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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선은 정복할수 없는 나라이다

 

 

조미핵대결의 승리

 

 

2014년 10월 남조선의 《련합뉴스》에 의하면 이전 미국무성고위관리였던 갈루치가 조선의 핵무기를 《파괴할수는 결코 없다.》고 하면서 조선반도핵문제를 풀기 위한 조건없는 대화필요성을 거듭 제기했다고 한다.

갈루치는 죠지타운대학교의 대학원 원장이라는 직함보다 《북핵대사》로 더 유명한 인물이다. 그것은 그가 1994년 10월 조미기본합의문 채택당시 미국측 대표였기때문이다.

2014년 10월 10일 서울에서 열린 국제학술토론회에서 그는 《한반도평화통일, 어떻게 만들것인가? : 제네바합의이후 20년의 교훈과 과제》라는 주제의 글을 발표하였다고 한다.

갈루치는 글에서 《조선의 핵무기와 탄도미싸일프로그람은 활발하고 증가중》이며 조선은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탈퇴하였기때문에 이 조약당사국도 아니라고 하면서 지난 20년동안 조선의 이른바 《핵위협》을 《완화》시키기 위한 미국과 남조선의 정책은 실패로 돌아갔다고 피력하였다고 한다.

갈루치의 말대로 미국은 지나간 20여년동안의 조미핵대결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가를 곰곰히 돌이켜보아야 할것이다.

조미핵대결의 지나간 20여년중에는 저들이 산생시킨 《북핵문제》로 하여 패배의 쓴맛을 보지 않으면 안되였던 조미회담과정도 있다.

조미핵대결의 출발선에서 공화국이 미국의 면전에 대고 어떤 통장훈을 불러왔는지 돌이켜보자.

미국의 핵독점전략은 세계지배전략의 운명을 결정하는 기본적인 기둥의 하나이다. 이 핵독점기둥을 떠받치고있는 기초가 바로 핵무기전파방지조약이다. 공화국의 조약탈퇴선언으로 하여 이 기초가 뒤흔들리게 되였다.

핵무기전파방지조약 10조 1항에 의하면 《당사국의 주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본 조약상의 문제에 관련되는 비상사태가 자기 나라의 최고리익을 위태롭게 하고있음을 결정하는 경우에는 본 조약으로부터 탈퇴할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각 당사국은 탈퇴통고를 3개월전에 모든 조약당사국과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 행한다.》고 되여있다.

조선은 이 조항에 의거하여 미국의 핵사찰압력을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간주하고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의 탈퇴를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진행하였다.

그런데 미국의 립장에서 보면 조선의 조약탈퇴는 저들의 핵독점전략에 파렬구를 낼수 있는 위험한 사태가 아닐수 없었다.

1993년 3월의 15일대전을 통하여 미국은 그러한 사태에 대처할수 있는 대응책이 유감스럽지만 조선과의 회담에 나서는것뿐이라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조선핵문제》와 관련한 조미회담은 이렇게 시작되였다.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1993년 6월 2일 뉴욕 유엔미국대표부건물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교부(당시) 제1부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공화국정부대표단과 미국무성 정치 및 군사담당 차관보를 단장으로 하는 미합중국정부대표단사이에 제1단계 조미회담이 진행되였다.

조미회담 첫날 미국측은 어리석게도 조선을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 복귀시켜보려고 부당한 요구조건을 내대고는 조선이 《운명의 갈림길》에 놓여있다고 하면서 조약복귀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북조선은 비극적인 사태》에 처하고 《불행한 일》이 일어나게 될것이라고 위협해나섰다. 이것은 조선땅에서 《제2의 페르샤만전쟁》을 일으키겠다는 강도적인 협박이였다.

조선측은 만약 미국이 미싸일로 조선을 건드린다면 조선도 그에 맞받아칠 준비가 되여있다는 각오로 미국과 대결하였다.

후날 이에 대하여 세계여론들은 《…사실 뉴욕조미회담을 며칠 앞둔 5월 29일 조선은 태평양상에 있는 괌도와 하와이주변을 향하여 미싸일을 성과적으로 발사하였다. 미국의 강권외교의 상징인 <토마호크>순항미싸일이나 미국이 자랑하는 <패트리오트>요격미싸일보다 속도가 몇배나 더 빠르고 명중률이 높은 조선의 미싸일의 성능을 정찰위성을 통하여 알게 된 미국으로서는 심사숙고하지 않을수 없었다.》라고 떠들었다.

