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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다물은 한모금만 맛보아도

 

 

원 천

 

 

나만큼 평양을 많이 방문한 해외동포는 드물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나는 지금까지 근 20년간 조국에 체류하고있다.

그래서인가 하고 독자들은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모두 맞는다고 볼수 없다.

그것은 내가 평양과 멀리 떨어진 공화국의 맨 끝인 라선땅에 살고있기때문이다.

내가 기업활동이나 하면서 한곳에 가만있어도 되는것이다.

나는 돈이 남아나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시간이 푼푼한 사람도 아니다. 나는 지금도 항상 시간의 부족을 느끼며 살고있다.

세상에서 제일 긴것이 뭐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누구나 대뜸 시간이라고 대답할것이지만 일생에서 가장 모자란다고 느껴지는것도 바로 시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문학가는 금싸래기라고 하고 철학가는 진리의 어머니라고, 군사가는 승리라고 불리우는 시간, 교육자에게는 지식으로, 의학자에게는 생명으로 되는 시간을 나와 같은 기업가들은 돈이라고 말한다.

시간을 최대로 리용하여 돈을 벌어서 조국과 민족의 부흥발전에 기여하자는것이 내가 조국에 나을 때 다진 굳은 마음이였다.

하기에 나의 생각은 언제나 기업과 관련한 사색으로 종횡무진하고 몸은 생산현장에서 바삐 돌아간다.

사실 나는 관광이나 등산 같은것을 매우 좋아하였으나 조국에 와서부터는 그리 많이 하지 못하였다.

이런 내가 평양에 자주 찾아가는것은 나를 《충전》시키기 위해서이다.

기업경영으로 인한 정신육체적피로(스트레스)를 《방전》 이라고 생각하고 말이다.

평양에 가면 쌓였던 피로가 말끔히 사라지고 새 힘이 용솟음치는것을 나는 뚜렷이 느낀다.

그런데 신기한것은 조국에서 나의 《방전》상태를 어떻게 아는지 꼭꼭 《충전》하라고 불러주는것이다.

1999년의 화창한 봄날에도 조국은 나를 평양으로 불러주었다.

평양을 방문할 때면 늘 느끼는 생각이 있었으니 그것은 조국인민들의 자기 수령, 자기 령도자에 대한 끝없는 충정심이다. 조국인민들이 지닌 그 충정심은 이 세상 그 어느 민족에 비할수 없는것이였다.

평양에 도착한 나는 다음날 이른새벽 만수대언덕에 모신 김일성주석님의 동상을 찾았다.

각이한 직종에서 일하는듯 보이는 젊은이들과 인제는 년로보장을 받았을 늙은이들은 물론 나어린 소년, 소녀들도 있었다.

그야말로 남녀로소가 다 있었다.

그들은 주석님의 동상을 우러러 정중히 인사를 올리고는 주위에 있는 화강석바닥을 정히 쓸고있었다. 투광등을 닦는 사람들도 있었고 계단연석을 깨끗이 닦아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참으로 충정스러운 모습들이였다.

열둬살가량 되여보이는 한 소년에게 나는 이렇게 물었다.

《애야, 누가 여기에 나오라고 시키더냐?》

코등에 땀발이 솟은 소년은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보다가 머리를 가로저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새벽시간에 공부가 잘되는데 왜 집에서 공부하는것이 더 좋지 않느냐?》

그러자 그 소년은 눈을 깜박이다가 이렇게 하고나면 공부가 더 잘된다고 대답하였다.

흔히 학습성적은 시간의 함수라고 말한다. 실지 나도 대학시절에 학습시간을 늘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 소년은 만수대언덕에 올라와 정성사업을 하면 공부가 더 잘된다고 하는것이다.

참으로 놀라웠다.

조국의 정치사상적수준을 실감하는 시각이였다.

나어린 소년의 정신상태가 이 정도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조국인민들은 만수대언덕에서 주석님과 심장으로 말을 주고받으며 자신들의 충정을 벼리고 또 벼리는것이다.

