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지역

서부지구

 

개성지구

평양에서 남쪽으로 16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있다.

개성지구는 특색있는 관광지구로서 수많은 력사유적들과 명승지들을 참관하면서 조선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잘 알수 있으며 판문점과 콩크리트장벽에 대한 참관을 통하여 조선민족의 분렬의 비극을 직접 목격할수 있다.

주체102(2013)년에 개성지구의 12개의 력사유적들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였다. 개성으로 가는 길은 기차길과 자동차길이 있는데 평양-개성고속도로를 따라 차를 타고 가는것이 편리하다. 평양에서 개성으로 가는 길에 중간지점인 수곡휴계소에서 휴식도 할수 있으며 휴계소로부터 몇개의 차굴을 지나가서는 1억 8천만년전의 공룡발자리화석도 볼수 있다.


개성시

개성시

개성은 우리 나라 중서부에 위치하고있는 아름답고 오랜 력사를 가지고있는 도시이다.

개성은 약 500년간 조선의 첫 통일국가 고려(918-1392)의 수도였던 력사의 도시이며 외세에 의해 강요된 조선의 국토량단과 민족분렬의 비극이 어려있는 분계연선도시이다. 또한 세계적으로 이름난 훌륭한 약재인 고려인삼의 원산지이다. 예로부터 이곳 송악산에 소나무가 많이 자라고있어 《송도》(소나무고을)라고 하던것을 고려시기에 이르러 수도로 되면서 《개경》이라 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부터 성을 연다는 의미에서 《개성》이라 불렀다.

개성시는 현대거리와 옛 거리가 어울려있어 다른 도시들에서는 볼수 없는 독특한 풍경을 펼쳐보인다.

년평균기온은 10. 3℃이며 년평균강수량은 1 300~1 400mm이다.


자남산

개성시내 한복판에 솟아있는 산이다.

자남산(높이 104m)은 뒤에 보이는 송악산의 아들같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시내를 한눈에 부감하기 좋은 곳이다. 약 6km의 포장도로를 따라 휴식터들이 꾸려져있다.
자남산 기슭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동상이 정중히 모셔져있다. 예로부터 경치좋은 곳으로 이름난 자남산기슭에는 관덕정을 비롯한 여러 력사유적들이 있다.


송악산

자남산뒤에 있다.

예로부터 사철푸른 소나무가 많이 자라는 산이라 하여 송악산(높이 490m)이라고 불렀다. 이 산기슭에는 만월대, 개성첨성대, 고려박물관, 개성성의 외성 등 여러 고적들이 있다.


개성남대문과 연복사종

개성남대문과 연복사종

개성시 북안동에 있다.

개성남대문은 고려시기에 건설한 개성성 내성의 남문으로서 1391년부터 1393년까지 세운것이다. 축대우에 합각지붕을 씌운 조선의 옛 성문들과 같은 류형의 건물이다. 세계문화유산의 하나이다.

남대문축대우에는 조선3대명종의 하나인 연복사종(1346년 주조)이 있다. 원래 연복사(당시 개성에 있던 절)에 매달았던것을 1563년에 그 절이 불타면서 개성남대문으로 옮겨왔다. 1900년대초까지 개성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었다. 종소리는 맑고 우렁차며 40㎞밖에서도 들린다고 한다. 종의 겉면에 부각한 무늬들은 우아하고 아름답다. 무게는 약 14t이며 높이는 3. 12m, 두께는 23㎝이다.

아구리직경은 1. 9m로서 지금까지 남아있는 조선의 력사유적종들가운데서 제일 크다. 이 종은 고려시기의 높은 금속주조술을 보여주는 귀중한 력사유적이다.


숭양서원

승양서원

개성시내 중심에서 동북쪽으로 1km 떨어진 선죽동에 있다.

비교적 규모가 갖추어진 중세조선의 대표적인 서원(유교를 가르치던 사립교육기관)의 하나이다.

숭양서원은 중세서원의 건축형식을 보여주면서도 송죽같은 절개를 지녔던 고려충신 정몽주의 생애와 관련된 곳으로 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유적이다. 숭양서원은 학생들이 공부하던 강당과 숙소였던 동재, 서재로 이루어져있다. 정몽주가 타살된 후 1573년에 고쳐세웠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였다.