미국은 조선은 확실히 이라크와 전혀 다르며 협박식외교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것을 재삼 깨닫게 되였다.

그러자 미국측은 이번에는 조선측에 조약탈퇴를 철회하고 국제원자력기구의 전면사찰을 받아들이면 조미사이의 현안문제도 토의할수 있고 경제협력문제와 나아가서 외교관계설정문제도 론의할수 있다고 달콤한 말로 양보를 받아내려고 하였다.

이것은 미국이 외교관계를 맺는것을 일방이 타방에게 베푸는 그 무슨 혜택처럼 값을 높이고 그 대가로 조약복귀를 받아내는 흥정판을 벌리자는것이였다.

미국의 실무적론리에 조선측은 정치적론리로 맞대응하였다.

조선측은 핵문제가 발생하게 된 근본원인이 조선의 사회주의제도에 대한 압살을 노리는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과 핵위협책동에 있다는것을 사리정연하게 밝히면서 미국의 이러한 대조선적대시정책이 근본적으로 시정되지 않는 한 핵문제토의에서는 아무런 전진이 있을수 없다는것, 정책문제에서의 조절과 합의가 선행되는것이 문제토의의 출발점으로 되여야 한다는것을 강하게 들이대였다. 그러면서 미국이 조선의 사회제도에 대한 압살정책과 적대시정책을 그만두고 핵위협을 하지 않겠다는것을 담보하라, 그러면 우리도 제 할바를 하겠다, 이렇게 정책적으로 서로 공약하고 실천하면 되는것이지 다른것이 있겠는가고 들이대였다.

조선측의 사리정연한 주장에 대하여 미국측은 그에 맞설 《론거》를 내놓지 못하였다.

조선의 강경하고 원칙적인 자세앞에서 압력과 회유로 굴복시켜보려던 미국의 기도는 파탄되고말았다.

50시간 가까운 치렬한 대결끝에 제1단계 조미회담은 조선의 핵무기전파방지조약탈퇴가 유예기간인 90일이 이미 흘러 자동적으로 효력을 발생하기 하루전인 1993년 6월 11일 조미공동성명의 발표로 막을 내렸다.

공동성명에는 조미쌍방이 합의한 원칙들로서 핵무기를 포함한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이러한 무력으로 위협도 하지 않는다는것, 전면적인 담보적용의 공정성보장을 포함하여 조선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와 안전을 보장한다는것, 상대방의 자주권을 호상존중하고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것, 조선의 평화적통일을 지지한다는것이 밝혀졌다. 또한 이러한 원칙들에 준하여 조미 쌍방정부들은 평등하고 공정한 기초우에서 대화를 계속하기로 합의하면서 이와 관련하여 조선정부는 핵무기전파방지조약으로부터의 탈퇴효력을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기간만큼 일방적으로 림시 정지시키기로 하였다는것이 지적되였다.

뉴욕조미공동성명의 채택으로 공화국은 세계제일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진 《유일초대국》을 대상으로 하여 옹근 하나의 전쟁을 치르고도 얻기 힘든 전과를 총 한방 쏘지 않고 거두어들이였으며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과 핵압살책동을 좌절시키고 핵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였다.

제2단계 회담은 1993년 7월 14일부터 19일까지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진행되였다.

1단계 조미회담에서 주도권을 쥐지 못하고 끌려만 다니다가 저들의 요구를 실현시키지 못한 미국은 2단계회담을 앞두고 회담에서 어떻게 하나 조선의 양보를 받아내는데 유리한 조건을 마련해보려고 조선에 대한 대대적인 압력소동을 벌렸다.

미국대통령 클린톤은 제2단계 조미회담을 앞둔 때인 1993년 7월 일본 도꾜에서 있은 기자회견에서 《북조선이 핵무기를 개발하여 사용할 경우 미국은 압도적으로 보복할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국가의 종말을 의미하게 될것이다.》고 도발적인 폭언을 늘어놓았다.

