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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아침이다. 쟁글쟁글 내려쪼이기는 하나 아직은 좀 새초롬해보이는 볕이 창유리와 천정에서 아롱인다. 반쯤 열린 창문사이로 안산교외의 청신한 대기가 흘러든다.

전자피아노의 건반을 살근살근 짚어가며 노래부르는 흰 샤쯔차림의 녀인을 맞은편 벽거울이 통채로 비껴안고있다. 명색이 봄맞이공연이고 때도 화창한 계절이건만 봄기분을 모르는 그의 눈길은 악보대우의 오선지를 담담하게 훑어내릴뿐이다. 이따금 손전화기쪽에 귀를 강구다가는 미간을 살짝 찌프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악단성원들이 제가끔 진을 치고서 《쿵쨔쿵쨔 쿵쨔쨔…》 하며 아침부터 법석 끓는 건너방들과는 대조적인 흐름이 안온한 방안을 감돌고있다.

길가에 늘어진 붉고 흰 꽃가지들이 한들대며 마음 들썽하게 하는 이 봄날, 련습실에 붙박혀 공연준비에 열중하고있는 이 녀인은 림하영이다.

살짝 들린 턱이며 선뜩한 느낌마저 드는 날카로운 코날에 록록치 않음이 엿보이는 림하영은 대중가요 가수이다. 미모보다는 독특한 음색으로 관객의 간장을 녹이는 솜씨가 뛰여났고 가다가다 TV련속극에도 출연하여 매혹적인 연기로 여운을 주는 40대의 녀인이다.

물찬 제비같이 아릿다운 갓스물의 처녀예술인들의 신선미에 밀리우기 십상인 중년의 가수임에도 개성적인 매력으로 나날이 인기가 높아가는이 녀가수에게는 남다른 인생사가 있다.

림하영의 식솔은 단 둘, 가장인 그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애가 전부이다. 흔히 녀성예술인에게 끌려든 대중의 호기심은 다음순간 무대배경같은 그의 남편에게로 쏠린다. 하여 녀성예술인들은 그럴듯하고 믿음직한 배경을 갖추는데 은연중 신경을 쓰게 되는것이다. 미끈한 용모에 거쿨진 몸집, 호방한 성격에 해학적인 말솜씨, 안정되고 멋들어진 직업에 세련된 행동… 하건만 림하영의 배경은 버들가지처럼 회친회친한 총각애로 너무나 왜소하다.

뭇녀인들처럼 림하영에게도 련정으로 가슴 들먹이던 처녀시절이 있었고 찬탄과 시샘의 눈길들이 엇갈리던 혼례식이며 새살림의 꿈에 부풀던 신혼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절 달짝지근한 《사랑》타령으로 《영원한 행복》을 운운하던 남편도 있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애정에 주려온 림하영은 순진하게도 무아경에 빠져 아무것도 분별할수 없었다.

어느날 이 모든것이 별안간 신기루마냥 없어졌다. 일찍 과부가 된 어느 재벌의 5촌조카딸에게 훌쩍 옮겨간 위선자, 극단한 리기에 물젖은 비렬한이 바로 림하영의 첫사랑이였다. 재력도 없고 세줄도 없는 무명가수인탓에 림하영은 단즙을 다 빨리운 껌처럼 버려진것이다.

창졸간에 들쓴 오욕으로 림하영은 항변 한마디 못하였다. 천길나락에 떨어진것 같은 절망에 사지가 결박당한듯 옴짝달싹할수 없었다. 노래도 세상도 귀찮아졌다. 살아 무엇하랴싶어 생을 포기하려던 림하영은 최후의 시각 새 생명의 움직임에 멈칫하였다.

(아기에게야 무슨 죄가…)

림하영은 이를 악물고 속다짐하였다. 배신으로 당한 수치와 아픔에 맥없이 주저앉는 약자가 아니라 배신을 딛고 일떠서는 강자가 되리라.

(아가야, 너만 있으면 엄만 꼭 이겨! 부디 너도 이겨다오.)

림하영은 파렴치한 기만으로 순정을 짓밟고 반찬훔친 도적고양이마냥 미국으로 달아빼는 어제날의 남편, 《남의 편》을 쓰겁게 바라보았다.

