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조선은 정복할수 없는 나라이다
승패가 보인다
2000년에 들어와 부쉬행정부는 집권하자부터 공화국을 힘으로 압살하는것을 정책화하고 조선반도에서 핵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것을 공약한 조미기본합의문을 비롯한 일련의 합의들을 로골적으로 거부하였으며 이전의 조미사이의 공식문건들을 전면 파기하는 행위를 계획적으로, 체계적으로 감행하였다.
공화국을 《악의 축》으로 지명하고 핵선제공격대상에 포함시킨 《핵태세검토보고서》를 공개함으로써 공화국과 조선민족의 안전을 로골적으로 위협해나섰다.
미국의 유일한 목적은 공화국을 억지로 《불법국가》로 몰아붙여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고 압살하려는데 있었다.
조선반도에 조성되였던 이른바 《제2차 북핵위기》가 바로 미국의 이 날조선전에 의한것이였다.
《작은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을 더 잘 믿는다.》는 나치스식교리를 수십년이 지난 오늘까지 써먹으며 정세를 긴장시키는것이 바로 미국의 상투적인 수법이다.
미국은 2002년 10월 《북조선이 우라니움을 리용한 핵개발계획을 시인했다.》고 언론에 류포시킴으로써 조미간 핵대결에 새로운 불을 붙였다.
이미 다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와 관련하여 미국국제정책쎈터의 대조선정책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이며 아시아계획국장인 쎌리그 해리슨은 미국잡지 《포린 어페어즈》 2005년 12월 10일호에 발표한 기고문에서 《피상적인 자료에 기초하여 부쉬행정부는 최악의 씨나리오를 론쟁할 여지가 없는 진실로 제시하였으며(이라크에서 한것처럼) 북조선에 관한 정보를 외곡하였다.》고 폭로하였다. 그는 부쉬행정부가 동맹국들을 깜짝 놀래우고 그들이 북조선에 보다 강한 태도를 취하도록 하기 위해 평양이 핵무기생산용우라니움을 농축하고있다는것을 날조하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부쉬행정부가 조선의 《농축우라니움에 의한 핵무기개발설》을 구실로 취한 긴장격화와 중유공급중단, 제네바합의문의 페기가 동북아시아지역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계획적인 술책이라고 평가하였다.
또한 남조선잡지 《말》 2003년 11월호는 《<체이니와 라이스가 북핵폭로> 연출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지난해 (2002년) 10월 켈리 국무성차관보가 북에 들고간 <조작된 각본>을 작성한자들은 체이니부대통령과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이라고 미국 외교부서의 소식통들은 전했다.》라고 폭로하였다.
사실 그때 조선은 로골적인 위협과 압력을 가하며 오만무례하게 처신하는 미국대통령 특사에게 미국의 가증되는 핵압살위협으로부터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핵무기는 물론 그보다 더한것도 가지게 되여있다는것을 말해주었다.
미국은 공화국의 정정당당한 반격을 《우라니움농축계획》에 대한 《시인》으로 가공하여 여론화하고는 공화국에 대한 핵압력을 증대시키면서 조미기본합의문에서 유일하게 리행되여오던 중유제공마저 중단해버렸으며 국제원자력기구를 사촉하여 국제적인 압박을 가해왔다.
경수로제공을 끝내기로 한 2003년의 시점에서 공화국은 미국이 경수로제공의지를 전혀 가지고있지 않으며 오직 반공화국압살에만 환장이 되여있다는것을 최종확증하였다.
2003년 1월 10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성명이 발표되였다.
성명은 미국의 사촉하에 국제원자력기구가 외곡된 결의를 채택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자주권과 국가의 안전이 극도로 침해당하는 엄중한 정세가 조성된것과 관련하여 조선이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탈퇴한다는것을 엄숙히 선언하였다.
성명은 미국이 1993년 6월 11일부 조미공동성명에 따라 핵위협중지와 적대의사포기를 공약한 의무를 포기한 조건에서 공화국정부는 같은 성명에 따라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기간만큼 일방적으로 림시정지》시켜놓았던 핵무기전파방지조약으로부터의 탈퇴효력이 자동적으로 즉시 발생한다는것을 선언하고 조선이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탈퇴함에 따라 조약 제3조에 따르는 국제원자력기구와의 담보협정의 구속에서도 완전히 벗어난다는것을 선포하였다.
조선의 정부성명은 미국에 대한 폭탄선언이였다. 이러한 결단은 아무 나라나 다할수 있는것이 아니였다. 조선과 같이 자기 힘을 믿는 나라만이 할수 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공화국의 대응조치를 두고 미국내 비평가들은 북조선의 핵문제가 격화되게 된것은 부쉬행정부의 일방주의적인 대북조선압박정책때문이라고 했다.
