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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1 회


제6장 대의서 《향약집성방》과 《의방류취》


9


장기현병자 박홍은 사뭇 흐뭇한 심정을 안고 발걸음을 다그치고있었다. 그의 어깨에 멘 중태기안에는 참지로 정히 싼 다섯근은 실히 될 마황이 들어있었다.

제손으로 직접 마황을 뜯어다 박해장을 기쁘게 해줄 일념으로 슬그머니 자기 고을로 돌아와 이렇게 마황을 캔 다음 다시금 부지런히 박해장의 집으로 발걸음을 다그치고있는것이다. 이 마황을 보고 기뻐서 어쩔줄 몰라할 박의원의 모습이 방불하게 떠올랐다.

그는 더욱더 발걸음을 다그쳤다.

한편 구문노는 야산근처에서 고즈넉하고 다소 음침한감도 자아내는 자그마한 둔덕을 발견하고 쾌재를 올렸다. 그야말로 자객노릇을 해먹기에는 안성맞춤한 곳이였다. 오가는 행인들도 별로 없었다. 둔덕아래로 외통길이 빤히 바라보였다.

(그야말로 네놈은 독안에 든 쥐로다!)

백령도에 갔던 연미년을 덮칠 때보다 더 좋은 상황이였다. 이번에는 확고한 승산이 보였다.

멀찌감치 뒤쪽에 있는 산속의 나무에 말을 매놓은 구문노는 배심좋게 둔덕에 앉아 거의 한겻동안이나 자견을 기다렸다.

(이젠 나타날 때가 되였는데…)

그러나 잠시후에 나타난 첫사람은 자견이 아니라 장기현쪽에서 오는 행인이였다. 구문노는 두눈을 쪼프리고 행인을 노려보았다. 예상외로 행인은 로상에서 벗어나 자기가 걸터앉아있는 둔덕쪽으로 올라오고있었다.

(제기랄!)

잠시후 구문노의 앞에까지 이른 텁석부리행인은 마치 구면지기처럼 구문노를 바라보며 그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비위가 여간 좋아보이지 않았다.

《에잇, 한숨 돌리고 간다.》

그는 스스럼없이 구문노에게 물었다.

《거기선 어디까지 가슈?》

《네, 경상도 끝까지 가옵네다.》

《하, 원로에 로고가 많겠시다.》

텁석부리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으나 구문노의 온 신경은 자견에게로 쏠려있었다.

한참 말장단을 치던 텁석부리가 엉치를 툭툭 털며 일어섰다.

《또 가보자. 자, 그럼 편히 가시우.》

텁석부리가 산고비를 돌아설 때 자견이 나타났다. 그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인지라 심상하게 지나쳐버렸다.

자견의 머리속에서는 마황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아직도 꿈만 같았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마황을 찾았다, 마황을…)

얼마나 오랜 세월을 이 마황때문에 헤매였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마황때문에 애를 태우고 피와 땀을 바쳤던가?

(할머니가 이 일을 아시면 얼마나 기뻐하실가? 연미누인?…)

가슴이 쩡하게 저려들었다.

(빨리 가자, 빨리!)

일각이 새로왔다. 마황을 찾고도 닷새동안 꾸물거린 박해장의 처사가 불만스러웠다. 어떻게 그럴수 있는가. 한시가 새로와 달려가도 씨원칠 않겠는데. 역시 세월이 없는 사람이거던.

어서빨리 우리의 마황을 보고싶었다. 그 마황을 소중히 가슴에 안아 오씨의 령전에, 연미누이의 령전에 놓을것이다.

그는 더욱 재게 발을 놀렸다.

그바람에 그는 둔덕진 곳에서 두눈을 희번득이며 숨어있는 구문노를 미처 보지 못하였다.

자견이가 자기앞을 지나치자 구문노는 천연스럽게 그의 뒤를 따랐다. 키는 작아도 자견의 걸음은 여간 빠르지 않았다. 구문노는 거의 뛰다싶이 하며 자견의 뒤를 따랐다. 사이가 점차 좁아지기 시작하였다. 총총히 걸음을 놓던 자견이 무슨 기색을 알아챘는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뒤를 바투 따르던 구문노도 얼결에 걸음을 멈추었다.

자견이 뒤를 돌아보았다. 이어 구문노를 띄여보고 깜짝 놀라서 물었다.

《아니, 이거 약장사치가 아니요? 헌데 어떻게 예까지…》

그전 오씨가 있을 때 자견은 백치상의 집에 종종 약심부름을 가군 했었는지라 구문노의 얼굴을 알고있었던것이다.

구문노의 이마에 대번에 식은땀이 돋아올랐다.

그는 황급히 주어섬기였다.

《네, 장기현에 좋은 약초가 있다 해서…》

얼결에 튀여나간 소리였다. 구문노는 자기가 실수했다는것을 알았으나 그 말은 이미 쏟아놓은 물이였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았소이까?》

자견이 의아쩍은 기색으로 구문노를 빤히 바라보았다. 구문노의 얼굴에 생그레한 미소가 떠올랐다.

