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11 회


돌아온 용사


4


사냥터에서 돌아온 젊은이들은 잡은 짐승들을 웅가에게 바치고 단군앞에 정렬해섰다. 그들의 맨앞에는 삼신께 올릴 제물인 커다란 수사슴을 산채로 잡은 다루네 사냥패가 서고 그뒤로 오늘 사냥경기에서 용맹을 떨쳐 용사로 선출된 삼백명의 씩씩한 사내들이 섰다. 마웅가네 사냥패는 보이지 않았다.

단군은 자기앞에 늘어선 삼백명의 용사들을 대견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모두 하나같이 박달나무로 깎아낸듯 단단하고 믿음이 가는 젊은이들이였다. 단검을 옆구리에 비껴차고 사슴가죽으로 지은 신을 가뜬히 죄여신고 서있는 젊은이들에게서는 천하를 떨칠 자랑찬 기개와 용맹이 넘쳐흐르고있었다.

어떤 사내들은 가슴과 어깨, 이마에 난 상처자국을 보란듯이 드러내고있었다.

박달사람들은 그런 상처자리를 자랑으로 간주하고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상처자리를 용감성의 상징으로 여기며 경의의 표시로 길을 비켜주었다. 그러나 잔등에 난 상처자리는 다시없을 수치로 경멸하였다. 잔등에 난 상처자리는 위험앞에서 등을 돌려댔다는것을 의미하기때문이였다. 용사라면 죽는대도 위험을 맞받아나가야 할것이다. 사냥나갔던 사나이가 갑자기 달려드는 맹수한테 잔등을 할퀴웠다 해도 역시 지혜롭지 못하다는 의미에서 수치로 간주되였다.

적수와 맞서며 뒤를 살피지 못한것은 슬기없는 행동이였다.

삼백용사들을 쭉- 훑어보던 단군의 눈길은 다시 맨앞에 선 다루에게 돌아와 멎었다.

단군은 손짓으로 다루를 가리키며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늘 사냥경기에서 특출한 공을 세운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고?》

다루는 무릎을 꺾고 앉으며 머리를 숙였다.

《오로문의 아들 다루옵니다.》

《오로문… 열두해전 마리벌싸움에서 용맹을 떨치고 떠나간 부루나의 자랑 오로문이 그대의 아버지였는고?》

《그렇소이다. 단군님을 하늘처럼 떠받든 용맹한 장수 오로문과 오리나의 아들 다루가 단군님을 뵈옵는 행운을 지녔소이다.》

《오리나라?… 하루밤에 천발의 실을 뽑는다는 보배손을 가진 마가의 슬기로운 딸이 그대 어머니였단 말이지.》

《황송하오이다.》

단군은 감개어린 표정으로 먼 하늘을 우러렀다.

《기름진 땅에 뿌려진 여문 씨앗에서 단단한 고로쇠나무가 자라는 법이도다. 실로 훌륭한 피줄이로다. 그대같이 훌륭한 용사는 삼신께서 보호하리라.》

《마흔두명 친족의 이름과 백의 두곱 집안노예들의 걸찬 손을 모아 단군님의 복을 비나이다.》

단군은 삼백용사들을 미덥게 바라보며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다루, 그대와 박달나라에 번영을 가져올 삼백용사들이여, 삼신의 영원한 축복을 받으라.》

《단군님께 영광을!》

삼백명의 젊은이들이 일제히 꿇어앉으며 우뢰같은 목소리로 웨쳤다.

단군은 아름드리 박달나무가 풍치를 돋구는 나지막한 둔덕으로 올라가 한팔을 앞으로 내뻗쳤다.

《용사들은 들으라, 거룩하신 환웅천왕의 예언대로 그대들은 이제 하늘의 매들처럼 이 땅이 끝나는 곳까지 말을 달려 삼신의 덕을 누리에 펼치고 기름진 땅과 단물이 넘쳐흐르는 곳마다 박달사람들의 새 누리를 열어야 할것이로다. 삼신의 이름으로 미개한 족장들을 깨우쳐 피줄이 같은 한민족이 서로 갈라져 싸우며 피흘리는 동족참화를 없애고 불화의 씨앗을 뿌리는 추장들은 징계하여 삼신의 엄벌이 무엇인지 알게 하라. 그대들은 가는 곳마다에서 박달종족의 슬기와 용맹을 떨쳐 그대들의 자랑스러운 이름이 길이 전해지도록 하라.》

《알았소이다!》

삼백용사들의 열기띤 눈이 번뜩이고 창검들이 대숲처럼 설레였다.

