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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7 회


제6장 대의서 《향약집성방》과 《의방류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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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로중례의 직계장관이였던 례조판서는 공조판서로 전근하였다.

향약에 대한 그의 태도는 여전히 구태의연하였다. 로중례가 요란하게 《향약집성방》을 쓰고 한성의 적지 않은 의원들이 향약치료를 받아들이고있으며 조정에서도 《향약집성방》을 보고 벅적 떠들고있었지만 공조판서는 이것은 한낱 선전적인 광고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터였다. 그는 아직도 단 한점의 향약도 자기자신과 자기 집 식구들의 치료에 써본적이 없었다.

그는 생각하였다.

(아무렴 큰 나라 약재가 큰 나라 약재일터이지. 물건너온 약재를 어찌 시골산천과 개울가에서 자라는 향약에 비길손가.)

공조판서는 자기 소속관청의 일이 아니지만 늘 전의감의 약창고에 명나라약재의 재고를 늘이는데 은근히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남의 나라의것을 충분히 가져다 쓴다는것이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약재를 들이밀면서 어찌나 재세가 많고 부대조건이 많은지 명나라에는 사뭇 유연하고 곰살궂은 공조판서마저 울화통이 터질 때가 많았다. 격분하기도 하였고 굴욕감과 수치심을 느끼기도 하였으며 울화통이 터지기도 하였지만 공조판서는 이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제땅에 온전한 약재 하나 제대로 없으니 할수 없지!…

하여 조정의 약창고에는 갖가지 종류에 따르는 명나라약재들의 재고가 계속 늘었다 줄었다 하였으며 지어는 적지 않은 약재들은 전혀 없는 경우마저 있었다.

공조판서는 이런것으로 하여 늘 가슴을 조이고있었다.

로중례와 박윤덕이 향약의 효험에 대하여 여러번 건의하였지만 그것은 공조판서에게 있어서 소의 귀에 경읽기 격이였다.

《내 체질에 향약이 습관되지 않아서 그런지 그닥 흥미를 가지지 않네. 약재야 명나라것이 그만하면 몸에 맞다할지… 어쨌든 그렇단 말일세.

괜히 날 설복시키느라고 수골 하지 말게.》

그러면서 그는 자주 갖가지 명나라약재가 다 있는가를 사람들을 시켜 점검해보게 하였다.

그러나 의원이 아닌 이상 여러가지 질병을 치료하는 각이한 종류의 약재들을 다 알수도, 장악할수도 없는노릇이였다. 약재재고에서 늘 일정한 빈틈이 있군 하였으니 공조판서는 자기 관할밖이라 이것을 미처 자각하지 못하였다.

사람의 일이란 참으로 오묘한 경우가 있다. 꼭 맞서지 말아야 할 그런 사람과 맞다들리지 않을수 없는 상황이 막부득이하게 조성되는 경우가 생활에서는 있군 한다.

이즈음 공조판서는 흥분에 떠서 돌아갔다. 자기 처가 해산할 날이 당장 박두했던것이다. 나이들어 보게 되는 자식이라 무척 왼심을 쓰게 되였다. 줄줄이 딸들만을 셋씩이나 내리 낳은 공조판서는 점치는 무당이 이번에는 틀림없이 생남할것이라고 하는 말에 입이 헤벌쭉해서 돌아가고있었다. 해산이 박두해서는 가장 령험스럽다는 무당을 청해다가 액막이를 하는 굿을 요란스럽게 벌려놓았으며 해산당일날에는 한성에서 제일 능하다는 산파로친네를 모셔다놓고 옥동자가 태여나기를 학수고대했다.

공조판서는 관청에도 나가지 않고 별당채에서 서성거리며 이제나저제나 좋은 소식이 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산모가 있는 본채를 자주 넘겨보았으나 이따금 녀종이 드나들뿐 별다른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초조감과 기대감으로 입술이 다 타들 정도였다.

(제발 생남해야 할터인데…)

자기의 대가 끊어지는가 이어지는가, 더 나아가서 자기의 권세와 벼슬을 가문에 넘겨주는가 그렇지 못하는가 하는 중한 시각이였다.

오전 한겻이 다 지나갔다. 공조판서는 속에서 불이 일 정도였다. 오금이 저리고 심장이 졸아드는듯 하였다.

왜 이리 오랜가? 난산인가?

