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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 조국 삼천리

 

 

화창한 봄날에

 

 

꿈속에서도 그려보던 성지 만경대였다.

내가 살던 마을의 한 동포청년이 조국을 방문하였을 때 만경대방문기념으로 가져온 타원형의 수예작품을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우리 집에도 만경대에 가본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가 하는 생각으로 부모들에게 남들처럼 조국에 가서 만경대방문을 하자고 몇번이나 졸랐는지 모른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말없이 담배만 피웠고 어머니는 고개를 떨구기만 하였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라가 도탄에 빠졌을 때 살길을 찾아 조국을 떠나왔다는, 전쟁의 재더미를 파헤치고 락원을 일떠세울 때 그 무엇도 바친것 없다는 죄의식때문이 아니였을가고 생각된다.

허나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하기에 너무도 어린 나이였었다.

그 소원을 나는 조국에 나와 이를수 있게 되였다.

내가 만경대를 찾은것은 화창한 봄날이였다.

그 시기는 내가 정한것이였다. 주석님께서 탄생하신 뜻깊은 4월에 온갖 꽃이 만발하는 만경대의 절경을 보고싶어서였다.

만경대는 평양시의 중심부에서 서남방향으로 약 20리정도 떨어진 대동강기슭에 자리잡고있다.

일만경치를 볼수 있는 고장이라 해서 만경대라 부르는 이 유서깊은 곳으로 가는 나의 마음은 벌써 만경대의 하늘가를 날고있었다.

지금은 이곳에 광복거리라는 뜻깊은 이름의 거리가 형성되여있고 대통로가 뻗어있으며 주석님께서 탄생하신 생가로 가는 길들이 알뜰히 포장되여있지만 한세기전 그이께서 탄생하실 당시에는 온통 소나무로 뒤덮인 높낮은 구릉사이로 올퉁불퉁한 달구지길이 오불꼬불 뻗어있었을뿐이였다고 한다.

해방후 항일혁명투사들이 만경대로 가는 길을 포장하려고 하였지만 주석님께서는 인민들의 생활을 더 걱정하시며 굳이 만류하시였다고 한다.

만경대에 도착한 나는 깜짝 놀랐다.

많은 사람들의 물결이 끝없이 흐르고있었던것이다.

조국인민들은 말할것 없고 나와 같은 해외동포들과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많은 외국인들도 벌써 방문길을 이어가고있었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 누구나 만경대는 만민의 고향이라고 하던 말을 직접 확인하게 되였다.

생을 받은지 47년만에야 이곳을 찾아오는 내 마음은 송구하기 그지없었다.

철없는 아이들도 손에손에 꽃송이를 정히 들고 고향집을 찾아가고있었다.

내 손에도 이슬을 머금은 아름다운 꽃다발이 들려있었다.

그토록 찾고싶었던 만경대고향집에 내 손으로 엮은 꽃다발을 드리고싶었던것이다.

만경대고향집은 지난날 조선의 어느 농촌에서나 찾아볼수 있었던 벼짚이영을 한 수수한 초가집(주석님께서 쓰신 회고록에 의하면 만경대일가분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고 살림을 편것은 1860년대부터였다고 한다.)이였다.

흙으로 바른 담벽, 토방, 헛간 등에서는 여전히 흙냄새가 풍기는듯 했다.

가족사진들과 개별사진들이 정히 모셔져있었다. 만경대가문의 가난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갈대로 엮은 노전과 부엌세간들(물독과 물동이는 여러 군데나 땐것이여서 자기의 원색을 거의나 찾아볼수 없었다.)이 눈을 아프게 찔렀다.

대대로 내려오면서 사용되였을 낡은 농기구들과 망돌도 있었다.

나의 눈을 더욱 아프게 한것은 마당 한켠에 놓여있는 찌그러진 독이였다.

해설원은 주석님의 일가분들의 생활형편이 너무 어려워 제일 값눅은 그런 독을 사다가 리용하시였다고 하였다.

문득 방안에 있던 시계가 떠올라 의아해하니 해설원은 그것은 나라가 해방된 직후 김정숙녀사께서 만경대일가분들이 그처럼 가지고싶어하시던 소망을 헤아리시고 구해오신것이라고 하였다.

바로 이런 추녀낮은 초가집에서 만민이 끝없이 칭송하는 인류의 태양 김일성주석님께서 탄생하시였다.

어린시절부터 가난과 고생을 너무도 많이 체험하신분이시기에 그이께서는 비참한 노예의 운명을 강요당하는 우리 민족에게 꿈에도 소원이던 해방의 날을 안겨주시였고 끝까지 지켜주시였으며 조국땅을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강국으로 전변시켜주신것이 아닌가.

나는 고향집에 깃들어있는 주석님의 어린시절과 애국적이며 혁명적인 만경대일가분들에 대한 해설을 들으면서 사적물들을 하나하나 주의깊게 돌아보았다.