선죽교

선죽교

개성시 자남산남쪽기슭에 위치하고있는 돌다리이다. 눈에 별로 띄지 않는 자그마한 이 다리가 오랜 세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것은 고려의 마지막충신 정몽주가 리성계에 의하여 피살된 장소이며 이 사건을 계기로 고려왕조와 리왕조의 교체과정이 더 촉진되였다는 력사적사실이 깃들어있기때문이다.

처음에는 정몽주의 피가 다리우에 붉게 물들었다고 하여 선지교라고 하였는데 그후 그 자리에서 그의 곧은 절개를 보여주는듯 참대가 자라났다는 전설이 전해지면서 선죽교로 부르게 되였다.

선죽교 가까이에는 정몽주의 충절과 관련된 성인비, 하마비, 표충비 등 유적들이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여있다.


표충비

표충비

선죽교와 길을 사이에 두고있다.

비각에 두개의 비석이 있는데 고려의 충신 정몽주처럼 백성들이 조선봉건왕조에 《충실》할것을 바래서 하나는 1740년 조선봉건왕조의 력대왕의 하나였던 영조가, 다른 하나는 1872년 고종이 세운것이다. 두개의 비석은 다 거북잔등우에 세웠으며 비석에는 정몽주를 찬양하여 쓴 왕들의 필적이 새겨져있다.

통돌로 된 거부기, 련꽃무늬, 비석의 처마돌에 새긴 룡틀임조각 등은 조선인민의 높은 문화적재능을 보여주는 귀중한 력사문화유산으로서 주체102(2013)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였다.


고려박물관(고려성균관)

고려박물관(고려성균관)

개성시내중심에서 동북쪽으로 2k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있다.

이곳은 고려시기와 조선봉건왕조시기 봉건국가의 관리양성을 목적으로 세운 최고교육기관(오늘의 대학과 같다.) 이였다. 원래 이 건물은 11세기초엽에 고려의 별궁인 대명궁으로 건설하였던것이다. 그후 순천관(외국사신들을 들이던 숙소), 승문관(유교교리에 관한 사무를 보는 기관) 등으로 리용되여오다가 성균관의 전신인 국자감(992년 창설)이 이곳으로 옮겨온 후 1308년에 성균관이라 이름을 고치였다.

현재 이 건물은 주로 고려시기의 력사를 보여주는 고려박물관으로 꾸려져 귀중한 력사유적유물들을 수많이 전시보존하고있다. 2만㎡의 부지면적에 기본건물 12개, 부속건물 6개가 있으며 천여년이나 자란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여 보호관리되고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81(1992)년 5월 이곳을 찾으시여 우리 나라에 1 000년력사를 가진 대학이 있는것은 크나큰 자랑이라고 하시면서 고려시기의 최고교육기관인 성균관을 계승한 경공업종합대학《고려성균관》을 창설하도록 하시였다.


개성첨성대

개성첨성대

만월대의 서쪽에 자리잡고있는 첨성대는 고려왕궁건설초기에 천문관측소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월식과 혜성, 별찌, 이상기후현상, 태양흑점을 비롯한 여러가지 천문현상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였다.

30차례의 태양흑점관찰과 관련한 자료가 고려박물관에 전시되여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여있다.


안화사

안화사

안화사는 개성남대문에서 4km 떨어진 송악산중턱에 있다.

930년에 건설한 고려태조 왕건의 4촌동생 왕신의 원찰이다. 대웅전, 명부전, 오백전, 7층돌탑, 료사로 이루어져있다. 볼만 한것은 부처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몸가짐과 각이한 인상을 하고있는 500명의 라한들이 7개의 단우에 자리잡고있는 오백전이다.


인삼밭

인삼밭

개성시내를 참관하면서 인삼밭도 볼수 있다. 인삼은 그늘에서 잘 자라는 성질을 가지고있으므로 지붕을 씌운 특수한 포전에서 자래운다. 손님들은 이곳에서 직접 인삼재배과정을 볼수 있으며 또 적합한 가격에 개성고려인삼을 구할수 있다.


목청전

개성시 운학동에 자리잡고있다.

원래는 조선봉건왕조를 세운 리성계가 왕이 되기 전까지 살던 집인데 그가 죽은 후 궁전으로 확장하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으로 리용한 건물이다. 조선전쟁시기 파괴된것을 1954년에 원상복구하였다.


