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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넋을 따라서

 

출 발

 

드디여 출발의 날이 밝았다.

인생길의 새로운 출발점에 나선 그날은 1996년 1월 8일이였다.

내가 출발한다는것을 아는 사람은 불과 몇명밖에 없었다.

간밤에 내린 눈으로 세상천지가 모두 하얗게 단장되였다.

흰 이불을 덮고있는 대지는 아직 잠에서 깨지 못하고있었다.

흰눈에 반사되여 비치는 밝은 태양빛이 눈을 부시게 하였다.

아침에야 내가 조국으로 나간다는것을 알게 된 아들들은 몹시 의아한 기색으로 저들끼리 말을 주고받고있었다. 그러는 그들의 모습은 왜서인지 측은하게만 느껴졌다.

겉만 자랐지 그때까지도 강가에 내놓은 애들같아 마음 못놓던 나였기때문이였다.

그애들과 차례차례 포옹하고 어머니에게 허리굽혀 인사를 올린 나는 사람들에게도 간단한 인사를 남기고 차에 올랐다.

불쑥 눈물이 솟구치는것을 애써 참으며 앞차창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사랑하는 어머니와 남편, 자식들과 친구들의 눈길과 마주치면 다시 마음의 동요가 일어날것만 같아서였다.

사람이 결심을 그대로 실천한다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어떤 동요로 결심을 굽힌다면 차라리 다지지 않은것보다 못한것이다.

사람들에게 마지막인사를 보낸 나는 차의 속력을 높였다.

순간에 사람들의 모습이 멀어지자 그제서야 참고참았던 눈물이 솟구쳐올랐다.

앞이 흐려졌다. 그러나 멈출수 없었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던것이다.

뒤차창을 보니 사람들의 모습은 점점 사라져가고있었다.

정들은 거리와 산천이 점점 멀어졌다.

그러나 어머니의 모습만은 더욱 선명하게 떠올랐다.

지나온 나날들이 떠올라 눈가에 손수건을 가져가던 나의 손에 무엇인가 잡혔다.

어제 저녁 어머니의 방에 갔을 때 내 손에 꼭 쥐여주었던 마스코드(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어 간수하는 물건)였다.

아직도 어머니의 체취와 온기가 느껴지는것 같았다.

(사랑하는 어머니, 어머니의 마음을 제일 잘 아는것은 이 딸이 아닙니까. 민족의 훌륭한 딸이 되겠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집안에 아들이 없는것을 두고 한탄하군 하였지요? 아들 못지 않은 훌륭한 딸이 꼭 될것입니다. 이 딸을 둔것을 자랑으로 여기게 될 그날을 기다려주세요. 그날까지 부디 앓지 마세요. 늘 마음속으로 어머니의 건강을 빌겠습니다.) 내 입가에서는 노래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린시절부터 즐겨부르던 노래였다.

 

                             어머니 어머니 정다운 어머니

                             내 손잡아 걸음마 떼여주었네

                             달디단 젖으로 날 안아키우며

                             행복한 래일을 축복해주었네

 

떠나기 며칠전에 만났던 동업자친구들의 얼굴과 함께 그들이 하던 말이 다시금 귀전에 울렸다.

《어마나, 정말 가려니? 떠돌던 소문이 거짓이 아니였구나.》

《가서 3개월만 있다가 와라. 그래도 계속 있는다면 이 손에 장을 지질테야!》

그날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인생길이란 두번다시 걸을수 없는거야. 지금의 네 생활에 왜 불만인지 모르겠구나. 제발 내가 너에게 동정의 눈빛을 보내지 않게 해라.》

《너의 결심이 훌륭한지는 모르겠지만 실현은 어려울거야. 랑만적으로 생각지 말아. 하늘은 눈앞에 펼쳐져있어 가까이에 있는것 같지만 일생을 걸어도 못 닿을데 있는거야.》

다른 한 친구는 고대로마의 철학자 세네카의 말까지 거들면서 나를 설복하려 하였다.

《운명은 희망하는자는 데리고 가며 희망하지 않는자는 끌고 간다고 했어. 그리고 <인간은 소원을 성취하고저 노력하지 말고 되여가는대로 내버려두라. 그러면 행복하게 살수 있다.>는 말도 다시 잘 생각해봐.》

말없는 나를 두고 그들은 내가 생각을 고쳐먹는줄로 지레짐작하였다.

그러나 그 시각 이미 결심이 확고해진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있었다.

과연 인간의 운명은 이미 주어진것이겠는가. 너희들은 나에게 이런 고대그리스신화의 한 이야기도 들려주려 하겠지. 올림프스산정의 구름우에 신비하고 아름답게 솟아있는 황금궁전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인간생활의 정치, 도덕, 법률 등 모든것을 좌지우지하는 우두머리신 제우스와 함께 지상의 모든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녀신들도 살고있었다고, 클로트라는 녀신은 생명의 실을 꼬는데 그 실이 끊어지면 사람의 생에도 끝난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라케시스라는 녀신은 사람의 일생을 알아맞추는 점괘를 뽑으며 아프로포스라는 녀신은 언니신들이 사람의 일생으로 정해놓은것을 긴 두루마리종이에 기록하였는데 여기에 한번 적히면 영원히 벗어날수 없었다고, 인간이라면 그 누구도 례외가 되지 않았다고…

이것은 태고적에 태여나 오늘까지 전해져오는 신화에 불과한 이야기이다.

《신》이나 《신적존재》를 중심으로 하여 벌어지는 신비한 환상적인 이야기가 신화라고 할 때 이것은 분명 비과학적인것이다.

장구한 세월의 흐름을 타고 인류는 크게 전진하였으며 세계는 시시각각 끊임없이 발전하고있다.

그런데 문명세계에 들어선 오늘까지도 자기의 한생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너희들 같은 사람들이 적지 않으니 답답한 일이 아닌가.

어떻게 인간의 생사존망이나 처지 그리고 앞날 등 인생길이 알수 없는 그 어떤 신비한 힘에 의해 미리부터 정해지고 그에 따라 흐르겠는가.

나는 이것을 부정한다. …

그때의 일이 떠오르자 나는 지그시 입술을 감쳐물며 속도를 높였다.

(그들이 내 마음을 어떻게 리해할수 있겠는가. 너희들은 치부와 향락이 인간에게 있어서 제일이라고 여기고있지. 그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것을 나는 내 인생으로 증명할것이다.)

아직 차가 다니지 않은 눈덮인 도로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숫눈길에 발자국을 내면서 걷는것을 매우 좋아하였는데 그것은 자기의 자취가 그대로 남는것이 별로 신기하게 여겨졌기때문이였다.

왜서인지 앞에 펼쳐진 눈길은 내가 가야 할 새로운 인생길처럼 보였다.

저 깨끗한 흰눈우에 남는 발자국처럼 내 인생을 애국의 자욱으로 새겨가리라는것이 그 시각 다시금 굳게 가다듬게 되는 나의 결심이였다.

차는 점점 조국산천을 가까이 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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