주석님께서는 어린시절부터 남달리 정의감이 강하고 침략자 일제에 대한 적개심이 높았으며 조국과 인민에 대한 사랑이 불같이 뜨거우시였다.

하다면 그런 열정적이고 원칙적이며 열렬한 성격은 어떻게 배양된것인가.

나는 그 근저에는 그이께서 지니신 뛰여난 천품과 함께 만경대일가분들의 노력이 깃들어있다고 단언할수 있다.

김보현할아버님께서는 늘 남자는 나라를 위한 전장에서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김형직아버님께서는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지 못할바에야 살아서 무엇하겠는가, 몸이 찢겨 가루가 되여도 기어이 광복의 날을 불러와야 한다고 하시며 유명한 시 《남산의 푸른 소나무》에 그 뜻을 담으시였다.

강반석어머님께서도 혁명의 길에 나선 사람이 집걱정을 하면 큰일을 하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주석님의 마음속에 혁명의 기둥, 애국의 기둥을 심어주기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치시였다.

만경대일가는 바로 이런분들이며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이런 혁명적이며 애국적인 가정에서 성장하시며 애국의 넋, 혁명의 넋을 키우시였다.

자그마한 사립문도 눈길을 끌었다.

그 사립문을 열고 주석님의 가정모두가 나라찾는 성전에 나서시였으리라.

허나 돌아오신이는 과연 몇분이였는가.

14살의 어리신 나이에 열고 나서시였던 이 사립문으로 20년만에 홀로 들어서시는 주석님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가.

그날 밤깊도록 고향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분들을 생각하시며 잠 못 이루시였을 그이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시였겠는가.

그 사립문으로 세상사람들이 주석님에 대한 끝없는 존경과 흠모의 마음을 안고 물결쳐오는것이다.

만경대고향집앞에 키높은 들메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주석님께서 어린시절 무지개잡이를 하시면서 큰 포부를 키우셨던 나무라고 하였다.

주석님께서는 이 나무우에서 무지개잡이를 하시며 앞으로 독립된 조국땅우에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락원을 일떠세우시려는 큰뜻을 키우시였다고 한다.

해설원에게 그 나무가 몇년이나 자랐는가고 물으니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주석께서 항일대전의 나날에 신출귀몰의 전법으로 련속 불벼락을 내리시자 이에 겁을 먹은 일제놈들은 매일같이 만경대고향집에 달려들어 일가분들을 그 들메나무에 얽매놓고 갖은 행패질을 하였다.

그러자 격분을 참을수 없으셨던 주석님의 큰삼촌이신 김형록선생께서는 어느날 도끼를 들고 나와 그 나무를 단숨에 찍어버리시였다는것이였다.

지금 있는 들메나무는 1960년대에 심은것이라고 하였다.

어느 하나 무심히 볼수 없었다.

만가지 경치를 한눈에 볼수 있는 만경봉에서 감탄을 금치 못해하는 나에게 해설원은 이런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참으로 인상적인 이야기여서 지금도 기억하고있다.

이곳은 절승경개로 소문나 예로부터 고서 《조선지리지》에도 명기되여있는지라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다.

평양의 량반, 지주들은 저마끔 이 고장의 땅을 사서 조상들의 묘를 썼다. 그리고 저들의 묘를 보아주는 사람들이 거처할수 있도록 집을 지어주었는데 그것을 산당집이라고 하였다.

주석님의 고향집도 그런 산당집이였는데 증조할아버님대에 살림이 너무 구차하여 지주집 묘를 보아주기로 하고 평양성안에서 이곳으로 이사오면서 옮겨앉은 집이였다.

사람들의 넋을 황홀하게 만드는 경치가 드물게 좋은 곳인지라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던 이 고장으로 어느날 당대의 이름있는 풍수쟁이가 찾아와 우물가의 녀인들에게 물을 청하였다.

풍수쟁이란 묘자리나 집자리를 보아주는 사람인데 묘자리나 집자리를 잘 잡아야 자손이 번성하고 집안이 편안하며 나라가 흥한다고 하는 풍수설이 공인된 학문으로 되고있던 당시에는 이들이 어디 가나 반겨주는 인기있는 손님이였다.

살구꽃, 진달래꽃이 만발하여 향기가 가득찬 아름다운 산천을 점도록 바라보던 그 풍수쟁이가 후날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한 유명한 예언을 하였다.

그는 동네녀인들이 정히 떠주는 물을 마시고나서 주변의 산천경개를 둘러보다가 이런 범상치 않은 말을 하였다.

《내 풍수를 보아주며 다녀보지 못한 고장이 없는데 이 만경대처럼 물과 바람, 땅생김새와 나무, 풀이 조화되여 그야말로 한눈에 일만경치를 다 볼수 있는 고장은 처음이라오. …만경대는 귀인이 내릴 땅이 분명하오.》

그가 말한 귀인이란 조선민족의 운명을 구원해주고 이끌어갈 위인을 말하는것이였다.