개성학생소년궁전

개성학생소년궁전

개성남대문에서 북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다.

개성시학생소년들의 과외교양기지로서 1961년 6월 6일 조선소년단창립 15돐에 즈음하여 개관하였다. 연건평 1만 2천여㎡에 700석극장, 120여개의 실험실, 40여개의 소조실이 있다. 하루수용능력은 3 000여명이다.


만월대

만월대

송악산의 남쪽기슭에 자리잡고있다.

조선의 첫 통일국가였던 고려의 왕궁터이다. 부지면적은 125㎡이며 궁성면적은 약 39만㎡이다. 원래 달을 바라보는 대(집)라는 뜻에서 망월대라고 불렀는데 그 이름이 오랜 세월 전해오면서 만월대로 되였다고 한다. 궁성과 황성으로 이루어진 만월대에는 많은 문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웅장화려한 신봉문은 2층건물로서 왕을 비롯한 봉건관료들이 올라와 경기도 구경하고 군사들을 사열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궁전의 중심건물인 회경전을 중심으로 전후좌우에 수많은 궁전과 루각들이 배치되여있었다. 궁전주변에는 태평정을 비롯한 푸른 기와를 인 별궁들과 정자들이 있었고 꽃나무, 과일나무 우거진 정원들이 있었으나 1361년 외적에 의해 불타버리고 지금은 그 터만 남아있다.

현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여있다.


박연폭포

박연폭포

개성시내에서 북쪽으로 약 24km 떨어진 곳에 있다.

금강산 구룡폭포, 설악산 대승폭포와 함께 조선3대명폭포로 손꼽힐뿐아니라 16세기의 유명한 철학가 서경덕과 유명한 녀류시인 황진이와 함께 《송도3절》로 되고있다. 높이가 37m인 폭포꼭대기에는 둘레 24m, 직경 8m, 깊이 5m정도의 박연이라고 부르는 못이 있고 폭포아래에는 고모담이라고 하는 둘레 120m, 직경 40m인 못이 있다. 박연에 물이 고였다가 떨어지면서 생긴 폭포라고 하여 박연폭포라고 부른다.

폭포가까이에 있는 범사정이라는 정자에 올라 바라보는 폭포의 경치는 그야말로 절경이다.


관음사

관음사

박연폭포우에 있는 고려시기 산성인 대흥산성의 북문을 지나 1. 5km 올라가면 있다.

관음사는 970년에 세운 절인데 지금의것은 1646년에 다시 건설한것이다. 970년 법안국사라는 승려가 대웅전 앞뜰 서쪽구석에 있는 자연굴에 관음보살상 한쌍을 가져다두고 그 굴의 이름을 《관음굴》이라 부른 때로부터 이 절의 이름을 관음사로 부르게 되였다. 크지는 않으나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로 지은 건물로서 건축양식이 독특하며 장식에서 특징을 가지고있는 우아한 절이다. 절앞에는 7층돌탑이, 관음굴에는 그때의 관음보살상이 그대로 보존되여있다. 고려중엽에 만든 관음보살상은 매우 진귀한 유물로서 사람들의 인기를 끌고있다.


왕건왕릉

왕건왕릉

개성시에서 북쪽으로 6㎞ 떨어진 해선리에 자리잡고있다.

조선의 첫 통일국가 고려의 건국시조왕 왕건(877-943)의 무덤이다. 왕건의 생일 1 117돐을 계기로 주체83(1994)년 1월 31일 개건하였다. 세계문화유산의 하나인 왕건왕릉의 부지면적은 5만 5천㎡이다. 왕릉구역에는 왕건의 무덤과 그의 초상을 비롯하여 슬기와 용맹을 떨친 이름있는 문인들과 무인들을 형상한 돌조각상들, 고려인민들의 투쟁업적을 화폭에 담은 여러점의 미술작품들, 이 시기 건축술을 보여주는 릉문과 제당 등이 있다.

릉문앞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친필이 새겨진 고려태조왕건왕릉개건비가 세워져있다.

왕릉은 사람들이 들어가 그 내부와 벽화를 직접 볼수 있게 되여있으며 릉앞에는 넓은 공원이 있다.


경효왕릉(공민왕릉)

경효왕릉(공민왕릉)

개성시내중심에서 서쪽으로 14㎞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있다.