바로 이때 본채의 문이 벌컥 열리면서 도차지가 허둥지둥 어푸러질듯 별당채쪽으로 달려왔다. 공조판서는 가슴이 섬찍하였다. 불안한 예감이 뇌리를 강하게 치면서 얼굴이 해쓱해졌다. 그는 도차지를 맞받아 달려갔다.

도차지가 공조판서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대감님, 다 죽게 되였소이다. 마님이 다 죽게 되였단 말이오이다.》

《뭐야?》

공조판서는 반정신이 나가 허둥지둥 본채에로 뛰여들었다. 그렇게 능하다던 산파로친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 온몸을 후들후들 떨고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산파로친은 기가 질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저어…》

《어떻게 됐는가 묻질 않아?》

《마님이 난산하였는데 생명이 위태롭게 되였소이다.》

《?…》

공조판서는 얼른 산모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밀랍같이 창백한 얼굴을 한 산모가 죽은 사람처럼 축 늘어져 옴짝 안하고있었다.

《어이쿠!-》

공조판서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털써덕 주저앉았다.

옆에서 도차지가 다급히 소리쳤다.

《대감님, 이렇게 하고계시면 어찌하시오이까? 빨리 의원을 불러야 하지 않겠소이까.》

정신이 번쩍 든 공조판서는 그제서야 벌떡 일어섰다.

그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녀의를 빨리 부르라!》

잠시후 전의감의 유명하다 하는 녀의가 황급히 달려왔다. 그러나 그는 시체처럼 누워있는 산모를 보고 기가 질려 진단도 제대로 내리지 못했다. 공조판서는 더욱더 길길이 뛰였다.

《이 일을 어쩌면 좋을고, 이러단 부인을 당장 죽일것 같다.》

도차지가 다급히 부르짖었다.

《대감님, 녀의가 고치지 못하면 유명한 의원을 붙여야 하오이다.》

《그래, 그래. 의원을 붙여야지.》

잠시 생각을 더듬었다.

누굴?…

로중례는 의술이 비범하다 하지만 천하디천한 향약만을 쓴다고 한다. 영 심사에 맞지 않았다. 박윤덕은 중요대신들을 치료할 때에는 명나라약재로 간혹 약을 짓는다고 하지만 의술이 로중례보다 헨둥하게 못하다.

《둘 다 불러들이라!》

《누굴?…》

《로중례와 박윤덕일 말이다.》

《알았소이다.》

도차지가 죽을힘을 다하여 관청쪽으로 내달렸다. 멀어져가는 도차지를 바라보며 공조판서는 진단과 처방은 로중례에게 시키고 그 처방에 근거하여 박윤덕이더러 명나라약재로 지은 약을 쓰게 하리라 생각하였다.

잠시 공간이 생기자 그는 아직도 부들부들 떨고있는 산파로친에게 물었다.

《그래, 뭘 낳았나?》

《네, 딸애올시다.》

이 말은 공조판서의 부아통을 한껏 돋구어주었다.

《협잡군들! 뭐 령험스러운 무당들이라구? 틀림없이 생남한다고 큰소릴 치더니…》

잠시후 로중례와 박윤덕이 헐떡거리며 달려왔다.

공조판서가 다급히 청했다.

《이보게, 정! 어서빨리 봐주게.》

로중례는 다급히 왕진구럭을 내려놓고 백지장같은 산모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눈까풀을 뒤집어보고 얼굴색과 입술을 찬찬히 들여다본 로중례는 맥을 짚어보았다. 산모는 거의다 죽어가고있었다.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어려들었다. 그의 얼굴빛을 예민하게 살피던 공조판서가 초조하여 물었다.

《그래, 어떤가?》

《좀 힘들겠소이다.》

《뭐? 어이쿠!》

공조판서는 머리를 싸쥐였다.

다시금 맥을 주의깊게 보던 로중례는 옆에서 초조한 낯빛으로 서성거리고있는 전의감의 녀의에게 일렀다.

《부인의 가슴에 온기가 느껴지는가를 좀 가늠해보오.》

녀의가 급히 산모의 가슴에 손을 대고 온 심혼을 기울여 가늠해보았다. 이어 다급히 소리쳤다.

《아, 온기가 있소이다.》

가느다란 희망이 보이는듯 하였다.

