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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 조국 삼천리

 

 

낯설은 대지

 

 

낯익은 대지와 낯설은 대지는 많은 차이를 가지고있다.

그에 대하여 구태여 말하고싶지 않다.

그러나 내가 낯설은 대지에서 받은 느낌에 대하여서만은 말하려고 한다.

이미 언급하였지만 나의 어머니의 고향은 대구이다.

1940년대초에 고향을 떠난 어머니는 60년가까이 고향에 가보지 못하였다.

대구에는 어머니의 형제와 친척들(이모와 이모부 3명과 그 후손들)이 있었다.

얼마나 그들이 보고싶었겠는가.

내가 여기저기 줄을 놓아 힘들게 알아낸 대구소식을 알려주었을 때 어머니는 몹시 흥분하여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집을 뜰수 없었고 결국 형제들과 친척들에 대한 그리움을 전화로밖에 달랠수 없었다.

그런데 남조선에 살고있는 그들은 왜서인지 어머니를 찾아오기는커녕 언제 한번 저들이 전화를 걸어온적도 없었다.

어머니는 그들과 전화를 하고나면 아무 말이 없었다.

원래 입이 무거운 어머니였지만 형제, 친척들과 전화하고서도 그렇게 말이 없는것을 보면서 나는 이상야릇한 생각을 금할수 없었다.

고향의 향수는 영원히 지울수 없다고 한다.

어느날 어머니는 내가 남조선에 기업업무차로 간다는것을 알고는 대구에 들려볼 시간이 없는가고 힘들게 묻는것이였다.

시간이야 내기탓인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닥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것은 남조선사람들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았기때문이였다.

나는 기업활동을 진행하면서 여러차례 남조선에 가보았었다.

언제인가 서울에 갔을 때였다.

그때는 리명박《정권》 이전시기여서 우리 회사가 남조선의 여러 회사들과 직접 교류를 진행하던 시기였다. 우리 회사에서 양식한 해산물들에 대한 인기가 상승하여 저저마다 사겠다고 하던 시기였다.

어느날 어떻게 알았는지 많은 사람들이 내가 숙소로 정한 호텔로 련속 찾아왔다.

공화국에서 내가 제일 큰 밥조개양식을 하고있었으며 또 크게 성공하고있었기때문에 당시 동해안에서는 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어지간히 소문이 나있었다. 그리고 밥조개를 남조선에 제일 처음으로 다량으로 출하한 사람도 나였기때문이였다.

그들은 누구나 다 나를 잘 알고있는 사이라고 하였다.

자기는 이미 그를 훈춘에서 알고 거래를 가지고있는 사람이다, 자기와는 이미 벌써 계약이 맺어진 상태이다, 밥조개거래는 자기와만 하기로 하였다 등의 소문을 저마다 내돌리면서.

내가 실지로 만나본 사람은 두사람정도나 되겠는지.

하지만 그들은 나와 같은 동포이고 또 돈을 벌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그들을 친절히 대해주고 될수록이면 내가 리윤을 적게 보면서라도 그들에게 유익하게 해주었다.

그날엔 우리 회사의 배로 실어갔던 밥조개가 400t도 넘게 팔렸다.

나는 밥조개의 저가격판매로 리윤을 퍼그나 적게 보았지만 동포들을 도와주었다는 단 한가지 리유로 섭섭하지 않았다.

그리고 별로 후회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것이 나의 천진한 생각이였음을 깨닫게 되였을 때는 그로부터 시일이 얼마간 지나서였다.

어느날 남조선의 한 기업가와 밥조개판매계약을 체결할 때였다.

그는 자기네는 다른 회사들보다 값을 조금 더 비싸게 밥조개를 사겠다고 하였다.

국제시장가격을 너무도 잘 알고있는 나여서 역시 피줄이 피줄이로구나 하고 고맙게만 생각하였다.

선의에는 선의로 대답해야 하는것이다.

나 역시 그의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되겠기에 그를 위해 어느 정도 가격을 낮추겠다고 하였으며 결국은 내 요구대로 락착되였다.

물론 후불조건으로 말이다.

그러자 그는 매우 감지덕지해하였다.

여러차례의 거래과정에 나에게는 그에 대한 《믿음》과 《신용》이 생겨났다. 얼마후에는 점차 거래규모도 커졌다.

바로 이러한 때 그는 거래자금을 하나도 청산하지 않고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전화번호나 전자우편주소도 모두 차단되였다.

분하고 괘씸하였다. 그래도 같은 동포라는 생각 하나로 그를 푹 믿어온 자신이 허무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그것은 행차뒤 나발격이였다.

결국 나는 그를 더는 볼수 없게 되였다.

그는 내가 자주 남조선에 오지 못하고 그러니 자기들을 찾지 못할것이라고 타산하고 이렇게 한것이였다.

