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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희망안고 걸어온 길

 

 

따뜻한 깃을 찾아 새들은 날아가는데 처녀는 찬바람 몰아치는 힘겨운 과학탐구의 길을 힘겹게 걸어간다. 모진 시련과 난관이 앞을 가로막고있다.

어이하여 편히 살수 있는 길, 단란한 행복의 길을 마다하고 자기의 아름다운 청춘까지 고스란히 바쳐가며 이 길을 가는것인가.

처녀의 마음속에는 간절한 소원이 있었다.

자기 수령, 자기 령도자에게 기쁨을 드리려는.

그 소원이 그 누가 자기의 마음을 몰라줘도 희망을 버리지 않게 하였으며 어렵고 힘겨웠지만 정한 길을 따라 웃으며 걸어가게 하였다.

마침내 그는 연구사업에서 성공하여 인간이 받아안을수 있는 모든 영광과 행복을 지니게 된다.

이것은 조국에서 제작한 예술영화 《열네번째 겨울》의 주제가내용이다.

조국인민들이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하던 어려운 시기 김정일장군님께서 늘 마음속으로 부르군 하시던 노래라고 한다.

정말 마음에 드는 노래였다. 내 심정을 노래한것만 같았다.

조국이 어려운 시련을 겪을 때 새로운 인생의 첫 자욱을 뗀 나였다. 모든것을 뒤에 두고 스스로 선택한 이 길이였다. 힘자라는껏 노력하여 내 조국에 적으나마 기여하리라는것이 내 마음이였다.

구태여 다시 말한다면 나는 조국산천을 부감하러 온 관광객이 아니였다. 돈자루를 불구어 가져가려고 온것도 아니였다.

그러나 결심 하나만으로 품은 그 뜻을 이를수 없는것이다.

누가 말하였던가.

세상에 장애없는 일이란 없다고. 만일 있다면 그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일일것이라고.

쉬운 일이란 없으며 고난이 클수록 그 가치는 더 커진다는 말일것이다.

이루려는 뜻이 높을수록 넘어야 할 시련의 산도 그만큼 높고 험하기마련이다.

걸어온 근 20년간의 나날을 돌이켜보면 내가 걸어온 길은 순풍에 돛을 단것처럼 그렇게 순탄치 않았다.

솔직히 말하여 맥이 풀리고 주저앉고싶던 때가 그 얼마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꿋꿋이 버티여냈다.

그 나날에 나는 무한한 희열을 느낄수 있었고 크나큰 영광과 행복도 받아안을수 있었다. 그리고 애국의 길에 남기는 자욱이야말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된다는것을 가슴깊이 새기게 되였다.

모래불에 찍힌 발자국은 쉽게 지워지지만 애국의 길에 남긴 자취는 민족과 더불어 영원한것이다.

 

 

첫 걸 음

 

 

첫번째 단추를 잘못 채우면 그 다음 단추도 바로 채울수 없는것은 뻔한 일이다.

시작은 그렇게 중요한것이다.

기업을 전개하면서도 나의 생각은 무엇으로 어떻게 조국에 기여할가 하는데로 쏠려있었다.

애국이란 가장 신성하고 숭고한 위대한 사상감정이다.

하여 나는 처음에 그 내용도 참으로 위대하고 거창할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다시말하여 나라의 중요공업부문의 발전이나 방대한 규모로 일떠서는 건설장 등에 이바지하는것만이 애국사업인줄 알았다.

이런 견해를 가지고있었기에 많은 자금이 필요하였고 따라서 기업활성에만 골몰하였다.

1998년 여름 어느날 나는 우연히 들가에서 풀을 뜯는 아이들을 보게 되였다. 식물채집을 하는줄로 알았더니 그들은 토끼에게 먹일 풀을 뜯고있었다. 자기들은 늘 여가시간이면 여기에서 풀을 뜯는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보니 확실히 그 길을 지나다니면서 자주 보았던것 같았다.

불현듯 토끼풀을 뜯던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 인민들은 누구나 쉴참이나 퇴근길이면 의례히 풀을 뜯고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너무도 범상하게 스쳐지나보냈던것이다.

