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69 회


제6장 대의서 《향약집성방》과 《의방류취》



7


드바쁘게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흐르는 세월은 쏜살보다도 더 빠른 법이다. 로중례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였다. 날과 달이 언제 흐르는지 미처 자각하지 못할 정도였다.

어느덧 1436년에 접어들었다.

로중례는 여전히 《의방류취》집필을 위한 자료작업에 몰두하고있었다.

그의 나이도 이제는 어언 오십대 중반을 가까이하고있었다. 심혈과 로고의 흔적인양 그의 귀밑머리에도 희끗희끗한 흰서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로중례의 정열은 나날이 더욱더 왕성해지고있었다. 그는 늘 야심만만하게 속으로 웨치군 했다.

《조선사람은 그 어느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도 더 우뚝 솟아올라야 한다. 이 세상 제일 높이로 우뚝 솟아야 한다. 그 어느 나라 사람들도 조선사람들의 지혜와 슬기를 당하지 못한다.》

이것은 허세가 아니였다. 결코 자기과신도 아니였다. 평생에 터득한 생활의 총화였고 진리였다. 더구나 로중례는 이즈음 그와 같은 야심만만한 자신심을 주변을 통하여 더욱 굳게 가지였다.

얼마전 그는 우리의 기술자들이 만든 앙부일구(해시계)를 보고 그것의 정밀성과 과학성, 섬세성과 정확성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다른 나라의 해시계가 단순히 시간만을 알수 있게 해주었다면 앙부일구는 바늘의 그림자끝만 따라가면서 시간과 절기를 동시에 알게 해주었다. 지금의 시점에서 분석해보면 앙부일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반구로 된 해시계였다.

노비출신의 장영실을 위시로 한 기술자들은 그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에서 제일가는 물시계인 자격루를 만들었다. 물시계인 자격루는 그 기능의 다양성과 섬세성, 동작의 정확성 그리고 여기에 비낀 풍부한 수학, 력학지식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최대의 걸작품, 최상의 발명품이였다. 당시로서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이와 같이 우수한 시간보도장치가 없었다.

이 모든 사실들은 로중례에게 커다란 신심과 긍지를 안겨주었다. 그의 가슴속에서는 언제나 민족적긍지와 조선사람이 제일이라는 정신이 펄펄 끓어번지고있었다.

그는 이러한 심정으로 《의방류취》에 대한 자료작업을 밀고나갔다. 로중례는 이 의서를 동방의학의 성과를 하나로 집대성한 큰 의서, 세상에 내놓고 소리칠만 한 의서로 만들리라 작정하고있었다. 그는 우리 나라 의학이 창제된 초시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성과와 경험을 수집총화하여 하나하나 체계화해나갔다. 국내외의 150여종의 의서들을 구체적으로 파고들었다. 현재 예견하고있는 의서의 분량은 실로 방대하였다. 실제로 후날 출판된 《의방류취》는 출판력사상 그 류례가 없는 264책에 달하는 세계최초의 의학대백과전서적인 고전이였다.

김자견과 박해장도 로중례 못지 않게 뛰고있었다. 마황을 찾기 위해 이들은 그새 충청도의 산발들을 다 훑은 후 전라도의 산발들을 타고있었다. 하지만 그처럼 많은 공력을 들이였으나 그들이 애타게 찾는 마황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차에 로환에 시달리던 자견이 아버지가 끝내 세상을 하직하였다.

이로 하여 이들은 일시 마황탐색을 중단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상가를 치르고난 자견은 곧 상제로서 려묘살이(부모의 죽음을 슬퍼하여 일정한 기간 무덤가까이에 초막을 짓고 살면서 무덤을 지키는것)에 들어갔다. 속에서 불이 일었지만 할수 없었다. 약초탐색과 뽕나무겨우살이, 마황찾기로 로환에 든 아버지를 잘 돌봐드리지 못한 죄책감은 자견이로 하여금 려묘살이에 정성을 다하게 하였다.

박해장의 신상도 결코 편안치 않았다. 이젠 나이가 들다보니 젊은이들처럼 험준한 산발들을 매일과 같이 탄다는것은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자견이 려묘살이에 들어가자 박해장은 그동안 쌓인 로독의탓인지 그만 덜컥 자리에 눕고말았다. 그는 한달이 넘어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의 안해가 덜컥 병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되였다. 체소하고 섬약한 체질인 박해장의 안해는 산후탈때문에 늘 골골 앓고있었으며 특히 현훈증(어지럼증)으로 고생하고있었다. 박해장이 지어주는 첩약이 아니면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하였다. 그런 연약한 체질로 박해장이 없이 한가정을 지탱하느라 모지름을 쓰다가 박해장의 병구완에까지 시달리우다나니 박해장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듯 병으로 드러눕고말았던것이다.

