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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넋을 따라서

 

 

선 택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자식들은 일찍 철든다고 한다.

1994년은 우리 조선민족모두를 위대한 어버이를 잃은 대국상으로 몸부림치게 한 피눈물의 해였으며 나도 민족의 한성원임을 자각하게 하여 인생길의 방향을 바꾸게 한 잊을수 없는 해였다.

사람에게는 망각이라는것이 있어서 지나온 사실들을 모두 기억할수 있다는것은 거짓말일것이다.

그러나 나는 김일성주석님께서 서거하신 그 시기의 일들을 오늘도 생생히 기억하고있다.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주석님의 서거로 이 행성은 끝없는 비애에 잠겼고 추모의 눈물로 흠뻑 젖어들었다.

내 가정, 내 기업, 내 행복의 상아탑속에서만 살던 나였지만 시시각각 TV와 방송, 신문으로 보도되는 소식들은 나의 마음을 자꾸만 조국으로 쏠리게 하였다.

자기 민족, 자기 겨레의 운명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는다면 심장이 없는 사람이나 같은것이다.

온 세계가 공화국의 운명을 두고 우려와 불안에 쌓여있을 때 서방의 언론들은 때를 만난듯 공화국의 《붕괴》와 《개혁, 개방》에 대한 억측과 랑설을 마구 류포시키였다.

지금도 날마다 시간마다 공개되던 보도들을 보며 가슴조이던 그때가 눈앞에 생생하다.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은 마치 조각 《라오콘》의 뱀처럼 공화국을 휘감고 질식시키려 하였다.

고립, 봉쇄, 압살…

《천인소지무병이사》(천사람의 손가락질을 받으면 병없이도 죽는다는 뜻)라는 말도 있는데 미국의 공화국에 대한 횡포와 전횡을 두고 세상사람들 누구나 지탄하였지만 그런것에 귀기울일 미국이 아니였다.

그 시기 미국과 그 련합세력들의 공화국에 대한 압력과 봉쇄, 제재의 도수는 절정에 달하고있었다.

인류는 파쑈도이췰란드가 감행한 900여일의 레닌그라드봉쇄를 가장 야수적이고 악착한것으로 기록하였다.

그러나 공화국에 대한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련합세력의 제재와 고립, 봉쇄와 압살책동은 그 기간에서나 강도에서 그리고 악랄성에 있어서 전무후무한것이였다.

여기에 가증되는 정치군사적압력 또한 간단치 않았다.

그뿐이 아니였다.

공화국은 극심한 자연피해까지 입게 되였는데 그 피해액은 너무도 엄청난것이였다.

미국과 조선의 령토상대비는 78 대 1, 인구상으로는 10 대 1이라고 한다.

수자가 보여주는바와 같이 령토나 인구상에서 조선은 미국과 대비조차 되지 않는다.

과연 《유일초대국》이라고 하는 미국과의 대결에서 민족의 대국상을 당한 공화국이 견디여낼수 있을가.

분명 그랬다. 나는 그때 견디여낼수 있겠는가고 우려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자기 조국의 힘에 대하여 너무도 모르고 산것이 부끄럽기만 하다.

때없이 조국의 하늘가쪽으로 눈길이 던져졌으며 그럴 때면 마음은 몹시 불안하였다.

검은구름은 점점 더 짙어가고있었다.

교원생활을 하던 내 동생이 배워가지고 온 노래 《세상에 부럼없어라》와 《내 조국 한없이 좋아라》를 부르며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던 내 조국의 하늘가였다.

그러던 하늘가에 불안과 위구의 검은구름이 몰려들고있었으니 우리 민족의 운명에 대한 우려는 시시각각 나의 마음을 졸아들게 하였다.

터놓고 말한다면 이것은 나 혼자뿐이 아니였다.

이런 나에게, 해외에 살고있는 우리 동포들에게 힘을 주고 앞날을 락관하게 해준것은 과연 무엇이였던가.

공화국의 억센 모습이였다. 내 조국을 현명하게 이끌어가시는 김정일장군님의 걸출한 위인상이였다.

제국주의련합세력의 가혹한 고립과 봉쇄, 제재와 압살책동속에서도 자그마한 동요나 주저도 없이 자기가 정한 길을 따라 과감히 전진하며 신심을 주고 미래를 안겨준 공화국이였다.