며칠전 한 기관의 일군들을 찾아갔을 때에도 그의 방에서는 금방 해온 토끼풀에서 나는 향기가 떠돌고있었다. 토끼기르기에 대단한 조예가 있는가부다 하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였다.

그로부터 얼마후 라선시 해외동포사업처의 일군들을 찾아갔을 때 나는 이런 광경을 또다시 목격하게 되였다.

확실히 조국인민들은 토끼기르기에 큰 힘을 넣고있었다.

그야말로 전군중적이였다.

평양시를 비롯한 여러 지역의 급양봉사망들에서 토끼고기료리전문식당을 본 생각도 살아올랐다.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도 찾아볼수 없었던 료리였고 식당이였다. (아마 내가 보지 못하였을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것들도 다른 생각이 없이 스쳐지났다.

조국에 체류한지 몇년이 지나도록 느끼지 못하던 대대적으로 벌어지고있는 토끼기르기에 대하여 그제야 발견한것이 이상하였다.

새로운 사물현상에 민감하다고 자부하고있던 나였다.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투시하고 즉시적으로 반응하여 많은 성과를 이룩한 나였다.

라선시의 한 일군은 나에게 조국에서 힘차게 벌어지고있는 풀과 고기를 바꾸는 사업에 대하여 알기 쉽게 말해주었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1950년대에 벌써 인민들에게 고기를 많이 먹이도록 하시기 위하여 풀먹는 집짐승을 많이 기르도록 하시였다. 조국의 한끝인 라선땅을 찾으시여서도 먹이원천이 풍부한 이곳에서 풀과 고기를 바꿀데 대하여 중요하게 강조하시였다고 한다.

그이의 높은 뜻을 이으신 김정일장군님께서도 이 사업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시며 전체 인민들을 이 사업에 적극 불러일으키시였다고 한다.

풀과 고기를 바꾸는 사업에 나도 한몫 이바지할수 없을가. 이런것도 애국일가.

애국사업이란 소소한 일이 아니라고 여기고있던 나였던것이다.

생각이 깊어졌다.

귀여운 토끼들이 귀를 종긋거리며 호물호물 풀을 먹고있는 모양이 눈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문득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유별하였다.

창밖에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날 저녁이였다.

그날도 온종일 눈판에서 뛰놀던 나는 밤이 깊어갔지만 잠들지 않고 밖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아버지가 곱고 따뜻한 내 털옷을 사가지고 오겠다고 약속하였던것이다.

퍼그나 시간이 흘러 정신이 가물가물해질 때 사립문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너무 기뻐 《아버지!》 하고 웨치며 문을 박차고 달음질쳐나갔다.

정말 아버지의 손에는 털옷이 쥐여져있었다.

얼마나 따스하고 포근하던지.

곱게 만든 폭신한 토끼털옷을 입고 좋아하던 나는 그제서야 아버지의 얼굴과 손을 보게 되였다.

시퍼렇게 얼어 곱아든 손으로 얼굴의 성에를 문지르는 아버지의 눈가에서는 행복의 미소가 흐르고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사랑하는 딸을 위해 한몸의 추위도 마다하고 먼길을 다녀왔다.

위대하신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온 나라 인민들에게 행복을 주시기 위하여 오래전부터 마음쓰시였다니 인민들을 위하시는 그분들의 숭고한 뜻과 사랑에 머리가 숙어짐을 어쩔수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늘 여름에는 잠바옷차림(공화국에서는 야전복이라고 부른다.)으로, 겨울에는 변함없는 단벌솜옷차림으로 군인들과 인민들을 찾고 또 찾으시였다.

그것을 나는 TV의 보도와 영상들을 통하여 잘 알수 있었다.

언제인가 중동나라의 한 옷도안가는 자기 나라 대통령의 옷차림을 두고 이렇게 평가하였다.

《대통령의 복장에는 위엄과 절도와 우아함이 있었다.》

그가 자기 대통령의 옷차림새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는가,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는가는 그자신밖에 모를것이다.

무릇 옷차림에는 그의 성격과 미감, 인품이 반영되게 된다.

그래서인지 나는 TV화면에 비쳐지는 위대한 장군님의 영상을 뵈올 때면 이런 생각을 하군 하였다.

그이의 옷차림에서는 수수함과 고상함, 그로 인한 친근감이 차고넘친다고.