불현듯 대학시절에 들었던 잊지 못할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때는 김일성주석님께서 제시하신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3대원칙에 기초하여 나라의 자주적평화통일을 다그치기 위한 일련의 문제들에 대한 북과 남의 합의가 이루어지고 이를 확인하는 7. 4북남공동성명이 채택되여 세계에 커다란 파문이 일어나던 때였다.

북남쌍방이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3대원칙에 대하여 합의를 이룩한데 기초하여 서로 상대방에 대한 비방중상을 중지하고 불의의 군사적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데 대한 문제, 북남사이의 다방면적인 제반 교류를 실시할데 대한 문제, 북남적십자회담이 하루빨리 성사되도록 적극 협조할데 대한 문제, 평양과 서울사이에 상설직통전화를 놓으며 북남조절위원회를 구성운영할데 대한 문제 등의 조항들이 국내외의 열렬한 환영을 받고있었고 쌍방이 이 모든 합의사항을 성실히 리행할것을 온 민족앞에 엄숙히 약속한다는것을 선포한다는 구절을 보며 조국통일이 당장 이루어질것만 같아 흥분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던 때였다.

그때 내가 살고있던 곳에는 사람들의 대인기를 끌던 한 동포대학생청년도 있었는데 그 리유는 오직 하나, 그가 가장 최근의 조국소식을 가져왔다는 그것이였다.

7. 4북남공동성명을 접한 조국분위기와 인민들의 심정, 당시 정세의 분석과 통일전망 등 그에게 들이대는 질문은 그때 우리 동포들의 최대의 관심사로 되는것들이였다.

좀 아련하다는 인상이 짙은 그 청년이였지만 담담하면서도 론리적인 그의 대답은 사람들의 입을 딱 벌리게 하였다.

내가 그를 찾아갔던 그날도 그 청년은 많은 사람들의 질문소나기를 받고 곰곰히 생각을 더듬다가 이런 한가지 일화를 이야기하였다.

1972년 10월 제3차 북남적십자회담차로 평양으로 간 서울측 대표단이 조선혁명박물관을 참관하였을 때였다.

한 성원은 박물관전경을 배경으로 높이 모셔져있는 김일성주석님의 동상앞에서 목에 빨간 넥타이를 두른 공화국의 15살가량 나보이는 소녀에게 물었다.

《학생, 저 동상의 받침돌의 무게가 얼마나 되죠?》

어려운 질문이였다.

소녀는 갑작스러운 물음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 사람이 자기는 적십자회담차로 남쪽에서 온 사람이라고 하자 평양소녀는 새별같은 눈망울을 반짝이며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아버지 김일성원수님의 동상받침돌의 무게는 북남 5천만 민족의 심장을 합친 무게와 같습니다.》

《5천만 민족의 심장을 합친 무게?!》

《예…》

소녀의 대답은 길지 않았어도 여운은 길었다. 평양소녀의 거침없는 대답에 서올손님은 자못 놀라서 다른 말을 잇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 아직은 민족이 무엇이고 조국이 무엇인지 다 알지도 못할 소녀의 정신력에 경탄을 금할수 없었던것이다.

그날 나는 그의 이야기를 거듭거듭 되새겨보며 생각하였다.

이 일화는 감상적으로 넘겨버릴, 한갖 추억으로만 스쳐보낼 이야기가 아니다.

왜 남조선사람이 그 소녀에게 그런 질문을 하였는지는 알수 없으나 평양소녀의 말대로 동상을 받드는 대돌의 무게가 북남 5천만 민족의 심장을 합친 무게라면 김일성주석님께서 온 민족의 심장속에 함께 계시며 온 겨레의 마음에 받들려 높이 서계신다는 뜻일것이다.

10대소녀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는 유명한 평양일화가 되여 남조선의 언론매체들에 보도되고 국민들속에서 전설처럼 펴졌다고 하니 얼마나 금언같은 대답인가.

평양소녀의 말에는 공화국이 비껴있었다. 조국인민들의 정신상태가 그려져있고 이 사회의 참모습이 담겨져있으며 공화국체제의 막강한 힘이 함축되여있었다.

무릇 조국은 어린이의 마음속에 있다고들 한다.

