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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다물은 한모금만 맛보아도 

 

 

《아리랑》소감

 

 

2003년에 미국, 영국, 프랑스, 도이췰란드, 이딸리아 등 많은 나라의 음악가들로 구성된 세계 아름다운 곡 선정대회가 진행되였다.

음악예술의 제노라고 하는 나라들은 당연히 자기 나라의 노래가 최우수로 될것이라고 장담하고있었다.

그도그럴것이 인류는 이 세상에 얼마나 아름답고 매혹적인 노래들을 탄생시켰는가.

그러나 결과는 예상밖이였다.

우리 나라의 노래 《아리랑》이 높은 지지률을 받아 당당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제1위에 선정된것이였다.

그 소식을 들으면서 나는 조선민족의 한 성원이라는 긍지와 함께 피부색이나 언어가 다른 나라나 민족의 사람들도 좋은 음악을 알아보는 귀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아리랑》은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민요이다.

1936년 도이췰란드에서 진행된 여름철올림픽경기대회 마라손경기에서 손기정선수가 우승하였을 때 조선사람들은 《아리랑》을 우렁차게 불러 자기의 민족성을 세계에 과시하였다고 한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경기대회때에도 북과 남의 선수들은 이 노래의 주악에 맞추어 개막식장에 공동으로 입장하였다.

《아리랑》은 우리 인민들속에서 널리 불리워지는 과정에 수많은 지방적변종들이 생겨났다. 평안도의 《서도아리랑》, 함경도의 《단천아리랑》, 강원도의 《강원도아리랑》, 경기도의 《긴아리랑》, 전라도의 《진도아리랑》, 경상도의 《밀양아리랑》 등 여러 지방의 고유한 특성을 가진 《아리랑》가요들은 수없이 많다.

이 많은 노래가운데서 《아리랑》의 제목으로 불리워지는 노래가 가장 널리 알려져있다.

《아리랑》의 발생과 어원에 대한 많은 전설들이 전해지고있는데 그가운데서 대표적인것은 《성부와 리랑》이다.

옛날 어느 한 마을의 지주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던 리랑이라는 총각과 성부라는 처녀는 흉년이 든 어느해 이 지방에서 일어난 인민들의 폭동에 참가하였다가 관군의 추격을 피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거기에서 백년가약을 맺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지만 리랑과 성부의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착취자들의 폭압과 략탈에 신음하고있을 부모형제들을 잊을수 없었던것이다.

마침내 리랑은 착취계급들을 반대하는 싸움터에로 나갈 결심밑에 사랑하는 안해인 성부와 리별하고 높고낮은 고개들을 넘고넘어 떠나갔다.

그때부터 성부는 떠나간 사랑하는 남편 리랑이 넘어간 고개들을 바라보며 매일과 같이 그리움의 노래를 불렀다.

《아- 리랑!》

그러나 성부의 애절한 부름소리는 화답없는 메아리로 끝없이 울리기만 하였다.

이 전설이 구전으로 전해지면서 가요 《아리랑》으로 불리웠고 민족의 재사인 라운규선생에 의해 1926년에는 무성영화 《아리랑》의 주제가로 되였다.

《아리랑》노래들의 가사와 선률에는 사랑하는 님과 헤여지는 슬픔, 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상봉의 희망 등 남녀간의 애정심리에 대한 형상을 통하여 착취사회에 대한 인민들의 설음과 원한, 행복한 생활에 대한 지향과 념원이 절절하게 반영되여있다.

정녕 흘러간 지난 세월에 우리 녀인들의 눈가에서 흘러내린 눈물은 얼마였고 터친 곡성은 또 그 얼마였던가.

참으로 지난날엔 우리 동포들이 신세타령으로 불리우던 피눈물의 《아리랑》이였다.

그러나 오늘의 《아리랑》은 어떠한가.

끝없는 비애와 눈물을 퍼내던 《아리랑》이 오늘에 와서는 조선민족의 긍지와 행복, 랑만과 기상이 넘치는 《선군아리랑》, 《강성부흥아리랑》으로 불리우고있다.