남들 같으면 열백번도 무너지거나 굴복하였을 그처럼 엄혹한 정세하에서도 배심있게 자기의 궤도를 따라 나아가는 내 조국의 모습은 마치 눈덮인 광야에서 더욱 선명하게 살아나는 푸른 소나무의 모습과 같은것이였다.

그런 내 조국을 승리와 영광의 한길로 이끌어가시는분을 어찌 우리 민족의 위대한 수호자, 절세의 애국자, 강철의 령장이시라고 칭송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조선반도의 핵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조미대결전을 승리에로 이끄시여 온 세상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사이의 기본합의문》을 공포하도록 하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위인상에 솟구치는 환희와 끝없는 격정을 금할수 없었던 나였다.

1994년 피눈물의 한해도 다 저물어가던 12월 중순 다시금 세계에 커다란 충격을 준 미군정찰직승기격추사건을 지켜보면서 자기의 존엄과 자주권을 건드리는것을 추호도 허용하지 않는 공화국의 모습에서 조선민족의 한 성원으로서의 크나큰 긍지와 자부심을 한껏 체험한 나였다.

물론 나는 그이의 위인상과 공화국의 위력에 대한 자료들을 동포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그리고 인터네트를 통하여 어느정도 알고있었다.

그러나 온 세계가 지켜보던 그때 자기의 장한 모습을 떳떳이 보여주는 공화국의 실체를 보며 나는 위대한 장군님께 마음이 끌려 그이께서 하시는 일들이 무엇이나 다 잘되고 성공되기만을 바랬다.

특히 평양시에 청류다리(2단계)와 금릉2동굴을 건설할데 대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 0051호를 내리시여 세상을 다시한번 깜짝 놀래우신 김정일장군님의 드센 담력, 배짱에서 나는 이 세상에서 위대한 장군님이시야말로 위인중의 위인이시라는것을 심장깊이 새기게 되였다.

비록 령토도 크지 않고 인구도 많지 않은 공화국이지만 미국을 비롯한 제노라 하는 제국주의련합세력을 발아래로 굽어보시며 세계정치의 방향타를 틀어잡고 주도해가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뛰여난 천품과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이 세상에서 정의와 진리는 고수되고 조선의 사회주의는 자기의 궤도를 따라 승승장구해나갈것이라는 확신이 들면서 나의 넋이 끝없이 끌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참으로 조선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을 고수하는 길에서 보여주신 그이의 담력과 배짱은 그 무엇에도, 그 어디에도 비길수 없는것이였다.

그러니 내가 어찌 매혹되지 않겠는가.

후날 나는 평양을 방문하는 기회에 청류다리(2단계)와 금릉2동굴을 찾아가보았다.

출렁이는 대동강물에 해빛이 어리여 반짝이고있었다.

어디서나 볼수 있는 현상이였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단순히 보이지 않았다.

승용차가 청류다리를 가까이 할 때 나는 운전사에게 이렇게 부탁하였다.

《여기에 좀 내려줄수 없습니까?》

그는 의아해하면서도 차를 세웠다.

《이 다리와 동굴은 나에게 공화국의 무한한 힘과 영웅적기상, 불굴의 모습을 보여준 잊을수 없는 건축물입니다. 나는 이곳을 차를 타고 지날수 없습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자 안내선생은 나의 마음을 충분히 리해한듯 감심하였다.

250여m의 동굴과 1000여m의 다리…

TV와 화보를 통하여 이미 보았지만 모든것을 무심히 대할수 없었다.

이 대상들이 세계제일의 다리나 동굴이여서가 아니였다.

세상에는 자기의 화려함과 웅장함을 자랑하는 다리나 동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에 비하면 너무도 평범하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세상최고의 건축물처럼 느껴졌다.

이 건축물들이 어떤 시기에 건설되고 어떻게 솟아오르게 되였는가를 너무도 잘 알고있는 나였기때문이였다.

안내선생은 이 다리와 동굴은 1995년 10월 9일 조선로동당창건 50돐을 맞으며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몸소 나오시여 붉은 천을 끊으시여 개통되였다고 하면서 건축물들의 특징과 건설과정에 있었던 가지가지의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나는 그이께서 어느 자리에 서계시였을가 하는 생각으로 그 지점을 가늠해보았다. 그 자리에 나도 서보고싶어서였다.

환희의 그날 그이께서 서계시였던 그곳에서 그이의 체취를 느끼고싶었으며 조국의 미래를 내다보게 하고 조선민족의 위대함을 알게 해준 그이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싶었다.

허나 너무도 무엄한 생각이라고 여겨져 입밖에 낼수 없었다.