돌아다보며 울기보다 앞을 보며 웃으랬다. 그래, 나의 유일한 희망이고 생의 전부이며 내 마음의 예수인 우리 정현이! 엄마의 든든한 버팀목되여 지친 어깨를 받쳐줄 착한 아들아, 너의 밝은 장래를 이 어머니는 굳이 믿는다. …

림하영은 바람세찬 인생길에 등불같은 아들애를 위하여 동정도 비웃음도 한몸으로 막으며 사생결단으로 기량훈련도 하고 무대우에도 뛰여올랐다. 사생활의 밝은 면보다 그늘면이 더 시시콜콜 들추어지는 영화배우로의 등장도 마다하지 않았다. 다름아닌 아들애를 위해서였다. 그 나날 림하영은 뭇시선을 오연히 굽어보며 랭소할줄 아는 담찬 녀성으로 변모되였다.

보이는 적, 보이지 않는 적과의 끊임없는 암투라는 가혹한 생활속에서 다시는 속지 않으리라 이를 악물고 살아온 지난 세월, 당하지 않으려면 강해야 한다는 림하영의 지론은 비단 자기에게 향해진것만이 아니였다. 아들애에 대한 강한 요구성으로도 나타났다.

풀대같은 약골이 아니라 강풍에도 맞서는 참대가 되기를 바라는 애모쁜 마음에서 림하영은 아들에게 무작정 자애롭기만 한 어머니로 될수 없었다. 헛된 길에 들세라 아들을 맵짜게 다불러대며 앞자리로 내몰았다.

고맙게도 정현은 림하영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손꼽히는 달리기선수에 날렵한 수영솜씨도 갖추고 전교적인 학업순위 세번째를 벗어난적이 없는 열일곱살의 날씬하고 맵시있는 총각으로 번졌던것이다.

며칠전 저녁이였다.

부엌문가에 기대여 서서 앞머리를 쓰다듬던 정현이가 한창 동자질하던 림하영을 향해 밑도 끝도 없이 이런 말을 던졌다.

《제주도 너무 멀지? 려행비가 33만원이라나. 어머니, 나 그만둘가?》

전에없이 능청스러운 아들애의 태도에 웃음도 나고 풍족치 못한 가정형편이며 떼놓기 아쉬워할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는 그 어른스러움에 림하영은 속이 알찌근하였다.

(학교에서 말이 있었구나. 수학려행이라…)

암독수리마냥 지켜온 귀한 아들이였다. 림하영은 약해지려는 자신을 다잡으며 아들을 꾸짖었다.

《속대 왜 그리 연해? 그리구 일생에 한번뿐이잖아. 시야좁은 못난 사내 되지 말아.》

아들한테라기보다 자신에게 하는 꾸지람이였다.

다음날부터 림하영은 바삐 다녔다. 새옷도 사오고 색다른 간식도 준비하고 려행비도 마련하였다. 누구에게도 짝져서는 안될 보배아들의 길차비였다. 힘에 부쳤어도 림하영은 기뻤다. 나래를 펴고 창공을 훨훨 날을 아들애의 앞날이 그의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이렇게 아들애를 제주도로 떠나보낸 림하영이였다.

《삐리삐리-》

불현듯 귀전을 때리는 신호음에 림하영은 손전화기를 들여다보았다. 순간 온 얼굴에 웃음발이 피며 환해졌다. 고개를 기웃하고 싱긋 웃음짓는 아들애의 모습이 손전화기화면을 가득 채웠다. 엊저녁부터 목마르게 기다리고있는 아들애의 소식이 이제야 당도한것이다.

뒤미처 날아온 통보문에 림하영은 가슴이 찌르르해졌다.

- 제주도가 고대라나요. 멋진 바다경치 엄마와 함께 봤으면… 금요일엔 돌아갈게요. 창경원구경약속 꼭꼭꼭! 엄마는 봄볕, 정현인 봄바람.

만경창파를 헤가르는 려객선안이라 통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통보문송신방법을 선택한 모양이였다.

아들애의 살뜰한 통보문이 림하영을 비로소 봄의 훈향에 함뿍 젖어들게 하였다.

(그래, 봄이구나.)

림하영은 창문을 활 열어젖혔다. 두손을 뒤로 깍지낀채 기운껏 대기를 호흡하였다. 단박에 기분이 붕 떠오른 림하영은 짐짓 으름장의 회답을 날렸다.

- 꽤 빨리두 알리네. 너무 재미나 감감 잊었지? 돌아오면 혼내줄라.

흥그러운 마음에 어느해 봄날이 뭉게뭉게 흰구름인양 떠올랐다.