고려 31대 경효왕의 무덤으로서 왕비가 죽은 후 왕자신이 설계하고 백성들을 동원하여 만든 왕과 왕비의 쌍무덤이다. 1365년부터 1372년까지 7년동안 건설하였다. 경효(공민)왕릉은 무덤구역, 문관상구역, 무관상구역, 무덤의 제당이 있는 구역으로 이루어져있다. 무덤구역에는 왕과 왕비의 무덤이 나란히 놓여있다. 무덤의 밑둘레에는 구름무늬와 12지신을 부각한 화강암병풍돌을 12각으로 돌리였다. 무덤칸에는 벽화가 있는데 천정에는 해, 북두칠성, 삼태성을 그렸고 동, 서벽에는 12지신을 그렸다. 무덤앞 상돌무게는 7. 2t이며 무덤좌우에는 6각형의 망두석이 서있다. 1905년 일제에 의하여 순장품은 모두 도굴당하였으며 이때 도굴자들에 의하여 무덤의 한쪽 모서리가 파괴된것을 복구한 흔적이 있을뿐 릉은 원상그대로 보존되여있다.

살아움직이는듯 한 사람과 동물조각상들은 당시 고려의 화강석가공기술이 매우 높았음을 보여주고있다.

왕릉은 그 력사적가치로 하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였다.


판문점

판문점

개성시내에서 8k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조선과 미국사이 정전협정을 체결한 곳이다. 판문점은 개성과 서울을 오가는 길에 거치게 되는 작은 고장이름이다. 자그마한 농촌마을에 불과하였던 판문점은 정전담판이 진행되고 조선반도를 둘로 갈라놓은 분계선이 지나가고 미국과의 전쟁과 평화에 관한 치렬한 담판장으로 되면서부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곳으로 되였다.

판문점구역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친필비와 정전담판회의장, 정전협정조인장,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이 있으며 회의실건물가운데로 통과한 군사분계선의 북측에 통일각과 판문각이 있다.


정전담판회의장

정전담판회의장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조선과 미국측이 주체40(1951)년 10월부터 주체42(1953)년 7월 정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정전담판을 진행한 장소이다.

미국은 전조선을 강점하고 아시아와 세계제패야망을 실현해보려고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전쟁을 일으켰으나 처음부터 심대한 정치군사적타격을 받았다. 이에 바빠맞은 미국은 전쟁개시 1년만인 주체40(1951)년 6월 조선에 정전담판을 제기하였다. 그리하여 이해 7월 10일부터 조선측 군사통제지역인 개성시 고려동에 있는 래봉장에서 첫 정전담판이 진행되였다. 정전담판에서는 군사분계선확정과 비무장지대설정문제, 정화 및 정전기구문제, 전쟁포로교환문제, 전후 조선문제의 평화적해결에 관한 문제들이 토의되였다. 군사분계선확정문제를 토의할 때 미국측은 전체 조선령토의 20분의 1에 해당하는 1만 3 000㎢의 땅을 내달라는 강도적요구를 제기하였다. 그 요구를 실현할수 없게 되자 미국은 고의적으로 정전담판을 파탄시키고 대규모적인 군사공세인 《하기 및 추기공세》를 감행하였다.

그러나 우리 인민군대의 강력한 반타격에 얻어맞은 미국은 또다시 정전담판을 제기해왔다. 우리측의 주동적인 조치로 담판장은 판문점으로 정해졌으며 그해 10월 25일부터 정전담판 제27차 본회의가 재개되였다. 정전담판 본회의는 정전협정이 조인될 때까지 158차에 걸쳐 이 건물에서 진행되였다.


정전협정조인장

정전협정조인장

정전협정조인장은 미국이 조선인민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서에 도장을 찍은 장소이다.

정전협정조인식문제를 토의할 때 미국측대표는 조인식을 야외에 천막을 치고 조용히 간단하게 하자고 제기하였다. 그 속심은 자기들의 수치스러운 패배상을 력사에 남기지 않으려는데 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정전협정조인은 조선인민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미국을 타승한 위대한 승리라고 하시면서 조인식을 위신있게 하며 그러자면 조인식장건설과 내부설비를 우리가 다 맡아하며 건물은 력사적인 증거물로 남기자고 하시였다. 그리하여 900㎡나 되는 이 건물은 우리 인민들과 인민군 군인들에 의하여 단 5일동안에 건설되였다.

