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2. 내 조국 삼천리

 

 

라선땅은 어떤 곳인가(1)

 

 

라선땅은 조국의 맨끝에 위치하고있었다.

나는 기업관련 활동을 벌리는 속에서도 라선땅에 대하여 적지 않은 관심을 돌리였다.

모르는것, 알고싶은것이 너무나 많은 나였다.

그것들을 알려주고 설명해주느라 라선시 해외동포사업처 일군들의 수고가 많았다. 그들은 바쁜 시간을 보내는 속에서도 자주 나를 찾아와 생활을 보살펴주었고 공화국에 대하여 특히 라선땅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 뇌리에 제일 강하게 새겨진것은 이곳 라선땅이 김일성주석님의 거룩한 발자취가 력력히 어려있는 고장이라는것이였다.

일제가 이곳에 기여든것은 조선침략을 위해 일으킨 청일전쟁(1894년-1895년에 일본제국주의자들과 청나라봉건통치배들이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위하여 진행한 침략전쟁)에 이은 로일전쟁(1904년-1905년에 조선과 중국 동북지방을 차지하기 위하여 일본과 짜리로씨야 두 제국주의국가들사이에 진행한 전쟁)때였다.

이때부터 두만강은 근 반세기동안이나 우리 민족의 피눈물을 싣고 몸부림치며 흘렀다.

이 지대는 정든 고향산천을 뒤에 두고 삼삼오오 떼를 지어 북간도와 연해주로 떠나가는 사람들의 설음과 울분의 눈물로 차고넘쳤고 라진항과 웅기(당시)항은 우리 민족의 뼈를 깎고 피를 말리는 일제의 략탈행위의 거점으로 되였으며 산천도 사람도 대륙침략에 미쳐날뛰는 일제침략군의 군화발에 무참히 짓밟혔다.

1905년 11월에 《을사5조약》, 1910년 8월에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한 일제는 전조선을 식민지철쇄로 칭칭 휘감았다.

대륙을 넘겨다볼 때부터 경개가 아름답고 륙지와 바다와 섬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전략상위치도 중요한 라선지대에 눈독을 들인 일제는 당시의 라진부청에만도 경찰서 2개, 파출소 9개, 헌병대와 헌병초소를 내왔으며 방첩단, 자위대와 같은 폭압기구들도 많이 조직하였다.

그리고 이곳으로 철길을 늘이고 라진부두를 건설해놓고는 우리 나라 동해를 일본땅안의 호수로 만든다는 이른바 《일본해의 <호수화>를 실현하는데서 일보전진》이요. 뭐요 하고 떠들었다.

초보적인 인권과 자유의 마지막흔적까지 깡그리 빼앗아내고 죄없는 인민들을 체포, 투옥, 고문, 학살한 일제는 저들의 야만적인 통치에 항거하여 폭발한 1919년의 3. 1인민봉기때만도 무려 10만여명의 무고한 조선사람들을 야수적으로 학살하였다.

국토는 사람들의 피로 물들었다. 거기에 일제의 《토지조사령》과 같은 야만적인 악법시행으로 조상대대로 물려오던 땅마저 빼앗겨 칠성판에 오른 우리 인민들은 정든 고향, 고국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였다.

예로부터 단일민족으로서 하나의 강토에서 대대로 살아온 조선민족은 아무리 어렵고 곤난하여도 자기 고향, 자기 조국을 떠나지 않았으며 죽어서도 제 고향, 자기 조국에 묻히기를 소원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통치와 강제이주책동으로 하여 일제강점기간 해외이민수는 만주 160여만, 일본 210여만, 이전 쏘련 20여만, 중국본토 10여만 기타 지역 3만여명으로서 도합 400여만명에 달하였다.

이것은 당시 전체 조선인구의 6분의 1에 달하는 수자였다.

그들중 만주와 연해주로 떠나간 100여만명의 사람들이 바로 이 지대를 거쳐 두만강을 건너갔던것이다.