지난날의 《아리랑》이 구슬픈 리별의 노래, 쓰라린 고별의 노래였다면 오늘의 《아리랑》은 세상에 모래알처럼 뿌려졌던 우리 해외동포들이 너도나도 조국의 품에 다시 안기는 감격과 격정의 노래이며 각국의 사절들이 반갑게 손을 내밀며 찾아오는 친선의 노래, 환희의 노래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들어오던 아리랑전설이 나에게는 전설로만 여겨지지 않았다.

위대한 태양이 백두산에서 솟아오르지 않았다면, 존엄높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없었다면 우리 녀성들, 우리 인민들의 앞에는 여전히 리별과 슬픔의 아리랑고개가 가로막고있을것이며 수천수만의 《성부》들의 절규는 하늘가에 메아리치고있을것이다.

우리 인민들이 부르던 피눈물의 《아리랑》이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아래 《강성부흥아리랑》으로 되였다는것을 예술적화폭으로 훌륭히 형상한것이 바로 온 세상사람들에게 걸작중의 걸작, 조선의 상징으로 커다란 파문을 던진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다. 김일성주석님의 탄생 90돐과 조선인민군창건 70돐에 즈음하여 시작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에는 근로청년들과 청소년학생들, 전문예술인들과 체육인들이 출연하는데 그 수는 무려 10만명에 달하였다.

공연은 조선사람 누구나가 사랑하는 민요 《아리랑》을 종자로 하여 우리 민족의 어제와 오늘, 래일을 방불하게 보여주고있었다.

또한 형식에서도 전례없는 특성이 있었는데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의 완벽한 결합을 실현하였으며 예술장면의 비중이 높고 배경대의 대형화, 상징화, 률동화, 각종 형상수단장치들의 집대성화, 현대화, 특대형화를 실현한것 등이다. 장치에서 이채로운것은 특대형환등, 특대형영사화면, 레이자조명, 각종 전광, 특수무대, 물분수장치 등을 연구도입하여 관중들의 감정효과를 높인것이다.

《아리랑》은 2007년 8월 기니스세계기록증서를 수여받았을뿐만아니라 세계비물질문화유산으로도 등록되였다.

내가 이 공연을 관람하던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아리랑》에 대한 소문이 굉장하던 때여서 나는 흥분된 마음을 애써 누르며 릉라도에 훌륭히 건설된 5월1일경기장으로 갔다.

웅장화려하게 건설된 이 경기장은 부지면적이 40여만, 건축면적은 16만 6천여㎡, 연건평은 20만 7천여㎡, 관람석수는 15만석이라고 하였는데 공연을 관람하러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있었다. 말그대로 부글부글 끓고있었다.

이런 분위기가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순식간에 물뿌린듯 조용해졌다.

배경대의 준비동작이 시작된것이다.

수만명이 넘어보일 학생(그들은 모두 중학교학생들이라고 하였다.)들의 일치한 동작수행은 관중들의 혼을 뽑고도 남음이 있었다.

나도 그전에 조국의 집단체조가 유명하다는 말을 들어왔지만 이런 정도일줄은 상상도 못하였다.

어디에서 지휘를 하고 신호를 하는지 알수 없었지만 그에 따라 순간적으로 배경대를 변화무쌍하게 만드는것을 보고 나는 신기하기만 하여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콤퓨터에 의해 조종되는 기계장치라면 그리 놀라울것이 없지만 그것이 사람들에 의하여 조화를 부린다고 하니 참으로 놀라웠다.

나어린 학생들이 지닌 조직성과 규률성에 누구나 탄복을 금치 못하였다.

솟아오르는 태양으로 시작된 서장과 제1장 《아리랑민족》(1경-4경), 제2장 《선군아리랑》(1경-4경), 제3장 《아리랑무지개》(1경-3경), 제4장 《통일아리랑》, 종장 《강성부흥아리랑》으로 구성되여있었다.

나처럼 처음 공연을 관람하는 사람들은 어느것부터 보아야 할가 하며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거대한 경기장을 신비로운 꽃물결, 황홀한 춤바다에 잠기게 하는 현란한 조명빛에 취해있느라면 눈깜빡할 사이에 뒤바뀌는 배경대를 놓치게 되고 배경대를 보느라면 아름다운 률동과 박력있는 동작으로 심금을 틀어잡는 출연자들을 볼수 없어 참으로 안타까웠다.

