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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회


돌아온 용사


5


애타는 기다림속에 세월은 더디게 흘렀다. 뜨거운 폭양이 수증기처럼 서린 산들에서 향기로운 열매들이 커갈 때 사람들의 가슴속에 매달린 불안도 점점 자라났다. 남편과 아들, 애인들을 알지 못할 북쪽땅으로 보낸 녀인들은 낮이면 행여 그리운 모습들이 나타날가 하여 가슴을 태우면서 고개길에서 서성거렸고 밤이면 일곱개의 별이 가리키는 북쪽하늘을 바라보며 몸성히 돌아오기를 간절히 빌었다.

아녀자들의 심장은 기쁨보다 슬픔에 더 민감한 법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슬픔을 남정들에게 터놓기를 두려워하였다.

친정이나 시켠 어른들의 무뚝뚝한 말이 그러지 않아도 팽팽한 슬픔의 현줄을 건드려놓을가 저어되였고 더우기 남자들의 짜증난 눈길에서 자기들과 꼭같은 슬픔의 빛갈을 볼가봐 겁이 났던것이다.

떠나간 삼백용사들한테서는 아무런 소식도 오지 않았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북쪽에서 차거운 바람을 타고 날려오는 소문은 흉흉하기만 했다.

《들었소, 아시내? 북으로 간 다루와 삼백용사들이 모두 죽었다누만.》

어느날 저녁 사냥터에서 돌아오던 마웅가가 아시내의 발치에 화살이 꿰인 노루를 던지며 하는 말이였다.

《거짓말이오이다. 그이는 절대로 죽지 않을거예요.》

처녀는 이렇게 웨치고싶었으나 다만 낯색만이 하얗게 질렸을뿐이였다. 마웅가는 말궁둥이를 손끝으로 가볍게 두드려 아시내의 주위를 한바퀴 돌았다. 혈기방장한 사나이의 이루지 못한 욕망이 온몸을 활활 태우는듯싶었다.

《아시내, 먼 북쪽에서 왔다는 풍수쟁이의 말에 의하면 거기에는 삼신의 저주가 내린 땅이 있다고 하오. 그 땅에는 해와 달도 없고 하얀 눈과 차디찬 서리만이 날리여 사람도 나무도 모두 얼어붙은채 삼신의 저주가 풀릴 날만을 기다린다오. 그런 저주받을 곳으로 갔으니 다루는 죽어서 령혼조차도 얼어붙어있을거란 말이야.》

《아니오이다. 그건… 거짓말이오이다.》

처녀는 갑자기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흐느꼈다.

마웅가는 문득 사냥경기날 강변에서 보았던 사슴의 이쁜 눈이 생각났다. 다 잡았던것인데… 아아 제기랄!

마웅가는 갈개는 황부루의 궁둥이를 두드려 처녀의 주위를 또 한번 돌았다.

《아시내, 령혼조차 돌아오지 못하는 다루를 잊어버리고 나한테로 오라구. 난 아시내를 사랑하오. 단군님의 령을 받들고 아무리 먼곳에 간대도 난 기어이 아시내의 곁으로 돌아올테야. 수많은 노예와 귀한 재물을 흠뻑 벌어가지고 올테야.

어디 가든 아시내의 기쁨이 되여올테야. 아시내, 이래도 내가 싫어?》

마웅가는 말에서 뛰여내려 처녀의 들먹이는 어깨를 조심스레 붙안았다. 순간 눈앞에서 번개불이 번쩍 일고 뺨이 얼얼해졌다.

처녀는 야멸찬 눈길로 마웅가를 쏘아보더니 홱 돌아서서 달려갔다.

마웅가는 화끈 달아오른 뺨에서 천천히 손을 떨구었다. 뿔에 걸린 올가미를 벗겨버리고 다루쪽으로 달아나던 사슴의 뒤다리질에 또다시 채운 기분이였다.

그날부터 아시내는 가을철 삼신제사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날이 오면 단군님이 삼신께 제사를 올려 떠나간 삼백용사들의 안부를 알아볼수 있을것이다. 마웅가의 말처럼 정말 그들이 잘못되였다고 하면 그들의 령혼만이라도 부루나벌로 날아오는 기러기떼처럼 고향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빌수 있을것이다. 아시내는 아무리 해도 다루를 가슴속에서 지워버릴수 없었으니 마웅가를 생각한다는것은 상상조차 할수 없는 일이였다.

드디여 가을철 삼신제사날이 왔다.

아시내는 일찌기 삼신제가 진행될 부루나등판으로 갔다. 달이 열두번 둥그래지도록 돌아오지 않는 련인에 대한 우려는 열여섯 처녀의 고운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지게 했다.

아침해가 뜨자 부루나등판은 사방에서 모여온 인파로 설레였다.

긴 옷자락을 드리우고 제단가까이에 서있는 사람들은 대개 가의 벼슬을 지녔거나 뭇사람의 존경받는 신관으로 박달나라의 크고작은 대사를 주관하던 늙은이들이였다. 그들의 풍채좋은 흰 수염과 틀진 행동거지, 거만한 목소리에서는 세도당당한 위풍이 느껴졌다.

