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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2 회


제5장 자객들의 음모


14


로중례는 모든 일이 믿어지지 않았다. 자기가 꿈속에서 헤매이는것 같았다. 너무도 억이 막혀 눈물마저 나오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자 그는 점차 현실을 감각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너무도 가혹하고 랭혹하며 엄혹한 현실이였다. 막혔던 눈물이 드디여 샘솟듯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연미의 얼굴모습도 그제서야 생생히 안겨왔다. 조용히 미소를 짓고 고요히 누워있는 창백한 모습이였다. 금방이라도 일어나며 《뽕나무겨우살이를 찾았어요! 앞으로 마황도 찾을거예요.》라고 정답게 말하는듯싶었다. 그러나 이제 더는 그의 다정한 목소리를 들을수 없었다.

드디여 그의 입에서 울부짖음이 터져나왔다.

《부인! 정녕 이렇게 먼저 간단 말이요?

너무하오, 너무해. 나 혼자 어떡하란 말이요!》

로중례는 두주먹으로 방바닥을 쾅쾅 치며 몸부림쳤다.

로중례에게 있어서 연미는 조용히 부드럽게 비쳐주는 후광이였고 애틋한 정과 신심을 불러일으키는 마음의 의지였으며 말없이 고무해주고 밀어주는 인생의 둘도 없는 길동무였다. 로중례는 이 모든것을 졸지에 잃고말았다. 그는 자기가 마치 죽지부러진 새와 같이 생각되였다. 정신적타격은 너무도 컸다.

그는 곧 심화로 드러누웠다. 처음 심화로 시작된 그의 병은 곧 고열로 넘어갔다. 다른 사람들의 그 어떤 병도 알차게 치료해내군 하였던 로중례는 자신의 병에 대해서만은 어쩌지 못하고있었다.

고열로 허덕이는 로중례는 연방 헛소리를 내질렀다.

《아, 부인! 어데 있소? 어데!》

박해장은 로중례의 치료를 위해 밤낮을 꼬박 밝혔다.

소월도 병구완에 달라붙었다. 이번의 정신적타격으로 소월의 몸은 한줌으로 졸아들었다. 십년은 더 늙어보였다. 그러나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통분하고 애석한 마음을 달래지 못하여 가슴을 두드려대던 자견도 장례를 마치고 자기 집으로 가자마자 심화로 드러눕고말았다.

로중례는 박해장의 정성어린 치료로 한주일이 지나자 열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병세가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로중례는 아직도 심신을 가다듬지 못하고있었다.

생각은 뻔하였으나 몸과 마음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무리 마음을 가다듬으려 해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이 자기의 슬픔과 고민을 박차고 일어선다는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새삼스럽게 절감하였다.

(아! 이러면 안되겠는데…)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울려나오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자기의 목소리같지 않게 흐릿하고 몽롱하면서도 맥빠진 목소리였다.

이렇게 또 보름이 지나갔다. 박해장은 여전히 로중례의 병상태를 가늠하면서 약을 짓고있었다.

로중례의 마음은 저도 모르게 어머니 소월에게로 쏠렸다.

청천벽력과 같은 불상사를 온 집안이 다같이 겪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쓰러지지 않았다. 로중례는 연미의 죽음이 어머니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정신적타격을 주었는가를 잘 알고있었다. 어찌나 심중의 타격이 컸는지 입술은 초들초들 갈라터지고 얼굴은 새까매져 주먹만 하게 작아졌다. 그러나 소월은 쓰러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묵묵히 집안의 크고작은 일들을 거두매하고 로중례의 병구완을 하였으며 연미가 하였던 향약의 다듬질과 썰기, 법제 등을 하나도 흘리지 않고 알차게 해나갔다.

어머니의 말없는 눈길이 자기에게 뜨겁게 호소하고있는듯싶었다.

(그래서는 안되느니라. 일어서야 한다! 그게 바로 며느리의 뜻을 실현하는 길이다. 그 길이 바로 며느리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길이다. 어서 힘을 내거라!)

불쑥 연미의 장례를 치를 때 찾아왔던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히웠다. 로중례와 연미에게서 치료를 받고 약을 지어간 사람들이였다. 그들을 상기하느라니 로중례는 나라를 사랑하고 자기의 향약을 귀중히 여기는 이 나라 백성들의 소중한 마음이 새삼스럽게 흉벽을 강하게 쳤다.

그는 자기의 처지와 시대적사명감을 뜨겁게 자각하였다.

(일어나야 한다. 반드시!)

