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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 회


족장봉은 하나면 된다


우리 나라에서 첫 고대국가인 고조선이 막 잉태하기 시작하던 시기의 일이다.

박달족을 들이쳤다가 오히려 그 박달족에게 쫓기여 부루나 동쪽지대(오늘의 강동군일대)의 깊은 산속에 몸져누워있던 마귀족의 족장은 《족장님, 큰일났소이다.》, 《족장님, 큰일났소이다.》라고 소리치며 허겁지겁 달려오는 호위군사의 목소리에 놀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이냐?》

목소리는 위엄을 갖추느라 힘을 주어 부르짖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절로 떨리였다. 생각해보면 요즘의 모든 불행들은 부하들의 저런 목소리에서부터 시작되였는데 또 무슨 벽력같은 소식이 들릴지 알수 없었다.

아닐세라 호위군사의 목소리는 그의 눈앞을 아뜩하게 하는것이였다.

…족장의 령을 받은 호위군사 무소리가 족장의 딸을 데리러 저희들의 옛 은거지였던 마고성에 들어선것은 중낮이였다.

《계시오이까?》

족장네 집 문앞에 서서 여러번 이렇게 불렀으나 대답이 없었다.

(혹시 못 들었나?)

그리하여 그는 목소리를 더 높이였다.

《계시오이까?》

그러나 이때 찌-쿵 하는 문소리가 울린 곳은 족장네 집이 아니라 그 이웃집이였다. 우사라는 귀족의 집인 그 집에서 웬 소녀가 고개를 빠끔히 내밀었는데 《족장님의 따님은 지금 집에 계시지 않소이다.》라고 말하는 그 목소리는 숫제 겁에 질려있었다.

(왜서일가?)

사실 지금 이 마고성의 분위기는 그 소녀가 그렇게 겁을 낼만큼 살벌하지 않았다.

박달족은 마귀족을 병합한 이후에도 한사람도 자기들의 노예로 그들을 끌어가지 않았다. 뿐더러 땅도 예대로 자기 땅을 가꾸고 집도 예대로 자기 집을 쓰면서 그전과 다름없는 생활을 누리도록 해주었는데 이런 조건에서 소녀가 겁을 낼 일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의문은 소녀의 다음 말에 의해서야 풀려졌다.

《족장님의 따님은 박달족군사가 끌어갔소이다. 안 가겠다고 버티는걸 막 손을 잡아 끌어갔소이다.》

드디여 무소리는 모든것을 알아차렸다.

(글쎄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단 말인가?)

당시 씨족싸움은 타씨족을 병합하여 노예로 삼기 위한 전쟁이였다. 그런데 타씨족을 한사람도 붙잡아가지 않았을뿐만아니라 그들에게 지난날이나 다름없는 안정된 생활을 보장해준다는것이 세상에 있을법 하지도 않은 일이였다.

(그러니까 그게 우리 족장님을 잡기 위한 계책이 아니였을가?)

그러고보니 그 추리는 비슷하였다.

당초에는 족장을 잡기 위해 인심을 베풀어 사람들을 유혹하고 다음에는 그게 안되니까 족장의 딸을 잡아가고… 이제 그 딸을 볼모로 족장의 항복을 유도하려 할지 어이 알랴!

(이거 야단났구나!)

그리하여 무소리는 허둥지둥 달려왔다. 그리고 이렇게 간하기를 마지 않았다.

《족장님, 세상만사가 리치와 도리에 어긋나면 그건 벌써 괴변이옵니다. 글쎄 박달족이 우리가 곱다고 저네들과 똑같이 대우하겠습니까? 이건 분명 족장님을 잡기 위한 계책이옵니다.》

족장은 족장봉을 늘어뜨린채 그 말을 듣고있었다. 그러던 그의 손이 족장봉을 슬며시 틀어잡았다.

부르르- 진동이 느껴지는 손짓거리였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있었는가?)

사실 그는 박달족에게 항복을 할 생각이였다.

몸이 쾌차하지 못하여 딸을 데려다가 몸조리나 받고는 그들에게 항복을 할 생각이였다. 사실 자기 족 사람들을 다치지 않고 오히려 선정을 베풀어 생을 도모해주는 그네들에게 고개를 수그림은 왜 모멸로 되랴! 오히려 그것은 강약이 부동인 힘의 관계에서 자기 씨족이 살아나갈 길이고 활로가 열려있는 길이였다.

그런데 지금 와서보니 그게 아니였다.

선정, 그자체가 자기를 유인하기 위한 권모술수, 추파라고 생각해볼 때 너무나도 쉽게 항복을 결심했던 자기가 스스로 타매스러워지며 새로운 결의가 태동하여 일어서는 그였다.

(오냐, 두고보자, 내 기어이 우리 씨족을 일궈세우고야말겠다!)

마귀족의 족장은 족장봉을 으스러지게 틀어잡았다.