일부 미고위계층들도 부쉬행정부가 괜히 북조선의 《핵문제》를 터뜨려 사태를 복잡하게 만들고있으며 미국의 체면을 깎아내리고있다,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시급히 북조선과 협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세계 모든 나라 신문, 방송, 통신들은 조선이 취한 조치를 긴급보도, 최대뉴스로 전하면서 북조선의 초강경조치로 하여 초대국인 미국은 점점 벼랑끝으로 몰리우고있다고 평했다.
그 어떤 압력과 공갈에도 주저없이 핵대국들의 리익만을 담보하는 불공정한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용약 탈퇴한것은 조선의 자주권의 시위였고 드팀없는 의지를 과시한 일대 사변이였다.
2003년 4월 12일 조미간의 량자회담이냐 다자회담이냐 하는 문제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있을 때 조선은 주동적으로 《미국이 핵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대조선정책을 대담하게 전환할 용의가 있다면 우리는 대화의 형식에 크게 구애되지 않을것》이라는 립장을 밝히고 주동적으로 6자회담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핵문제해결을 위해 시작된 6자회담에 참가하였어도 회담진행에 발만 잠그었을뿐 실질적인 문제해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회담을 공화국을 압살하기 위한 하나의 공간으로 악용하려고 획책하였다.
재미동포학자가 글에서 분석한것처럼 지난 20년동안 미국이 공화국을 상대로 진행해온 4자회담과 6자회담은 물론이고 량자회담도 공화국을 붕괴시키고 남측주도의 《흡수통일》을 추구하기 위한 기만술책에 지나지 않았던것이다.
미국은 자기의 목표는 《북조선의 핵무기계획을 가시적인 검증에 의해 완전하게 불가역적으로 제거하는것(CVID)》이며 《북조선이 핵계획을 포기한 다음에야 관계정상화를 목표로 한 미싸일, 상용무력, 위조화페, 마약거래, 테로, 인권, 랍치 등의 문제들에 대한 쌍무대화를 할수 있다.》면서 조선에 대한 황당무계한 고압적자세로 일관함으로써 회담진행에서의 난관과 장애를 조성하였다.
조선의 핵억제력을 공짜로 빼앗아내 무장해제시키고 제도전복을 실현하려는 극히 야심적이고 날강도적론리에 공화국은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기초한 《동결 대 보상》이라는 신축성있고 공명정대한 제안으로 대응해나갔다.
미행정부는 2005년에 들어와 공화국을 《폭정의 전초기지》로 마구 지칭하고 《자유와 민주주의확산》을 떠들면서 군사적으로 압살할 기도를 공공연히 드러내놓았다.
당시 미국의 대조선공세는 위험수위를 훨씬 넘어서고있었다.
미국의 대이라크전략의 사례를 보면 《정치공세를 통한 정치적고립 → 경제제재 등 봉쇄 → 전쟁》의 순서를 밟았다. 조선에 대해서도 미국은 총체적인 정치공세를 가하면서 봉쇄작전을 더욱 강화하고있었다.
미국은 《북조선인권법안》, 유엔의 《북조선인권결의안》, 《민주주의증진법》 등을 통해 조선에 대한 모략적인 정치공세를 강화하고있었다. 즉 《북조선인권문제》를 제기하여 국제사회에서 조선을 고립시키려고 하는 한편 이미전부터 시작하였던 조선의 《숨통을 조르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경제봉쇄전략을 감행하기 시작하였다.
그뿐이 아니였다. 부쉬는 재선되자마자 초정밀스마트탄인 《제이댐》을 동원한 최초의 해상정밀타격훈련을 가졌고 남조선의 광주에 이어 인천에 패트리오트미싸일기지를 설치하였으며 2005년에 들어서자마자 미군 1만 7 000명이 참가하는 미국남조선합동군사연습을 전개하는 등 무력시위 또한 강화하고있었다. 여기에다 공화국의 핵과 미싸일문제를 제기하면서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 대량살상무기의 국제적확산을 막기 위해 2003년 6월 미국주도로 발족한 제국주의련합세력의 협력체제)를 통해 새로운 미국중심의 일방주의적동맹체제를 구축하고 조선에 대한 불법적인 해상봉쇄를 강행할 움직임까지 보이고있었다.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6자회담을 통한 대화로 북핵문제를 해결하겠다. 북에 대한 공격의사는 없다.》고 말하고있었지만 동시에 조선에 대한 체제붕괴를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무모한 위협과 무력시위를 전개하고있었던것이다.
사실 이러한 미제의 광란적인 소동은 강자의 위세가 아니라 약자의 허세였다.
