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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 조국 삼천리

 

 

세계에는 200여개의 나라가 있다.

그가운데는 령토대국, 인구대국이 있는가 하면 군사대국, 경제대국도 있다.

그런데 오늘의 현실이 보여주는바와 같이 령토가 크고 인구가 많다고 하여 강한 나라로 되는것이 아니며 군사력과 경제력이 발전하였다고 하여 강대국으로 존엄떨치는것도 아니다.

비록 령토가 크지 않고 인구가 많지 않아도 그 어떤 외세의 구속이나 압력에도 끄떡없이 자기의 자주권과 존엄을 굳건히 고수하며 민족의 부흥발전을 위하여 과감히 진군해나가는 나라는 가히 세상사람들로부터 강한 나라, 강국으로 인정받고 평가될수 있을것이다.

하다면 우리 조국은 오늘 어떻게 평가되고있는가.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며 살아온 우리 백의민족이다.

하지만 오늘처럼 내 조국이 자기의 존엄과 위용을 만방에 과시하며 흥한 때는 없었기에 세상사람들로부터 참으로 강한 나라로 불리우며 선망의 눈길을 끌고있다.

나라와 민족의 흥망성쇠가 령도자에 의하여 좌우된다는 력사의 진리를 나는 조국체류의 나날에 깊이 새기게 되였다.

우리 민족의 하늘이시고 위대한 어버이, 위인중의 위인이신 백두산절세위인들을 모시지 못했다면 렬강들의 각축전마당이였던 내 조국의 운명이 어떻게 되였겠는가.

 

 

조국땅에서의 첫날

 

 

조국에 첫발을 내디디였을 때의 감정을 무엇이라고 표현하였으면 좋을지 지금 생각해보아도 찾을수 없다.

너무도 환희에 차있었고 격동되여있었다.

처음으로 보게 되는 조국의 산과 들이였다. 하지만 어쩐지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제일 인상적이였던것은 푸른 하늘이였다.

(어쩌면 저리도 높고 푸를가.)

세상에 나라와 민족은 많아도 머리우에 펼쳐진 하늘은 하나이다. 거기엔 땅우에처럼 누가 박아놓은 지경말뚝이나 그어놓은 물리적선도 없으니 다를리 없는것이다.

그런데 왜 그리도 푸르고 높게만 보였는지 그때는 미처 알수 없었다.

대소한의 추위를 앞둔 때여서 바람은 여간 맵짜지 않았지만 그렇게도 가고싶었고 못견디게 그려보던 대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여서 굳이 피하려 하지 않았다.

청신한 대기의 공기를 한껏 들여마시니 공기마저 달고 시원하게만 느껴졌다.

호호탕탕 굽이쳐 흘러내려온 두만강(540여km의 길이를 가졌다고 한다.)의 자태도 결코 무심히 볼수 없었다.

작은 시내물로 시작되였지만 굽이굽이 흐르고흘러 마침내는 바다의 품에 달려가 안기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어찌 보면 내 인생을 담고 흐르는것만 같았다.

내 인생길이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된다고 생각하니 산천초목 그 어느것이나 깊은 의미를 담고있는것처럼 보였다.

크나큰 흥분으로 한껏 달아오른 온몸은 좀처럼 식을줄 몰랐다.

국경초소의 군인들에게로 다가갔다.

조국에서 만나게 되는 첫 사람들이였다.

얼마나 름름하고 믿음이 가던지. 생김도 준수하고 표정도 말씨도 친근하게만 느껴져 나의 눈가에는 절로 반가운 미소가 비끼였다.

그런데 그들의 눈빛에서도 웃음발이 흘러나오는것이 아닌가.

그 눈빛에서는 진심이 흐르고있었다.

《전반생을 보내고서 이렇게 뒤늦게야 조국의 품을 찾아옵니다.》

《환영합니다.》

이런 마음속대화가 오갔다.

눈은 마음속 령혼의 창문이라고 한다. 인간은 입으로만 말하는것이 아니라 때로 눈빛으로도 충분히 대화를 나눌수 있는것이다.