그러나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방도는 묘연하였다.

(글쎄 어떻게 해야 저 강대한 박달족을 응징하고 우리 마귀족의 세력을 회복한단 말인가?)

당시 박달족은 수많은 씨족들을 병합하여 나날이 강대한 세력으로 등장하고있었다. 버들족과 마귀족은 이미 병합되고 흩골족은 풍전등화의 신세가 되였다. 이제 까딱하면 그마저 박달족의 치하에 들어가 얼마 안 있으면 박달족이 《나라》라는 큰집을 세운다고 한다. 글쎄 큰집에 들어가는것이 좋기는 좋은데 그렇게 권리도 잃고 재산도 잃고 지어는 생명마저 위협받으며 타씨족의 노예로 들어가기는 싫었다.

(그러면 어떻게 할것인가?)

소 우물 들여다보듯 하며 생각에 옴하여있던 족장은 문득 떠오르는 상념이 있어 무소리에게 물었다.

《그래 호구랑 버추랑 우리네 아홉 장수들이 어떻게 지내고있는지 아느냐?》

박달족이 자기네 씨족사람들을 다치지 않았다는 말이 생각나 물은 말인데 무소리의 대답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것이였다.

《아오이다.》

그가 하는 대답이 이런것이였다.

그날 마귀족의 아홉 장수는 자기네 족장을 옹위하여 도망치고있었다. 이미 자기 족의 군사들은 지리멸렬하여 간곳없고, 그런 환경에서도 그들이 똬리틀듯 촘촘히 엮어놓은 마음이 이러하였다.

(어떻게든 족장님의 신체만은 보존케 하자. 그래야 우리 씨족이 다시 일어설 구심점이 있게 된다.)

당시 사람들은 소박한 자기들의 세계관으로부터 족장을 자기들의 우상으로 알았다. 하늘신이나 동물신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 바로 족장이다. 그래서 족장의 운명은 자기들의 운명과 직결되여있다고 생각하고있었다. 죽음 그자체는 자기들의 생에 깃드는 어두운 그림자가 아니라 족장의 운명에 깃드는 악의 음영이였으며 족장이 죽을 때 씨족전체가 죽는다는게 그들의 생각이였다.

하기야 한 씨족이 다른 씨족에게 먹히울 때 씨족전체가 노예로 되거나 참살을 면치 못하던 당시의 형편에서 족장의 운명이 곧 자기들의 운명이라는 그들의 생각은 영 근거가 없는것도 아니였다. 하기에 노예들이 족장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친 수많은 사례들을 남겨놓은것이 아닌가!

사연이 이렇다면 그 아홉 장수는 박달족에게 잡히였다 놓여나온 이즈음에 와서는 이미 자기네 족장에게 찾아왔어야 할것이였다.

그때 박달족은 자기네 족장을 결사적으로 호위하기 위하여 달려드는 마귀족의 그 아홉 장수를 모조리 생포하였었다. 그러나 그 아홉장수들은 잡혀죽은것이 아니라 하루이틀후에 놓여나왔었다.

그 조처에 감심을 하여서인지 마귀족장수들은 족장을 찾아오지 않고있었다. 자기네 우상이 군사 하나를 달랑 데리고 산속에서 수난을 당하고있는데도…

《아마도 그 신하들이 충효가 모자라는 배은망덕의 무리가 아닌가 의심이 드오이다. 그렇지 않으면야 벌써 족장님을 찾아왔지 그렇게도 속수무책이겠소이까?》

자기가 들은바에 의하면 그 신하들이 박달족의 훈계를 받은 이후에는 덕을 읊조리며 박달족의 수장 단군을 우러르는데 이는 배신중의 배신이고 망동중의 망동이라는게 무소리의 도도한 주장이였다.

그러나 마귀족 족장의 생각은 달랐다.

글쎄 자기를 찾아오지 않았다는데는 섭섭함이 도를 넘어 지어 괘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박달족의 행태로 볼 때 그저 그렇게만 보아넘길 문제도 아니였다. 앞에서는 웃으며 풀어놔주고 뒤에서는 눈을 밝혀 감시를 하지 않는다고 어이 장담을 하랴.

어쨌든 그것은 이제 확인을 해보아야 했다.

마귀족 족장은 그것을 자신이 직접 확인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리멸렬한 씨족을 놔두고 족장봉이나 매만지고있어서야 뭘 하랴.

그리하여 그는 변복을 하고 길을 나섰다.

이때 그의 차림새는 한개 씨족의 족장이 아니라 평범한 씨족성원에 불과한 그런 차림새였다.


불볕!

불볕이면 그때의 불볕이 더 뜨거웠을가? 하여튼 지금으로부터 5천년전의 불볕이니 태양도 세월이 감에 따라 식어가는 하나의 불덩어리라고 볼 때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뜨거웠으리라는것은 물어보지 않아도 뻔한 리치라 하겠다.

