사냥을 하면서 사슴의 발자국 보아오지 않은이 없었건만 이런 생각을 한것은 오직 나라위한 일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쳐오는 그대뿐이로다. 어서빨리 그 방법을 만들어내거라.》

《알겠소이다.》

이날부터 신지는 단군의 깊은 관심속에 말과 뜻을 대쪽에 옮겨놓을 방법을 탐구하는데 온갖 지혜와 열정을 바치였다. 그리하여 드디여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되는 글자를 만들어내게 되였다.

이 글자를 신지가 만들어내였다 하여 후세에 《신지글자》라고 한다.

고조선의 옛무덤에서 발굴되는 질그릇들에 새겨져있는 신지글자들과 《녕변지》에 실려있는 열여섯자의 신지글자는 그 당시 신지가 만들었다는 글자의 모양을 오늘에도 력력히 볼수 있게 하고있다.


김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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