정현이 급성페염으로 병원에 입원한것은 애가 여섯살 잡히던 생일달이였다. 열에 떠서 숨을 할싹이는 어린것을 지켜 림하영은 꼬박 닷새를 뜬눈으로 앉아있었다. 자식의 병을 대신 앓고싶은 애끊음속에 마음을 앓았다. 그러면서도 시종 웃는 얼굴로 정현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엄마손은 약손이랬지?》

까실까실 말라드는 입술을 달싹이며 기대어린 눈빛을 보내는 정현에게 림하영은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용케도 병을 이겨낸 정현이가 기특해 림하영은 애의 생일날을 맞으며 오래간만에 봄나들이를 갔었다.

파아란 잔디밭에서 좋아라 깡충대던 아들애가 목을 젖히더니 두손을 높이 쳐들었다. 눈이 시그러워 잔뜩 쪼프리고 섰으면서도 웬 일인지 고개도, 손도 내릴념을 않았다. 한참후에야 아들애는 두손을 자기 볼에 가져다 대며 꿈을 꾸듯 중얼거렸다.

《히야- 따뜻해! 이건 엄마야. 엄만 내게 봄볕이야.》

불면 날가 쥐면 꺼질가 애지중지 기울이는 어머니의 사랑이 아들애의 어린 마음에 따스하게 닿았던것이다.

이름못할 행복감에 휩싸인 림하영은 코끝이 매워나서 실눈을 지으며 물었다.

《그럼 정현인? … 음- 장난 잘 치는 봄바람?》

《좋네! 엄만 봄볕, 난 봄바람!》

봄하늘 가득 랑랑히 퍼져가던 그날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아니야. 정현이, 네가 봄볕이구 봄바람이야. 넌 내 인생의 전부, 이 엄마의 영원한 봄이란다.)

림하영은 아직 솜털이 보시시한 아들애의 이마전이런듯싶은 손전화기화면에 살며시 입술을 가져다 대였다.

키만 껑충했지 철부지에 불과한 아들애가 갑절 그리워졌다. 바래운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냥 보고싶은 정현이다. 이럴줄 알았으면 공연히 보냈구나싶었다. 이새를 활짝 드러내고 해님처럼 웃는 그애의 모습이 너무도 삼삼하여 림하영은 봄꿈에 취해 한동안 그린듯이 서있었다.

마침내 새로운 활기를 찾고 흥뜬 기분에 곡상을 재음미하려는데 문이 훌쩍 열렸다. 짧은 갈색머리의 신인가수 은미가 호들갑을 떨며 안으로 뛰여들었다.

《큰일났어요, 큰일요!》

《손기척 잊었어?》

톡 쏘는 림하영의 면박에 순간적으로 목을 움츠리던 은미가 손사래를 쳤다.

《진짜 큰일이예요.》

도대체 욕도 타지 않는 처녀이다.

림하영은 어이없이 흘겨보고 눈을 내리깔았다.

평소에 은미는 창법이건, 옷차림이건 무작정 림하영을 본따려 하면서 가지가지 조언을 듣고싶어 몸살나 하였다.

그때마다 림하영은 특유의 싸늘한 미소로 매몰차게 밀막아버리군 하였다.

《숭배? 조언? 철없는것! 난 나고 넌 너야. 멋대로 살아!》

상대가 누구든 정을 줬다가 배신의 고배를 드는 바보짓을 두번다시 할 림하영이 아니였다.

하물며 경망스러운 촉새라고 단정지은채 시답지 않게 대해오는 은미임에야…

《들었어요? <세월>호가 빠졌대요. 글쎄 진도 앞바다에…》

남의 말 곧이 안 듣는데 인이 배긴 림하영은 코살을 찡그린채 은미의 말허리를 꺾으며 퉁을 주었다.

《미쳤니? 새빠지게 방정은… 금방 정현이 통보문 받았다.》

신호음이 또 울렸다. 찍혀진 번호는 역시 아들애의것이였다.

《이래두?!》

림하영은 은미를 향해 코웃음을 날렸다.

(녀석, 엄마가 그렇게 보구싶담.)

부푸는 행복감에 휩싸여 손전화기화면을 더듬던 림하영의 눈동자가 굳어졌다. 씌여진 글줄은…

- 쾅소리났어. 배가 기울어요.

림하영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오히려 통보문을 건너다본 은미가 울상이 되였다. 속이 달아서 림하영의 주위를 뱅뱅 돌던 처녀가 이번에는 인터네트에 접속한 제 손전화기를 림하영의 눈앞에 내들었다.