그러나 마귀족 족장이 줄곧 줄땀을 철철 흘리는것은 그저 해빛이 뜨거워서만은 아니다. 빛도 빛이려니와 지금 그의 가슴속에서는 그 빛보다도 더 뜨거운 불뭉치가 치밀고있었다.

(글쎄 마귀족의 장수가… 어떻게 그럴수 있단 말인가?)

방금전이였다.

마귀족의 족장은 수하 호위군사인 무소리를 데리고 부지런히 늪가마을을 지나고있었다. 아까 그 차림새로였다.

늪가마을이란 마귀족의 옛 은거지였던 마고성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마을로서 여기에서는 얼마전 치렬한 싸움이 있었다. 자기네들의 화친사절을 죽여버린 마귀족의 행위에 극도로 격분한 박달족군사들은 마고성을 함락한 후 여기까지 달려와 도망치는 마귀족의 아홉 장수를 모조리 붙잡아갔었다.

그들의 옹위를 받으며 천방지축 줄행랑을 놓던 마귀족의 족장은 그때 산마루에서 이를 목격하였었다.

창과 칼의 불꽃튀는 대결전, 그 처절한 싸움끝에 박달족에게 어쩔수없이 오라를 지던 자기 족 장수들의 처연한 모습을 보며 마귀족 족장은 땅을 쳤었다.

(이를 어찌하는가, 이를 어찌하는가.)

그러나 그들이 놓여나왔다는 말을 들은 이 순간, 마귀족 족장은 새로운 기대가 팽배히 솟아오름을 느꼈다.

그때는 박달족 군사의 수효가 엄청나 중과부적이였다.

그러나 그들도 하나가 열, 백은 능히 당할만 한 장수라 이제 그들을 불러내고 씨족성원들속에서 날파람있는 사람들을 골라서 군사로 삼으면 다시한번 결판을 보는거다.

이런 상념에 잠겨 마귀족 족장이 늪가마을의 한 집을 향해 가고있을 때였다. 그 집은 마귀족의 아홉 장수들중의 하나인 버추의 집이였다. 대문이 바라보이는 집오래까지 거의 다달았는데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리며 거기에서 사람 둘이 나왔다. 하나는 투구를 눌러쓴 박달족의 군사이고 그뒤를 따라 나온것은 평복차림의 버추였다.

(잡혀가는가?)

마귀족의 족장은 자기 딸의 경우를 생각하여 이런 의문을 머리에 떠올리는데 가만 보니 그게 아니였다.

박달족 군사는 강권도 없었고 무지막지한 힘의 행사도 없었다. 오히려 화기애애한 그 무엇이 그들사이에 감돌았는데 여겨 들어본 그들의 대화는 마귀족 족장의 진맥을 쭉 뽑아버리고도 남는것이였다.

《그러니 그곳 족장님이 우리를 부르셨단 말이오이까?》

《예, 우리 족장님 하시는 말씀이 〈마귀족의 아홉 장수가 요즘 용기를 잃고 바깥출입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니 그대들이 한번 잔치를 크게 차려 그들의 심신을 위로해주라.〉 하시는 분부였소이다. 그래 늪가마을의 저 경치좋은 공터에 저희들이 산돼지며 노루, 사슴 등을 잡아 잔치를 차려놓았사온데…》

그들은 이렇게 말하며 마치 친동기간이라도 되는듯 사이좋게 걸어오는데 과연 무소리의 말대로 마귀족의 장수는 은공을 헤아리길 마지 않았다.

《황송하오이다. 황송하오이다. 저희들, 마귀족의 아홉 장수들은 성은 입어 황공무지하기 그지없소이다.》

이렇게 말하며 연방 고개를 조아리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마귀족의 족장은 눈앞이 다 아찔하였다.

(아! 눈먼 소경… 이들이 어떤 음모를 꾸미는지도 모르고…)

그는 끌려가는 자기 딸의 모습을 그리며 너도 이제 그렇게 될 날이 반드시 있을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된 다음에 통탄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깨우쳐야 했다. 그들이 박달족의 음모를 알고 한날의 일장춘몽에서 깨여나 칼자루를 바로잡도록 일깨워주어야 했다.

그런데 그를 어떻게 깨우치랴.

박달족 군사는 자기 족의 장수와 나란히 친동기나 되듯 사이좋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간다. 문제는 어떻게든 그를 불러세워야 할텐데 그가 걸음을 멈추면 박달족 군사가 같이 걸음을 멈출것이고 그러면 자기가 하자고 하는 소리는 하지도 못할것이다.

(이 비렁뱅이같은 간신아, 네가 지금 가는 곳이 어디인줄 아느냐. 너도 이제 언젠가는 내 딸처럼 처참하게 끌려다닐 날이 반드시 있을거다.)

