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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0 회


제5장 자객들의 음모



12


자그마한 소로길을 따라 수레 한채가 굴러오고있었다. 그 수레우에는 수레의 주인과 함께 연미가 타고있었다.

연미는 외지에 나오면 흔히 그러하듯이 평민녀인의 차림을 하고있었다.

연미의 마음은 둥둥 하늘을 날것 같았다. 정말 뜻밖이였다. 다시 약초탐색의 발걸음을 뗀지 얼마 안되여 이렇게 백령도에서 뽕나무겨우살이를 찾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단지 단 한치의 땅도 흘리지 않으려는 굳은 자각이 이들의 발걸음을 백령도에로 떠밀었었다.

그런데 예상치 않았던 이 섬에서 드디여 뽕나무겨우살이를 발견한것이다.

(아, 뽕나무겨우살이를 찾다니!)

연미는 온 세상의 보물을 혼자서 독차지한듯싶었다. 이제 당장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을것 같았다.

(그래! 우리 나라에 뽕나무겨우살이가 없다는건 말도 되지 않아. 산좋고 물맑은 우리 나라에 말이야. 마황도 그 어덴가 꼭 있을거야. 그것도 꼭 찾을테야!)

불쑥 오씨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마 땅속에서도 기뻐하며 우릴 축복해줄거야.

남편 로중례의 모습도 떠올랐다. 기뻐서 어쩔줄 몰라할 그의 모습이 선하게 안겨왔다. 아무리 과묵한 성격이라도 아마 뽕나무겨우살이를 보면 어린애처럼 기뻐할거야.

이번에 연미와 자견은 백령도에 갔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백령도에서는 벌써 몇달전에 순시별감 고전성이 뽕나무겨우살이를 발견하고 그곳 의원에게 시켜 약효를 검증하고있었던것이다. 연미가 전의감 정인 로중례의 안해라는것을 안 고전성은 굽적 머리를 조아리며 반색하였다.

《부인님, 제 그러지 않아도 약효검정이 끝나면 곧 조정에 보고하려고 했댔소이다. 헌데 부인께서 이렇게 걸음을 하셨으니 이번에 뽕나무겨우살이와 함께 그 출처와 우리가 검정한 약효에 대해 조정에 아뢰여주소이다.》

그러면서 50근의 뽕나무겨우살이를 차곡차곡 부담짝안에 넣어주었다.

정녕 이 나라의 재부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은 저들만이 아니였구나 하는 뿌듯한 긍지감이 연미와 자견의 가슴속에서 굽이쳤다.

(아, 좋아! 우리 나라의 재부가 또 하나 늘었구나.)

연미는 부담짝을 살그머니 열어보았다. 파릇파릇한 뽕나무겨우살이가 부담짝안에 어엿하게 들어차있었다.

(아이참! 요것들 좀 보지.)

참으로 대견스러워보였다. 부담짝안에는 근 50근의 뽕나무겨우살이가 들어있었다.

연미의 들뜬 마음은 자견의 모든 행동을 저도 모르게 너그러운 눈길로 보게 해주었다. 뽕나무겨우살이를 찾고 너무 흥분했던탓인지 백령도를 떠나 매생이로 구미포에 내리자부터 연미의 해소병이 발작하기 시작했다. 기침이 나고 숨이 가빠났다.

자견이 안절부절했다.

《안되겠수. 누인 수렐 타구 천천히 오우. 난 산발을 타고 가겠소.》

연미는 어쩐지 혼자 가기 싫었다.

《자견아, 같이 가자꾸나.》

《아, 누인 내 성밀 모르우? 그 느릿느릿한 수렐 타구 가다간 내 간이 다 마를게요. 바람도 쏘일겸 산발도 한번 돌아볼겸 내 산길로 갈터이니 누인 뽕나무겨우살이를 가지구 천천히 오우.》

자견은 이번 일에서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연미의 신칙이 아니였더라면 어쩔번 했는가.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까지 자기가 타온 산발들이 모두 그렇게 거칠게 훑어온 지역처럼 생각되였다.

지금 기어코 산길로 가겠다고 우기는것도 그러한 자기의 미흡한 점을 다소나마라도 메꾸어보려는 심중의 표현이였다.

자견은 뽕나무겨우살이가 그득히 든 부담짝을 수레우에 올려놓으며 신신당부하였다.