주체42(1953)년 7월 27일 오전 이 집에서 정전협정이 조인되였고 쌍방은 정전협정문에 서명한 때로부터 12시간내에 전쟁을 중지하기로 하였다. 3년간의 전쟁은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조선인민과 인민군대의 빛나는 승리로 끝났다.

건물안에는 당시의 정전협정조인탁과 의자, 기발, 문건 등이 보존되여있다.


통일각

판문점경비구역안에 있다.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여러 회의들과 북남쌍방접촉을 진행하는 장소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친필비

김일성주석의 친필비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로 들어가는 길 우측에 자리잡고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생애의 마지막순간에 조국통일관계문건을 친히 보아주시고 그 첫장에 남기신 친필을 새긴것이다.

길이 9. 4m, 너비 7. 7m인 천연화강석에 《김일성 1994. 7. 7.》이라는 친필을 그대로 새겼다.

친필비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통일운동사에 쌓아올리신 불멸의 업적과 숭고한 애국애족의 뜻을 영원히 빛내여갈 조선인민의 마음이 담겨져있다.


콩크리트장벽

콩크리트장벽

개성시에서 동쪽으로 27km 가면 콩크리트장벽을 볼수 있는 곳에 이르게 된다.

남조선당국이 조선의 분렬을 영구화할 목적으로 조선반도를 북과 남으로 갈라놓은 240㎞ 군사분계선에 쌓아놓은 콩크리트장벽이다. 1977년부터 수년간에 걸쳐 높이 5~8m, 웃너비 3~7m, 밑너비 10~19m의 제형으로 건설한 장벽이다. 콩크리트장벽을 쌓는데 세멘트 80여만t, 철근 20여만t, 모래자갈 350여만㎥ 들었다고 한다. 오늘날 콩크리트장벽은 남조선당국의 반민족적, 반통일적죄행을 고발하는 력사의 증견물이다.


령통사

령통사

개성시에서 동북쪽으로 약 10km 떨어진 오관산 령통끝에 자리잡고있다.

령통사는 조선 불교교단에서 처음으로 천태종을 하나의 종파로 성립시키고 널리 퍼뜨려 그 시조로 된 대각국사(고려태조 왕건의 4대손인 문종왕의 넷째아들)의 행적이 깃들어있을뿐아니라 그의 부도와 사당건물이 세워진것으로 하여 조선천태종의 성지로 된 이름난 절이다.

령통사는 10세기초에 건립되여 고려태조 왕건의 가문과 인연을 맺고 력대 고려왕들의 보호를 받으며 700여년간 번성해오다가 16세기에 페사되였다. 지금 건물은 2005년에 새로 복원한것이다. 복원된 령통사는 6만㎡의 부지면적에 보광원, 중각원, 숭복원, 보조원, 영녕원, 경선원으로 이루어졌다. 이곳에는 대각국사비와 당간지주, 불교그림을 비롯한 많은 유족물들이 전시보존되여있다.


개성민속려관(2급)

개성민속려관(2급)

개성시 자남산기슭 서쪽에 위치하고있다.

조선식단층건물들로 이루어진 민속려관이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지은 조선식살림집을 려관으로 전환하여 1989년에 개업하였다. 19개 호동으로 이루어진 려관은 내부시설과 봉사시설들이 조선식으로 꾸려졌다. 손님들은 조선식온돌방에서 하루밤 류다른 체험을 할수 있다. 예로부터 소문난 반상기를 비롯하여 개성특산음식을 잘하기로 유명하다.

방수:50개(1등실 2개, 2등실 4개, 3등실 44개)


자남산려관(2급)

자남산 남쪽기슭에 자리잡고있다. 아늑하게 꾸려진 4층짜리 려관이다. 주변경치가 수려하여 손님들의 평이 좋다.

방수:42개(1등실 1개, 2등실 4개, 3등실 37개)


통일관

시내중심 자남산기슭 남쪽에 있다.

조선민족료리전문식당으로서 일반적으로 조선음식 특히 반상기, 인삼닭곰, 개성보쌈김치, 개성약밥, 경단 등을 잘하는것으로 하여 인기가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