그러느라니 마귀족의 족장은 속으로 이런 욕마저 끓어오르며 열기가 부걱부걱 괴여오르는것이였다. …

《얘 무소리야, 어떻게 신통한 방법이 없겠느냐?》

마귀족의 족장은 종내 방도를 찾지 못하고 이렇게 물었으나 본시는 꽤 영민한것으로 알았던 무소리도 그만 눈만 떼룩떼룩하였다.

《글쎄 이거야 바늘 가는데 실 가는 격으로 꼭 붙어다니니…》

무소리는 원래 아홉 장수를 믿지 않은데다 눈앞의 눈꼴사나운것을 보면서 《왜 내 말을 믿지 않느냐?》는듯 오히려 목소리조차 퉁명스러웠다.

《하여튼 따라가보자.》

마귀족의 족장은 이제는 더 어쩌지를 못하고 그저 발볌발볌 그들을 따라갈뿐이다.

이때였다.

무소리가 가만히 다가와 족장의 팔을 잡아끌었다.

《족장님!》

《왜 그러느냐?》

마귀족의 족장은 무슨 신통한 방책이라도 났는가 하여 기대어린 눈길을 그에게로 돌렸다.

《그건 따라가도 필요없는 일이오이다.》

《왜?》

마귀족의 족장은 그래도 기대를 버리고싶지 않아 이렇게 반문하였다.

《뻔하지 않소이까. 아까 우리 마귀족의 장수들이 황공이 어쩌구저쩌구하던 말을 들어보지 않았소이까, 그게 아홉이 다 그렇다는 소린데 거기에 무슨 소용이 있겠소이까? 충신은 두 성인을 섬기지 않는다는데…》

《그럼 어떡한단 말이냐?》

마귀족의 족장은 드디여 퍼더버리고 앉았다.

글쎄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자기는 그래도 그 아홉 장수를 믿고 자기 족을 다시 일떠세울 꿈을 꿨는데 그것이야말로 한바탕의 봄꿈이란 말인가?

그리하여 그는 강잉히 먹었던 마음이 풀림을 느끼며 거기에 눈물까지 찔끔 났다.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그런 그의 곁으로 무소리가 다가왔다.

《족장님, 제가 가서 운고를 불러오겠나이다.》

운고란 마귀족 족장의 사위감으로서 그의 딸과는 약혼한 사이다. 그는 무술이 뛰여나고 지략이 높아서 아홉 장수 못지 않은 무장인데 다만 족장의 사위감이니 그대로 건재해있는지가 의문이였다.

족장의 딸을 끌어갔다니 사위감을 끌어갔을리도 십상이고…

그러나 그는 더 그러고만 있을 형편이 못되였다.

(창이 부러졌으면 칼이라도 쓰는거지.)

마귀족의 족장은 사위감마저 그런 위험한 일에 내세우고싶지 않았지만 접어두었던 생각을 펴며 《얼른 갔다오너라.》 하고 분부하였다.

이제는 할수 없었다.

골수에 사무친 원을 풀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피를 보아야 하였다. 그게 자신이면 어떻고 또 딸이나 사위면 어떠랴!

장차 자기의 족장자리도 그에게 넘겨주려면 (그는 아들이 없어 족장자리를 사위에게 넘겨주려고 생각하고있었다.) 씨족을 회복해야 하였다.

(씨족이 일떠서야 한다. 씨족이 다시 회복돼야 한다.)

그는 족장봉을 썩썩 닦기 시작했다.

족장봉의 둔중한 무게가 팔에 실려왔다.

앞의 묵직한 돌대가리부분, 뒤의 굵직한 나무부분.

이게 권위와 위신을 잃고 돌쪼각이나 나무토막처럼 땅바닥에 굴러다닐수는 없다. 이제 마귀족은 반드시 회복될것이다. 그때에는 계산을 하자. 너희들의 그 간교한 술책을… 이 마귀족의 족장을 잡기 위하여 권모술수를 쓴 그 죄값을 나는 반드시 받아내고야말것이다.

마귀족의 족장은 이런 생각에 잠겨 오래도록 족장봉을 닦고 또 닦았다.


낮은 기울어 저녁녘이 되였다.

석양은 서쪽하늘을 빨갛게 물들이다가 점점 사위여가기 시작했다. 모든것이 점점 어둠속에 빠져든다. 선이 뚜렷한것이 없는 산과 들판, 가까운 곳의 물체들도 비슷하였다. 집이며 나무들 그리고 길이며 바위들도 그게 어디서부터 자기 공간을 차지하였는지 모를 정도로 구분이 없어보였다.

아직 날이 다 저물지 않은것이 다행이랄지. 호위군사의 보살핌과 보호을 받으며 길을 다니는데 습관된 마귀족의 족장은 그게 없이 나다니기는 차마 꺼리여져 늪가마을의 커다란 미루나무곁에 우두커니 서서 무소리가 간쪽을 바라보고있었다.

