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1. 넋을 따라서

 

 

《푸른 신호등》

 

 

《민족백화 총사장이 조선으로 나가려고 한대.》

《전쟁이 터진다고 거기에 들어갔던 사람들도 다 나온다고 하던데…》

《우리 흑룡강성에서 처음으로 녀자총경리가 되더니 어벌이 커졌어.》

《이제 두고 봐. <9>자에 내리획이 없으면 <0>이지. 결과는 뻔해. 빈털털이가 되여 빈 돈자루나 메고 오는걸.》

이것은 당시 조선민족백화상점 총사장이였던 나를 두고 하는 말이였다.

소문이란 수은방울처럼 못 가는데가 없으며 눈덩이처럼 갈수록 커지는 법이다.

나에 대한 소문들에는 진심으로의 감탄이 있는가 하면 속삐뜰어진 소리도 있었다.

나쁜 소문은 달리는 말에 올라앉으나 좋은 소문은 문밖을 나서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말들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을 쓸 처지가 못되였다. 일단 결심을 한 이상 조국으로 들어갈 준비를 다그쳐야 하였다.

나는 기업을 계획대로 하나하나 정리하고 미진된 일들을 깨끗이 마무리하였다. (당시 나에게는 백가지상품이 있다는 뜻으로 붙인 백화점과 같은 규모의 백화상점과 여기저기에 벌려놓은 일들이 많았다.)

백화상점은 오래동안 함께 일해온 친구들에게 나누어주어 그들이 큰 파동이 없이 생활할수 있게 해주었다.

지금도 그들은 이에 대하여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자주 나에게 전화를 걸어오군 한다. 물론 내 생일때에는 꼭꼭 축하의 인사와 성의도 표시한다.

나는 기업에서 그만하면 성공했다고도 볼수 있었다.

내가 흑룡강성에서 처음으로 녀자총경리로까지 되였으니말이다.

바로 이러한 호황의 시기, 《황금의 계절》에 내가 조국으로 나갈 결심을 내렸던것이다.

어느날 우리 회사와 깊은 련계가 있던 한 총사장이 찾아왔다.

말은 기업관련문제라고 하였지만 그의 진속은 소문의 진실성여부를 알아보려는것이였다.

《세계가 조선반도의 정세를 두고 불안해하는데 심사숙고하는것이 어떻습니까?》

진정으로 나를 걱정하여 하는 말이여서 고맙기 그지없었다.

나는 가벼운 웃음으로 사의를 표하였다.

멀어져가는 그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 벌써 수차례나 이런 물음을 받고보니 생각되는 점도 없지 않았던것이다.

한번은 친구들과 오래간만에 모여앉을 기회가 있었다.

그럴 때면 항상 마음껏 웃고 떠들던 우리들이여서 그날도 우리는 시간이 가는줄 몰랐다.

마감시간을 가까이 할 때 내가 조선에 나가려고 한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가 하여 《너 어디에 간다구?》 하고 망연자실해있다가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은 아마 내가 우스개소리를 하는줄로 알았던것이다.

당시는 기업을 한다고 하던 사람들은 너도나도 돈을 벌기 위해 해외진출을 하던 때였다. 내가 알고있는 여러명의 친구들도 그 바람을 타고 기업활동에 유리하다고 하는 동남아시아나 동유럽 등으로 진출하였었다.

그런데 내가 부디 정세가 긴장한 조선으로 간다니 어찌 그들이 깜짝 놀라지 않을수 있었겠는가.

(내가 내린 결심이 과연 옳은것일가?)

흔히 사람들은 결심을 내리기까지는 어렵지만 일단 결심을 내리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 나의 경우는 결심을 내리고도 마음이 무거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는 공화국에서 말하는 신념이 굳세지 못하였기때문이였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베토벤의 제5번 교향곡 《운명》의 장엄하면서도 격렬한 선률이 방에 울려퍼졌다.

음미해볼수록 내 운명을 예고해주는것만 같아 심장의 박동이 빨라졌다.

나는 세계의 이름있는 음악가들인 모짜르트나 챠이꼽스끼, 슈베르트나 슈만 등의 랑만적이고 아름다운 음악을 좋아하였다.

하지만 그때는 베토벤의 교향곡 《운명》을 더 자주 들었다.

비장한 결심을 가지고 운명의 도전을 맞받아나가는 베토벤의 모습을 더듬어보며.

독자들도 알다싶이 어려운 생활난을 겪으면서도 완강한 의지로 창작활동을 벌리던 베토벤은 30대에 음악가의 생명이라고 말할수 있는 청각까지 잃었다.