속이 검은 사람이 한둘이겠지 하고 생각하였지만 이런 경우가 련이어 반복되자 나는 격분하였다.

물론 그 피해액수도 적은 량이 아니였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 신의가 있어야 하는 법인데 그들은 그런것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돈만 손에 넣으면 그만이였다.

참으로 비렬하고 너절한 인간들이로구나 하는 쓰디쓴 환멸이 가슴속에 깊이 새겨졌다.

다른 나라의 회사들과 거래를 하면서도 이런 경우를 종종 당하였다.

그러나 남조선의 기업가들이라고 하는 그들은 한동포가 아니였는가. 리윤을 적게 보면서까지 저들을 도와준 나에게 하는 대답이 어쩌면 이렇게 가혹하고 철면피할수 있단 말인가.

한번은 나에게서 많은 물자를 가져가고 종적없이 사라져버렸던 한사람이 다시 나타났다.

그는 그때는 정말 안되였다고, 어쩔수 없어 그렇게 된것이라고 장광설을 늘어놓으며 백번 사죄하니 다시 거래를 하자고 하였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검찰에 기소하고싶었으나 혹 그에게 정말 피치못할 사정이 생겨서가 아니였을가 하는 생각과 함께 불쌍하게 된 그의 처지를 동정하지 않을수 없어 너그러운 마음을 애써 가지였으나 결과는 역시 뻔하였다.

짐승도 한번 빠진 함정에는 다시 빠지지 않는다는데 나는 이런 함정에 연거퍼 빠졌으니 그때 내 심정이 어느 정도였겠는가에 대하여서는 독자들도 충분히 짐작하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나는 남조선대방들과의 사업을 보다 각성있게 대하게 되였으며 돈밖에 모르는 그런 사람들에게 언제 또 속히울지 모를 불안한 마음을 가셔버릴수 없었다.

정말 정이 가지 않는 인간들, 진속을 가늠할수 없는 사람들이였다.

그리하여 남조선에 자주 드나들었지만 친척들을 찾을 생각도 크게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머니가 형제, 친척들을 만나보라는 의향을 비치는것이 아닌가.

순간적으로 불쾌하였던 생각이 삽시에 몰려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하지만 늙으신 어머니의 마지막으로도 될지 모를 절절한 소망을 들어주지 않을수도 없어 나는 내키지 않았지만 어느해인가는 시간을 내여 대구로 찾아갔다.

대구에서 한동안 차를 달려서야 외삼촌네 집이 있다는 곳에 이를수 있었다. (그 외삼촌은 이미 돌아가셨다.)

집을 보니 생활은 그렇게 풍족해보이지는 않았다.

마중나오는 외삼촌의 아들을 보는 순간 마음이 쩌릿하게 젖어들었다. 이래서 혈육의 정은 뜨겁다고 하는것인가.

그는 어머니의 모색을 너무도 많이 가지고있었다. 멀리에서 보아도 대뜸 알아볼수 있을것 같았다.

그는 내가 누구라고 소개하자 반가워하며 나를 집안으로 이끌었다.

비록 초면이였지만 우리의 만남은 반갑게 이루어졌다. 나는 뒤따라 나온 그의 안해에게도 인사를 하였다.

그런데 그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면서 내가 누구인가고 다시 따져묻는것이였다.

나의 소개를 듣고난 그는 대뜸 저들에게는 그런 친척이 없다고 말하는것이였다.

그러자 바빠맞은것은 외사촌오빠였다. 훈춘에 넷째고모가 있지 않은가고 말하며 몹시 멋적어하였다.

어성버성한 순간이 흘러갔다.

그 녀인은 아마 내가 생활이 어려워 도움을 받자고 찾아오지 않았는가고 생각하였는지 몹시 시끄러워하는 표정을 로골적으로 드러냈다.

바쁜 시간을 내여 불원천리 찾아온것이 얼마나 후회되는지 몰랐다.

그러나 내색은 않고 어떻게나 그들의 마음이 단란한 가정 분위기로 돌아서기만을 바랬다.

나는 외사촌오빠와 얼마간의 말을 주고받고는 더이상 말하고싶지 않아 피곤을 핑게로 홀로 방에 있었다.

어머니만 아니였다면 나는 당장 그 집에서 나와버렸을것이다.

하지만 이제나저제나 나의 소식을 기다리고있을 어머니의 주름깊은 얼굴때문에 그렇게 행동할수 없었다.

저녁식사라고 차려놓은 식탁도 성의라고는 조금도 엿볼수 없었다.

나는 그 집에서 진수성찬을 바라지 않았다. 그런것을 바랐다면 내가 부디 그런 시골에 찾아갔겠는가. 호화식당에 자리를 잡고 시간가는줄 모르고 즐길수도 있는 나였다.