가물가물, 아직은 사물을 영 분간하지 못하게 모든것이 어둠에 잠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마귀족 족장의 마음은 저무는 날보다도 더 어두워졌다. 저 희끄무레한 밝음이 자연의 밝음이라면 그보다도 더 컴컴해진 어둠은 그의 마음의 어둠이였다.

밝음과 어둠의 더 진해져가는 대조, 이것이 바로 마귀족 족장의 마음이였다.

무소리가 운고를 데리러 간것은 날이 아직 어둠을 예고하기도 전이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왜 아직 돌아오지 않을가?

마귀족의 족장은 자그마한 소리에도 신경이 씌여지였다.

귀가 도사려지고 눈이 명멸하는 불처럼 타올라 지나가는 새소리, 바람소리에도 촉각이 곤두서군 하였다.

지금도 그러했다.

뚜걱, 뚜걱, 뚜거덕

뚜걱, 뚜걱, 뚜거덕

길 멀리에서 말발굽소리가 들린다.

자기에게 오는 사람이 말을 타고 올리는 만무하고, 그러나 마귀족의 족장은 그에 신경이 씌여지였다. 그렇게 보무당당히, 이 길을 말을 타고 다닐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허나 그것은 옛날의 지나간 일로만 존재하고 앞으로도 있을지 말지 그것은 이제 운고가 온 후의 일로 두고봐야 할 일이였다.

그런데 운고는 왜 오지 않는가? 혹 붙잡혀간것은 아닌지.

마귀족의 족장이 이렇게 부절히 빠져든 상념의 늪에서 헤여나지 못하고있을 때였다.

뚜거덕 뚜거덕 울리던 말발굽소리가 점점 가까와지더니 이제는 그 소리의 도간도간마저 선명히 감득되였다. 아까는 뚜거덕 뚜거덕, 그저 그 소리가 다급했는지, 덜 다급했는지 알수 없도록 그저 말이 달려오는 소리로만 들리였는데 이제는 그가 꽤 다급한 걸음임을 알수 있었다.

뚜걱뚜걱 뚜르르륵, 뚜걱

뚜걱뚜걱 뚜르르륵, 뚜걱

그 소리는 그저 범상한 걸음이 아니라 꽤 다급히 울리였는데 이상한것은 그것이 점점 자기를 향해 육박하듯 질주하는것이였다.

(누군가? 무소린가?)

자기가 기다리는것이 무소리였으니 무소리인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을뿐, 그것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것이였다. 무소리가 말을 타고 다닐수야 없지 않은가. 밤도적처럼 몸을 숨기고 가만가만 다녀야 하는 처지에…

(그럼 누구인가? 운고인가?)

그러나 그것도 적중치 못한 생각이였다. 아무리 족장의 사위감일지라도 그것은 여불없이 망해버린 족장의 사위감이니 세상에 대고 《여, 나봐라.》 하고 소리치며 다닐 처지가 아니임은 분명하고 더구나 박달족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찾고있을 족장을 만나러 오면서 그렇게도 조심성이 없이 오리라고는 삼척동자도 생각하지 못할 일이였다.

(그러면 누구인가?)

마귀족 족장의 몸에 불안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찌르륵- 전률마저 느껴졌다.

(이 저녁에 저렇게 자기를 과시하며 마음대로 나다닐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것은 여불없이 박달족의 사람일것이고 그렇다면 그 사람은 박달족의 귀족인 풍백이나 우사, 운사쯤은 될것이다, 아니 군사일수도 있지…

마귀족의 족장은 눈을 도사려 어둠속을 주시하였다. 만약 군사라면 그건 심상치 않은 일이다.

과연 어둠속을 달려오는것은 군사였다.

투구를 눌러쓰고 비파형단검을 비껴차고 속보로 달려오는데 이제는 자기가 있는 미루나무어귀까지 거의다 왔다.

(야단났구나!)

마귀족의 족장은 가슴이 덜컹하였다.

분명 심상치 않은 행보였다. 그럼 그 심상치 않은것이란 무엇일가?

마귀족 족장은 자기를 붙잡으러 오는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야 어떻게 이렇게 표적된 지점을 향하여 질풍같이 달려오겠는가. 혹 그것이 아니고 다른 사연으로 달려오더라도 우선은 피해야겠다고 마귀족 족장은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 우두커니 있다가 무슨 피해를 입을지 어이 알랴!

마귀족 족장은 막 걸음발을 떼려 했다.

이때였다.

《족장님!》, 《족장님!》 하는 소리가 들리여 마귀족 족장은 고개를 돌리였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말을 타고 달려오는 박달족의 한 군사가 자기를 향해 손을 내흔들며 소리소리 지르는것이 아닌가.

저게 누구인가?

자기는 박달족의 군사들속에 아는 사람이 없다. 설혹 아는 사람이 있더라도 자기를 어떻게 족장으로 알아보고 소리를 지른단 말인가?