결국 자견과 박해장은 할수없이 발목을 잡혀 마을에 머무르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마황을 찾는 일은 날이 갈수록 더욱더 암담해지는듯싶었다.

그러나 박해장은 신심을 잃지 않았다. 현 상태가 몹시 어려운것은 틀림없었으나 그래도 끊임없이 생각을 고밀고밀 톺아나갔다.

(지금의 상태에서 산발을 탄다는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황탐색을 아예 줴버린다는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무슨 방도가 없겠는가?)

그는 자나깨나 그 생각에 골몰했다. 생각끝에 도달한 결론은 단 한가지였다. 좀 골탑탑하긴 하지만 그전에 써먹던 방법을 다시 재개하자는것이였다.

그는 우선 치료부터 다시 시작하였다. 병자들이 찾아들어야 마황표본을 보이면서 그 출처를 탐색할수 있었다.

일찌기 로중례에게서 의술을 배워온 박해장의 의술은 꽤 높았다. 특히 그는 허리증과 비위병의 치료에서는 온 나라에 큰소리를 칠만큼 치료특기를 가지고있었다.

치료를 재개하자 병자들이 제꺽 찾아들기 시작했다.

윤수의 끄나불인 구실아치도 남에게 뒤질세라 제꺽 박해장의 집에 나타났다. 그동안 그는 위병으로 하여 모질게 시달리여왔었다. 원래 허리증을 구실로 윤수의 령을 받고 박해장의 집에 드나들었던 구실아치는 그 과정에 박해장이 위병을 치료하는 능수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하여 그는 고질적으로 가지고있던 위병을 치료하는 과정에 저도 모르게 박해장의 단골병자로 되여버리고말았다.

약초탐색으로 하여 박해장이 없어지자 그는 이웃고을에 가서 침도 맞아보고 숱한 약도 지어 먹었으나 뚜렷한 차도가 없었다. 하여 늘 이마살을 찌프리고 묵직하게 매달리고 팽팽 불어난 배를 그러안고 고달픈 나날을 보내왔었다.

박해장이 다시 집에 나타나 치료를 재개하자 제일먼저 얼씨구나 하고 접어든것이 바로 구실아치였다. 과연 박해장은 위병과 허리증치료에서 특기가 있었다. 그의 약을 지어 먹자마자 위가 편안해졌다.

그는 삼일에 한번씩 꼭꼭 약을 지으러 왔으며 시간만 있으면 늘 박해장의 집에 붙어서 살다싶이 하였다.

그가 박해장의 주위에서 맴도는것은 박해장을 늘 감시하라는 윤수의 령때문인것이 아니라 그의 집에서 맴돌기만 해도 병이 씻은듯이 낫는것만 같은 심리에 사로잡히기때문이였다. 어떤 때에는 자기가 박해장을 감시하는 중임을 지니고있다는것도 감감히 잊고 박해장과 마주앉아 한겻동안 잡담을 늘어놓기도 하였다.

그는 윤수의 령을 그리 심중하게 생각지 않았다. 그리고 또 자기가 받은 임무속에 그렇게 극악하면서도 적대적인 음모가 깃들어있다는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상전의 령은 단 한치도 어길수 없는 형편인지라 현 상황을 윤수에게 정기적으로 보고하는것만은 잊지 않았다.

구실아치의 보고를 받은 윤수는 생각을 굴렸다.

(다시 주저앉았다?…)

지금의 조건에서는 그럴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일시적인것이라는것을 윤수는 잘 알고있었다. 자견과 박해장은 지금 막부득이한 사정으로 집에 붙박혀있을것이다.

하여 윤수는 구실아치에게 자견과 박해장이 어느때건 다시 거동할수 있으니 늘 긴장을 늦추지 말라고 오금을 박았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이전페지   다음페지

도서련재
제1회 제2회 제3회 제4회 제5회 제6회 제7회 제8회 제9회 제10회 제11회 제12회 제13회 제14회 제15회 제16회 제17회 제18회 제19회 제20회 제21회 제22회 제23회 제24회 제25회 제26회 제27회 제28회 제29회 제30회 제31회 제32회 제33회 제34회 제35회 제36회 제37회 제38회 제39회 제40회 제41회 제42회 제43회 제44회 제45회 제46회 제47회 제48회 제49회 제50회 제51회 제52회 제53회 제54회 제55회 제56회 제57회 제58회 제59회 제60회 제61회 제62회 제63회 제64회 제65회 제66회 제67회 제68회 제69회 제70회 제71회 제72회 제73회 제74회 제75회 제76회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