그는 공조판서에게 고개를 돌렸다.

《산모가 혈민(몸푼 뒤에 정신이 혼미하고 가슴이 답답한 증상)에 들었소이다.》

《뭐, 혈민? 그건 또 무슨 병인가?》

《궂은 피(나쁜 피)가 심(심장)에 들어가 심기(심장의 기)가 막혔기때문에 혀가 뻣뻣해지면서 말을 못하게 되며 나중에는 이렇게 인사불성이 되오이다.》

《그래, 무슨 방책이 없나?》

《힘껏 해보겠소이다.》

로중례는 도차지에게 말했다.

《빨리 가서 잇꽃 서른근을 가져오게.》

도차지가 뛰여가려 하자 그제서야 정신이 든듯 공조판서가 소리쳤다.

《가만!》

도차지가 어리둥절하여 공조판서를 쳐다보았다.

《그 잇꽃이 우리 향약이 아닌가?》

이런 긴박한 정황속에서도 공조판서의 고질적인 병집이 또 발작한것이다.

로중례의 미간이 한껏 쪼프라들었다. 그는 퉁명스럽게 답변하였다.

《그렇소이다. 우리 향약이오이다.》

《하필 효험이 없는 향약을 쓸게 뭔가? 이보게, 거 전의감의 약창고에 가서 명나라 잇꽃을 가져오게.》

박윤덕이 조용히 아뢰였다.

《판서어른, 명나라 잇꽃이 떨어진지가 이젠 반년도 더 넘소이다.》

《뭐야?》

공조판서의 얼굴이 순간에 하얗게 질려버렸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작년 이맘때 명나라에서 약재를 내보내면서 그 배에 달하는 인삼과 값진 약재들을 들여보내라고 요구하였다. 그 요구를 다 충족시키지 못하자 그 즉시로 약재의 수출량을 절반으로 잘라버렸다. 참으로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난처하기 그지없는노릇이였다. 아마 잇꽃도 그때에 빠져버렸을것이다. 어떻게 하나 산모를 살려내야 하겠는데 명나라약재가 없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더구나 생남이라도 했으면 좋을터인데 이제 덜컥 처가 죽어버리면 앞으로의 생남가망이 영 끊어져버리지 않겠는가.

로중례는 공조판서의 심리를 다 가늠하고있었다. 그의 눈초리가 예리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보지 말아야 할것을 보았을 때처럼 구역감이 나고 분격이 부글부글 괴여올랐다. 그는 그것을 가까스로 누르며 왕진구럭을 걷어가지고 일어섰다. 공조판서의 넉두리가 시작될 때부터 로중례의 눈치를 살피던 박윤덕이 그의 손을 덥석 그러잡았다. 그는 로중례의 성격과 의기를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하여 그가 지금 어떤 눈으로 공조판서를 보며 무슨 행동을 단행하려 하는가가 확연히 알렸다.

《정! 정이 가면 저 병잔 죽소이다.》

그 말이 공조판서의 고막을 아프게 두드렸다. 그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뭐? 가다니?!》

그러나 로중례는 유유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박윤덕이 황황히 부르짖었다.

《판서어른! 정을 붙잡으시오이다. 그러단 이제 당장에 마님을 죽이오이다.》

《엉?》

정신이 번쩍 든 공조판서는 장대한 체구를 흔들며 허둥허둥 뛰여가 로중례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보게, 어델 가나?》

로중례는 거침없이 말을 던졌다.

《판서어른! 난 우리 향약이 아니면 치료하지 않소이다. 명나라약재만 봐두 머리가 혼잡해서 처방도 잘 생각나지 않소이다.》

로골적인 야유와 조소가 한껏 어린 거치른 말투였다.

《이보게, 딱 한번만! 마지막으로 명나라약잴 딱 한번만 써주게나. 자네한테 혹시 향약과 대비검정하느라 건사한 명나라 잇꽃이 있지 않나?》

대차고 격분에 찬 로중례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판서어른, 자꾸 머리를 혼탕스럽게 만들지 마시오이다. 내 말하지 않았소이까? 명나라약재소리만 들어두 머리가 흐려진다구. 그리구 난 명나라의 그 어떤 약재도 따로 건사하지 않소이다.》

로중례는 결연히 발걸음을 떼였다.

박윤덕이 기겁하여 다시금 소리쳤다.