마귀족의 족장은 그 바쁜 경황속에서도 자기 행색을 내려다보았다. 족장의 위엄이라고는 자그만치도 찾아볼수 없는 평복차림, 끈으로 허리를 두르고 통이 넓은 옷, 아래옷이 눈에 띄웠다.

이런 행색을 보고 어떻게 족장이라고 알아보고 자기를 부른단 말인가?

마귀족의 족장이 이렇게 머리를 기웃거리는 사이에 말을 타고 쏜살같이 달려오던 사람은 《오흐흥-》 하는 말의 호용소리와 함께 말에서 뛰여내렸다.

《족장님!》

그는 그길로 마귀족의 족장앞에 너푼 고개를 조아리며 엎드렸는데 목소리가 귀에 익었다.

《운고가 아닌가?》

마귀족의 족장은 너무도 놀라와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그의 입귀가 스스로도 어쩌지를 못하게 푸들푸들 떨리였다.

《그대가 어찌하여 박달족의 군사가 됐는고?》

마귀족 족장의 입에서 이런 물음이 튀여나왔다.

《박달족 족장님의 성은으로 제가 장수가 됐나이다.》

《박달족 족장의 성은으로?…》

모를 일이다.

한 씨족이 다른 씨족에 병합되면 그들은 모두 노예의 운명을 면치 못한다. 혹 은공을 입더라도 장수로는 되지 못한다. 장수가 어디인가? 씨족의 귀족들과 대접도 비슷이 받고 권세도 그만큼 누리는데…

그런데 그가 장수가 되다니? 운고가…

마귀족의 족장은 고개를 기웃거렸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운고가 무엇인가 바재이는것 같더니 입술을 한번 꼭 깨물고나서 조심스레 아뢰였다.

《족장님. 박달족 족장님께 우리 씨족의 운명을 기탁하사이다.》

《그래, 항복을 하란 말이냐?》

마귀족 족장의 눈섭이 꿈틀거렸다.

사람이 이렇게도 달라질수 있단 말인가? 기왕에는 그렇게도 용맹스럽고 타협을 모르던 사람이.

그래서 그는 무장이였다.

그래서 그는 마귀족의 추앙을 받는 무장이였고 그래서 그는 마귀족 족장의 후계자로 점찍혀졌었다. 그런 그가 자기의 족장앞에서 투항을 설교하다니…

마귀족의 족장은 너무도 마음이 허탈스러워져 그저 아무 말도 못하고 우두커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 그대가 나에게 투항을 호소하는 리유는 뭔고?》

마귀족의 족장은 한참만에야 겨우 입술을 느직느직 놀려 이렇게 물었다.

운고의 도도한 변론이 시작되였다.

《박달족은 무엇보다도 그 수장이 저의 마음에 꼭 드는 인물이오이다. 무예에 정통하고 지략에 뛰여나고… 박달족 족장 단군님이 이러한분이라는건 족장님도 풍설로 들어 알고계시오리랴만 족장님이 모르고계시는것이 또 하나 있나이다.》

《그게 무어냐?》

《그의 겨레를 사랑하는 마음과 화목의 뜻이오이다. 박달족 족장 단군님의 뜻은 언어와 풍습이 같고 조상이 한갈래인 여기 부루나일대의 수많은 씨족들은 한겨레이며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위하며 오손도손 살아야 한다는것이오이다. 그러자면 나라라는 큰집을 만들어 야만족들이 넘보지 못하게 꾹 눌러놓아야 하며 그안에서 부를 나누며 꼭같이 살아나가야 한다는것이로소이다.》

《흥! 서로가 서로를 위해야 한다고?… 그래서 나라도 만들고 오랑캐도 물리쳐야 해? 괴이한 말이다. 부를 나누겠으면 저희들이 먼저 있는 물건을 나누어주고 서로가 서로를 위하겠으면 저희들이 먼저 잡아간 내 딸을 내놓으라고 해라.》

《그게 무슨 말이오이까?》

이번에는 운고가 놀라 족장의 말을 중둥무이시켰다.

《네 색시감 말이다. 그대의 색시감이자 나의 외딸인데 그대는 자기의 색시감을 박달족이 붙잡아간줄 도대체 알기나 하느뇨? 그 잘난 화목을 부르짖는 바로 그 단군의 박달족이…》

《모를 소리오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다 하옵니까?》

운고는 고개를 기웃거렸다.

마귀족 족장은 자기가 들은 소리를 전해주었다.

무소리가 족장의 딸을 데리러 마고성에 들어갔댔다는것과 딸이 붙잡혀가는것을 그 옆집 소녀가 직접 보았다는것을…

갑자기 운고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오늘 아침나절에 있은 일이라 하지 않았소이까?》

터져오르는 운고의 그 웃음을 머룩머룩해서 쳐다보던 마귀족의 족장이 대답하였다.

《그렇다고 한가본데…》

운고가 웃음을 멈추고 정색하여 말하였다.