내가 바란것은 오직 하나 혈육의 정이 흐르는 말뿐이였다.

나는 자존심이 여간 세지 않았다. 내 인격을 건드리는 사람이 있다면 참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참아야만 하였다.

어머니때문이였다. 그리고 어쨌든 오빠네 집이 아닌가.

모든것이 서먹서먹하고 마치 남의 집 웃방에 와있는 기분이였다.

나는 너무 기분이 언짢아 그날 깊은 밤에 끝내 그 집을 떠났다.

외사촌오빠는 밤중에 어디로 가려는가고 말렸지만 나는 말없이 집을 나섰다. 식사값으로 그때의 남조선돈 10만원을 내놓고.

그길로 눈물을 참으며 대구의 작은 외삼촌네 집을 찾아갔다.

그곳에서도 찾아온 나를 대하는 감정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 외삼촌댁의 말씨와 눈빛에서는 매우 마깝지 않아하는것이 헨둥하게 알렸다. 그도 역시 동냥하러 온것인가 하여.

나는 어머니가 너무도 고향과 형제들을 그리워하였기때문에 그 자리에서 내가 지금 형제들의 집에 있다고 국제전화로 알려주고싶었지만 그렇게 할수 없었다. 외삼촌댁은 전화가 고장이여서 할수 없다고 하였지만 사실은 국제전화료금이 아까와서였다.

나의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돈만 아는 세상에서 사는 너희들에게는 정말 인간미가 없구나 하고 말이다.

그날 밤을 대충 마련한 잠자리에서 뜬눈으로 새운 나는 다음날 아침에 공중전화로 어머니에게 형제들을 만나보았다고 하였다.

어머니는 몹시 반가워하며 그들의 목소리라도 들어보자고 하였다.

그런데 그들이 옆에 없으니 어떻게 련결한단 말인가.

나는 어머니에게 지금 외부에 나와 전화를 하니 저녁에 집에 가서 외삼촌과 련결시켜주겠다고 약속하였다.

백화점에 들려 물건을 많이 사가지고 외삼촌집으로 갔다.

그리고 외삼촌댁에게는 남조선돈으로 100만원을 내놓았다.

그러자 대번에 인상이 달라지고 말씨도 다정해지는것이였다.

그날 저녁에야 나는 어머니에게 외삼촌과의 대화를 이어줄수 있었다.

다음날 어머니의 착 아래동생인 셋째이모가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우리는 어느 한 고급식당에 가서 값비싼 음식들을 청하여놓고 회포를 나누며 식사를 하였다. 이모와 외사촌형제들까지 모이니 모두 열명도 더 되였다. 이모의 큰아들은 든든한 직업을 가지고있어 잘사는것 같았다. 이마가 번지르르하였고 옷도 비싼것이 대번에 알렸다.

그런데 식사가 끝나고 돈청산을 하려고 하니 식탁에는 늙은이들과 아이들만 남아있었다.

그제야 나는 돈개나 있는 사람들은 어물거리다가 하나둘 빠져나갔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아, 이런 정도인가. 과연 이것이 형제이고 친척들이란 말인가.

값을 청산하고 집으로 돌아간 나는 바닥을 치며 대성통곡을 하였다. 쌓였던 감정이 폭발한것이였다.

내가 왜 여기에 찾아왔는가, 내가 당신들과 무슨 정이라는것이 있는가, 어머니가 너무 형제를 그리워하여 어머니를 대신하여 왔다, 그런데 당신들은 홀로 있는 우리 어머니에게 언제 전화 한번 한적이 있고 만나볼 생각을 하였는가, 무슨 사람들이 이 모양인가, 그래 형제, 친척의 정이 돈때문에 말라버렸는가고 말이다.

그러자 한 사촌오빠가 멋적은지 자기가 어머니를 초청하겠다고 하는것이였다. 그러면서도 돈문제에 대해서만은 얼버무리는것이였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알고 또 말하고싶지도 않았지만 어머니를 생각하여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를 초청만 해주면 왕복비행기표는 물론 초청비용과 여기에 와서 생활할 일체 비용을 다 부담할것이다, 그러니 돈걱정은 말고 어머니가 더 늙기 전에 초청만 해달라, 나이많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형제들의 얼굴이라도 한번 볼수 있게.

나는 일체 비용은 내가 부담하니 절대로 돈걱정은 하지 말라고 단단히 오금을 박았다.

그래서 막내동생 필선이가 어머니를 모시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번 고향에 다녀왔다.

한달정도의 기간이였다. 물론 그 려비와 체류비 등 모든 비용은 내가 다 부담하였다.

돈이 없으면 인간대접을 못 받는 사회에서 혈육의 정을 바란것자체가 어리석은것이였다.