여러가지 수속을 마친 나는 다시 차를 몰아갔다.

처음으로 가는 길이였다.

그러나 어쩐지 낯설게 보이지 않았다. 늘 다니던 길처럼 느껴졌다.

조국이란 이런 곳인가.

중학시절에 본 책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유럽의 어느 한 나라 사람이 자기 조국에서 더는 살수 없어 타국의 외진 섬에서 등대지기를 하며 살고있었다.

세월이 퍼그나 흐른 어느날 그 등대지기는 우연히 고국의 낡은 신문 한장을 얻게 되였다.

너무도 반가워 그는 눈물부터 쏟았다. 침을 뱉고 떠나온곳이였지만 꿈에도 안겨오던 고국의 산천의 모습이였다.

보풀이 인 낡은 신문을 눈물속에 보고 또 보던 그는 어느날 날이 어두워지는것도, 등대에 불을 켜는것도 그만 잊어버렸다.

그바람에 지나가던 배들이 암초에 걸려 심하게 파손되고 배의 주인은 성이 독같이 올라 등대지기를 재판에 걸었다.

하여 등대지기는 죄인으로 타국의 법정에서 가혹한 벌을 받게 되였다.

가슴아픈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를 읽은 그날 나는 잠들지 못하였다. 가슴이 아파서였다.

그리고 조국이란 무엇이기에 그토록 사람들이 잊지 못해하는것인가 하는 물음에서였다.

그때 나에게서 조국이란 개념은 선조들의 태가 묻혀있는 곳이라는 정도에 불과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둬시간 차를 달려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내가 받은 첫인상에 대하여 무엇이라 표현하였으면 좋을지. 보통 평범한 도시풍경이였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수수하였다.

공화국에서의 심각한 경제난에 대하여 이미 많이 들어왔기때문에 그리 놀랍지는 않았지만 가슴이 아팠다.

그런데 사람들의 표정이나 행동거지를 보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비관이나 타락, 절망같은것이 비껴 있지 않았다. 인상은 비장(왜서인지 그렇게 보였다.)하였고 걸음걸이에는 힘이 있었다.

건물들은 요란하고 번쩍거리지도 않았다.

아빠트의 아래층은 대체로 상점이나 편의봉사망들로 리용되는것 같았는데 간판들은 그리 화려하지 못한 그림과 글씨로 씌여져있었다.

전혀 《상업적》이 못되는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상업봉사부문에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것을 첫째가는 목적으로 하고있다. 저들의 돈주머니를 채워주기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부류의 경영자들은 간판을 매우 중시하며 손님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기발》한 방법도 생각해내는것이다.

나의 눈길은 부단히 움직였다.

따뜻한 해빛에 의해 창가의 성에는 사라져가고있었다.

2층, 3층으로 올라가면서 있는 아빠트창문들에는 화분들이 놓여있었다.

그것이 특별히 나의 눈길을 끌었다.

꽃에 특별한 취미를 가지고있어서가 아니였다.

동남아시아의 어느 한 나라에 갔을 때 창가와 정원에 만발하고있던 꽃화분들이 매우 인상적이였는데 이곳에서 그런 풍경을 보게 되니 생각이 많아졌던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자기 주위를 아름답게 가꾸려면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또 정신적, 물질적여유도 있어야 하는것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조국인민들은 생활이 어렵고 힘겨웠어도 화분을 가꾸어 꽃을 피우며, 생활을 창조하면서 살고있었다.

앞날에 대한 희망이 있으면 인간생활에는 생기가 있지만 없으면 타락과 절망속에 허덕이는 법이다.

나는 집집의 창가들마다에 놓여있는 꽃화분들을 보면서 조국의 실정을 더 정확히 알게 되는것 같았다.

겉만 보면 본질을 제대로 알수 없는것이다.