단군이 펼쳤던 팔을 내리자 황혼빛에 번뜩이는 창검들도 소리없이 내려지고 숙연한 침묵이 뚜껑처럼 내리덮였다.

이윽고 단군은 다시 입을 열었다.

《무릇 기러기도 무리를 지으면 길잡이를 내세우고 사슴무리에도 령리한 수컷이 앞서가는 법이 있다. 하물며 삼신의 이름으로 박달나라의 위엄을 떨치러 가는 용사들에게는 하늘의 뜻으로 무리를 이끌 대장부가 있어야 하거늘 신관은 제단앞에 나와서 대장부를 고르도록 하라.》

《알겠소이다.》

요란한 장식술이 절렁거리는 운두높은 관모를 쓴 백발신관이 주홍색의 긴 옷자락을 날리며 제단앞으로 걸어나와 세개의 청동단검을 펀펀한 판돌우에 던지였다. 칼날들이 돌우에 부딪치며 쟁그랑- 소리를 냈다. 떨어진 단검들의 칼날위치를 응시하던 신관이 마주잡은 두손우에 머리를 숙이며 단군을 향해 소리쳤다.

《아뢰오. 누리에 찬연한 박달나라에서는 하늘의 뜻이 아니고는 나무잎 하나 절로 떨어지는 법이 없노니 삼신께서는 북쪽으로 출정하는 삼백용사들을 오로문과 오리나의 총명한 아들인 다루장부가 이끌라고 하셨소이다.》

《신의 뜻은 이미 정해졌도다. 다루장부는 박달나라의 상징인 기치창검을 받으라.》

단군의 위엄찬 호령에 따라 다루는 제단앞으로 나와서 기치창검을 받았다.

단군은 다루가 추켜든 기치창검을 이윽히 바라보았다. 건국의 뜻을 기치창검에 새겨 날리며 산야를 주름잡던 젊은 시절이 못견디게 그리워졌다.

아, 그때 자기는 얼마나 씩씩하고 용맹한 장부였던가. 이 땅에 큰 나라를 세워가는 대업이 참으로 아름찼기에 단군의 청춘시절은 너무도 벅차게 흘러갔다. 그는 그 시절 이부자리속에서 속살거리는 어여쁜 녀인들의 애무도 몰랐고 추운 겨울날 단김이 서린 토굴집에서 네활개를 펴고 시름없이 잠드는 달콤한 밤이 있다는것도 몰랐다.

고집스러운 추장들과의 겨룸질-종족통합을 노린 그것은 지혜의 겨룸이였고 용맹과 의지의 대결이였고 때로는 죽음의 고비도 넘겨야 하는 위험한 담판이기도 하였다. 오해와 불화의 씨를 떨구며 추격해오는 어지러운 말발굽소리… 비물에 젖은 말을 칼등으로 때려몰던 암담한 밤들… 그런 밤이 얼마였던가.

그래도 좋았었다. 통쾌하고 보람찼던 그때가 좋았었다.

단군이 말등에 올라있는 동안에 어느덧 젊음이 가고 박달나라를 세워 건국위업을 펼치는 나날에 검은머리 반백이 되여버렸다. 하지만 아직도 못다 이룬 위업이 남아있어 여생이 편안치 않았으니 북방으로 출정했던 삼백용사들이 오늘까지 한사람도 돌아오지 못한것이였다.

단군은 기치창검을 들고 서있는 다루의 어깨우에 자기의 대업을 얹어보았다. 마음이 흐뭇했다. 다루는 이제 삼백용사들을 거느리고 장장 먼길을 걸으며 고난의 언덕을 넘느라면 틀림없이 박달땅의 으뜸가는 용사로 자랄것이다. 저런 젊은이들이 대숲처럼 자라나 박달나라는 강성할것이다.