《판서어른, 정을 꼭 잡아야 하오이다. 그렇지 않으면 마님을 죽이오이다.》

절망에 빠진 공조판서가 로중례의 팔을 덥석 잡으며 애원하였다.

《이보게, 향약이면 향약! 그저 살려만 달라구.》

로중례는 무춤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공조판서에게 서리찬 눈빛을 던졌다.

(얼이 다 빠진 허수아비같은 놈! 판서면 어떻구 정2품이면 어쨌단 말인가? 네놈의 그 어느 구석에 조선사람의 기품이 들어있느냐? 촌고을의 백성들보다 못한 놈!)

당장에라도 면상을 후려치고싶었다. 조선사람의 넋이 없는 이런 량반사대부들은 제 나라도 서슴없이 팔아먹을것이다.

로중례는 야멸찬 어조로 내뱉았다.

《병자의 생명이 일각을 다투오니 내 어른께 더 긴말은 하지 않으리다. 허나 명심하시오이다. 급한 고빌 모면하려구 오그랑수를 쓴다면 앞으로 다신 판서어른의 치료에 손을 대지 않는다는것을 말이오이다.》

획 돌아선 로중례는 급히 산모가 있는 본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마조마한 기색으로 로중례와 공조판서의 대결을 지켜보던 박윤덕과 도차지가 황황히 그의 뒤를 따랐다.

공조판서도 허둥지둥 뒤를 따랐다.

일단 치료에 들어가자 로중례의 거동은 침착하면서도 잽싸기 그지없었다.

《도차지는 빨리 부엌에 내려가 물 한솥을 끓이시우. 그리고 큰 나무함지를 하나 준비하오.》

박윤덕은 우리 잇꽃을 가지러 보냈다. 도차지와 하인들이 헤덤비며 부리나케 돌아갔다. 로중례는 공조판서에게 일렀다.

《판서어른은 관청에 나가 큰 유지 석장정도 가져오시오이다.》

《음, 알겠네.》

거드름을 피우며 불룩한 배를 내밀고 점잖은 팔자걸음을 하던 평시의 태도는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로중례의 령이 떨어지자 그는 커다란 몸집을 흔들며 내달렸다.

잠시후 치료준비가 다 갖추어졌다.

로중례는 잇꽃달임액을 커다란 나무함지에 한뽐정도의 높이로 부어넣었다. 뜨끈한 잇꽃달임물에서 새하얀 김이 문문 피여오르고있었다. 그가운데에 나무의자를 놓고 아직도 의식이 없는 산모를 조심히 맞들어 앉히였다. 녀의가 산모를 부축하고 박윤덕과 도차지, 하인들이 로중례의 일손을 거들고있었다.

길이와 너비가 한발정도 되는 석장의 유지로 산모의 목에서부터 마치 비옷을 입히듯 꼼꼼히 앞뒤, 옆으로 싸주었다. 유지의 맨밑은 아래로 내려오면서 치마처럼 넓게 벌어져 함지밖으로 내리드리웠다.

공조판서는 두눈을 꺼벅거리며 난생처음 보는 희귀한 치료법을 넋이 빠져 바라보고있었다.

(저건 또 무슨 치료법인고? 다 죽게 된 병자를 대체 어찌하자는겐가?)

지금까지 치료라고 하면 탕약을 달여 먹든가 침이나 뜸을 맞아본것이 고작이였다. 저렇게 해도 다 죽어가는 병자를 살릴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향약으로…

공조판서는 아직도 미타한 생각을 털어버릴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수가 없었다. 기다려보는수였다.

로중례가 산모의 몸우에 덮인 유지를 꼼꼼히 여며주기 시작했다. 목에서부터 몸전체를 덮으며 아래로 내리드리운 유지는 밑에서 함지우에 덮이우면서 문문 피여오르는 잇꽃의 김을 하나도 허실없이 산모의 몸에 쏘여주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조상들이 창조한 또 하나의 유명한 치료법, 훈증료법이였다.

공조판서는 산모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량쪽어깨를 두명의 녀종이 그리고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머리를 박윤덕이 조심스럽게 잡고 부축하고있었는데 얼굴은 아직도 밀랍같이 창백하였고 입술은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꼭 죽은 사람의 얼굴을 들여다보는것 같아 가슴이 다 섬찍하였다.