그는 고뇌와 번민, 동요와 주저를 박차고 끝내 일어섰다. …

연미의 사망후 그 범인을 잡기 위해 법맡은 관청이 나섰다. 이제에 와서 로중례의 지위는 조정에서 실로 무시할수 없는 존재였다. 따라서 그의 안해의 죽음 역시 간과할수 없는 문제였다. 수사의 초점은 범인을 보았다는 수레주인에게로 돌려졌다. 그러나 수레주인의 행적을 종시 찾을수 없었다.

결국 법맡은 관청은 아무런 결실을 보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기만 했다. 그만큼 윤수와 백치상, 구문노는 이들의 시야에서 벗어나있었다.

한편 죄책감과 통분한 마음으로 하여 앓아누웠던 자견은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그는 이마를 치고 혀를 깨물었다.

그의 죄책감은 크게 두가지였다. 하나는 헤덤비며 섬세하지 못한 일본새였다. 그런 일본새로 하여 경기지역의 산발들을 타다가 다시 거꾸로 백령도를 훑게 된것이다.

다음은 뽕나무겨우살이를 찾은 후 왜 착실하게 연미와 같이 오지 못했는가 하는 후회막급이였다. 자견은 이번의 불상사가 모두 자기로 하여 빚어진듯이 생각되였다.

로중례앞에서 머리를 들수 없었고 마주볼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기어이 마황을 찾아야 한다!)

연미에게 떳떳하고 로중례에게 체면이 있자면 반드시 마황을 찾아야 하였다. 이것은 연미의 간절한 소원이였고 로중례의 뜻이였다.

그는 우선 참지로 두툼한 책 한권을 매였다. 경기지역을 훑었으니 다음 대상은 충청도로 정하고 책에다 또박또박 적었다.

《보은!》

다음날 자견은 길을 떠났다.

연미의 불상사는 박해장에게도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로중례와 연미는 우리 향약을 지키고 빛내이기 위해 목숨도 내대고있지 않는가.

향약치료자료나 마련해놓고 흡족해있었던 자신이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드디여 그는 여직껏 가져보지 못했던 단호한 결심을 내렸다.

(로중례와 연미를 따르자. 나도 자견과 함께 산발에 뛰여들자. 마황을 찾는 길에!)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벽에 붙어있는 뽕나무겨우살이와 마황의 표본을 조심히 뜯어냈다. 산발을 직접 타면 이 표본들은 필요없을것이다.

그러던 그는 마황표본을 다시 붙이였다. 제손으로 마황을 찾기 전에는 절대로 이 마황표본을 뗄수가 없었던것이다.

그날부터 박해장은 충청도에 나가있는 자견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자견은 열흘후에야 나타났다.

박해장의 말을 들은 자견은 깜짝 놀랐다.

《뭐요? 박형이 나와 함께 산발을 탄단 말이우?! 아니, 이거 래일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하하!》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는 그였지만 눈가에는 물기가 번들거렸다. 기쁨의 눈물, 감동의 눈물이였다.

이어 자견은 넌지시 한마디 던졌다.

《헌데 박형의 그 몸으루 꽤 날 따라다니겠수? 괜히 바지에 오줌만 싸다가 며칠만에 물러서지 말구 아예 그만두지 않겠소?》

《에끼, 이 사람!》

박해장은 우야 눈을 부라리며 주먹을 쳐들었다.

그들은 손을 마주잡고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그 다음날 그들은 함께 집을 나섰다.

산발을 타는데서 박해장은 벌벌 기였다. 얼굴에서는 땀이 비오듯 하였고 자주 다리를 휘청거리군 하였다. 허나 육체적으로는 자견에게 뒤졌지만 그의 찬찬하고 섬세한 일본새는 이들의 약초탐색에 커다란 도움으로 되였다. 박해장은 자견이 스쳐지나려 하는 약초들을 다시 끈끈히 살피기도 하고 그동안 수집하지 못하였던 새로운 약초들도 곧잘 찾아내여 표본을 만들군 하였다. 그리고 여러가지 세부자료들과 각이한 종류에 따르는 약초들의 분포상태를 상세하게 기록해나갔다.

박해장의 이와 같은 일본새는 자견을 기쁘게 해주었다.

《히야, 내가 짝팰 잘 만난것 같다. 자, 자료기록은 형님에게 모두 맡기우!》

그는 자기의 목책까지 아예 박해장에게 넘겨버렸다.

마황의 탐색과 동시에 도와 지역에 따르는 약초에 대한 자료들이 상당히 많이 축적되였다.

충청도에 대한 약초탐색이 끝나자 자견과 박해장은 그 자료들을 다 묶어가지고 로중례에게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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