정렬하여선 삼백용사들의 머리우로 단군의 흥분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갔다.

《머나먼 북쪽땅의 신비한 새 누리가 용사들을 기다리고있다. 그대들은 꿀처럼 단 열매가 절로 자라는 풍요한 들과 주인없는 짐승들이 떼지어다니는 푸른 언덕에 박달사람들의 억센 손길이 닿게 하고 돌아오라. 삼신을 받들줄 모르는자들에게 우리 박달나라의 신성한 법도를 가르쳐주고 부질없는 악의를 품고 헛되이 싸우는 사람들을 깨우쳐 화목을 가져다주고 돌아오라. 하늘아래 사는 환웅의 자식들이 이제는 작은 울을 헐어버리고 박달누리의 큰 울에서 안식과 행복을 찾도록 타이르고 돌아오라. 돌아오지 못한 삼백용사들의 령혼도 함께 안고 돌아오라. 박달사람들은 새 누리를 열어 큰 나라를 세우고 돌아오는 용사들을 언제까지나 기다릴것이다.

신관은 삼백용사들의 승리를 바라는 모두의 마음을 삼신께 아뢰라. 북을 울려라!》

이튿날 첫 해빛이 비치는 아침에 삼백용사들은 부루나를 떠나 원정의 길에 올랐다. 용사들의 머리우에서 청동날을 꽂은 창들이 해빛에 번쩍거리고 어깨에 멘 활들이 우줄우줄 춤을 추었다.

말들은 앞으로 달려나가려고 머리를 내저으며 발굽으로 누런 흙먼지를 일으켰다.

삼백용사들의 뒤로 노예들이 풀썩풀썩 걸어갔다. 그들은 돌도끼가 아니면 돌창을 메고있었다.

주인을 따라가는 노예들의 행렬이였다. 그들속에는 돌도끼나 돌창이 없는 맨 어깨에 무거운 가죽자루만을 메고 가는 노예들도 있었다. 그들이 멘 가죽자루에는 단단한 차돌멩이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그런 노예들은 돌팔매군들이였다. 운수가 좋은 노예들은 싸움에서 큰 공을 세우거나 주인의 목숨을 구원해준 대가로 얼마간의 자유는 얻을수 있었다. 그런 행운이 쉬이 차례지는것은 아니였지만 그래도 노예들은 자유에 대한 한량없는 기대를 품고 주인을 따라 기약할수 없는 싸움의 길을 떠나는것이였다.

다루는 흔들리는 말잔등우에서 삼끈으로 질끈 허리를 동인 베적삼의 왼쪽가슴노리를 만져보았다. 아시내의 진정이 깃든 청동팔찌가 만져졌다.

《다루, 꼭 돌아오시와요. 저는 당신의 뜻으로 살며 기다리겠나이다. 머나먼 원정의 길에 제가 보고싶고들랑 이 팔찌를 펼쳐보세요. 당신이 이 팔찌를 간직하는 한 저는 언제나 당신의 아시내로 남아있을것이와요.》

헤여지기를 아쉬워하며 처녀가 한 말이였다. 다루는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렇다. 다루가 살아있는 한 아시내는 언제나 그의 아시내로 남아있을것이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이전페지   다음페지

도서련재
족장봉은 하나면 된다 제21회 족장봉은 하나면 된다 제20회 족장봉은 하나면 된다 제19회 족장봉은 하나면 된다 제18회 족장봉은 하나면 된다 제17회 족장봉은 하나면 된다 제16회 족장봉은 하나면 된다 제15회 족장봉은 하나면 된다 제14회 족장봉은 하나면 된다 제13회 족장봉은 하나면 된다 제12회 족장봉은 하나면 된다 제11회 족장봉은 하나면 된다 제10회 족장봉은 하나면 된다 제9회 족장봉은 하나면 된다 제8회 족장봉은 하나면 된다 제7회 족장봉은 하나면 된다 제6회 족장봉은 하나면 된다 제5회 족장봉은 하나면 된다 제4회 족장봉은 하나면 된다 제3회 족장봉은 하나면 된다 제2회 족장봉은 하나면 된다 제1회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