다음 일정이 없었더라면 그날 나는 밤깊도록 그곳을 거닐었을것이다.

피눈물의 해 1994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으며 김정일장군님께서 주석님께서 영생의 모습으로 계시는 금수산기념궁전(당시)을 찾으시여 인사를 드리신 후 그길로 찾아가신 곳은 조선인민군의 어느 한 구분대였다. (다박솔초소라고 불리우는 이곳은 력사의 지점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장군님께서는 장중한 례포나 요란한 영접곡의 주악이나 례식도 없는 가운데 소문도 기별도 없이 수수한 옷차림으로 찾으시였다고 한다.

주석님의 서거이후 맞이하는 1995년의 첫날에 뵙게 된 그이의 모습이여서 인민군군인들의 마음은 더욱 격정에 넘쳐있었다고 한다.

그들의 훈련모습을 보아주시고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면서 고무를 해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구분대의 후방사업실태도 친히 료해하시고 전투준비와 군인생활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는데 이 군시찰은 대국상후 그이의 혁명활동에서 처음으로 되는 공식보도였다.

세계 각국의 언론들이 앞을 다투어 보도하던 이 양력설날의 다박솔초소시찰이 우리 민족의 운명과 세계정치사에 어떤 극적인 전환을 가져오는 시대적사변이였는가를 나는 몰랐다.

나뿐아니라 당시에는 그 누구도 알수 없었을것이다.

그리고 그이께서 어떤 비장한 결심과 각오로 군현지시찰의 길에 오르시였는지 또 왜 사회의 그 어느 부문이 아니라 인민군부대를 찾으시였는지는 더욱 알수 없었을것이다.

보통 한 나라를 이끄는 령도자의 새해 첫 행보를 보면 그가 펼치게 될 정치의 방향을 어느 정도 가늠할수 있게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김정일장군님께서 1995년의 첫 현지지도단위를 인민군부대로 정하심으로써 그이께서 사회의 어느 부문보다도 군사를 중시하며 사회의 어느 집단보다도 군대를 강화하는데 선차적인 힘을 넣는다는것을 그 어떤 엄숙한 선언도 없이 온 세상에 공포하신것이 아니겠는가. 인민군대를 기둥으로 하여 김일성주석님의 위업을 끝까지 빛내여나가시려는 력사의 선언이 아니였겠는가.

그후 그이의 선군길을 마음속으로 따라서며 나는 비로소 다박솔초소시찰의 력사적의의에 대하여 절감할수 있었다.

김정일장군님의 위인상에 매혹된 나는 그이께서 펼치시는 정치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당시에는 그에 대한 리해가 부족하여 세상사람들의 의문의 대상이였다.

공화국이 겪고있는 난국을 타개하고 인민생활을 추켜세우자면 경제사업에 우선적으로 힘을 넣어야 하겠는데 왜 국방에 더 선차적인 힘을 넣는지 리해가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총대에서 밥이 나오는것도 아니고 기계나 옷감이 쏟아져나오는것도 아닌데…》 하면서 서방의 선전에 동조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나는 내가 그토록 존경하여마지 않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펼치시는 정치이기에 절대적으로 믿었다.

선군에서 쌀도 나오고 옷도 나오고 그 누구도 가질수 없는 모든것이 쏟아져나와 세상을 크게 놀래울것이라고, 장군님께서 펼치시는 선군정치야말로 만능의 보검이라고 믿어의심치 않았다.

그러했기에 그이의 정치를 리해하기 위해 많은 도서들과 론문집들을 탐독하였다.

누가 나에게 그렇게 하라고 권고하지 않았지만 조선민족의 일원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여기였기때문이였다.

또한 늦게나마 나 개인의 운명이 조국과 민족의 운명과 하나의 실로 이어져있다는 인생철학을 깨달은데서 오는 각성이기도 하였다.

민족의 위대한 어버이이신 김정일장군님의 사상과 령도를 충직하게 받드는것은 결코 조국인민들에게만 해당되는것이라고 볼수 없었다. 해외에 사는 모든 조선사람들, 동포들의 어깨에도 꼭같이 지워져있는 과제가 아닐수 없다고 생각되였던것이다.