제2기에 들어선 부쉬행정부는 1기출범때부터 4년동안 강행해온 대조선적대시정책이 기대한만큼 효과적이지 못한데 매우 당황해하고있었으며 다급해진 나머지 도발적인 공세로 나오고있었던것이다.
만약 부쉬행정부의 도발적공세에 밀려 주춤거리거나 뒤로 물러서 방어나 하겠다는 립장에 선다면 보다 엄중한 국면이 초래될수 있는 시기였다.
정세는 조선이 민족과 인류의 운명을 책임지는 립장에서 민족의 존엄을 지키고 전쟁과 평화를 담보할수 있는 결정적인 조치를 취할것을 요구하고있었다.
《대화》를 통한 해결이란 그럴듯한 말로 내외여론을 기만하고
결국 조선은 날로 가중되고있는 미국의 고립압살책동과 핵전쟁의 위협으로부터
2005년 2월 10일 외무성성명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핵보유선언인 동시에 6자회담참가에 대한 조선의 명백한 립장과 조건을 밝힌것으로 하여 국제사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련이어 그해 3월 31일 조선은 외무성 대변인담화를 통해 다음과 같은 세가지 내용을 중점적으로 밝혔다.
그것은 첫째로, 조선이 핵무장을 하게 된 리유는 전적으로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때문이며 둘째로, 조선이 핵억제력으로 무장한 조건에서 6자회담은 마땅히 군축회담으로 되여야 하며 셋째로, 6자회담은 2차대전이후 60년만에 동북아시아질서를 다시 론하는 장으로 되여야 한다는것이였다.
국제사회는 외무성 대변인담화를 놓고 조선이 1998년 8월 인공지구위성 《
남조선의 전반적민심도 공화국의 핵억제력보유를 자연스러운것으로 받아들이였다. 지난 1993년 조선이 핵무기전파방지조약탈퇴를 선언했을 때 남조선에서는 주식가격이 대폭 떨어지고 투자가 위축되는가 하면 주민들이 전쟁에 대비하여 비상식량을 무더기로 사들이는 등 대혼란이 일어났다. 그러나 2월 10일 외무성성명이 나간 후 남조선의 주식시장이나 금융시장에서 변동이 거의 없었으며 전반적인 사회여론도 크게 떠들지 않고 《평온한 분위기》를 유지하였다.
이것은 중요하게는 남조선의 각계층 인민들속에서 《북의 핵억제력은 조선반도평화를 보장하고 민족의 운명을 지키기 위한것》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는것과 관련되였다.
이렇게 조선은 아무도 내다보지 못한 때에 이전에는 볼수 없었던 전격적인 초강경공세로 부쉬행정부를 맹렬히 타격하기 시작했던것이다.
동북아시아의 단독패권국가로 인식되였던 미국이 이제는 더이상 패권국가가 아니라는것이 판명되였다. 미국이 동북아시아의 단독패권국가였던 시절은 2005년 2월 10일로 이미 종말을 고하고말았다.
세계《유일초대국》을 참망하는 미국은 반제반미투쟁의 선봉에 선군핵억제력이란 홰불을 들고 존엄있게 서있는 조선과의 의지의 전쟁에서 여지없이 패하고말았던것이다.
2006년 3월 31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변인은 부쉬일당이 《국가안보전략보고서》라는데서 또다시 공화국을 《선제공격대상》으로 지목한것과 관련하여 조선중앙통신사 기자가 제기한 질문에 대답하면서 다음과 같은 립장을 밝혔다.
《우리에게는 압력이 고조될수록 에돌지 않고 정면으로 맞받아나가는 우리 식의 전통적인 투쟁방식이 있으며 미국에 대해서도 오직 이런 방식으로 대처해나갈것이다. 선제공격은 결코 미국의 독점물이 아니다.》
공화국이 천명한바와 같이 공화국의 강유력한 혁명무력은 미국의 있을수 있는 선제공격에 대처할수 있는 모든 대응책을 세워놓았던것이다.
2009년 인공지구위성 《
조미사이의 군사적대결에서 누가 승리할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미국이 거듭 진행해온 《전쟁게임》을 통해 이미 주어져있었다.
《전쟁게임》은 1644년 프로씨아의 베크만이 고안하여 왕조의 전술병법훈련목적으로 사용했던 서양식장기로부터 유래되여 지도상게임을 거쳐 콤퓨터를 활용한 현대의 대규모게임으로 발전해왔다. 일반적으로 《싸웠을 때 어느쪽이 이기는가.》를 알아볼수 있는 수단이다.
미국은 이미 만들어져있는 작전계획씨나리오에 따라 이것을 《팀 스피리트》와 《포커스 렌즈》전쟁연습들에서 널리 사용해왔다.