그러나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불같은 창작적열정을 발휘하여 비록 묘비에는 울어줄 자식도 새기지 못하였지만 전세계를 울린 내가 존경하는 음악가들중의 한사람이였다.

그가 창작한 제5번 교향곡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였다.

《고독과 절망에서 몸부림치는 베토벤의 마음이 안겨온다.

작품의 전반에 관통되여있는 최후의 순간에 겪게 될 인간의 미칠듯 한 몸부림과 남은 생애에 대한 초조함이.》

그러나 나에게는 그렇게만 보는것은 일면적이라고 생각되였다.

모진 고민끝에 자살할 결심으로 유서까지 써놓았던 베토벤이 시시각각으로 덮쳐드는 시련과 난관을 어떻게 과감히 뚫고나갔는가 하는 정신세계가 반영된 장중한 교향곡이라고 생각하였다. 정신과 육체를 끝없이 괴롭히는 고통과 불행을 불굴의 의지로 과감히 맞서나가는 그의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중한 선률을 받아안을수 있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꿈과 리상, 앞날에 대한 희망을 펼치는 환희의 감정도 나는 읽을수 있었다.

만민의 언어인 음악의 세계를 받아들이는데서는 하나의 기준을 절대시하거나 강요할수 없는것이기에 나는 내 주장을 굳이 그들앞에서 고집하지 않았다.

련이어 반복되는 베토벤의 제5번 교향곡 《운명》과 함께 나의 사색도 깊어갔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조국의 정세가 전쟁전야이기때문에 기업활동에 좋지 않다고 말한다. 물론 조선반도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 같은 곳이라는것은 사실이다. 사람들의 론의점은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과연 일어나겠는가가 아니다. 언제 전쟁이 일어날가이다.)

이런 상황이 기업활동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무시할수 없는것이였다.

오죽했으면 한 기업가가 중동의 어느 한 나라에 거대한 자금을 투자하였다가 분쟁이 일어난탓에 자살까지 하였겠는가. 그러나 나는 생각을 달리하였다. 즉 미국이 절대로 공화국과의 전쟁을 일으키지 못한다는것이였다.

이것이 내가 그때 조국에 나가 기업활동을 하겠다고 결심다진 중요한 리유였다.

많은 사람들이 조선반도에서의 전쟁을 우려하고있지만 그것은 너무도 짧은 생각이라고 나는 보았다.

다시말하여 많은 사람들이 현상 그자체를 표면적으로만 인식하였기때문이였다고 생각하였다.

본질을 보지 못하면 분석에서 엄청난 차이를 가져오기마련인것이다.

나는 공화국의 정세를 락관하고있었다.

1950년대부터 공화국은 정세를 전쟁접경에로 몰아가는 미국과의 첨예한 군사적대결상태에서 자기의 힘을 부단히 키워왔다.

또한 침략세력에 대한 그들의 대항정신은 이 세상의 어느 민족도 따를수 없는것이였다.

이것은 세계가 인정하는것이였다.

전 나토군 부총사령관이였던 도이췰란드군 대장이 신문에 낸 글을 보자.

《미국이나 임의의 나라들이 북조선과 전쟁을 하면 이길수 없다.

그 리유는

첫째로, 북조선에는 50대의 김정일장군이 군대를 지휘하고계신다.

둘째로, 북조선에는 잘 훈련되고 무장되고 째여있어 당장 전투에 진입할수 있는 …군대가 있다.

셋째로, 북조선에는 이 나라 사람들이 자력으로 만든 재래식무기와 함께 현대적미싸일이 있다. 이 나라의 군사적잠재력은 그 누구도 모른다.

넷째로, 북조선은 유격전의 전통을 가진 나라이다. 현대전이 유격전법과의 싸움에서 이긴 력사가 없다. 중국, 윁남, 유고슬라비아, 아프가니스탄을 보라.

다섯째로, 아시아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러하지만 특히 북조선사람들은 자기 지도부에 대한 숭배심이 강하다. 자기 지도자의 명령을 지키는것은 이 나라 국민의 품성으로 되였다.

여섯째로, 북조선은 70%이상이 험한 산악지대이다. 량반군대들은 공포를 주는 이런 지형조건에 숙달될수 없다.

일곱째로, 북조선은 40여년간 미국과의 전쟁준비를 해왔다. 미국과의 전쟁에 숙달된 민족이다.》

영국신문에는 영국군사전략연구소 소장의 글이 실리였는데 그도 조선에는 위대한 령장이 계시고 일당백의 군인들이 있으며 당과 수령을 받드는 인민이 있다고 하면서 미국은 요새화된 북조선을 정복할수 없을것이라고 하였다.