산모의 앞에 꿇어앉아있는 로중례가 그의 얼굴을 열심히 들여다보고있었다.

(어휴! 살리기나 할걸 가지구 저 지랄이노?)

의술이 비범하다길래 대감의 체면에도 불구하고 향약을 천시한다는 꾸중까지 들어가면서 손이야 발이야 빌어 치료에 붙이였지만 노는 꼴이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저게 어디 치료인가, 한증칸에서 땀내기이지.

로중례가 적용하는 치료방법이 도저히 리해가 되지 않았다. 더구나 향약을 쓴다는게 아직도 속에 딱 맺혀 내려가지 않았다.

(명나라 잇꽃을 썼으면 혹 승산이 있을지도 몰라.)

여전히 명나라약재에 대한 미련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과연 살려낼수 있겠는지? 일각이 지나도 여전히 그 꼴이였다.

로중례는 산모의 얼굴을 예리하게 살피고있었다. 그는 아무리 중한 병이라 해도 절대로 덤비지 않았다. 그가 병자에게 접어들었을 때에는 벌써 치료전술이 확립된 다음이였다. 그만큼 그의 치료는 실기도 높았지만 병의 근원과 낫는 과정에 대한 리론적기초도 명확하고 확고하였다. 잇꽃은 아주 좋은 행혈약(피를 돌아가게 하는 약)이였다. 잇꽃의 기본효험은 피가 잘 돌아가게 하고 어혈을 없애는것이다. 하여 달거리가 고르지 않거나 없는데, 달거리때의 허리아픔, 산후배아픔, 난산, 산후어지럼증, 타박상, 중풍을 만났을 때 등에 널리 쓰이고있었다. 이와 같은 약리작용을 가지고있는 잇꽃달임액의 김이 지금 피부의 땀구멍을 통하여 온몸으로 스며들고있는것이다. 산모가 든 혈민자체가 궂은 피가 심기를 막아버린 병이기때문에 이와같은 훈증료법은 반드시 효험을 낼것이였다.

로중례는 이것을 확신하고있었다. 그는 유지짬사이를 살며시 들추고 산모의 손가락을 예리하게 살폈다. 치료반응이 있으면 손가락부터 움직여야 한다. 또다시 일각이 지났으나 반응이 없었다.

공조판서의 입에서 절망적인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어휴- 이젠 다 죽은 몸이야.》

박윤덕이 다급히 입술에 손가락을 가로세워 붙였다. 그는 로중례의 솜씨를 잘 알고있었다. 그가 걱정하는것은 병자가 아니라 오히려 공조판서의 오새없는 태도였다. 그것이 가뜩이나 눈을 가로 뜨고 공조판서를 대하는 로중례의 심기를 건드리는 날에는 끝장이였다.

로중례의 이마에서는 구슬땀이 뚝뚝 떨어져내렸다. 일각일각이 산모를 살리기 위한 긴장한 치료로 이어지고있었다.

약 한식경이 지나자 죽은 사람처럼 축 늘어져있던 산모의 손가락이 알릴락말락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각이 더 지나니 확연하게 손가락이 옴지락거리고있었다. 로중례는 다급히 맥을 짚어보았다. 알릴락말락하는 세맥(가는 맥)이 점차 굵어져가고있었다.

(됐구나!)

로중례는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긴장하게 쪼프라들었던 그의 미간이 느즈러졌다. 산모를 부축하고있는 박윤덕은 시종일관 산모의 얼굴을 관찰하는것이 아니라 로중례의 얼굴을 좇고있었다. 로중례의 팽팽한 얼굴이 느슨하게 풀리자 그는 속으로 쾌재를 올렸다.

(아, 병자가 살아났구나.)

로중례가 저쯤하면 산모의 생명을 구하는것은 문제로도 되지 않는다는것을 박윤덕은 잘 알고있었다.

또다시 한식경이 지나자 로중례는 녀의와 녀종에게 침착하게 일렀다.

《됐소. 이젠 산모를 조심히 들어 침상우에 옮겨놓소. 그리고 절대로 바람을 맞지 않게 문을 꽁꽁 닫으며 이불깃을 잘 여며주오.》

로중례는 재차 단너삼음자를 처방하였다. 이 약은 산후에 기혈부족으로 몸이 허약해지면서 여위고 노근하며 입맛이 없고 가슴이 답답하며 절로 땀이 나고 입안이 마르는데 쓴다.