《봐요. <세월>호참사뉴스로 온통 벅작벅작해요.》

뜻밖의 충격으로 초점을 잃은 림하영의 눈에 무엇이 안겨올리 만무하였으나 은미는 그냥 볶아대였다.

《뭘 해요? 빨리 가봐야죠.》

은미의 핀잔에 림하영은 또 한번 놀라며 물었다.

《어델? …》

《아유, 진도지 어디겠어요.》

림하영은 목수건을 둘러준다, 코트를 입혀준다 부산을 피우는 처녀를 멍청히 보기만 하였다.

소식을 들었는지 뒤따라 방에 들어온 장발의 바스기타수도, 퉁투무레한 타악기연주가도 근심스레 림하영을 재촉하였다.

곁의 수선에 떠밀려 림하영은 어망결에 련습실을 나섰다. 귀에서 웅웅 소리가 나고 머리속이 온통 하얀게 어쨌으면 좋을지 몰랐다. 그냥 속이 후둑후둑하여 현관문에 기대선채 꼼짝 못하고있었다. 림하영을 특징짓던 평소의 침착과 랭담성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새된 소리에 흠칫하며 돌아보니 은미였다. 신용카드랑 들어있는 손가방을 잊었다고 복새를 떨며 달려왔다. 부랴부랴 묻어나와 택시를 잡아주는 동료악사들에게 떠밀리워 림하영은 진도길에 올랐다.

물매미같은 택시가 살같이 달리기 시작해서 한참만에야 림하영은 까맣게 질리며 겨우 외마디소리를 토했다.

《정현아-》

진도길은 더디기만 하였다.

시시각각 가슴을 조이는 우려로 가쁜숨을 몰아쉬는 림하영의 눈앞에 지난 일들이 생생히 되새겨졌다.

어느해였던가. 정현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림하영은 별로 덞지도 않은 창턱이며 가구들을 닳도록 힘주어 닦고 또 닦았다. 언짢은 심정을 누르자니 별수 없었다.

(게임에 빠졌댔을가? 아니면 또 만화방엘?! …)

림하영은 파들짝파들짝 앞으로 내딛는 벽시계의 초침에 신경질적인 눈초리를 언듯 던졌다.

오후 5시 30분, 절제가 강한 림하영이 동료들과 한창 정구를 치고있어야 할 시간이다. 림하영에게 있어서 정구는 밥맛을 돋구고 스트레스해소나 하는 심심풀이오락일수 없었다. 싱싱한 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건강운동인것만도 아니였다. 생존경쟁의 치렬한 격투속에서 거짓에 속히우지 않게 두눈을 부릅뜰 기력을 충진하는 시간이였다. 때문에 정구치기는 림하영이 필사의 각오로 림하군 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어긴적없는 일과였다. 그런데 이 저녁엔 일과가 깨여진것이다.

절컥하고 쇠가 열리는 소리가 났다.

림하영은 걸레질을 멈추고 돌아서며 나직이 물었다.

《어델 갔댔니?》

싱글거리며 집에 들어서던 아들애는 그만 굳어졌다.

《과외공부…》

《아직도?!》

즉시에 림하영의 서리발이 선 반문이 날아갔다.

림하영은 분이 치밀었다. 간담이 서늘해졌던 좀전의 일이 상기되면서 속이 후끈 달았다.

일이 있어 과외선생을 찾았던 림하영은 화제끝에 정현이 공부하러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아동유괴범들이며 폭력배가 란무하는 현실이 더럭 겁을 몰아왔다.

급히 정현이의 손전화번호로 호출신호를 보내였다. 다행히도 전화를 받은 아들애가 천연스레하는 말이 과외학습중이랬다.

림하영은 말없이 통화를 끊었다.

이제는 아들애마저 속이려든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배신감에 입술을 짓씹던 림하영은 일찌감치 일정을 굼때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지금껏 정현이를 초달할 생각에 옴해있었던것이다.

정구채를 꺼꾸로 잡아쥐고 쏘아보는 어머니를 쳐다본 정현은 대뜸 주눅이 들었다. 그제야 과외학습일정을 뚜꺼먹은 사실이 들장난것을 알아챘던것이다. 그는 어머니앞으로 주춤주춤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어버이날이래. 용돈 모은걸루 튜립샀어, 엄마가 좋아하는. 주변 꽃방엔 카네숀뿐이고 그래 돌아다니다가…》

림하영은 속이 울컥하였다.