미국이 공화국과 싸우는 경우 어떻게 될것인가에 대하여서는 일부 《전쟁게임》의 결과에 대하여 공개한 언론자료들이 보여주고있다.
미국잡지 《뉴스위크》 1993년 11월호가 전한데 의하면 부쉬1세의 집권시기인 지난 1990년 당시 남조선강점 미군사령관 리스카시가 미국본토에 있는 전문연구기관에 의뢰한 분석용《전쟁게임》결과 오는 1997년에 조미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경우 1~2주만에 서울이 함락되는것으로 판명되여 내외여론의 파문을 일으켰다.
미국신문 《워싱톤 포스트》 1993년 12월 12일부에 의하면 부쉬1세의 후임으로 백악관을 차지한 클린톤은 취임하자마자 《작전계획 5027》을 재검토하도록 하였다. 미합동참모본부는 콤퓨터모의시험을 진행하고 1993년 12월 10일 그 결과를 클린톤에게 제시하였는데 이에 클린톤은 경악하지 않을수 없었다고 한다.
콤퓨터모의시험결과에 의하면 공화국과 전쟁을 하는데는 적어도 미군 총병력의 2분의 1이 필요하며 만전쟁과 맞먹는 54만명의 병력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되고 매우 치렬한 전투가 적어도 120일동안 계속된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이 예측도 천진란만한것이라고 하였다.
이 콤퓨터모의시험결과는 공화국측에 중국이 협동하지 않으며 로씨야도 지원을 주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미국방성이 가지고있는 세계1등급의 초고속콤퓨터가 계산해낸것이였다고 한다.
남조선잡지 《시사져널》 2003년 4월 24일호에 의하면 이라크전쟁이 한창이던 2003년 3월 25일부터 27일까지 하와이의 호노룰루에서 태평양지역 미군사령부와 미국방대학산하 국가전략연구소가 주최한 토론회가 진행되였다고 한다.
2년에 한번 비공개로 열리는 이 토론회에는 태평양지역 미군사령관을 포함한 미군부의 최고위급인사들과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안보전문가들이 참가하였다. 토론회 첫날의 주제가 북핵문제였는데 당시 회의에 참가했던 해외의 안보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미군부의 최고위급인물은 북이 미국의 선제공격대상이 될수 있지만 《그러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였다고 한다.
그 리유는 북이 이라크와 달리 대량보복능력을 가지고있어 저들에게 치명적타격을 가할수 있다는것이였다.
조미대결의 결과에 대하여 분석한 미국내 전문가들의 발언들은 이것을 증명해주고있다.
2003년 11월 남조선 《KBS》방송에 의하면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 마이클 오헨론은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미군이 이라크에서보다 10배이상의 피를 흘리는 어려운 전쟁이 될것이라고 주장하였다고 한다.
2005년 5월 3일 미합동참모본부 의장 마이어즈는 미국회에 보고한 비밀문서에서 우리와의 군사적대결을 념두에 두고 미군이 새로운 전쟁을 치를 경우 계획대로 승리하지 못할것이라고 밝혔다.
백악관과 국방성을 뒤흔든 마이어즈의 이 발언은 퇴임을 앞둔 시점에서 한것으로서 비교적 솔직한것이라고 볼수 있다.
미국무장관이였던 포웰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조선전쟁만은
미국두뇌집단 헤리티지재단의 국가안전담당 연구원 리챠드피도 《이제 미국의 심장부에 무서운 핵폭탄이나 탄도탄을 날려보낼 유일한 적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그마한 반도의 북쪽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전쟁에서 무기가 결정권을 가진다는 《무기만능론》이 인류전쟁사의 수천년을 지배하여왔다는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근대로부터 조선전쟁시기까지의 세계전쟁사의 페지만을 번져보아도 그렇게 말할수 있다. 영국의 《함대우세론》, 히틀러의 《땅크우세론》, 미국의 《항공우세론》이 그에 대한 실증으로 된다고 본다.
그러나 조선은 벌써 1950년대 조선전쟁에서 이것을 부정하였다.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통치로부터 해방된지 얼마안되며 무기도 매우 부족하였지만 사상정신력이 전쟁에서 결정적인 힘이 되여 미국의 대포와 땅크, 함선과 비행기를 짓부셔버리는 군사적기적을 창조하였다. 조국해방전쟁승리는 전쟁의 운명은 무기가 결정하는것이 아니라 사상정신력이 결정한다는 진리를 처음으로 깨우쳐준 력사적사변이였다.
그때에 벌써 조선은 사상정신력으로 미국의 《무기만능론》을 무릎꿇게 하였던것이다.
새 세기에 들어와 조선이 핵에는 핵으로라는 정의의 선택을 함으로써 세기를 이어온 조미대결의 승패는 이미 불보듯 명백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