《네, 그럭저럭 알게 됐지요.》

《그래요?》

《헌데 김의원은 어델 가시우?》

《나도 장기현으로 가는데…》

《그래요? 그럼 어서 같이 가십시다요.》

둘은 나란히 하고 걸음을 다그쳤다.

한참 걷던 구문노가 문득 물었다.

《아니, 저기 우리뒤를 따르는 사람이 뉘요?》

《어디?》

자견이 구문노가 가리키는 곳에 눈길을 주려 하는데 그의 머리우에서 단검이 번쩍했다.

자견은 반사적으로 몸을 획 돌렸다. 그러나 구문노의 단검이 사정없이 자견을 내리찍었다.

《으악!-》

고요한 산발에 자견의 비명소리가 메아리쳤다. 잔등을 겨냥하고 내리찍었는데 자견이 급기야 몸을 돌리는 바람에 단검은 그의 어깨에 박히였다. 어깨에 칼이 박힌 자견은 서너바퀴 길바닥에 나딩굴었다. 그러나 그는 발딱 일어서 자기를 덮치려는 구문노를 노려보았다. 자견의 입에서 벽력같은 소리가 터져나왔다.

《구문노, 네놈이?!》

순간에 모든것이 명백해졌다. 뽕나무겨우살이와 마황의 탐색을 결사적으로 방해하는 놈들이 바로 구문노와 백치상이라는 생각이 머리속에 번개처럼 갈마들었다.

《이 살인자, 악마같은 놈!》

자견의 작달막한 몸이 번개같이 튕겨 구문노에게 날아들었다. 구문노가 어쩔새도 없이 자견의 두손이 우악스럽게 그의 목을 조이기 시작했다.

《이 악귀같은 놈, 죽어봐라!》

그의 온몸은 불사신처럼 달아올랐다. 어깨에 칼이 박히고도 그는 사생결단으로 이발을 옥물고 구문노의 목을 드세게 조이였다.

구문노의 입에서 힘들게 비명소리가 삐여져나왔다.

《으-으-윽! 목을… 좀 놓아다고… 목을…》

그의 눈에서는 흰자위만이 희뜩거리고있었다. 목대에서 실지렁이와 같은 피대줄이 돋아올랐다. 얼굴은 거무죽죽하게 죽어가고 입에서는 거품이 괴여오르고있었다. 구문노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저고리도련밑을 더듬었다. 겨우 또 하나의 단검을 틀어잡은 그는 마지막힘을 다하여 아직도 검질기게 매달려 자기의 목을 억세게 조이고있는 자견의 배를 푹 들이찔렀다.

《악!-》

자견의 비명소리와 함께 세차게 들이조이던 그의 손이 탁 풀리였다. 이어 길바닥에 나떨어져 딩굴었다.

급히 일어나 객-객- 하며 목을 주무르던 구문노는 황황히 앞뒤를 살펴본 후 산속으로 뛰여들었다.

자견의 의식은 가물가물 꺼져가고있었다.

(아, 통분하구나! 그러니 연미누이도 저놈이 죽였구나. 아, 끝내 우리 마황을 보지 못하고 이렇게 가는구나. 할머니, 연미누이, 이젠 누이곁으로 가야 할 때가 된것 같소.)

산굽이를 돌아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던 박홍은 무춤 발걸음을 멈추었다.

(분명 비명소린데…)

그는 길가에 서서 한참동안 귀를 강구었다.

새들의 지저귐소리만 들릴뿐 고요하였다.

(잘못 들었나?)

다시금 발걸음을 옮기는데 또다시 비명소리가 멀리에서 간간이 들려왔다. 가슴이 섬찍했다.

(분명히 비명소리다. 잘못 듣지 않았어.)

박홍은 황황히 되돌아서 오던 길로 달려갔다. 아니나다를가 아까 다리쉼을 하던 둔덕아래에서 좀더 나가 행인 한명이 피투성이가 되여 쓰러져있었다.

《이보슈, 이보슈, 정신차리슈.》

박홍의 소리를 듣고 간신히 눈을 뜬 행인이 《마황… 마황…》하고 가느다란 신음소리를 몇번 되풀이하다가 고개를 푹 떨구었다.

(마황?!)

깜짝 놀란 박홍은 후닥닥 뛰쳐일어섰다.

마황이라니? 마황이야 내 중태기에도 들어있질 않는가?

박홍은 뭐가 뭔지 도저히 가늠이 가지 않았다. 그는 어쩔줄 몰라 쩔쩔매였다. 더럭 겁이 났다. 그 자객이 혹시 마황중태기를 멘 자기에게도 덮쳐들것만 같은 위구심이 서려들었다.

그는 용기를 내여 소리쳤다.

