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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1 회


제5장 자객들의 음모



13


구문노는 벌떡 일어섰다. 두눈을 쪼프리고 수레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구문노는 깜짝 놀랐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자견이놈은 어델 갔어?)

수레의 앞에 걸터앉아 두다리를 건들거리며 채찍을 손에 든 빼빼 마른 수레주인과 그뒤에 나볏이 앉아있는 연미의 모습만이 보였던것이다.

(어떻게 한다? 두놈 다 제껴야 할터인데…)

자견이가 없는것이 껄끔하였다.

수레는 잠시후 구문노의 앞에까지 굴러왔다. 언제 옴니암니 할새가 없었다. 부딪치고 볼판이였다.

그는 수레가까이에 다가서며 굽적 절을 하였다.

《로인님, 좀 같이 갑시다요.》

수레주인이 구문노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거참, 꼭 계집애처럼 해사하게 생겼는걸.)

곱다란 구문노의 얼굴에 생그레한 웃음이 엷게 떠올라있었다. 이마의 흉터만 아니라면 그야말로 반반한 얼굴이였다.

허나 참으로 난처한 일이였다. 전의감 정어른 부인이 타고있는 이 수레에 평민을 태워도 일없을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수레주인은 연미를 쳐다보았다. 연미가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제서야 수레주인이 흔연스레 권했다.

《음, 어서 타게나.》

얼핏 연미의 얼굴을 훔쳐본 구문노가 훌쩍 수레의 뒤켠에 올라앉았다. 구문노는 수레의 률동에 따라 흔들거리는 연미의 뒤잔등과 그앞에 놓인 부담짝을 번갈아 보았다.

(저안에 뽕나무겨우살이가 있을터이지? 헌데 자견이놈은 대체 어데 갔단 말인가? 어찌해야 하누?)

구문노는 속을 바재이면서 선뜻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있었다. 제낄바에는 둘 다 모두 제껴버려야 깨끗이 일을 마무리하는것으로 되는것이다.

(자견이놈! 자견이놈!)

한참 생각에 골똘하고있는데 문득 말소리가 울렸다.

《임자, 이 부인이 어떤 사람인줄 아나?》

뚱딴지같은 수레주인의 말에 구문노는 흠칫 놀랐다.

《네에?》

《한번 알아맞혀보라구.》

조골조골하고 빼빼 마른 얼굴이 히죽이 웃으며 구문노를 바라보고있었다.

(원 참, 별 싱거운 두상태길 다 보겠군.)

《이 부인이 큰 귀물을 얻었어.》

연미의 말을 들은 다음부터 흥그러워진 마음으로 들뜬 수레주인이 혀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하긴 수레가 삐걱거리며 세월없이 굴러가는 먼길에 말동무삼아 넉두리를 늘어놓지 않는다면 갑갑증에 시달리울 수레주인이였다. 노긋노긋한 수레주인의 입에서 연미한테서 들은 모든 말이 고스란히 흘러나왔다.

(아하, 그렇게 되였군.)

구문노는 한마디 묻지 않고서도 모든 사실을 다 알수 있었다. 잠시 생각을 굴렸다. 일은 급하게 되였다.

(자견놈이 산길을 탔단 말이지.)

그런즉 빨리 연미부터 처리해버리고 뽕나무겨우살이부담짝을 빼앗은 후 자견을 쫓아야 한다는 결론이 떨어졌다. 자견의 모습이 얼핏 떠올랐다. 작달막하지만 여간 빠르지 않은 놈이다. 언제 이러고있을새가 없었다.

구문노는 드디여 거사를 단행하기로 작정하였다. 해반주그레한 얼굴에 박힌 실눈에서 살기가 번뜩이고있었다. 그는 입술을 가무려물고 저고리도련밑의 단검을 으스러지게 틀어쥐였다. 힘을 주어 단검을 뽑으려는 순간 수레주인이 머리를 뒤로 버쩍 돌리며 물었다.

《헌데 자넨 어데까지 가나?》

구문노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이마에서는 저도 모르게 진땀이 돋아올랐다. 그는 단검쥔 손을 얼른 풀어놓으며 황황히 대답하였다.

《네, 한성까지 가지요.》

《음, 그런가?》

또다시 삐걱거리는 수레소리가 울렸다. 구문노는 수레주인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가만, 안되겠다. 저놈까지 제껴야 안전하겠어.)

그는 또다시 으스러지게 단검을 틀어쥐였다.

《이보게, 자네…》

무엇인가 또 말을 걸려고 몸을 뒤로 돌리던 수레주인이 갑자기 《으악!-》 소리를 내지르며 수레옆으로 굴러떨어졌다. 구문노의 손에서 단검이 번쩍하고 빛을 뿌렸던것이다. 벌떡 뛰쳐일어선 수레주인은 죽기내기로 길을 따라 내달렸다.

연미가 미처 어쩔새도 없이 구문노의 단검이 그의 잔등에 푹 들이박혔다.

《악!-》

새된 비명소리가 터졌다.

섬약한 연미에게 있어서 이것은 너무나도 큰 타격이였다. 연미의 얼굴은 졸지에 밀랍처럼 창백해졌다. 그는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본능적으로 뽕나무겨우살이가 들어있는 부담짝을 덥석 그러안았다. 강한 아픔으로 하여 그는 벌써 무아몽중에 빠져들고있었다. 몽롱한 의식속에서도 그의 머리는 재빠르게 돌아가고있었다.

(누가? 누가…)

번쩍 뇌리를 치는 생각이 있었다. 아버지 리생에 대한 생각이였다. 뿌잇한 안개속에서 오락가락하였던 얽혀진 실마리가 순간에 확 풀려나갔다.