꾸밈을 모르는 어린이의 샘물같은 마음에 조국의 모든것이 맑게 어려있기때문이다.

평양소년과 소녀의 대화와 이야기를 통하여 볼수 있는것처럼 조국인민들의 자기 수령에 대한 숭배심은 절대적인것이였다.

그들은 절해고도에서도 자기 수령, 자기 당, 자기 민족과 인민을 위해 불사신처럼 싸울것이다.

자기 령도자와 혼연일체를 이룬 이런 인민을 그 누가 당할수 있겠는가.

콤퓨터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미국의 전쟁상인들은 군사분야에 콤퓨터를 대대적으로 도입하는 한편 그것을 리용하여 전쟁을 앞두고 쌍방간의 무력과 잠재력을 기억시키고 비교하여 승부를 판단하는 모의전쟁을 빈번히 벌리고있다.

미국의 호전세력들은 이라크전쟁을 앞두고도 이런 모의전쟁을 벌려놓고 저들이 《승리》라는 답이 나오자 쾌재를 올리며 진짜 전쟁을 감행하였다고 한다.

미국의 호전세력들은 공화국과의 모의전쟁도 자주 벌렸다.

1950년대의 조선전쟁시기 다 이긴 전쟁이라고 호언장담하며 전쟁개시의 《단추》를 눌렀다가 력사상 처음으로 패전이라는 쓰디쓴 맛을 보고 세계의 면전에서 수치만을 당한 미국이였다.

그러한 미국이 모의전쟁을 통하여 다시 조선전쟁을 일으키는 경우 《승리》라는 답이 나오기를 기다렸지만 결과는 매번 어떠하였는가.

전쟁열에 들뜬 미군부의 《두뇌진》들보다 더 정확한 콤류터에서는 매번 저들이 《패배》라는 답만이 현시되였다.

하여 그들은 커다란 불안에 사로잡혀 전전긍긍하고있다고 한다.

세계의 《유일초대국》이라고 떠벌이는 미국을 불안에 몰아넣고 세계를 놀래우는 내 조국의 위력한 힘의 원천은 과연 어디에 있는것인가.

수령과 인민의 혼연일체, 최고사령관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결사옹위정신으로 일관된 조선인민군의 백절불굴의 투지, 이것이야말로 그 어떤 핵무기나 미싸일보다 더 위력한 조선의 특허무기가 아니겠는가.》

이것은 인디아신문이 전한 기사의 한토막이다.

전쟁승리의 요인에서 제일 처음 무엇을 꼽을것인가.

세상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력한 무기라고 하면 원자탄을 념두에 두었다.

20세기 40년대에 개발되여 여러차례의 시험과 실지 적용에서 거대한 폭발력과 파괴력을 과시한 원자탄은 그 어느 무기와도 대비할수 없는 《최우수급무기》로 공인되여왔던것이다.

그러나 세상사람들은 이 세계에 원자탄의 물리적힘을 훨씬 릉가하는 그보다 더 위력한 무기를 알게 되였다.

세계가 한결같이 인정하고있는바와 같이 우리 조국은 지나온 력사에 그 어느 나라나 민족도 이룩하지 못한 수령, 당, 군대, 인민의 일심단결을 이룩한 전설적인 나라이다.

전체 인민이 령도자를 중심으로 사상의지적으로, 도덕의리적으로 굳게 뭉친 조국의 일심단결은 원자탄보다 더 위력한 《특허무기》이다.

원자탄의 위력에는 한계가 있지만 일심단결의 위력에는 한계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일심단결은 인민대중의 자주적운명개척에서 그 무엇에도 비할수 없는 최상, 최대의 무기이며 《특허무기》라고 당당히 말할수 있는것이다.

우리 민족이 대국상을 당한 이후 김정일장군님께 한 시인부부가 올렸다는 편지의 한 대목을 보자.

《믿어주십시오.장군님!

저희들은 굶어죽으면 죽었지 장군님을 간직한 이 심장은 절대로 팔지 않을것이며 얼어죽으면 죽었지 장군님품을 떠나 남의 집 지붕밑으로는 한발자국도 들어서지 않을것이며 단두대우에서 매맞아 죽으면 죽었지 장군님노래를 순간도 멈추지 않을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그들만이 아닌 조국인민들모두가 간직하고있는 절대불변의 신념이고 의지라고 생각된다.