당시 신문 《조선일보》(1934년 10월 20일부)는 《이민렬차의 애화》라는 표제를 달고 정든 고향을 떠나가는 사람들로 넘치는 어느 한 역의 가슴아픈 참경과 이민렬차에 탄 사람들의 눈물겨운 이야기들을 실었다. (후날 나는 조국에서 이것을 직접 확인하였다.)

북간도와 연해주로 그리고 다시 중앙아시아의 곳곳에 강제이주되여 황토먼지 날리는 불모지와 메마른 사막에 모래알처럼 뿌려진 그들이 조국땅에서 마지막고별의 술잔을 들며 눈물을 뿌린 곳이 바로 이곳이였다.

뒤엎어진 새둥지에 성한 알이 어이 있으랴.

나의 부모들도 남부녀대의 행렬속에 있었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고 그들의 눈물겨운 모습을 보는것만 같았다.

조국인민들의 가슴속에는 계몽기가요 《눈물젖은 두만강》이라는 노래가 깊이 새겨져있다는것을 나는 이미 알고있었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배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떠나던 그 배는 어데로 갔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

조국을 떠나 살던 부모님들과 고향사람들로부터 너무도 자주 들어온 노래였다.

어느날 저녁식사때였다.

그날도 역시 좋아하던 술을 든 아버지는 뜻밖에도 좀처럼 부르지 않던 노래를 크게 부르기 시작하였다.

《눈물젖은 두만강》이였다.

한생을 말없이 수걱수걱 일만 해온 아버지였다. 우리 자식들을 언제 한번 살뜰하게 안아주고 재미나는 이야기도 해준적이 없는 무뚝뚝한 아버지였다.

그때 나는 매우 드물게 보는 일이여서 어머니옆에 앉아 조용히 듣기만 하였는데 아버지는 얼굴에 웃음을 짓고있었지만 두눈에서는 이슬이 반짝이고있었다.

언제 한번 아버지의 눈물을 보지 못한 나였다.

내가 어쩌다 울 때면 아버지는 무섭게 욕하군 하였다.

눈물로는 그 무엇도 해결할수 없는것이여서 차라리 눈물을 잊고 살아야 한다는것이 아버지의 소박한 인생철학이였다.

그런 아버지가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떨구고있는것이였다.

그 모습을 보는 나의 눈에서도 저도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머니도 눈가에 손을 조용히 가져갔다.

어머니에게 가만히 물어보니 고향이 그리워서라고 하였다.

얼마후 아버지는 자리에 누웠는데 그 모습은 나에게 몹시 지치고 초라하게 보여 마음이 아팠다.

그밤도 두고 온 고향을 그리다가 잠에 들었을, 꿈에서나마 고향산천을 밟고있을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조국에 나와 이 노래의 창작경위에 대해 자세히 알고보니 부모들이 왜 눈물을 지으며 이 노래를 불렀는지 더 잘 알수 있었다.

나는 처음에 이 노래를 련정가요로 범상하게 생각하였었다.

그러나 조국체류의 나날에 일제의 만행에 대하여 더 잘 알게 되면서 가사의 의미를 다시금 깊이 새겨보게 되였다.

확실히 새로운 느낌이 있었다. 한 녀인의 애달픈 하소연을 통하여 많은것을 이야기해주고있었다.

단순히 남녀간의 사랑이나 그리움을 담은 련정가요가 아니였다.

노래에는 《님》에 대한 그리움을 통하여 당대 인민들의 마음속에 깊이 간직된 해방의 념원이 간절하게 반영되여있었다. 가사에서 나오는 《그 옛날에 내 님》은 빼앗긴 조국을 의미하는것이라고 생각되였다. 그리고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라는 애타는 절규는 단순히 남편을 잃은 녀인의 애통한 심정만이 아니였다. 그것은 그대로 빼앗긴 조국에 대한 피맺힌 원한의 피타는 절규였고 조국을 찾아줄 위인을 목마르게 기다리며 어서빨리 해방의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당대 조선인민들의 절절한 념원의 목소리가 아니였겠는가.