오죽했으면 한 동포가 《만일 사람에게 눈이 네개나 여덟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그러면 이 황홀한 공연을 다 볼수 있을것이다.》라고 탄식조로 말했겠는가.

경기장에 오면서 흥분한 나를 보고 안내선생이 한 말도 떠올랐다.

《아마 사장선생은 이 공연을 여러번 보아야 할겁니다. 한두번의 관람으로는 작품의 아름답고 위대한 세계를 다 느낄수 없기때문입니다.》

그때는 그저 소개란 요란한 법이니까 하고 생각하였는데 공연을 보면서 그 말이 조금도 과장이 아니라는것을 알수 있었다.

《아리랑》의 노래가락에서 나는 세기의 락후를 가시고 행복의 락원을 일떠세운 우리 아리랑민족의 산악같은 기상을 읽었다.

그리고 이 행성의 하늘가에 거봉으로 솟구쳐오르는 강성국가 내 조국의 모습을 보았다.

하여 나는 그후에도 평양에 올 때면 꼭꼭 공연을 관람하였으나 보고 또 보아도 계속 보고만싶은것이 《아리랑》이였다.

그 나날에 이런 일들도 있었다.

서장이 시작되였을 때 한 금발의 외국인이 급히 나의 앞좌석에 들어서는것이였다.

그런데 그는 배경대에 솟아오르는 거대한 《태양》을 보면서 자리에 앉을념을 않고있었다.

나도 앞을 보아야 하겠는데 작지 않은 체구의 그가 가로막고있으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가 미워 내가 주먹으로 그의 잔등을 때렸다.

그런데 그는 《써리.》(미안합니다.)라는 말을 연거퍼 하면서도 앉을듯 하면서 계속 서있었다.

또다시 주먹으로 잔등을 두드리니 그가 돌아섰는데 파란빛을 가진 그의 눈에는 왜 시끄럽게 그러는가 하는 눈빛이였다. 진정으로 미안하다는 눈빛은 조금도 없었다. 입으로는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첫 순간에 벌써 넋을 빼앗긴 그의 마음이 리해는 되였지만 그래도 례절과 도덕을 제일로 여긴다는 《서양신사》가 밉고 미웠다.

언제인가 카나다에서 왔다는 동포와 함께 공연을 관람한적이 있었다.

끝없는 환희와 격정에 잠겼다가도 그는 장이 바뀔 때면 항상 깊은 한숨을 내쉬군 하였다.

《눈물의 아리랑》이 펼쳐질 때도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였고 《행복의 아리랑》이 펼쳐져도 하늘을 바라보며 또 한숨이였다.

아마 관람석에 앉은 수많은 관객중에 그런 사람은 단 한명뿐인것 같았다.

이 좋은 공연관람을 하면서 한숨이라니?

보기에도 민망스러웠다.

그런데 이제는 눈감고 혼자서 주문같은것을 외우는것이였다.

하도 이상하여 귀를 강구던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자기를 낳아 키워준 어머니앞에 큰죄를 저질렀다고 하면서 이런 자리에 자기만 있기에 한숨이 나오는것을 어쩔수 없다는것이 아닌가.

그는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를 모시고 조국을 방문하지 못한것을, 이 희한한 공연을 보여드리지 못하는것을 가장 큰죄로 여기고있었던것이다.

그러고보니 나도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정말 어머니에게 이런 공연을 보여드렸다면 얼마나 기뻐하였을가.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은 아들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이 맞는 소리라는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관객들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였다.

한숨을 쉬는 사람이 카나다동포나 나뿐이 아닌것 같았다.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랴.

3장에선가 바람소리를 내며 하늘로 솟아오른 《선녀》가 다시 아찔한 높이에서 땅우로 날아내려오는 장면이 펼쳐질 때였다.

두주먹을 꼭 그러쥐였는데 어느새 이마와 손바닥에는 땀기가 내뱄다.

금시 땅에 쾅 떨어질것만 같아 눈을 꼭 감았는데 곤두박질할것만 같았던 《선녀》는 유유히 하늘로 다시 날아오르는것이였다.

저도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나뿐이 아니였다.

세계 최고봉의 예술이라는 찬사가 누구나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박수소리, 박수소리…

정말 경탄을 자아내는 순간이였다.