령도자는 인민을 굳게 믿고 끝없이 사랑하며 인민은 령도자를 절대적으로 따르는 이 일심단결이 있음으로 하여 조국인민들은 미국을 비롯한 침략세력들의 집요한 반사회주의고립압살책동속에서도 사회주의를 수호하고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지켜낼수 있었으며 자주적인민으로서의 존엄과 영예를 떨칠수 있었고 용기백배, 신심드높이 강성국가건설을 다그쳐나가고있는것이다.

세상에는 나라와 민족도 많지만 우리 조선에서처럼 온 나라, 모든 가정이 자기 수령, 자기 령도자를 아버지라고, 어머니라고 부르며 눈물겹게 따르는 나라가 동서고금 그 어디에 있었는가.

령도자의 마음속엔 언제나 인민이 있고 인민의 심장속엔 늘 령도자가 있는 이런 진정한 그리움의 대하야말로 이 땅우에 강성국가를 일떠세우는 조선의 최상최대의 국력인것이다.

령도자와 인민이 얼마나 혈연의 정으로 이어져있는가를 보여주는 평양에서 겪은 한가지 이야기만을 더 하려고 한다.

2001년 8월초의 어느날이였다.

이날 나는 화려한 생화다발을 들고 기쁜 마음으로 차에 올랐다.

면담과정에 낯을 익히고 거래과정에 친숙해진 평양의 동업자친구로부터 자기 집에서 있게 될 결혼식에 초청받은 나였다.

늘 만날 때면 딸자랑을 빼놓지 않아 과연 어느 정도이기에 하는 은근한 호기심을 품고있던 나에게 그가 결혼식초청장을 내놓았을 때 기쁜 마음으로 꼭 가겠노라고 약속했었다. 그리고 조국에서는 결혼식을 어떻게 할가 하는 흥미도 없지 않았다.

하여 평양에서의 일정은 긴장하였지만 만사를 제쳐놓고 결혼식장부터 가보기로 하였다.

우아한 조선옷을 입고 다소곳이 머리숙이고있을 신부의 고운 얼굴이며 의젓한 신랑의 모습을 며칠전부터 그려보던 나였다.

인생에서 결혼식날이란 참으로 의의깊은 날이다.

사람들의 축복속에 새 가정이 태여나고 미구하여 새 생명이 고고성을 터치게 될것이기때문이다.

결혼식장에 간다고 생각하니 퍼그나 세월이 흘러간 내 결혼식때의 일도 그리고 친구들의 결혼식때의 즐거웠던 일도 삼삼히 떠올랐다.

나의 입가에서는 그때 울리고 또 울리던 노래 《축배의 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나의 마음은 20년전 결혼식을 하던 시기를 날고있었다.

나는 맏딸로서 술을 마시지 않고 부모들을 잘 모실수 있는 사람을 배우자로 정하였다.

당시 나는 많은 대상자소개를 받았지만 내 마음에 들고 요구조건에 맞는 청년은 오직 한명뿐이였다. (그가 바로 나의 남편 고수산인데 그는 군사복무를 마친 후 철도부문에서 기사로 사업하고있었다.)

약혼식때 우리 집의 유리창은 깨져나가고 집앞에는 술바다가 되여버렸다. (그것은 내가 살던 마을청년들의 익살이였다.) 결혼식때(조선치마저고리를 입고 조선식으로 단장을 하였었다.)에는 또 결혼꽃차가 가야 할 길에 많은 총각들이 누워 버티기를 하였다.

물론 이것도 좋은 처녀를 보낸다는 마음이 어린 롱이였지만 그중에는 진심으로 서운해한 축들도 있었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였다.)

흘러간 지난날을 되새겨보며 흥겨운 기분으로 대동강기슭에 자리잡고있는 결혼식식당에 도착하니 결혼식이 막 시작되려는 참이였다.

