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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11월 13일
 

절세위인들의 숭고한 인민적풍모 (1)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만대에 길이 빛날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신것으로 하여 하늘에 닿을 명성을 지니시였지만 한평생 특전과 특혜를 모르시고 언제나 검박하게 생활하시였으며 공과 사를 엄격히 가르시였다.

이 세상 그 어느 위인도 지니지 못한 절세위인들의 이렇듯 숭고한 풍모는 혁명성, 인민성의 고귀한 귀감으로 력사에 길이 빛나고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혁명가적풍모에 있어서나 인간적풍모에 있어서나 그 누구도 견줄수 없는 위인중의 위인이시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세계가 우러르는 절세의 위인이시고 국가수반이시였으나 한평생 공민이 법적으로 향유할수 있는 한계를 뛰여넘는 특권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으시며 인민들과 꼭같이 생활하시였다. 여기에 끝없이 위대한 인간으로서의 우리 수령님의 고매한 인품의 하나가 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만경대가문사람들을 만나실 때마다 인민성을 두고 강조하군 하시였다.

수령의 가문이라고 해서 남보다 특별히 잘살려고 해서도 안되며 특별히 잘되려고 해서도 안된다, 자기 능력에 알맞는 초소에서 일하면서 나라가 주는것만큼 먹고 쓰고 인민을 위해 헌신하라는것이 우리 수령님께서 가문사람들에게 하신 요구였다.

때문에 인민들에게는 번듯한 새집들을 지어주시면서도 자신의 조부모님들을 위한 집 한채도 짓지 않으시였고 항일투사들이 조부모님들에게 좋은 옷을 해드리려고 하였을 때에는 이제 인민들모두가 행복하게 잘살 때 해드리자고 하시며 만류하시였던것이다. 그처럼 고생하신분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준것이 없다고 가슴아프게 추억하실 정도로 청렴결백하신분이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전후 어느날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만경대를 찾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큰 기와집을 한채 새로 지은것을 보시고 김형록삼촌에게 저건 무슨 집인가고 물으시였다.

그 집은 평안남도당에서 김형록선생님일가를 위해서 지어준 집이였는데 집을 새로 짓게 된데는 그럴만 한 사유가 있었다. 온 나라 농촌들에 초가집이 없어지고 문화주택들이 일떠서고있는데 늙으신 할머님을 모시고있는 삼촌댁의 일가분들은 여전히 낡은 초가집에서 살고있었던것이다. 게다가 어버이수령님의 높으신 국제적권위로 하여 만경대고향집을 방문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수는 날을 따라 늘어나고있었다. 일군들은 이런 사정을 고려하여 집을 새로 지어드리기로 하고 어버이수령님께 보고드리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처음에는 일군들의 의견을 일축하시였지만 대외관계를 생각해주셨으면 하는 일군들의 거듭되는 제기를 받으시고는 집을 짓되 절대로 크게 짓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으시고서야 승낙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러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여 관계부문 일군들을 만나실 때마다 새로 짓는 집에 대하여 알아보시고 절대로 색다르게 지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시였다. 그리하여 규모로 보나 쓸모로 보나 오늘 만경대의 남리에 세워진 문화주택들과는 대비도 할수 없이 작고 소박한 집을 지어놓고 삼촌댁일가분들이 이사를 하게 하였던것이다. 그런데 그 집이 수령님께 커다란 심려를 끼쳐드린것이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집가까이에 이르시여 한참동안 집의 외경을 살펴보시다가 이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옛날 지주집보다 더 크게 지은 집에 어떻게 들어가겠는가고 하시고는 평안남도당위원장을 부르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에게 우리 삼촌이야 옛날에 못살았으니까 좋은 집을 지어주면 쓰겠다고 하시지, 조카가 수상을 하니 응당 좋은 집에서 살아야 하나부다 할수 있지, 그러나 동무야 알아야 되지 않소, 수상이 특권행세를 해서 삼촌한테 고대광실 같은 집을 지어주었다고 할게 아닌가고 하시며 엄하게 꾸중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새로 지은 집을 헐고 그 자리에 인민들을 위한 국수집이 세워지게 되였다.

후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 일을 두고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그날은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밤에는 잠도 잘수 없었다. 그렇지만 가슴이 아파도 할수 없었다. 아직도 우리 인민들속에는 움막에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이런 때에 수상이 친척한테 집을 지어주었다는 소문이 나면 부수상이요, 부위원장이요, 상이요 하는 사람들이 다 그 본을 따를수 있다. 그러면 국풍이 무너지고 이 나라는 관료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될수 있다.

항일혁명투쟁의 나날 조선혁명의 준엄한 력사와 더불어 이 나라의 어느 가정보다도 크나큰 시련과 피눈물나는 불행을 당하신 일가분들을 생각하면 더없이 가슴이 아프고 쓰리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하지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자신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가문의 생활의 어느 구석에든지 사소한 특혜나 특전이 깃드는것을 극력 반대하시였고 그것을 일군들의 귀족화, 관료화를 막고 건전한 국풍을 확립하기 위한 중대한 문제로 보시고 엄정한 요구를 하시였던것이다.

이처럼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인민을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시면서도 자신께서는 언제나 인민들과 꼭같이 수수하고 평범하게 생활하시였으며 언제나 공과 사를 엄격하게 가르시였다. (계속)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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