한평생 인민들과 한치의 간격도 두지 않으신 김정일장군님, 그래서 그 무슨 위엄과 권위의식 같은것을 조금도 느낄수 없는 한없이 검박하고 소탈한분이시였지만 바로 그것으로 하여 조국인민들은 그이를 하늘처럼 받들어모시지 않았던가.

그래서인지 평양에 갈 때면 의례히 보게 되는 회색솜옷을 입은 사람들을 무심히 볼수 없었고 그럴수록 마음이 몹시 울렁거렸다. 뜨겁게 그리고 세차게!

저 사람들이 바로 우리 장군님(이때부터 나는 공화국의 인민들처럼 그이를 부르게 되였다.)을 매일과 같이 몸가까이에서 뵈옵고 그이의 사업을 보좌하는 일군들이겠지 하고 생각되였기에.

인민의 위대한 수령들이신 그분들의 뜻을 받들어가는것은 분명 애국일것이다.

온 나라 인민들에게 행복을 안겨주시려 쉼없이 걸으시는 우리 장군님의 어깨에 실린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자! 아버지에게 효성을 다하는 딸의 심정으로!

그때부터 나는 기업활동을 하는 속에서도 토끼연구사업에 큰 힘을 넣었다. 하여 토끼와 관련한 많은 자료들을 알게 되였다.

토끼는 알곡먹이를 쓰지 않고 풀만 가지고도 쉽게 기를수 있다. 또한 번식력이 높고 빨리 자라기때문에 생산성이 높으며 맛좋고 영양가높은 고기와 질좋은 털가죽을 주는 유익한 집짐승이다.

20여종이나 되는 토끼중에서 대표적인 종은 산토끼(메토끼)와 굴토끼였다.

집토끼는 굴토끼에서 기원되였다. 굴토끼의 원산지는 유럽 서남부로부터 아프리카북부에 이르는 지대인데 점차 영국, 우크라이나, 뉴질랜드, 아메리카 등 여러 지역에 광범히 전파되였다.

15~16세기에는 집토끼가 유럽의 여러 지역에 널리 퍼졌다.

집토끼가 세계에 널리 퍼지게 된것은 뽀르뚜갈의 항해업자들이 식량원천으로 가지고 다니면서 기르다가 여러곳에 놓아준 때부터라고 한다. (지금 오스트랄리아의 들판에 살고있는 7억마리의 토끼가 지난 시기 집토끼를 놓아준 결과 야생화된 토끼라고 한다.)

토끼를 집짐승으로 많이 기르게 된것은 제1차 세계대전시기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것과 함께 털가죽이 많이 요구된것과 관련되였다.

19세기말~20세기초에는 생산성이 높은 새로운 집토끼품종들이 육종되면서 토끼가 더욱 널리 퍼지게 되였다.

세계적으로 토끼품종수는 100여종이나 경제적의의가 큰것은 15~16개 품종이였다.

토끼는 생산물의 용도에 따라 여러가지로 가르며 몸질량에 따라 대형(4kg이상), 중형(3~4kg), 소형(3kg이하)품종으로 나누었다.

토끼고기는 단백질함량(20%)이 높고 소화흡수도 잘되며 특히 콜레스테린, Na함량이 적고 동맥경화증을 막는 작용을 하는 레시틴이 많이 들어있다. 또한 비만증, 고혈압, 심장질환, 간염, 위병 등의 치료식료품으로도 된다.

토끼의 내장(간장, 비장 등)은 생물약품을 만드는 원료로 된다.

토끼는 참으로 유익한 집짐승이였으며 크게 품을 들이지 않고도 큰 수확을 얻을수 있었다.

세계적으로 백여개 나라들에서 토끼를 기르고있는데 많이 기르고있는 나라들은 프랑스, 이딸리아, 에스빠냐, 도이췰란드, 스웨리예, 로씨야, 스위스 등이였다.

이러한 자료들을 알게 된 나는 해당 나라의 전문회사들과 연구소들에 전자우편을 보내여 수소문을 하였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콤퓨터의 전자우편함에는 아무런 소식도 오지 않았다.

속이 바질바질 타들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그곳들에 갈수도 없었다.