《자객이다, 자객이요- 자객이 사람을 죽였소!-》

자객을 쫓아버리고 행인들을 끌자는 의도에서였다.

잠시후 박홍의 고함소리를 듣고 행인 몇명이 달려왔다. 중년의 사나이들이였다.

자견을 뒤따르던 박해장이 나타난것도 이때였다. 처참한 자견의 모습을 본 박해장은 기절초풍하였다.

《야, 자견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아이고, 네가 죽다니! 내가 널 죽였구나.》

박홍과 행인들도 눈물이 글썽하여 박해장을 넋없이 바라보고있었다.

한동안 곡성을 터치던 박해장은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만, 이놈들이 노리는것이 마황이 아니겠는가?)

그런것 같았다. 지금 이놈들은 뽕나무겨우살이를 찾던 때와 꼭같이 움직이고있었다. 분명 마황탐색의 원천을 차단하자는것이였다. 모든것이 명명백백하였다. 그러니 지금 자견이뿐아니라 자기 박해장도 해치려 할것이다. 나아가서 마황에 접근했던 사람들을 모두 없애려 할것이다. 언제 이렇게 곡성이나 하고있을새가 없었다. 빨리 행동해야 하였다. 그 길만이 마황을 구원하는 길이였다. 또 그 길만이 자견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길이였다.

그러나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견의 시신을 두고 어떻게 떠날수 있단 말인가.

창백한 자견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박해장의 두눈에서는 또다시 눈물이 비오듯 쏟아져내렸다.

그 모습을 텁석부리 박홍이 구슬프게 바라보고있었다.

박해장은 마음을 가다듬었다. 자견이 왜 희생되였는가. 그가 바란것이 무엇이였는가. 바로 마황을 찾는것이 아니였는가. 자견은 내가 이렇게 눈물이나 흘리고있기를 바라지는 않을것이다. 그는 마황을 찾는 길로 나의 등을 서슴없이 떠밀었을것이다.

그렇다. 마음을 굳게 먹자. 빨리 마황산지에로 가야 한다. 그곳에 가서 마황을 보호하기 위한 무슨 대책이든 세워야 한다.

물론 텁석부리 박홍을 시킬수도 있었다. 그러나 박홍은 마황에 깃든 심원한 뜻을 너무도 모르고있었다. 그리고 또 박해장은 꼭 자기자신의 힘으로 자견의 마지막소원을 끝까지 풀어주고싶었다.

박해장은 결연한 어조로 박홍에게 일렀다.

《이보게, 수골 좀 해줘야겠소.》

《아, 그야 여부가 있겠소이까.》

박해장은 행인들에게도 도움을 청했다. 마침 행인들도 한성으로 가는 참이였다.

《자네는 이분들과 함께 마차를 얻어가지고 김의원의 시신을 싣고 우리 집근처의 그의 집으로 가주오. 갈 때에는 꼭 혼자서 가지 말고 이분들과 함께 가야 안전하우. 마황의 속내를 자네도 알고있으니 만일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요.》

《알겠소이다.》

《그리고 이제부터 내 말을 명심하시우. 난 이길로 장기현의 김첨지네 집에 거처해있겠소. 내가 치료해준 병자의 집이요. 자네는 김의원네 집에 다녀온 후 곧장 자기 집으로 가지 말고 내가 은거해있는 김첨지의 집으로 와야 하우. 자객이 있을수도 있으니 하는 말이요. 내 말의 뜻을 알겠소?》

《네, 알겠소이다.》

《그리구 될수록 빨리 걸음을 하시우. 절대루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말구 곧장 내처 갔다가 곧장 나한테루 와야 하우! 그래야 자네의 신상도 안전하구 마황도 안전할수 있소. 지금 자객이 눈이 뻘개서 날뛸게요. 허나 너무 걱정할건 없수. 내 생각엔 그 자객놈이 아마 장기현 마황산지에서 날 기다리고있을게요. 그러니 가는 로상에선 별다른 일은 없을게요.》

그의 말이 끝나자 움직이려던 박홍은 박해장에게 얼굴을 돌렸다.

《참, 박의원님. 제 자객의 얼굴을 봤소이다.》

《뭐요? 어떻게?》

《아까 저기 둔덕에서 나와 함께 다리쉼을 했지요.》

《용모가 어떻습디까?》

《좀 나이가 들구 계집처럼 해사하게 생겼는데 이마에는 이렇게 흉한 허물이 있었소이다.》

《뭐라구?》

제꺽 구문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럼 자객이 구문노란 말인가?!)

전혀 뜻밖이였다. 허나 아직 장담하기는 일렀다. 석연치 못한 점도 많았다. 박해장은 우선 마황문제부터 처리해놓고보기로 하였다.

박해장은 다시금 미흡한 점이 없는가를 하나하나 따져본 후 곧장 김첨지의 집으로 발걸음을 다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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