《조선군대의 특징: 훌륭한 지휘관을 만나면 무서운 힘을 낼수 있다.》

이 문구는 1900년에 어느 한 나라가 발행한 책자에 씌여져있는것이다.

이 글이 씌여진 때로부터 퍼그나 오랜 세월이 흘러갔지만 오늘에 와서 보면 필자는 앞으로 조선에 천만대적도 벌벌 떨게 하는 위대한 천출명장의 출현을 예언하지 않았는가 하고 생각된다.

분명 미국은 김정일장군님을 무서워하고있었다.

미국에서는 20세기에 들어와서 20년에 한번씩 가장 가까이하고싶은 나라와 가장 멀리하고싶은 나라가 어느 나라인가를 알아보는 여론조사를 하고있었는데 그 시기에 가장 멀리하고싶은 나라가 바로 조선이라는 조사결과가 발표되여 세상사람들을 놀래웠다.

미국인들이 그렇게 꼽은것은 김정일장군님을 수위에 모시고있는 우리 공화국을 매우 두려워하고있다는 산 증거로 되는것이다.

이것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에서 혼이 나간 미국인들의 마음속에 그때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고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는 단적실례가 아니겠는가.

《명장을 두려워하면 싸움에서 진다.》, 이 말은 이미 관을 둘러메고 저승으로 간 덜레스의 말이다.

만약 미국이 전쟁을 일으키려 하였다면 벌써 오래전에 터졌을것이였다.

몇가지 사건을 놓고보자.

1963년 5월에 공화국상공에 불법침입하였던 남조선강점 미8군사령부직속 55비행중대의 직승기가 나포되였을 때에도 그렇고 1967년 1월 공화국령해에 침입하였다가 수장된 《경호함 56》호의 격침때에도 그들은 얼마든지 전쟁의 포문을 열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1968년 1월의 미국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나포때와 1969년 4월에 있은 미군의 《EC-121》대형간첩비행기격추사건때에도 그리고 1976년 8월에 있은 판문점사건때에도 미국은 당장 조선에서 전쟁을 일으킬것처럼 광기를 부렸지만 끝내 주저앉고말았다.

특히 세계를 놀래운 미국의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때는 정말 세계가 조선반도를 숨죽이고 지켜보았었다.

미국의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의 나포는 명백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당한 자주권의 행사였으며 극동과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침략자들에 대한 응당한 징벌이였다.

하지만 미국은 《푸에블로》호가 공해상에서 나포되였다느니, 간첩행위를 하지 않았다느니 하는 거짓과 억지주장을 내대면서 군사적위협으로 공화국을 굴복시켜보려고 하였다.

《거짓은 아무리 아침일찍 떠나가도 반드시 저녁에는 진실에게 따라잡히고만다.》라는 말은 미국인들이 제입으로 만들어낸 격언인데도 말이다.

《미국이 만일 작은 모욕을 참는다면 더 큰 모욕을 받게 될것》이라고 열을 올리면서 《힘의 사용》을 강경히 주장하던 당시 대통령 닉슨은 조선이 반격으로 나오는 경우 원자탄까지도 사용할것이라고 폭언하였다.

이것은 《원자탄사용을 고려중》이라는 1950년 12월 트루맨의 공식성명과 1953년 봄 원자탄사용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아이젠하워의 담화가 있은 후로 평화적시기에 내린 미국의 첫 원자탄사용폭설이였다.

강경일변도의 주장속에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열렸고 《군사적보복조치》를 취할것을 결정하였으며 그에 따라 미국의 어마어마한 무력이 공화국의 연해에 집결되였다.

한차례의 전쟁을 치르고도 남을 방대한 무력이 기승을 부리며 조선반도로 몰려왔다.

그야말로 공화국의 정세는 일촉즉발의 상태였다.

바로 이러한 때 조선의 대답은 명백하였다.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할것이다!

미국의 광기어린 기승에 놀랄 조선이 아니였다. 굴복할 조선은 더욱 아니였다.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자는 그 과거를 다시한번 체험하도록 벌을 받게 되는 법이다.

공화국의 단호한 대응에 기가 질린 미국은 굴복하지 않을수 없었다.

미국정부는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가 감행한 정탐활동과 적대행위를 엄숙히 사죄하며 앞으로 어떠한 함선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령해를 침범하지 않도록 할것을 확고히 담보한다는 문건에 도장을 찍었던것이다.