일본제국주의와의 결전을 벌리시는 김일성장군님을 압록강과 두만강연안에 살던 조선사람들이 누구보다도 앞장에서 받들고 물심량면으로 원군하였듯이 그 후손들인 우리들도 반미성전을 진두에서 지휘하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정치를 앞장에서 받들어야 한다는 자각이 나의 심장속깊이에 뿌리내렸다. 김정일장군님의 선군정치가 있어 우리 민족이 자기의 존엄을 지킬수 있고 휘황한 앞날도 펼쳐질것이라고 생각하니 그이의 영상이 못견디게 그리웠다.

그럴수록 1995년의 새해를 맞으며 장군님께서 전체 조선인민에게 보내신 친필서한의 글발이 더더욱 깊은 뜻을 가지고 안겨왔다.

《피눈물속에 1994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합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전사, 위대한 수령님의 제자답게 내 나라, 내 조국을 더욱 부강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모두 한마음한뜻으로 힘차게 일해 나아갑시다.

1995. 1. 1

 김 정 일

내 나라, 내 조국을 더욱 부강하게 하기 위하여 한마음한뜻으로 힘차게 일해나가자고 하신 그이의 친필서한!

(나도 조선민족의 일원이다. 그러나 인생의 45년을 살아오는 지금까지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하였는가. 땀 한방울, 돈 한푼 보탠것이 없었다. 조국이 기나긴 밤 아픔에 잠 못 들 때 나는 편히 발편잠을 자고있었다. 조국이 궂은비 내리는 험한 길을 한치한치 힘겹게 걸어갈 때 나 하나만을 위해 마른 땅을 짚어왔다. 조국인민이 부강한 나라를 일떠세우려 간고분투할 때 조국이 가는 앞길에 빛 한줄기 보탠것이 없는 나다. 우려나 걱정은 우국일뿐이다. 그것은 결코 애국이 될수 없는것이다.

지금은 우국지사가 아니라 참된 애국자, 투사들이 필요한 때이다. 실천을 떠난 애국이란 빈말에 지나지 않는다. 민족의 한 성원이라면 마땅히 자기 민족의 부흥과 번영을 위하여 심신을 기꺼이 바쳐야 할것이다.)

심한 자책감과 함께 생각도 날이 갈수록 깊어만 갔다.

모대김속에 나날을 보내던 어느날 나는 마침내 결심을 내리게 되였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조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분기점에서 력사적결단인 선군정치의 전면적실현의 길을 택하시였다. 이길이 최대의 애국애족의 길이라는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나도 우리 조국을 선군으로 구원해주신 절세의 애국자 김정일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민족을 위한 길, 애국의 길에 나서자. 조국땅 라선에 나가 기업활동을 벌려 민족부흥에 이바지하자.)

사실 나는 1990년대초에 라선지구가 조국에서 특혜적인 무역 및 투자, 중계수송, 금융, 관광, 봉사활동 등을 진행하는 경제무역지대로 개발되였다는 소식을 듣고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있었다. (라선땅이 경제무역지대로서 얼마나 적지인가 하는것은 뒤에서 언급하려고 한다.)

그런데 정세의 급격한 변화로 선뜻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있었던것이다.

이제 더는 우유부단할수 없었다.

창밖에는 소리없이 흰눈이 내리고있었다. 마치도 나의 결심을 축복해주는듯.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아뢰였다.

《우리 민족이 하늘처럼 믿고 따르는 김정일장군님! 저는 당신의 절세의 위인상에 끝없이 매혹되였습니다. 당신은 김일성주석님과 꼭같으신 우리 민족의 위대한 어버이이십니다.

저도 당신의 뜻대로 애국의 길을 걸으렵니다. 조국에 나가 기업활동을 벌려 장군님께서 아시는 조국의 딸이 되렵니다.

저의 결심을 축복해주십시오.》

이렇게 나는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위인상에 매혹되여 그이만을 믿고 그이의 뜻만을 따를 결심으로 운명의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되였다.

인생길을 바꾼다는것은 결코 가던 발걸음을 돌려세우는것과 같이 그렇게 단순한것이 아니다. 운명과 관련되는것이기에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도 볼수 있다.

부언하건대 내 인생의 새로운 선택은 즉흥에 의해서가 아니였다.

애국애족의 길이 진리의 길이며 참된 인생길이라는것을 늦게나마 깨닫고 생각을 거듭하는 과정에 찾은 길이였다.

사실 조국에는 그 누가 나를 기다려줄이도 없었다. 고향이 있는것도 아니였다.

허나 나는 조국이라는 위대한 품이 나를 반겨맞을것이라고 믿고싶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두팔을 벌리고 나를 기다리고계시는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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