그들의 뒤에는 창검을 세워든 군사들이 늘어지고 군사들의 꼬리는 갖가지 토기용기들과 장식도자기를 구워내는 장공인들을 비롯한 자유민들이 물었다. 삼신의 신성한 제사에 노예들은 참가할 엄두조차 낼수 없었다. 하지만 삼신에 대한 공경심이 그 누구보다도 강한 그들은 신관의 엄숙한 목소리가 울려오고 재빛연기가 솟구쳐오르면 자기들의 불우한 처지를 굽어보살피실 운명의 신을 우러러 일제히 땅바닥에 이마를 대고 엎드려 두손이 닳도록 빌고 또 빌었던것이다.

삼신제를 올릴 시각이 다가오자 아시내는 심장이 세차게 뛰였다. 삼신제를 올리고 떠나간 삼백용사들이 금시 부루나등판에 나타날듯만싶었다.

이윽고 단군이 좌우에 두명의 호위군사를 거느리고 천천히 걸어나왔다. 단군의 뒤를 여덟명의 가들이 따르고 그들의 뒤켠으로 자락긴 옷을 술달린 끈으로 조여입고 사슴가죽으로 지은 매생이신을 신은 신관이 따라섰다. 신관은 오른손에 단검을 쥐고 왼손에는 제단에 불을 지필 홰불을 들고있었다.

단군이 제단앞에 다가서자 신관이 그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아뢰였다.

《스무하루새벽에 스물한번 거룩한 별빛어린 너르개의 물로 몸을 씻어 속세의 티끌을 없애고 스무하루밤에 스물한번 삼신께 기도를 드려 심신의 부정한 욕망을 없애여 삼신께서 처음 주신 몸과 마음을 그대로 되찾았사오니 하늘나라 자손으로 인간세상에 태여나시여 박달땅을 다스리는 거룩하신 단군님의 몸을 받아 삼가 삼신께 성대한 제사를 올리도록 허락해주옵소서.》

단군이 머리를 끄덕이자 신관은 천천히 일어나 홰불을 제단아래 산같이 쌓아놓은 장작무지로 가져갔다.

《삼신이시여, 검은 연기는 땅의 구름이옵고 뜨거운 불길은 땅의 빛이오이다. 땅의 구름과 땅의 빛을 하늘에 계시는 삼신님께 보내여 성대한 제사를 지내려 하오니 우리 박달땅에 강림하소서.》

신관은 손에 들었던 불뭉치를 장작더미에 던졌다. 삽시에 삼단같은 불길이 확- 일어나며 검은 연기가 중천으로 솟구쳐올라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나무통에 담긴 오곡을 동서남북으로 뿌리며 땅신에게 고하였다.

《만물의 목숨을 다 실어주고 자래워주는 인자하신 어머니 땅신께 아뢰나이다. 무릇 대지우에 태여나고 자라는 모든 생명은 어머니 땅신이 기르시옵고 보살피시나이다. 하늘은 령혼을 주시고 땅은 몸을 주시와 하늘과 땅사이에 삶이 있게 되나니 자비자애로우신 당신의 은총에 감사를 드리나이다.》

《감사를 드리나이다.》 하고 모든 사람들이 따라외울 때 아시내는 저도 모르게 이렇게 말해버렸다.

-북으로 떠나간 그들이 돌아오도록 해주면 감사를 드리겠나이다.-

하늘과 땅에 알리는 의식이 끝나자 삼신제가 시작되였다.

선발된 열두명의 노예들이 삼신에게 올릴 제물인 수사슴을 메고 들어왔다. 신관은 하늘을 우러러 세번 절을 하고 날카로운 청동단검으로 사슴의 왼쪽가슴노리를 푹- 찔렀다. 치명적인 타격을 받은 사슴은 외마디비명을 지르며 대가리를 내저었다.

신관이 비수를 뽑자 심장에서 솟구친 시뻘건 피가 세차게 뿜어나왔다. 피가 세차게 뿜어나오는것은 좋은 징조다.

신관은 둥그런 질그릇에 피를 받아가지고 활활 솟구치는 불속에 뿌리였다. 뜨거운 열풍이 어깨에 드리운 긴 머리칼들을 흩날렸다.

신관은 감격어린 눈길로 하늘을 우러르며 기도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하늘에 계시는 거룩한 삼신이시여, 저희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옵소서. 삼신께서는 영원한 숨결을 뿜으시여 하늘을 만드시였고 몸을 내리시여 땅을 만드시였나이다. 눈의 정기를 덜어 해와 달과 별들에 빛을 주시였나이다. 삼신이시여, 그대의 억센 뼈는 산줄기가 되고 부드러운 가슴은 가없는 들이 되고 땀은 산과 옥토를 적시는 강물이 되였사오니 누리는 곧 삼신의 몸이시옵고 삼신은 곧 누리이시나이다.》

아시내는 가슴이 설레였다. 누리가 곧 삼신의 몸이라면 다루가 아무리 먼곳에 갔대도 삼신의 보살핌속에 부루나로 몸성히 돌아올것이 아닌가.