판문점에서는 총격에 맞아 즉사한 《푸에블로》호 선원의 시체를 넣은 관 인도와 82명의 승무원들을 추방하는 전대미문의 의식이 벌어졌다. (그 무장간첩선은 공화국의 전리품으로 되여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 보란듯이 전시되여있다.)

미국을 이렇게 쓰디쓴 고배를 마시게 한 나라가 바로 우리 공화국이였다.

력사에 없는 특기해야 할 사변적인 일이였다.

그 소식을 듣고 통쾌하게 환성을 올리던 때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단호한 응징》을 하겠다고 하던 미국의 전쟁도발책동의 결과는 언제나 이렇게 끝나고말았다.

그러니 어떻게 그들이 감히 공화국과 전쟁을 할수 있겠는가.

내가 공화국에 나가 기업활동을 할 결심을 내린 리유는 다음으로 공화국에서의 내부정치정세가 매우 안정되여있다는것이였다.

조국인민들은 비록 생활상의 어려움이 적지 않지만 자기 수령, 자기 당, 자기 조국, 자기 제도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며 그것을 가장 신성하게 여기고있었다.

공화국을 다녀온 사람들은 한사람같이 서방의 출판보도물이 떠드는 보도는 전혀 무근거한것이다, 그 어떤 사회적소요나 불안정을 느낄수 없었다, 이런 나라에서 서방이 떠드는 반국가모의나 항의시위란 상상할수 없다고 말하였다.

사람들 서로가 화목하고 평등하며 하나의 대가정을 이룬 사회, 온갖 범죄와 사회악의 근원조차 없는 행복한 나라가 바로 내 조국이라고 하니 이야말로 토마스 모어가 공상속에 그려낸 《유토피어》가 아니겠는가.

력사에는 나라를 이끄는 령도자치고 정치적안정을 바라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공화국에서와 같은 그런 놀라운 현실을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서방이 떠드는 무자비한 강권에 의해서였는가.

철두철미 인민을 위해 복무하고 인민을 위해 투쟁하는 공화국을 남녀로소 누구나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받들기때문이라고 보았다.

폭압정치나 강권으로는 일시적으로 목적을 달성할수 있지만 오래가지 못한다는것은 력사가 증명하는것이다.

리유는 그밖에도 풍부한 자연부원과 근로자들의 높은 지적능력, 근면하고 성실한 일본새 등이였다.

공화국의 무진장한 자연부원에 대하여서는 세계가 인정하고있다.

로과학자인 교수, 박사 최원정선생은 우리 나라에는 수십억t의 철과 무연탄, 유연탄과 함께 금, 은, 동과 연, 아연, 월프람과 같은 귀중한 유색금속과 희유금속 그리고 마그네사이트, 흑연, 석회석, 고회석과 같은 비금속자원들이 많이 매장되여있다는것, 광물의 종류만도 500여종이나 되는데 그가운데서 홀동석, 수안석, 상팔동석 등 6종의 광물들은 공화국에서 처음으로 발견된것으로서 그 이름도 해당 지역의 지명에 따라 지어졌다고 발표하였다.

그야말로 금은보화 가득찬 전설의 나라가 바로 우리 조국이다.

이런 내 조국이 과연 사람들이 말하는 투자미숙지대이겠는가.

나는 신심있게 말할수 있었다.

내 조국은 투자매력지대라고. (오늘 공화국으로 각국의 기업가들이 투자를 아끼지 않는것은 투자매력지대라는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있다.)

이런 내 조국에 나가 애국을 하겠다고 결심한것이 잘못이겠는가.

캄캄한 밤하늘이였지만 나에게는 내 조국의 푸른 하늘이 선히 보였다.

땅을 밟아도 제 나라 땅을 밟고싶었고 공기와 물도 내 조국의것을 마시고싶었으며 기업을 해도 피줄과 언어, 풍습이 같은 제 겨레와 한시바삐 하고싶었다.

그날 밤 나는 조국에 나갈 결심을 가족들에게 털어놓았다.

그때까지는 내가 정식으로 이야기하지 않고있었던것이다.

포근한 이불속에서 세상모르게 잠을 자고있는 아들들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이 엄마는 조국으로 간다. 왜 내가 이 길을 택했는지 너희들도 후날에는 알게 될거야. 왜 스스로 집을 떠나 어려운 길을 갔는가를.》

미구하여 맞이하게 될 작별의 순간때문에 가슴이 아파 아들들의 모습에서 오래도록 눈길을 뗄수 없었다.

밤은 깊어갔으나 남편은 그때까지도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고있었다.

무슨 말이든 해주었으면 좋으련만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의 손끝에서는 빨간 불빛이 경보신호등처럼 깜박이였는데 어둠속이여서 더 선명하게 안겨왔다.