(저런 기발한 착상을 한 창작가는 누굴가?)

이런 물음이 절로 생겨났다.

나는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교예관람을 자주 하였다.

거의가 렵기적이고 흥미본위의것들이였다. 특히 공중교예같은것은 거의 없었다.

왜 그런 종목은 하지 않는가고 물으니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없어서이며 사고가 나는 경우 손해가 막대하기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런 나였으니 우의 물음이 떠오른것은 당연한것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처녀가 처음엔 몹시 무서웠을텐데 그걸 착상한 사람의 심장은 보통사람과 분명 다를것이다.)

마치 풍부한 인정을 가진듯 한 인상으로 안내선생에게 말하였더니 그의 대답은 천만뜻밖이였다.

그 교예배우처녀는 창작가의 딸이라고 하는것이 아닌가. 공연을 보고 호텔로 돌아오니 로비는 몹시 흥성이고있었다.

먼저 돌아온 해외동포들과 외국인들이 격동되여 말을 주고받고있었던것이였다.

금방 받아안은 감정이 그대로 남아있어 나 역시 누구와든 열변을 토하고싶었으나 내가 아는 사람들은 한명도 없었다.

이때 한 외국인이 불쑥 나의 손을 잡고 조선민족이 제일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연방 내흔들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열광적인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뜻밖에 받은 찬사라 어떻게 행동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오늘의 《아리랑》을 꽃피우기 위해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나였기때문이였다.

훌륭한 부모님들에게 차례지는 영광을 통채로 받아안는 불효한 자식의 심정과 같다고 할가.

달아오르는 얼굴에 애써 웃음을 지으며 나는 탁우에 놓인 그날의 《로동신문》을 집어들었다. 나에게 집중되는 시선들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신문을 펼쳐들던 나의 눈길은 굳어졌다. 김정일장군님께서 최전연에 위치하고있는 인민군부대를 시찰하신 내용이 실려있었던것이다.

오늘의 찬사를 받아야 할분은 과연 누구이신가.

방으로 올라갈수 없어 나는 발길을 대동강반으로 옮겼다.

은실인듯 금실인듯 밝은 달빛이 줄줄이 흘러내리고있었고 잔잔한 대동강의 물결우에는 아름다운 불빛들이 한껏 어려있었다.

어디서인가 청년들 한무리가 기타를 타며 아름다운 평양의 밤이 지새지 말라고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간간이 들려오는 노래소리를 따라부르는 나의 눈앞에는 그 시각에도 내 조국의 행복의 《아리랑》을 지켜주시려 험한 길을 헤치고계실 장군님의 모습이 우렷이 떠올랐다.

세계 각국의 신문과 통신들, TV방송들에서는 매일 매 시각 외국수반들과 고위급인물들의 상봉과 회담, 각종 대표단과의 회견, 국회에서의 연설, 국내외의 각급 회의 참석 등 국가지도자들의 활동이 사사건건 보도되고있다.

그러나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모습만은…그것은 그 어떤 연탁이나 고요한 서재, 경치좋은 호수가나 별장의 정원이 아니라 바람세찬 고지와 기계의 동음높은 공장이나 약동하는 전야에 계시는 모습이다.

그이의 기본활동방식은 현지지도이다. 현지지도는 곧 그이의 생활자체이며 그이의 한생은 현지지도의 길에서 흘러간다.

신사복을 입은 정치가들이 국회연단에서 기염을 토할 때 그이께서는 군용차를 몰아 전선길을 달리신다. 다른 나라 지도자들이 피서지로 휴양을 갈 때 그이께서는 쪽잠과 줴기밥으로 날과 날을 이으시며 험한 령을 넘으신다.

한가정의 가장의 어깨에는 가정의 짐이 실리고 나라를 이끄는 령도자의 어깨에는 나라의 중하가 실리기에 그이께서는 나라와 민족의 안전과 번영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고계신다. …

정적이 깃든 버들숲 우거진 길을 걷는 나의 생각은 끝없이 깊어졌다. 《선군아리랑》의 노래를 마음속으로 부르고 불렀다.

《아리랑》공연의 막은 내리였지만 《아리랑》노래는 내 가슴속에서 끝없이 울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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