대북소리가 둥둥둥- 울렸다. 신관은 북소리 울려가는 하늘을 향해 두손을 쳐들었다. 눈가에 눈물이 번들거리고 쳐든 두손이 부들부들 떨렸으며 펄럭이는 옷자락은 금방 날아오르려는 독수리의 나래처럼 부풀어올랐다.

《하늘나라 신들을 거느리신 삼신이시여, 뼈바늘에 실꿰는 소리와 머리의 소리없는 생각까지 가려들으시는 그 밝으신 귀로 저희들의 간절한 생각을 들어주시옵소서.

삼신의 위업을 누리에 떨치러 북으로 떠나간 박달땅의 삼백용사들이 무사히 부루나에 돌아오도록 해주시옵소서.》

신관은 제단에 몸을 던지며 흐느끼는듯 한 목소리로 웨쳤다.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삼신의 존재를 그는 분명 자기의 넋속에 받아들여 무아의 경지에서 신과 만나고있는것이 분명하였다. 하여 더욱 가슴이 끓어오른 수천의 사람들은 흐느낌에 젖은 목소리로 일시에 웨쳤다.

《무사히 돌아오도록 해주옵소서.》

이때였다. 우뢰와 같은 목소리들이 울리자 부루나등판 한끝에서 까만 반점이 나타났다. 그 반점은 갈수록 점점 커지면서 이쪽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가라말 한필이였다. 말우에서는 자랄대로 자란 머리칼들과 구레나룻을 사자갈기처럼 날리는 텁석부리가 말등에 미친듯이 채찍을 안기고있었다.

가라말은 곧장 신성한 제단앞으로 뛰여들었다.

《감히 나라의 제사를 망치려고드는 너는 누구냐? 귀신이냐, 사람이냐? 사람이거든 엄벌을 청해 스스로 꿇어앉고 귀신이라도 삼신께 용서를 빌어야 하리.》

《단군왕검님!》

불청객은 말우에서 뛰여내려 대노한 단군앞에 무릎을 꺾고 앉았다.

《나라의 령을 받들고 북쪽으로 갔던 다루가 삼백용사들의 령혼을 안고 부루나에 도착하였소이다.》

《그대가 다루란 말인가?》

《그렇소이다. 삼신의 은공을 입어 오늘에야 비로소 어머니 박달땅에 이르렀소이다.》

단군은 저으기 놀라 다시한번 불청객을 주시해보았다. 제멋대로 자란 머리카락이 땀과 먼지에 범벅이 된 수척한 얼굴을 가리우고 옷은 모양을 가려볼수 없게 갈가리 찢겨져있었다. 너풀거리는 천쪼박사이로 아물지 못한 상처들이 검붉게 독을 쓰고있는것이 보였다. 다루가 틀림없다. 떠날 때의 씩씩함과 천하를 떨칠 용맹 그리고 사나이의 억센 모습을 잃긴 했어도 단군의 위업을 받들고 삼백용사들의 장부가 되여 먼 북방으로 떠나갔던 다루가 옳았다.

단군은 꿇어앉은 젊은이의 어깨를 부축해 일으키며 격정어린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그대는 오로문과 오리나의 아들 다루가 분명하도다.》

신관은 감격에 넘쳐 마주 쥔 두손을 하늘로 쳐들었다.

《박달족의 거룩한 영생불신의 삼신께서는 저희들의 생각을 들어주시였나이다. 여봐라. 북을 울려 삼신의 거룩한 덕을 누리에 알리고 단군님의 이름으로 성대한 제물을 올려라. 삼신께서는 길이 칭송을 받으소서!》

북소리가 다시금 둥둥둥- 울리자 건장한 노예 십여명이 제물인 수사슴을 들어 우등불가운데 던지였다.

제사의식이 끝나고 단군이 제단 한옆의 돌단에 올라서니 다섯명의 가들과 수종들이 그아래 한줄로 쭉- 늘어섰다.

단군은 미더운 눈길로 다루를 쓸어보며 입을 열었다.

《다루, 그대가 멀고도 험한 길을 힘겨웁게 달려왔다는것이 알리도다. 삼백용사들이 어떻게 박달족의 위엄을 떨치고 삼신의 거룩한 덕을 펼치였는가를 이야기하라. 용사들의 운명을 걱정하는 온 박달땅의 자유로운 사람들에게 그들이 겪은 무수한 위험과 자랑찬 위훈을 소리높이 전하도록 하라.》

다루는 해와 달, 별을 이고 가고 또 가던 북방출정의 시련많던 고비들이 지겹게 떠올라 눈을 꼭 감았다. 하나 죽음도 초월해야 하였던 가지가지 일들이 주마등처럼 자꾸만 스쳐지나갔다. 다루의 감은 눈가에 커다란 이슬이 맺혀 땀과 먼지에 범벅이 된 볼우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오, 돌아오지 못한 삼백에 또 삼백용사들이여, 기다리라. 다루는 단군님을 받드는 길에 목숨도 서슴없이 내댄 그 무훈을 박달누리사람들에게 전하고 그대들의 곁으로 돌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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