이런 일을 겪으니 내가 만났던 남조선기업가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너절한 모습도 떠올라 생각이 많아졌다.

사람이라면 인간미가 있어야 한다.

그 인간미에 정이 끌려 서로 돕고 이끄는 세계가 바로 진정한 인간세상인것이다.

그런데 자기 혈육간에조차도 그렇게 랭랭하고 남남같으니 이런것을 두고 어떻게 인간들의 세상이라고 할수 있겠는가. 형제, 친척들사이에도 저들의 리속과 리해관계만을 따지는 그런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이런 사회의 전도는 앞으로 어떻게 될가. …

나의 생각은 깊어만 갔다.

사람보다 그의 경제적바탕과 리해관계를 먼저 보고 대하는 사회를 무슨 사회라고 말해야 할가.

정치라는것을 잘 모르는 내 소견에도 그런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결코 단합될수 없고 화목할수도 없는것이다.

무슨 일이나 단합이 되여야 잘되는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리치이다.

잘 엮어진 바줄의 세기가 비할바없이 강한것처럼.

그런데 자기 형제나 혈육하고도 이런 정도인데 남들하고는 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그럴수록 공화국에서의 생활이 부상되면서 하나의 대가정을 이룬 화목한 세계가 못견디게 그리웠다.

대구를 다녀온 나는 어머니에게 고향에서 내가 겪은 일들에 대하여 그대로 이야기해주었다.

어머니는 이때에도 역시 말이 없었다. 멀리 남쪽하늘가를 더듬고있는 어머니의 눈에는 이슬이 맺혀있었다.

쓰린 아픔과 괴로운 마음이 비껴있어 내 마음도 몹시 아팠다.

홍란파선생의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하는 고향에 대한 노래를 조용히 부르며 끝없는 향수와 절절한 그리움을 달래던 어머니였고 그럴 때면 애틋한 마음으로 젖어들던 어머니의 눈빛이였다.

허나 그 순간에는 공허와 허무, 비관과 슬픔이 력력히 어려있었다.

아름다운 추억이 있고 정다운 모습들이 있는 곳이 고향이겠건만 어머니의 고향에는 그 모든것이 없었다. 대구는 어머니의 고향 아닌 고향이였다.

그러니 어머니의 마음인들 왜 괴롭지 않겠는가. 그것을 보는 나의 마음 역시 몹시 아팠다.

나에게는 불현듯 이런 물음이 생겨났다.

그렇다면 그런 사회가 내 조국인가. 나의 조국은 과연 어디인가.

그때까지 조국에 대하여 너무 쉽게 말하던 나여서 대답이 서슴어졌다.

조국이라는 말의 의미가 의미심장하게 안겨왔다.

조국이란 무엇인가.

자기가 나서자란 고향산천과 조상대대로 살아온 령토가 조국이겠는가.

언제인가 책에서 보았던 한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프랑스의 나뽈레옹이 1812년에 로씨야를 점령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쳐들어갈 때 프랑스병사들은 수많이 죽거나 포로가 되였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나뽈레옹이 패망하고 프랑스에 부르봉왕조가 들어앉게 되자 로씨야측에서는 프랑스에 나뽈레옹때의 포로된 병사들을 데려가라고 하였다.

그런데 부르봉왕조는 자기들은 그 포로들을 모른다고 하면서 그들의 귀국송환을 거절하였다.

결국 조국으로 가게 되였다고 눈물짓던 프랑스병사들은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그들의 포로생활은 근 30년동안이나 계속되였는데 갖은 고통과 불행으로 하여 련이어 비참한 생을 마치였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한 병사는 부모형제들이 있는 곳이 아니라 타향에서 외롭게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여생을 마쳤다.

내용은 대체로 이러하였다.

그에게도 조국이라고 하는것은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자기가 태여난 나라가 진정한 조국이라고 할수 있을가.

조국이란 글자그대로 자기의 겨레가 조상대대로 살아온 나라인가.

나는 부정하였다.

조국은 단순히 나서자란 나라나 고향, 선친들의 유골이 있는 곳이 아니다.

어머니처럼 정다운 품, 사람들의 진정한 삶이 있고 후손만대의 행복이 담보되는 곳이 바로 진정한 조국이 아니랴.

대답은 명백하였다.

나는 이국땅에서 태여난 몸이지만 나의 조국은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의 존함으로 빛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우리 민족의 진정한 보금자리이고 행복한 삶의 터전이며 미래가 담보되는 공화국이야말로 내 조국이다.

공화국의 운명이자 나의 운명이며 공화국의 부흥속에 조선민족의 무궁번영과 찬란한 미래가 있다.

그래서 나에게는 공화국의 산천도 사람들도 모두 낯익어 보이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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