며칠 더 지나자 마침내 회답들이 날아들기 시작하였는데 너무도 기뻐 탄성까지 올렸다.

저마다 자기들의것을 사가라고 했다.

매 종류의 토끼들의 생태학적특성과 생산성이 구체적으로 밝혀져있었고 사진들까지 보내왔다.

나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조국의 풍토에 알맞고 번식력과 생산성이 높은 토끼들을 구입할것을 계획하였다.

이런 계획밑에 가격들을 모두 타산해보니 그 액수가 엄청났다.

나에게는 그것이 아름찼다.

물론 그만한 자금이 없는것은 아니였지만 당시까지 기업이 활성화되지 못하였기때문에 자금을 될수록 그에 돌려야 할 형편이였다.

어떻게 할것인가.

애국의 길을 걸으려고 결심품고 나선 나였지만 선뜻 용단을 내릴수 없었다.

아버지의 얼굴이 다시금 떠오르면서 망설이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것 같았다.

애국은 돈보다도 마음으로 하는것이라고, 아무리 돈이 많아도 마음이 없으면 애국을 못하는것이고 돈이 없어도 마음만 있으면 애국을 할수 있다고, 민족을 위해 살겠다고 결심을 품은 네가 무엇을 주저하고있는가고, 아버지의 몫까지 합쳐 민족을 위한 좋은 일을 많이 하라고 말이다.

나는 생각하였다.

우리 조국이 허리를 펴게 하는 일이라면 나는 무슨 일이든 타산을 앞세우지 않을것이다. 물론 내가 하는 일은 한 나라, 한 민족이라는 범위에서 보면 너무도 작은 일이다. 그러나 민족의 성원모두가 이렇게 작은 일이라도 하나씩하나씩 기여한다면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것인가. 그러면 내 조국은 또 한걸음 전진할것이다.

밤하늘가에서는 무수한 별들이 유난히 반짝이고있었다.

어릴 때부터 별을 사랑하였으며 별들과 속삭이기 좋아한 나였다. 내 소원, 내 희망에 대하여 다정히 들어주고 고이 지켜주는 별들은 나에게 있어서 둘도 없을 나의 《친구》였고 변함없는 나의 《길동무》였다.

그 별들은 나의 결심을 적극 고무해주는것만 같았다.

다음날 나는 길을 떠났다.

1998년 10월 조국에 돌아올 때에는 여러 나라의 회사들에서 운반해온 백수십마리의 토끼와 부대설비들을 싣고 왔다.

그것들은 라선시 백학농장에 고스란히 이관되였다.

토끼와 설비들을 받아안은 그들은 난생처음 이런 토끼를 본다고 하면서 나에게 정말 고맙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나는 옹색한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더 크게 기여하고싶었는데 내가 한 일이 너무도 작게만 여겨졌기때문이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몹시 기뻤다. 나도 민족을 위해, 우리 장군님을 위해 무엇인가 기여하였다는 자부심에서였다.

이것이 내가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한 애국의 첫걸음이였다.

그후 2006년 5월에도 여러종의 많은 우량종토끼들과 사료가공설비일식을 조국에 기증하였다.

그 토끼명세들을 보면 비리스잔디토끼 수컷 12마리, 암컷 38마리, 비리스고기토끼 암컷 100마리, 일본청자란토끼 수컷 40마리, 일본거형토끼 수컷 13마리, 암컷 57마리였다.

토끼의 60%는 도이췰란드산이였고 30%는 일본산, 10%는 필리핀산이였다.

한마리가 보통 8kg정도 되는 대형품종들을 기본으로 계획하였는데 눈알이 얼마나 큰지 사람보다 더 클것 같았다. 그 토끼들의 목에는 저들의 《족보》가 매달려있었고 예방접종날자까지 밝혀져있었다.

토끼장(일반토끼장, 운반토끼장, 먹이통, 분비물받는 판, 새끼낳이집, 물먹이는 수도꼭지와 수도비닐관 등)들도 일식으로 들여왔다.

그리고 토끼사양관리와 방역사업에 필요한 각종 예방약과 치료약들, 옮겨온 후 적응시킬 때까지의 필요한 사료와 사료설비, 보충설비들도 충분히 갖추어 보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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