대지엔 꽃들이 피고 새들이 날아옜건만 일제의 무지한 군화발에 짓밟혀 숨쉬기조차 힘들었던 우리 인민들의 눈에는 그것이 가슴아프게만 안겨왔다.

나라잃은 원한이 구천에 사무쳤어도 재생과 구원의 길을 찾지 못하고 망국노로 지지리 짓밟히며 천대받던 우리 인민이였다.

돛과 키, 노도 없는 난파선마냥 바람이 부는대로, 파도가 떠미는대로 좌왕우왕하던것이 조선이였고 수난과 곡절을 묵묵히 감수하기만 하였던 우리 민족이였다.

《세계를 지배하려면 아시아를 정복하여야 하며 아시아를 정복하려면 중국을 점령하여야 하며 중국을 점령하려면 조선을 예속시켜야 한다.》고 떠벌이면서 전대미문의 야수적인 방법으로 조선인민을 식민지노예로 만들려고 한 일제였다.

백주에 주권국가의 황궁에 뛰여들어 천인공노할 만행(《을미사변》 1895년)을 저지르고 국권을 강도적으로 빼앗아냈으며 친일주구들을 매수하여 황제였던 고종까지 독살한 일제였다.

일제는 지어 조선의 정기를 없앤다고 하면서 나라의 방방곡곡 명산들의 정점마다에 《대정》을 박아놓았고 허리를 끊어놓았으며 범이나 무궁화로 형상되였던 조선지도를 일소하고 토끼모양이라고 날조해놓았다.

조선은 약소국가, 바로 연약한 토끼와도 같은 나라이기때문에 강대한 일본의 지배를 받아야 살아갈수 있다고 역설한 일제였으니 그때의 만행에 대하여 어찌 다 말할수 있으랴. 지난날 일제의 식민지로 있은 기간은 우리 조국의 인적, 물적, 정신문화적재부가 깡그리 략탈당한 세월이였다.

로씨야에서 10월혁명을 승리에로 이끈 레닌은 《일본은 모든 새로운 발명들과 순전한 아시아식고문을 결합시킨 전대미문의 야수성으로 조선을 략탈하고있으며 그를 계속 략탈하기 위하여 싸울것》이라고 하였는데 매우 타당하고 정확한 말이라고 본다.

라선땅에는 사향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리 크지 않은 산도 있다.

보로지산에서 동쪽으로 산발을 타고 20여리가량 가면 사철푸른 소나무와 잎이 무성한 참나무, 곧게 뻗어올라간 물박달나무들이 엇갈려 들어선 사이로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우뚝우뚝 솟아있는 수려한 산봉우리가 나타나는데 그것이 바로 사향산이다.

사향산은 본래 사향노루가 많이 살던 산이여서 이름도 그렇게 불리우게 되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그 종적조차 찾아볼수 없다.

일제가 웅라선(웅기-라진)철도부설을 위하여 이 산밑으로 차굴(관곡차굴)공사를 벌려놓고 마구 발파를 하고 나무를 란벌한 후부터는 이 산에 보금자리를 두고 오랜 세월 살아오던 사향노루가 자취를 감추어버렸다고 한다.

이 하나의 사실만을 통하여서도 조선인민에게 식민지노예의 운명을 강요하면서 감행한 일제의 략탈책동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알수 있는것이다.

조선민족이 영영 자기의 존재를 끝마치는가 아니면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며 다시 솟구쳐오르는가 하는 운명의 판가리시각에 앞날에 대한 희망과 미래에 대한 신심을 안겨주신분, 항일의 피바다를 헤치시며 해방의 봄을 가져다주신분은 과연 어느분이시였던가.