《누이, 잘 건사해야 하우. 목숨과 같은거요.》

아니할 소리였다. 연미처럼 꼼꼼하고 세심하며 착실한 녀인에게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말이였다.

하지만 자견에게도 뽕나무겨우살이가 그토록 소중했던것이다. 그리고는 잰 다리를 부지런히 놀리며 총총히 산길로 접어들었다.

노상 만족한 기색을 떠올리고있는 연미를 보고 수레주인이 물었다.

《이보게, 임잔 무슨 좋은 일이 있어서 그리 흡족해하나?》

《네?》

자기 감정에 한껏 잠겨있던 연미가 문득 생각에서 깨여나 되물었다.

《뭐, 금덩어리라두 찾았나? 왜 그렇게 흥그러운 심경에 젖어있나?》

배배 탈린 몇오리 안되는 노랑머리에 엉성한 고추상투를 튼 예순을 바라보는 늙은이였다. 연미는 방그레 웃으며 대답하였다.

《네, 그쯤되오이다.》

《뭐, 정말? 금덩어릴 얻었단 말인가?》

수레주인의 실눈이 버쩍 커졌다. 연미의 아련한 모습을 우아래로 훑어보던 수레주인이 도리머리질을 하였다.

《에이, 믿어지질 않아! 롱지거리겠지?》

《호호, 제가 그렇게 실없어 보이오이까?》

연미는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그럼 진짜 금덩어릴 얻었단 말인가?》

수레주인의 눈길은 연미앞에 덩실하게 놓여있는 부담짝으로 쏠렸다.

《이 부담짝안에 있나?》

연미가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였다.

수레주인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어디 한번 구경이라두 좀 해보세나.》

연미는 부담짝의 뚜껑을 살그머니 열어보였다. 흡떠진 수레주인의 눈이 부담짝안을 더듬고있었다.

《아니, 이거야 풀이 아닌가?》

《이게 바로 금덩이에 못지 않은 재부오이다.》

《원, 모를 소리!》

《이건 비증을 비롯한 통증과 신경통에 쓰이는 귀한 약초인데 지금껏 우리 나라에는 없는것으로 알려졌댔소이다. 그래서 숱한 금전을 주고 명나라에서 꼬박꼬박 사다 쓰군 했지요. 헌데 이번에 우리가 찾았소이다.》

주인의 입이 항 벌어졌다.

《원, 저런! 정말 듣고보니 그게 금덩이 못지 않게 귀한거로구만.》

역시 자기 나라의것을 귀해하고 그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데서는 량반들보다 이 수레주인과 같은 백성들이 훨씬 더 나았다. 자기의 향약, 자기의것을 지키려고 아글타글 한몸을 내대는 남편 로중례는 그것으로 하여 조정의 량반들로부터 항시적으로 질시와 경원의 눈길을 받고있다. 그런데 이 수레주인은 대번에 단 한마디로 남편의 그런 마음을 공감하고 찬양하는셈이였다.

수레주인은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말 큰일을 하였어. 장하이! 헌데 내인의 몸으루 이 일을 혼자서 해냈나?》

《아니올시다. 같이 왔던 젊은이가 있었는데 또 한가지 약초를 마저 찾겠다고 산으로 접어들었소이다.》

《음, 과시 용하이! 내 오늘 임자의 삯값은 받지 않겠네.》

《원, 그렇게야 어떻게…》

《아, 임자네들이야 나라의 보물을 찾는 사람들인데 그까짓 수레값이 대순가?》

수레주인이 다시금 평민녀인의 차림을 한 연미를 바라보며 물었다.

《헌데 임잔 뉘 댁 내인인가?》

《왜 그러시나이까?》

《음, 자네들의 초지가 범상치 않아서 그래. 좀 알고 지냅세.》

연미는 얼굴이 발그레해지며 대답하였다.

《한성에서 사는 평범한 사람이올시다.》

《원 참, 그런 답변이나 듣자구 물었나? 역시 큰일을 하는 사람들은 겸손하다니깐.》

《아이참, 큰일은 무슨 큰일이오이까? 정말 우리도 로인님과 같이 평범한 사람들이오이다.》

수레주인은 자못 섭섭해하였다.