(어린 녀석이…)

하지만 양보할수는 없었다.

《누가 그런짓 하래? 말해봐. 엄마가 뭘 질색해?》

아들애는 울먹울먹하며 대답하였다.

《거-짓-말.》

《또?》

《우-는-거.》

《공부 잘해 큰사람되긴 틀린 자식! 엄만 용서 못해.》

림하영은 정구채손잡이로 탁자를 탕탕 두드렸다.

아들애는 고개를 떨구었다.

속을 도사려먹은 림하영은 아들애에게 매를 안겼다. 아니, 약해지려는 자신을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그날 밤, 림하영은 정신없이 곯아떨어진 아들곁으로 갔다. 뻘건 줄이 간 허벅지에 약을 발라주며 한숨짓다가 《엄마-》 하는 아들애의 부름소리에 숨을 죽였다. 흠칠 놀라며 바라보니 잠꼬대였다.

흔히 아버지가 혼을 내면 어머니를 부르고 어머니가 꾸지람하면 아버지를 찾는것이 철부지들이다. 역성을 들어주기를 바라는 응석이랄가.

그런데 아들애는 방금 분명 《엄마》라고 하였다. 어머니한테서 아픈 매를 벌었건만 잠결에조차 다른 누구도 아닌 어머니를 부르는 아들애의 모습은 림하영의 심금을 후려쳤다. 랭정의 보루는 더이상 견뎌내지 못하고 물먹은 담벽처럼 허물어졌다.

(정현아, 나쁜 이 엄마 욕해라.)

림하영은 손등을 깨물어 흐느낌이 새여나가는것을 간신히 막았다. 허나 마음의 뚝을 넘어 두볼로 흘러내리는 눈물만은 어쩔수 없었다.

사랑하는 아들이 원한다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줄 마음으로 모든것을 다해오건만 한생 아버지라는 부름만은 줄수 없는 서글픔에 속으로 끝없이 용서를 빌며 살아왔다. 반쪽짜리 서글픈 사랑으로 아빠, 엄마의 옹근 사랑을 대신하겠다고 모지름을 써온 자신이였다. 그런 부족한 엄마를 철부지가 헤아려 오히려 애틋한 정으로 감싸주려 하였다. 그 갸륵한 마음이 타는듯 붉은 튜립 송이송이에 비껴 눈굽을 뜨끈하게 지졌다.

위선은 악중의 악이다, 그저 어질고 나약하면 속히우고 짓밟혀, 이걸 뼈에 새기고 무쇠쪽같이 의지를 벼리라, 열배, 스무배로 남을 압도하라. …

이렇게 매일 매 시각 자신을 혹독하게 채찍질하고 아들애를 달구어온 림하영이였건만 누를길없는 오열로 밤깊도록 몸부림쳤었다.

잊혀지지 않는 그밤의 아픔이 오늘로 이어질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 차라리 보내지 않았더라면…)

림하영은 마치도 자기가 아들애를 《침몰》이라는 무시무시한 공포속으로 떠민것 같아 옥죄여드는 가슴을 부여안고 와들와들 떨었다.

알릴듯말듯 울리는 짧은 호출음에 놀란 림하영은 손전화기에 불안스러운 눈길을 박았다. 아까부터 소식이 끊겼던 아들애에게서 다시 통보문이 날아온것이다.

- 살아서 돌ㅇ가ㄹ게. 사랑해요, 엄ㅁ

생의 마지막을 예감한 아들애가 힘겹게 써보냈을 미완성단문들의 마디마디에 흐르는 애정으로 림하영은 가슴이 미여져왔다.

《약한 소리 말랬잖아! 엄마 간다. 견뎌!》

림하영은 움켜쥔 손전화기에 대고 혼신의 힘을 다해 소리쳤다. 응답이 없었다. 그제야 방금 받은것이 통보문이였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발신마저 다시 실패이여서 맥이 스르르 풀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가. 시시껄렁한 소식들로 성가시게 이어지던 택시안의 방송이 별안간 전하는 놀라운 소식에 림하영은 귀를 의심하였다.

《<세월>호 승객 성과적으로 <전원 구조>, 사상최대의 구조》라는 기적같은 소식이였다.

긴가민가 하면서도 실날같은 기대에 소원을 매달며 림하영은 두손 마주 쥐고 간절히 빌었다.

(기적이여, 내 아들을 살려다오.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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