마치 내가 가는 길을 막는 《붉은 신호등》처럼.

한순간 종잡을수 없는 감정이 또다시 가슴속에 서려들었다.

그러나 단호히 머리를 저었다.

(그도 조선사람이다. 자기 민족을 위해 살려는 나의 결심을 그가 반대한단 말인가. 아니, 그는 지금 나에게 힘이 되고 고무가 되는 말마디들을 고르고있을거야.)

이렇게 생각하니 빨간 담배불빛은 마치 나의 앞길을 축복해주는 축포의 불보라처럼 보였다.

결심이 확고한 사람에게는 이렇게 《붉은 신호등》도 《푸른 신호등》으로 보이는 법이다.

로대로 나가 남편의 곁에 서니 여전히 말없이 나를 바라보던 그는 믿었던대로 내 손을 꼭 감싸쥐는것이였다.

따뜻한 감촉이 나의 온몸에 퍼져나갔다.

많은 마음속대화가 손을 통하여 오고갔다.

이것은 몇백마디의 말보다 더 적극적인 지지가 아닐가.

정작 길을 떠나자니 이미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만약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나에게 무슨 말을 하였을가 하고 생각해보았다.

《자기 나라와 민족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제살궁리로 한생을 보낸 아버지처럼 살지 말아라. 이 아버진 네가 선택한 길을 적극 지지한다.》

이렇게 말하지 않을가.

그렇게 믿고싶었다.

밤은 소리없이 깊어갔지만 정신은 더더욱 또렷해지고 생각도 끝없이 이어졌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돌아보는 인생길] 편집자의 말 [돌아보는 인생길] 왜 펜을 들게 되였는가 (머리말을 대신하여) [돌아보는 인생길] 1. 넋을 따라서 -지나온 인생길- [돌아보는 인생길] 1. 넋을 따라서 -선 택- [돌아보는 인생길] 1. 넋을 따라서 -《푸른 신호등》- [돌아보는 인생길] 1. 넋을 따라서 -출발- [돌아보는 인생길] 2. 내 조국 삼천리 -조국땅에서의 첫날- [돌아보는 인생길] 2. 내 조국 삼천리 -라선땅은 어떤 곳인가(1)- [돌아보는 인생길] 2. 내 조국 삼천리 -라선땅은 어떤 곳인가(2)- [돌아보는 인생길] 2. 내 조국 삼천리 -화창한 봄날에- [돌아보는 인생길] 2. 내 조국 삼천리 -백두산정에서- [돌아보는 인생길] 2. 내 조국 삼천리 -더 하고싶은 이야기(1)- [돌아보는 인생길] 2. 내 조국 삼천리 -《황금의 삼각주》- [돌아보는 인생길] 2. 내 조국 삼천리 -두만강은 무엇을 말하는가- [돌아보는 인생길] 2. 내 조국 삼천리 -낯설은 대지- [돌아보는 인생길] 3. 바다물은 한모금만 맛보아도 -녀성기업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돌아보는 인생길] 3. 바다물은 한모금만 맛보아도 -원천- [돌아보는 인생길] 3. 바다물은 한모금만 맛보아도^bb -오늘의 기적을 보려거든- [돌아보는 인생길] 3. 바다물은 한모금만 맛보아도^bb -공원에서 만난 처녀- [돌아보는 인생길] 3. 바다물은 한모금만 맛보아도^bb -더 하고싶은 이야기(2)- [돌아보는 인생길] 3. 바다물은 한모금만 맛보아도^bb -《아리랑》소감- [돌아보는 인생길] 4. 희망안고 걸어온 길^bb -첫걸음- [돌아보는 인생길] 4. 희망안고 걸어온 길^bb밥조개에 기대를 걸고(1) [돌아보는 인생길] 4. 희망안고 걸어온 길^bb밥조개에 기대를 걸고(2) [돌아보는 인생길] 4. 희망안고 걸어온 길^bb경모의 마음 [돌아보는 인생길] 4. 희망안고 걸어온 길^bb더 크게 내짚은 보폭 [돌아보는 인생길] 5. 위인의 초상을 보다^bb충격과 경탄 [돌아보는 인생길] 5. 위인의 초상을 보다^bb매혹의 분출 [돌아보는 인생길] 5. 위인의 초상을 보다^bb무엇을 보았는가 [돌아보는 인생길] 5. 위인의 초상을 보다^bb젊어지는 내 조국 [돌아보는 인생길] 내 인생의 주제가 (맺는말을 대신하여)
←되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