《그래두 함자가 있을터이지? 나라의 재불 불쿤 자네들의 함자를 알고싶어서 그래.》

연미의 가슴은 저도 모르게 포근히 달아올랐다. 저것이 바로 백성들의 마음이였다. 그래서 그 목소리가 저토록 친근하고 다정스러우면서도 소중하게 들리는것이였다. 가슴이 찡해왔다. 연미는 그 마음이 고마와 스스럼없이 대답하였다.

《네, 저의 주인은 한성의 전의감에서 일을 보는 로중례라 하옵니다.》

《뭐? 아니 이런, 그럼 그 유명짜한 전의감 정어른의 댁이란 말이오이까?》

수레주인의 눈이 대번에 흡떠졌다.

그는 황황히 수레에서 떨어져내렸다. 연미는 당황하였다.

《아니, 왜 그러시나이까?》

《제 마님을 미처 몰라보았소이다. 버릇없이 군걸 용서하시오이다.》

연미가 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로인님, 어서 오르시오이다.》

《하, 그래두 그렇게야 어떻게?》

전의감 정의 부인과 이렇게 한수레에 탄다는것은 그야말로 큰 실례이라고 생각하는 수레주인이였다.

그러나 연미는 기어코 만류하는 수레주인을 끌어올렸다.

근래에 로중례의 이름은 민간에도 널리 알려져있었다. 그것은 그의 의술이 뛰여난데도 있었지만 로중례자체가 귀천을 가리지 않고 백성들의 병을 성의껏 보아주기때문이였다.

수레에 올라서도 수레주인은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

《원, 이런 황송스러울데라구야, 부인을 이렇게 만나다니!》

흥그러운 마음으로 들뜬 수레주인이 채찍을 휘두르며 신이 나서 소리쳤다.

《이랴! 어서 가자!-》

채찍을 받은 노새가 머리를 주억거리며 부지런히 네발을 놀렸다. …

구문노는 이틀째 길목을 지키고있었다. 백령도태생인 그는 이곳 지형을 손바닥보듯이 훤히 꿰들고있었다.

그가 지키고있는 길은 구미포에서 남창쪽으로 뻗은 길이였다. 이 길은 태탄, 옹진, 강령을 거쳐 한성에로 뻗어있었다. 구미포와 남창사이의 길은 외통길인지라 백령도에서 나온 사람들은 반드시 이 길을 통하게 되여있었다. 이 길만 든든히 지키면 연미와 자견은 그야말로 독안에 든 쥐와 같았다. 행인들이 드문드문 있었지만 그리 번잡한 길은 아니였다.

구문노는 길옆의 나지막한 야산기슭에 비스듬히 누워 신새벽부터 길목을 지키고있었다. 도대체 뽕나무겨우살이를 찾았으면 찾았지 뭘 이리도 꾸물거리고있단 말인가. 벌써 이틀째나 지키고있었으니 오늘은 반드시 나타날것이다.

구문노는 저고리도련밑에서 시퍼런 단검을 꺼내 손바닥우에서 다독이며 깊은 상념에 잠겨들었다. 이번 자객의 일에 구문노는 백치상과 오백냥을 걸었다. 오백냥이면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가히 장하게 해볼만 한 일이였다. 지금까지 구문노는 자객의 일을 여러번 해왔었다.

오백냥! 시퍼렇게 날이 선 단검을 손바닥에 슬슬 문지르고나니 짜릿한 쾌감이 가슴을 부풀게 하였다. 이러한 일은 구문노의 살기찬 성격에 꼭 맞는 일이였다.

연미와 자견이같은 놈을 제끼는것쯤은 구문노에게 있어서 파리를 잡는것 못지 않게 쉬운 일이였다. 작달막한 키에 나부대대한 얼굴을 가지고 재게 돌아가는 자견의 모습이 떠올랐다. 단칼이면 찍소리도 못하고 자빠질것이다.

연미의 얼굴도 떠올랐다. 이미전 백치상과 윤수의 계책에 의해 병자로 가장하고 연미의 얼굴을 한번 보았었다. 과연 아련하고 녀자다운 절색의 녀인이였다.

그러나 구문노의 눈으로 볼 때 섬약하기 그지없는 녀인이였다. 아마 한칼이면 소리도 못 쳐보고 너부러질것이다.

백치상어른과 윤수병조정랑님께 오늘은 자기의 무자비한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줄것이다.

구문노가 이런 달콤한 상념에 잠겨있는데 찌걱찌걱 수레가 굴러오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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