비록 시련과 난관은 있지만 공화국의 인민들은 백설이 몰아치는 언덕에 꿋꿋이 서있는 소나무처럼 강의한 신념과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고있다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많은 선전문구나 말보다 조국의 실정을 더 많이, 더 정확히 알게 해주는 창가의 화분들이였다.

내가 정한 숙소는 남산려관(지금은 호텔로 되였다.)이였다.

석재건물로서 고티가 짙게 풍기는 크지 않은 건물이였다.

나는 지난 기간 이름있는 최상급의 시설과 조건이 마련된 훌륭한 호텔들에서 많이 생활해보았다.

그러나 비록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이 2층짜리 려관에서 묵기로 하였다.

특별히 마음이 끌리는 호화찬란한 곳이여서가 아니였다.

돈이 부족해서도 아니였다.

리유는 단 한가지, 이곳이 김일성주석님께서 친히 다녀가신곳이기때문이였다.

손님들이 많지 않았다. 이따금 이색적인 옷차림과 몸단장의 외국인들이 몇명 보일뿐이였다.

설비나 비품들은 그리 현대적인, 값비싼것이라고 볼수 없는것이였다.

하지만 소박하고 정갈하게 꾸려져있어 쉽게 마음을 안정시킬수 있을것 같았다.

창밖을 바라보려고 유리에 서린 성에를 입김으로 호호 녹였더니 동그란 《작은 창문》이 생겨났다. (내가 들었던 호실은 음지방향이였고 하여 방온도도 좀 낮았는데 봉사원들은 몹시 미안해하며 량해를 구하였다.)

그곳으로 보이는것은 어둠속에 잠긴 거리의 어스름한 형체뿐이였다. 대지를 덮은 흰눈만 아니였다면 그나마도 보이지 않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문히 지나가는 차의 전조등불빛에 주위가 언듯언듯 비쳐질뿐이였다. 차가 지나가면 다시 어둠에 휩싸였다.

주민지구의 창가들은 어두웠는데 그것은 긴장한 전력사정때문일것이라고 생각되였다.

불밝은 창가라면 낮에 보았던 화분들을 볼수 있겠는데 하는 생각과 불없는 집안에서 사람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있을가 하는 호기심도 생겼다.

문득 떠오르는것이 있어 방의 전기스위치를 껐다. 혼자 불밝은 방에 있자니 조국인민들앞에 미안스러웠기때문이였다.

조국인민들과 고락을 같이하려고 이 길을 택한 내가 아니였던가.

눈보라가 대지의 모든것을 얼구어버리려는듯 기승을 부리며 윙윙 몰아치고있었다.

창유리는 마치 부르르 떠는것만 같았다.

《작은 창문》도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음산한 엄동설한의 밤이였다.

독자들은 혹시 내가 이 시각 공허와 허무를 느끼며 있었을것이라고 생각할것이다.

충분히 그럴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때 나의 심정은 사실 그렇지 않았다.

밤이 깊으면 새날이 밝기마련이고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았다는 말을 곱씹어보며 우리 공화국의 락관적인 래일을 그려보았다.

아름다운 갖가지 장식등들이 반짝이는 불밝은 거리, 고운색 불빛의 가로등으로 환한 도로를 쉼없이 오가는 차들, 밤깊도록 사라질줄 모르는 사람들의 행복의 웃음소리…

그때가 오면 기승을 부리는 눈바람소리가 아니라 즐거운 음악소리를 들으며 나는 집집의 창가마다에서 더 아름답게 피여있는 꽃화분들을 볼수 있을것이리라.

그날을 하루라도 앞당기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기 위해 내가 조국으로 나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어깨도 무거워졌다.

밤은 끝없이 깊어갔지만 나는 잠들수 없었다. 조국에서의 첫날이라고 하니 좀처럼 흥분을 억제할수 없었던것이다.

비록 성에가 불린 창문이여서 반짝이는 밤하늘의 별들을 볼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 별들을 그려보며 끝없이 래일에 대하여 속삭이다가 저도 모르게 마스코드를 꼭 잡고 어린시절 어머니품에서처럼 솔곳이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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