(그렇다. 아버지를 죽인 놈도 바로 이놈들이다.)

명백하였다. 바로 이놈들이 뽕나무겨우살이와 마황찾기를 기를 쓰고 반대하였고 남편의 일도 훼방하려들었을것이다.

연미는 부담짝을 더욱 으스러지게 그러안았다.

수레우에서 벌떡 뛰쳐일어선 구문노는 연미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러안은 부담짝을 떼여내려고 아무리 힘을 주어도 그것은 끄떡하지도 않았다.

《이년, 이년! 놔라, 놔!-》

구문노의 갈린 악청이 연해연방 터져나왔다. 으스러지게 그러잡힌 부담짝은 여전히 끄떡 안했다. 구문노는 급해났다. 게다가 멀찌감치 달아난줄 알았던 수레주인이 삼십보가량 떨어져서 발을 탕탕 구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있었다.

《자객이다!- 자객이 사람을 죽였다!- 저놈 잡아라!-》

꽥꽥 고아대며 수레주인은 오히려 발볌발볌 수레쪽으로 다가오고있었다. 구문노는 더욱 급해났다.

《놔! 어서 이걸 풀어놔라!》

부담짝은 이미 연미와 한몸이 되여버렸다. 억세게 그러안은 부담짝은 연미의 몸에 철썩같이 붙어있었다. 구문노가 아무리 악을 쓰며 잡아당겨도 여전히 끄떡없었다. 부담짝과 함께 연미의 몸이 이리저리 뒤틀리우고있었다.

《아, 이런 지독한 년 봤나?》

구문노는 혀를 깨물었다. 자기의 자객생활에 이처럼 영악스러운 년은 처음이였다. 만만히 보고 접어들었는데 그 정신력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수레주인은 열보앞에까지 다가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 악귀같은 놈아! 이 살인자야!- 저놈 잡아라!-》

구문노의 눈이 희번득거렸다.

바로 이때 저켠 길모퉁이에서 행인 두명이 나타났다. 중년사나이들이였다. 수레주인의 고함소리를 들은 그들이 다급하게 달려오고있었다. 더는 어쩔수 없다고 생각한 구문노는 수레우에서 획 날아내렸다. 그리고는 급히 산속에 뛰여들었다.

연미의 의식은 점차 흐려지고있었다. 그런 속에서도 그는 뽕나무겨우살이가 든 부담짝을 생각하고있었다.

분명히 자기의 품에 안겨있었다.

(아, 있구나!)

그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이보세요, 뽕나무겨우살이를 찾았어요!》

기쁨에 넘쳐 한껏 소리를 쳤으나 도저히 말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안타까이 몸부림을 쳤으나 역시 같았다. 남편 로중례가 환한 웃음을 짓고 자기를 바라보고있었다.

《아! 뽕나무겨우살이로구만. 그렇게 애타게 찾던 뽕나무겨우살이가 우리 나라에도 있었구만. 정말 수고했소.》

남편의 우선우선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모습은 점차 뒤로 물러가고있었다. 연미는 애타게 손을 허우적거리면서 불렀다.

《부인! 부인-》

그러나 로중례의 모습은 더욱더 멀어져가더니 나중에는 흐릿한 안개속으로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문득 오씨의 자애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네가 정말 큰일을 하였구나.》

반가왔다. 기쁨이 솟구쳤다.

《할머니, 뽕나무겨우살이를 찾았소이다.》

대견한 기색으로 오씨가 연미를 굽어보고있었다.

《오냐! 다 안다. 끝내 찾아내고야말았구나.》

오씨가 손저어 부르고있었다. 또다시 몸부림을 치며 오씨에게로 달려가려 했으나 역시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아, 할머니! 이보세요!)

연미의 의식은 점차 흐릿한 안개속으로 잠겨들었다. …

수레주인의 통곡소리가 애절하게 울렸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날벼락인고. 방금전까지 생생하던 사람이… 이런 귀인을 죽이다니-》

그는 주먹으로 땅바닥을 탕탕 치며 울음을 터뜨렸다. 두 중년사나이가 구문노를 잡으러 산속에 뛰쳐들었으나 종시 찾지 못했다.

수레주인과 중년사나이들이 연미의 품에서 부담짝을 풀어내려고 아무리 애를 썼으나 종시 떼내지 못하였다. 밀랍같이 창백한 연미의 얼굴에는 조용히 미소가 어려있었다.

수레주인이 울먹울먹하며 말했다.

《그냥 둬둡세. 나라의 재부로 될 보물을 찾았다구 그리도 기뻐하던 내인일세. 저렇게 품에 안고있어야 마음이 가벼울걸세.》

수레는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무겁게 굴러가고있었다. …

연미의 시신을 실은 수레는 그 다음날 저녁에야 한성에 이르렀다. 마음씨어진 수레주인은 로중례의 집을 찾았다.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과 함께 연미의 시신을 본 소월은 그 자리에서 졸도하고말았다.

뒤늦게 도착한 자견도 날벼락같은 소식에 대경실색하여 땅을 쳤다. 그는 울부짖었다.

《아,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노! 고스란히 같이 왔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걸. … 누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요? 어느 놈이 이렇게 하였소? 어서 말을 하오!》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로 하여 그의 눈시울은 온통 벌거우리하게 달아있었다.

소식을 들은 박해장이 황황히 마을에서 달려왔다. 모두 정신이 반나마 나가있었다. 삼일낮, 삼일밤이 어떻게 지났는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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