2천만겨레가 하늘같이 믿고 따른 김일성주석님이시였다.

보로지산과 사향산, 청학산과 백학산, 작은가매원을 비롯한 라선땅에 있는 높고낮은 산발들과 강과 들, 그 어디에나 조국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백두산절세위인 김일성주석님의 거룩한 발자취가 력력히 새겨져있었다.

1941년은 인류에게 헤아릴수 없는 고통과 재난을 가져다준 불행의 해였다.

그해 4월 쏘일중립조약의 체결소식에 접하고 아연하였던 세계는 몇달후인 6월 히틀러군대의 쏘련침공으로 하여 크게 놀랐다.

12월 일본군에 의해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여 온 지구가 전쟁의 포화에 휩싸였을 때 인류는 경악하였다.

수천년을 두고 인류가 쌓아놓은 문명이 땅크와 대포앞에서 형체도 없이 박살나던 수난의 해, 전화의 해였다.

제2차 세계대전속에 말려들어간 수많은 나라들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현실들 특히 가혹한 레닌그라드(오늘의 싼크뜨-뻬쩨르부르그)봉쇄소식이 진보적인류에게 커다란 불안을 안겨주고있을 때 불의의 기습으로 진주만을 공격하고 침략전쟁의 불길을 미친듯이 확대하여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의 거의 전지역(1942년 6월초까지)을 지배한 일본군의 《혁혁한》 전과소식들도 인류의 미래를 암담하게 만들고있었다.

그러나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신 김일성주석님께서만은 추호도 동요하거나 주춤하지 않으시였다.

그이는 조국애, 민족애를 최고의 높이에서 체현하고계시는 우리 민족의 태양이시였고 그 어떤 원쑤도 두려워하지 않는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시였으며 그 어떤 불가능도 가능으로 전환시키는 전설적인분이시였다.

전해인 1940년 8월에 그이께서는 중국 돈화현에서 력사적인 소할바령회의를 소집하시고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한 적극적인 전략적방침들을 제시하시였다.

그러니 그때 벌써 일제침략자들의 서산락일의 운명을 미리 내다보신것이 아닌가.

주석님의 위인상을 충분히 엿볼수 있게 하였다.

인류의 머리우에 살벌한 공포의 불구름이 짙어가던 1942년 6월에는 우리 민족의 가슴마다에 조국해방의 신심과 용기를 안겨주시기 위하여 라선땅 부포리의 증산봉을 찾으시고 웅기, 라진, 경흥, 경원, 온성, 회령 등 두만강연안일대에서 활동하고있던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 정치공작소조 책임자회의를 지도하시였다.

그후에도 그이께서는 삼엄한 일제군경의 경계진을 뚫고 여러차례나 이곳에 나오시여 조국해방을 이룩하기 위한 최후공격작전을 조직지휘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여기 라선땅에서 조국해방의 첫 총성도 울리게 되였다.

라선시(당시 웅기) 우암리에서 두만강상류쪽으로 약 20리 올라가면 토리라는 마을이 있는데 바로 이 마을에서 조국해방작전의 첫 총성이 울려퍼졌던것이다.

당시 라선지구에는 일제의 관동군직속부대, 제17방면군직속부대, 관동군보급감부, 대륙철도사령부관하의 부대들 등 수많은 병력이 집중되여있었다. 그리고 군용함선도 수십척이나 정박해있었다.

유진해군기지와 관곡, 무창의 군마보충부 등 라선주변에 배치된 무력도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그러나 김일성주석님의 구체적인 작전방안에 따라 일제가 구축한 웅기-라진요새를 점령하기 위한 웅기상륙전과 라진고개전투, 만향고개전투가 벌어졌고 8월 12일에는 마침내 라진땅이 해방의 환희를 맞이하였으며 8월 15일에는 우리 조선민족이 오매불망 바라고바라던 조국해방이라는 력사적위업이 성취되게 되였다.