《수미(족장의 딸)를 데려간것이 바로 저올시다.》

《뭐? 뭐라구…》

마귀족 족장의 눈이 떼꾼해졌다.

(그럼 어디로… 어디로 데려갔단 말인가?)

운고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제가 요 며칠전 족장님댁에 가보니 수미가 족장님걱정에 밥도 제대로 안 먹고 기신을 잃고 누워있겠지요. 그래 이러다간 생사람 아사나겠다싶어 강제로 저희 집에 데려갔지요. 그 사람이 어디 가겠다고 합니까. 안 가겠다고 버티는걸 제가 손목을 잡아 끌어갔는데…》

그때 이웃집 소녀가 문을 빠끔히 열고 내다보더라고 했다. 《박달족의 군사》가 족장의 딸을 《끌어》가니 몹시 겁먹은 눈치더라는것이였다.

《그러니 네가 데려갔단 말이지?》

마귀족의 족장은 잠시 이렇게 되뇌이다가 불현듯 생각난듯 물었다.

《그래 무소리는 어디 있느냐?》

아무래도 믿기 어려워 확인을 해보아야 하겠다는 상념이 들어서였다.

《지금 수미와 함께 이리로 오고있소이다. 제가 말을 타고 달려왔으니 뒤로 떨어졌을뿐이오이다.》

이윽하여 무소리가 수미와 함께 당도하였다.

수미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흐르고있었다.

《아버님, 귀체만강하옵니까?》

그를 보는 순간 족장은 혈육애가 푹 솟구쳐 눈물마저 찔금 나왔다.

《오냐, 별일없다.》

족장은 몸져누웠던 사실을 곧이곧대로 말하면 딸에게 괜한 걱정을 시킬것만 같아 그저 이렇게 얼버무렸다.

《그래도 단군님은 족장마마가 편찮으시다고 말하던데…》

수미의 이 말을 들으며 마귀족의 족장은 깜짝 놀랐다.

(어떻게 단군족장이 이 사실을 안단 말인가?)

《단군족장님은 부하장수들로부터 족장마마가 은거하여계시는 곳도, 그리고 족장마마가 앓고계신다는것도 다 보고받았다고 하나이다. 그래도 박달족의 군사들이 거기로 가면 마음 옥맺힌 족장마마가 자결이라도 할지 모른다고 저를 불러 족장마마의 병구완을 해드리라고 신신당부하였사온데…》

그리하여 단군족장은 그에게 약까지 보내주었다고 한다.

그걸 가지고 래일은 마귀족 족장이 피신해있는 깊은 산골마을로 가라고 했다고 했다.

항복은 해도 좋고 안해도 좋다고 했다. 그래도 겨레의 한 씨족장이 앓는 몸으로 외진 산골에 누워있는데 그를 보살펴줌이 사람의 도리가 아니냐고 했다.

(아! 나는 죄된 몸이로구나.)

마귀족 족장의 입귀가 푸들푸들 떨리였다.

(그런데도 나는 박달족의 화친사절들을 해치다니…)


《그래, 그대들의 화친제의를 우리가 무엇으로 믿겠는고?》

자기들이 마고성을 쌓을 때 골탕을 먹던 일이 생각났다.

박달족이 새 성을 쌓기 시작하자 자기네들은 급급히 그 마고성을 쌓는 일을 벌려놓았다가 농사도 한톨 못 짓고 흉작만 거두어 먹을거리조차 말끔히 떨어졌던것이다.

후에 마귀족의 족장은 박달족이 자체방위를 위하여 생업에 힘쓰는 한편 불과 수백명의 사람들을 동원하여 새 성을 쌓았는데 자기들이 여기에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여 온 씨족을 성쌓는 일에 동원하였다가 온 씨족이 굶주림에 당하게 되였다는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때에는 마귀족의 족장이 이것을 미처 몰랐다.

그리하여 마귀족의 족장은 단호한 결심을 내렸다.

《이놈들을 되우 쳐 지경밖으로 내쫓아라!》

아! 그때의 그 처절한 광경.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살점, 그우에 사정없이 내려지는 계속된 매, 종내는 박달족의 사람들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저 너르개가에 주검처럼 내버려졌다.


(내가 그때 왜 박달족의 화친제의를 진실한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였는가?)

생각해보면 박달족은 언제나 자기들에게 우호적이였다. 오히려 자기들이 박달족의 일거수일투족을 의심으로 대하고 거기에 도전적으로 대하여 두 씨족간의 사이를 벼랑끝으로 몰아가지 않았던가.

마귀족의 족장은 비칠거리며 일어섰다.

그리고는 정처없이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족장님, 어디로 가시오이까?》

무소리와 운고 그리고 수미가 몇번이나 불러댔으나 그는 듣지도 못하였다.

다만 몇발자국 걷다가 움쭉 멈추어서서 《거기에 족장봉이 있느니라. 그 족장봉을 단군족장님께 갖다드려라.》 하고 분부하듯 되뇌였을뿐이다.