당시는 우리 나라가 포악한 일제의 식민지로 완전히 굴러떨어져 망국노의 설음이 강산에 넘쳐나던 때였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풍수쟁이의 말을 깊이 음미해볼수록 주석님의 위인상이 더욱 가슴에 새겨졌고 만경대의 모든것이 무심히 보이지 않았다.

만경대고향집에서 멀지 않은 만경봉기슭에 자그마한 상점이 있었다.

그곁을 지나면서 얼핏 보니 《만경봉2상점》이였다. 김일성주석님께서 몸소 터전까지 잡아주신 곳이다. 상점의 가장자리에는 주석님께서 친히 현지지도하신 상점이라는 글발도 새겨져있었다.

이곳에는 또 어떤 사연이 깃들어있을가 하고 생각하며 발길을 떼지 못하고있는데 아직 처녀시절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듯싶은 중년의 판매원이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퍽 오래전의 일인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만경대에 오시였다가 우리 상점도 찾아주시였습니다.

그이께서는 매대에 있는 당과류들을 보시며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는가, 좋아하는가 등에 대하여 알아보시고나서 자신께서도 인민들이 좋아하는 당과류를 사려 한다고 하시는것이였습니다.

우리 수령님을 만나뵈온 크나큰 행복속에 잠겨있던 판매원은 당황하였습니다.

너무도 소박한 생활을 하고계신다는것은 알고있었지만 어떻게 그이께 일반당과류를 드리겠는가 하는 생각때문이였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있던 그는 진렬대에 있는 그래도 좀 나은 당과류들을 그이께 올렸습니다.

그러자 우리 수령님께서는 너그럽게 웃으시며 그것을 사양하시고 인민들이 사가는 매대의 당과류를 달라고 하시였습니다.

너무도 속상하였지만 어쩔수 없어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드리자 그이께서는 고맙다고 하시고는 값을 치르려고 하시는것이였습니다.

절대로 그것만은 안된다고 말씀올렸지만 끝내 값을 치르신 그이께서는 오실 때처럼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그곳을 떠나시였습니다.

얼마후 판매원은 자리에 주저앉아 자책의 눈물을 쏟고야말았습니다.

글쎄 우리 수령님께서 멀지 않은 곳에서 살고계시던 삼촌되시는분의 집에 가기 위해 그 당과류를 사시였다는것을 알게 되였던것입니다.

인민들의 행복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업적을 쌓아올리시고 그 나날에 얼마나 많은 로고를 바쳐오신 우리 수령님이십니까.

그이께 이 세상의 제일 좋은것을 드리고싶은것이 인민들의 한결같은 마음이였지만 그날 그 판매원은 너무도 큰 잘못을 저지른 자신을 끝없이 원망하였습니다.

우리 수령님은 바로 이런분이십니다.》(그는 주석님을 부를 때 반드시 《우리》라는 말을 붙이였다. 그만이 아니라 조국인민들은 누구나 그이를 그렇게 불렀다. 그것을 통해서도 주석님께서 얼마나 인민들과 친근하고 가깝게 계시였는가를 알수 있었다.)

조금도 가식이 없는 진정의 토로였다. 너무도 가슴뜨거운 이야기였다.

입술을 깨물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판매원녀성의 눈가에서도 그것을 새겨듣는 나의 눈가에도 뜨거운것이 솟구쳐올랐다.

(주석님께서 지니신 한없이 겸허하고 인민적인 풍모를 담은 이야기들을 모두 적어 차곡차곡 쌓아놓는다면 아마 거대한 《산》을 이루게 될것이다. 그 《산》의 정점에는 어느 이야기를 놓아야 하는가. 하나하나가 모두 그 어느 위인들에게서도 있어보지 못한 일들이 아닌가.)

나는 쓰고 또 써도 다 전하지 못할 그 하많은 이야기를 어쩌면 이 상점이야기 하나만으로도 대신할수 있지 않을가 하고 생각하였다.

글을 쓰는 이 시각 세상에 없는 가슴뜨거운 이야기가 독자들을 통해서도 우리 인민들에게, 녀성들에게, 후대들에게 그리고 세상사람들에게 널리 그리고 길이 전해지리라는것을 바라마지 않는다.

나는 그날 만경대고향집을 배경으로 하여 여러번이나 뜻깊은 기념사진을 찍었다.

화창한 그날의 만경대고향집방문, 이것은 나에게 있어서 단순히 한 대상에 대한 참관이 아니였다. 어느 명승지에 대한 관광은 더욱 아니였다.

나에게 우리 민족이 수천년력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하고 태양으로 높이 모신 김일성주석님의 위인상을 온몸으로 받아안게 하는, 그이에 대한 존경과 흠모의 마음을 깊이깊이 간직하게 해준 한생의 잊을수 없는 순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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