일제는 항일유격대를 넓은 바다속의 하나의 좁쌀로 치부하면서 요람기에 없애버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일속》이 《창해》를 말리는것과 같은 기적이 일어났다.

이런 기적을 바로 항일의 혈전만리, 험로역경의 천만고비를 넘고 헤치시며, 빙천설지에서 풍찬로숙하시면서 만고의 절세의 위인이신 김일성주석님께서 안아오시였다.

그이께서는 민족의 존엄, 인간의 존엄을 말살하려는 야수의 무리들을 백두의 장검으로 쳐갈기시고 조선민족을 《노아의 방주》에 태워주신것이다.

참으로 라선땅은 우리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주석님께서 일제의 마지막명줄을 끊어버리기 위하여 최후공격전을 펼치시고 현명하게 령도하신 거룩한 자욱이 깊이깊이 새겨진 력사의 성스러운 전구였으며 조국해방작전의 첫 총성이 울린 뜻깊은 고장이였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돌아보는 인생길] 편집자의 말 [돌아보는 인생길] 왜 펜을 들게 되였는가 (머리말을 대신하여) [돌아보는 인생길] 1. 넋을 따라서 -지나온 인생길- [돌아보는 인생길] 1. 넋을 따라서 -선 택- [돌아보는 인생길] 1. 넋을 따라서 -《푸른 신호등》- [돌아보는 인생길] 1. 넋을 따라서 -출발- [돌아보는 인생길] 2. 내 조국 삼천리 -조국땅에서의 첫날- [돌아보는 인생길] 2. 내 조국 삼천리 -라선땅은 어떤 곳인가(1)- [돌아보는 인생길] 2. 내 조국 삼천리 -라선땅은 어떤 곳인가(2)- [돌아보는 인생길] 2. 내 조국 삼천리 -화창한 봄날에- [돌아보는 인생길] 2. 내 조국 삼천리 -백두산정에서- [돌아보는 인생길] 2. 내 조국 삼천리 -더 하고싶은 이야기(1)- [돌아보는 인생길] 2. 내 조국 삼천리 -《황금의 삼각주》- [돌아보는 인생길] 2. 내 조국 삼천리 -두만강은 무엇을 말하는가- [돌아보는 인생길] 2. 내 조국 삼천리 -낯설은 대지- [돌아보는 인생길] 3. 바다물은 한모금만 맛보아도 -녀성기업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돌아보는 인생길] 3. 바다물은 한모금만 맛보아도 -원천- [돌아보는 인생길] 3. 바다물은 한모금만 맛보아도^bb -오늘의 기적을 보려거든- [돌아보는 인생길] 3. 바다물은 한모금만 맛보아도^bb -공원에서 만난 처녀- [돌아보는 인생길] 3. 바다물은 한모금만 맛보아도^bb -더 하고싶은 이야기(2)- [돌아보는 인생길] 3. 바다물은 한모금만 맛보아도^bb -《아리랑》소감- [돌아보는 인생길] 4. 희망안고 걸어온 길^bb -첫걸음- [돌아보는 인생길] 4. 희망안고 걸어온 길^bb밥조개에 기대를 걸고(1) [돌아보는 인생길] 4. 희망안고 걸어온 길^bb밥조개에 기대를 걸고(2) [돌아보는 인생길] 4. 희망안고 걸어온 길^bb경모의 마음 [돌아보는 인생길] 4. 희망안고 걸어온 길^bb더 크게 내짚은 보폭 [돌아보는 인생길] 5. 위인의 초상을 보다^bb충격과 경탄 [돌아보는 인생길] 5. 위인의 초상을 보다^bb매혹의 분출 [돌아보는 인생길] 5. 위인의 초상을 보다^bb무엇을 보았는가 [돌아보는 인생길] 5. 위인의 초상을 보다^bb젊어지는 내 조국 [돌아보는 인생길] 내 인생의 주제가 (맺는말을 대신하여)
←되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