고운 생화다발을 신랑신부에게 안겨주며 행복을 축복해주었더니 신부의 어머니(동업자친구)는 해외동포에게서 축하를 받게 될줄은 몰랐다고 하며 몹시 고마워하였다.

참가자들은 신랑신부의 결혼을 축하하며 저저마다 그들의 행복한 앞날을 축복해주었다.

조국인민들의 결혼식에 처음 참가한 나는 매우 놀라웠다.

40명정도 사람들의 참가밑에 진행되는 소박하다할 정도의 결혼식이였기때문이였다.

두 가문의 재력과 배경을 과시하는 결혼식장, 요란하게 차려놓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붐비던 결혼식장만을 보아온 나였다.

나를 더욱 놀라게 한 결혼식장의 분위기였다.

결혼식장은 자주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그리움과 감사의 정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군 하였다.

축사도 그렇고 노래들도 그러했으며 오가는 말도 같았다.

당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로씨야련방을 방문하고계셨다.

인민의 행복을 위해 그처럼 무더운 삼복철에 머나먼 로씨야련방 방문길에 오르신 그이를 절절히 그리며, 부디 건강한 모습으로 조국에 돌아오시기를 바라며 부르는 사람들의 노래소리는 뜨거움에 축축히 젖어있었다.

과연 이 세상 그 어디에 자기 나라 수반의 외국방문길을 걸음걸음 따라서며 안녕을 간절히 바라는 인민들이 있는가. 위대한 장군님을 언제나 가슴속에 모시고 그이와 뜻도 마음도 숨결도 같이하는 조국인민들의 모습을 충분히 느낄수 있었다.

조국의 체육인들의 정신상태를 두고서도 이에 대하여 얼마든지 말할수 있다.

그들은 승리라는 커다란 《열매》를 자기 령도자께 드리는것을 가장 신성한 의무, 최고의 행복, 무상의 영예로 여긴다.

쎄빌랴대회에 취재갔던 서울일간지의 체육부 기자는 어떻게 보도하였던가.

민족의 장한 딸 정성옥선수는 우승으로 받게 될 상금을 어디에 쓰겠는가고 묻는 그 기자의 질문에 그에 대해선 생각해본적이 없다고, 어떻게 마라손녀왕이 될수 있었는가의 물음에는 《나는 위대한 장군님을 그리며 달렸다.》고 주저없이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언제인가 국제경기에서 입선한 남조선의 한 마라손선수도 정성옥선수와 꼭같은 질문을 받은바 있다.

그때 그는 자가용차나 녀자를 사겠다고 말해 사람들을 아연케 했었다. 그의 정신상태를 여지없이 드러내보인 사례였다.

흔히 체육선수들은 국제경기에 출전하는 기본목적을 우승으로 받게 될 상금에 둔다. 그래서 그들은 누구나 우승과 더불어 차례질 상금에 그토록 신경을 쓰는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돈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다는 정성옥선수의 정신세계는 얼마나 순결하고 고상한가.

그래서 정성옥선수의 우승은 더욱 돋보인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2012년에 진행된 런던올림픽경기대회때 첫 금메달을 따낸 안금애선수는 시상식이 끝난 뒤 《선수로서 조국의 명예를 걸고 금메달을 따냈다. 우리의 김정은동지께 금메달로 기쁨을 드렸다고 생각하니 더없이 기쁘다.》라고, 엄윤철선수 역시 승리의 비결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내 실력향상의 비결은 김정일동지와 김정은원수님의 사랑이 있었기때문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조국에서 창조되는 세상사람들을 경탄케 하는 모든 기적의 원천을 가슴깊이 새겨안게 하는 평양방문의 나날이였다.

나에게 지칠줄 모르는 힘과 용기를 안겨주는 《만충전》시간이였다.

나의 사무실에는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의 초상화가 모셔져있다. 조국인민들처럼 숨쉬며 생활하려는 나의 열망에 의하여.

나는 오늘도 그 초상화를 자주 우러르군 한다.

기쁠 때는 기뻐서 우러르고 괴로울 때는 괴로와서 우러르며 가슴속사연을 모두 아뢰이군 한다. 그러면서 반드시 민족의 딸이 되려는 결심을 굳히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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