박달족의 족장 단군은 지금 생각에 잠겨 앉아있다. 범가죽을 깐 자리도 편안치가 못했다.

(마귀족 족장이 어디로 갔을가?)

그는 좀이 쑤시는것 같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발치아래 부복하여 엎드린 운고에게 물었다.

《글쎄올시다. 저는 그 족장봉을 가지고 족장님께 달려왔고 무소리와 수미가 그뒤를 따랐으니 아마 늪가마을 어디에 있을것이옵니다.

《어서 가보자!》

단군족장에게는 예감되는것이 있었다.

그는 내앞에 나타날 체면이 없을것이다. 우리의 화친제의를 물리치고 우리 사람들을 해치기까지 했으니 차마 살아서는 내앞에 나타나겠다고 꿈을 꿀수 없을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어디로 갔을것인가?

그에게는 왜서인지 늪가마을이라는 그 말이 가슴에 걸리였다.

어이 알랴!

죽음으로써 죄를 씻자고 하는것이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는 사람들의 일반적통례인데 그 늪가마을의 큰 늪에 몸이라도 던질지.

과연 그러하였다.

단군이 군사들을 미처 거느릴 사이도 없이 늪가마을로 달려가니 애고대고 곡성이 높았다. 수미와 무소리였다.

《아이구나, 아버님. 단군족장께서 산골마을에 마마가 피신하여있다는걸 알면서도 쫓아가 불잡지 않으셨을 땐 벌써 하늘의 도리로 마마를 용서하시였다는것이온데 이렇게 자승자박으로 늪에 몸을 던질건 무엇이옵니까?》

이렇게 수미가 하소연하는데 무소리가 또 꺼이꺼이 울음을 잇는다.

《제가 잘못했소이다. 제가 마고성에 들어가 헛소문을 듣고 와 족장님이 심로많으시게 불충하다가 종내는 이런 길을 택하시게 하였소이다. 용서하시오이다. 용서하시오이다.》

족장을 부르며 중구난방의 토설을 터치는 그들을 바라보며 단군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옹졸한 사람이군, 화친을 도모하여 겨레를 일떠세우자는 나의 뜻을 리해 못하고 그렇게 가다니…)

단군은 그러나 그들의 곡성을 더 듣고만 있을수가 없어 그리로 다가갔다.

《아주 요절을 하였느냐?》

《아직은 숨결이 붙어있사온데… 저희들이 인차 달려와 구원은 해놓았사온데 아무래도 가망이 없나이다.》

무소리의 이 말을 자르며 단군이 엄명을 내렸다.

《울기는 너무 이르다. 자고로 사람의 생명이란 숨결에 있는거다. 숨결이 있다는건 그가 아직도 살아있다는걸 말하니 빨리 손을 쓰거라. 반드시 족장은 살아날것이다.》

령험할사, 과연 단군의 말대로 무소리와 수미 그리고 뒤미처 달려온 박달족사람들이 손을 썼더니 마귀족의 족장은 숨을 들이쉬기 시작했다. 숨을 들이쉰다는건 생명이 정상으로 되돌아간다는 증거, 이윽하여 마귀족의 족장은 눈을 뜨고 일어났다.

그러더니 그는 무릎을 꿇으며 단군앞에 엎드리였다.

《제가 보낸 족장봉을 받으셨을텐데 어이하여 이리 행차하시였소이까?》

《난 그 족장봉이 필요했던게 아니오이다.》

단군도 이렇게 말하며 맞절을 하였다.

《아니, 그럼 더 무엇이 필요하시였소이까?》

마귀족 족장이 눈이 둥그래서 이렇게 물으니 단군이 조용히 대답하였다.

《살아계시는 족장님이 필요하였소이다. 우리와 힘을 합쳐 나라를 세우고 사람들을 보살펴 부강을 이룩할 그런 힘이 필요하였소이다. 부디 죽으려는 생각은 거두소서.》

그러자 마귀족 족장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뚤렁뚤렁 떨어졌다. 그런 그의 손에 단군이 족장봉을 쥐여주었다.

《이 족장봉은 도로 받으소서. 씨족의 상징으로 길이 보관하여도 괜한 물건이 아닐것이오이다.》

그러나 마귀족의 족장은 그 족장봉을 가지고 왜서인지 늪가로 다시 다가갔다.

풍덩!

물소리가 울리였다.

《족장봉은 단군족장님이 가지고계신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한것이오이다. 제가 가지고있던 족장봉은 물에 처넣는것이 응당하오이다.》

하여 박달족과 마귀족의 통합이 종국적으로 이루어졌다. 그후 박달족 족장의 치하에서 박달족이나 마귀족이 다같이 삶을 누리였는데 고조선건국의 갈피갈피의 이야기들에는 이런 사례들이 얼마든지 있다.


김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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