한겻이 지나자 산모는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 드디여 저승의 문턱에까지 닿았던 공조판서의 처가 살아난것이다.

박윤덕이 공조판서에게 소리쳤다.

《판서어른! 마님께서 이젠 살아났소이다.》

반정신이 나가 얼빠진듯 한켠에 앉아있던 공조판서가 벌떡 뛰쳐일어났다. 그리고는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놀리며 다가와 산모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밀랍같던 창백한 얼굴에 제법 불그스레한 홍조가 비껴있었다. 죽은 사람처럼 싸늘하게 굳어졌던 얼굴표정이 산 사람의 모양을 하고 움직이고있었다. 거무죽죽하게 말라터졌던 입술도 발그레한 기운을 담고있었다.

《으흐흑… 부인, 살아났구려.》

공조판서는 자기 부인의 손목을 잡고 오열을 터뜨렸다. 그는 참으로 감복을 금할수 없었다. 저도 모르게 로중례의 의술에 머리가 숙어졌다. 그는 로중례의 손을 덥석 잡고 부르짖었다.

《이보게, 정! 고마우이, 고마와. 내 이젠 우리 향약의 효험을 믿겠네.》

이것은 공조판서의 진심으로 되는 말이였다. 사실 공조판서는 치료하기 전에 로중례가 향약을 천시한다고 으름장을 놓을 때에도 여전히 향약의 효험을 믿지 않았었다. 막다른 골목에 이른지라 궁여지책으로 할수없이 속에 없는 소리를 건성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진짜로 믿음이 갔다. 그는 형조판서가 입이 마르도록 로중례를 칭찬하고 쩍하면 향약, 향약할 때에도 믿질 않았었다. 오히려 고귀한 량반이, 그것도 지엄한 벼슬을 지닌 량반이 과연 오새없이 천하게 논다고 속으로 비웃었었다.

허나 이제는 그것이 리해되였다.

원래 난산이였던 공조판서의 부인은 사경에서는 무사히 벗어났으나 그 이후 때때로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우며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불안해하였다. 입안이 마르고 써서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공조판서는 또다시 로중례를 청했다.

부인의 얼굴을 세세히 살펴본 로중례는 이것이 풍현이라는것을 제꺽 간파하였다. 풍현이란 어지럼증의 하나로서 공조판서의 부인처럼 몸이 허한 때에 풍사가 머리에 침습하여 생기는데 어지러우면서 눈앞에서 꽃 같은것이 얼른거리고 땀이 난다. 그리고 목덜미가 뻣뻣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하며 입안이 마르면서 써서 식사도 제대로 못하게 되는것을 말한다. 심하면 손발이 싸늘해지거나 온몸이 아프기도 한다.

그에 알맞은 적실한 처방으로는 감국화음자이다.

이 약을 달여 먹으니 열흘만에 모든 증상이 다 없어졌다.

그 이후부터 공조판서는 향약치료를 곧잘 받았다. 전의감의 약창고에 향약의 종류를 확보하는 일에도 있는 열성을 다 발휘하였다.

그렇다고 하여 명나라약재의 수입을 완전히 전페한것은 아니였다. 그러나 이제는 제법 도도한 기상으로 그들과 대면하였다. 명나라가 제나라 약재를 들이밀면서 무리하게 인삼을 비롯한 귀한 물품들을 요구할 때에는 마치 례조판서인양 솔선 례조일에 발벗고 나서 큰소리를 땅땅 쳤다.

좋다! 그럼 우린 약재를 받지 않겠다!…

약을 교역해주면서 재세를 할 때에도 역시 고자세를 취했다.

됐다, 그만두라! 우리에게도 그런 약이 있다!…

이렇게 되니 그전과 같이 궁상스럽게 비위를 맞추는 일이 전혀 없었다.

공조판서는 이 과정에 새로운 진리를 터득하였다. 자기의것이 없으면 남의 수모를 받게 되고 저도 모르게 비굴해지게 되지만 자기의것이 당당히 있으면 머리를 쳐들고 땅땅 큰소리를 칠수 있다는것을.

그러고보면 로중례는 자기 부인의 생명을 구원해주었을뿐아니라 그보다 더 큰 참으로 귀중한것을 깨우쳐준셈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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