클린톤은 남조선행각때 력대 미국대통령들가운데서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에까지 나와 《북조선이 전쟁을 일으킨다면 미국은 북조선을 파괴할것이다.》고 하면서 전쟁망발을 늘어놓았다.

뉴욕회담이 핵문제와 조미사이의 현안문제들을 해결하는데서 나서는 원칙들을 제시한 회담이였다면 제네바회담은 그 리행을 위한 실천적대책들을 마련하기 위한 회담이였다.

조선측은 기본문제토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미국측에 클린톤을 비롯한 고위계층에서 조선을 위협하는 도발적인 망언들을 늘어놓은데 대하여 정치적으로 크게 문제시함으로써 기고만장하던 미국의 기를 꺾어놓았다.

회담벽두부터 미국을 수세에 몰아넣어 자기의 주장을 실현하는데 유리한 환경을 마련한 조선측은 경수로방안을 내놓고 그 실현을 위한 집중공세를 벌리였다.

조선의 제안은 공화국의 비핵화의지와 핵활동의 투명성을 더욱 확증하고 조선에 핵무기개발의향이 전혀 없다는것을 명백히 보여준 제안이였다.

전혀 예측 못했던 조선측의 혁신적이며 공명정대한 제안에 의하여 미국이 들고나온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제안은 순간에 무너지고말았으며 조선의 제안을 지지환영하지 않을수 없었다.

미국측이 공화국을 핵전파방지조약에 묶어두기 위해서는 공화국이 제의한 경수로방안을 외면할수 없었다. 때문에 회담에서의 근본적인 대치점은 미국의 경수로제공에 대한 담보문제와 조선과 국제원자력기구사이의 협상에 관한 문제였다.

미국측은 조선과 기구사이의 협상이 없이는 경수로문제에 대한 확답을 줄수 없다는 저들의 립장을 계속 고집하였다.

그러나 조선측의 타당성있는 론거와 강한 주장앞에 그 어떤 양보도 받아내지 못한다는것을 깨달은 미국은 경수로제공에 대한 주장을 하는수없이 받아들이게 되였다.

1993년 7월 19일 제네바에서는 핵무기를 포함한 무력을 사용하지도, 위협도 하지 않는다는것을 담보하는 원칙을 재확인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경수로를 제공하는 문제, 국제원자력기구의 담보를 공정하게 적용하는 기초우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담보와 관련한 현안문제와 기타 문제들에 관한 국제원자력기구와의 협상을 빠른 시일에 진행할데 대한 문제들이 밝혀져있는 보도문이 발표되였다.

공화국은 2단계 조미회담에서 다시한번 미국의 항복을 받아내였으며 핵문제해결과 조미관계개선에 유리한 조건을 마련하였다.

그후 공화국정부는 조미간의 합의사항들에 지적된 의무를 성실히 리행하였다. 국제원자력기구사찰단을 제기일에 받아들이였고 신고된 대상들에 대하여 담보련속성보장에 충분한 범위의 사찰활동을 진행할수 있도록 모든 조건을 보장해주었다.

그러나 미국은 빈말만 하였을뿐 자기의 의무를 어느것 하나 리행하지 않았다. 도리여 공화국에 대한 강도높은 군사적압력을 가해왔는가 하면 국제원자력기구 서기국을 사촉하여 공화국을 반대하는 《결의》채택놀음을 벌리였다.

조미사이에는 1대1의 정치군사적 및 외교대결전이 펼쳐졌다.

미국은 실무접촉에서 공화국의 원칙적이고 강경한 주장앞에 일괄타결방식을 받아들이기도 했으나 돌아앉아서는 약속을 완전히 뒤집고 국제원자력기구의 전면사찰요구수용을 압박했으며 핵활동과 인연이 없는 2개의 군사대상에 대한 《특별사찰》문제를 또다시 들고나왔다.

조선은 이에 대처하여 미국이 조미회담을 하지 않겠다면 우리도 구태여 회담할 생각이 없으며 미국이 그 어떤 방도를 선택한다면 우리도 그에 맞는 대응방도를 선택할것이라는 단호한 립장을 표명하였다. 이어 1994년 5월 5MW시험원자력발전소의 로심연료봉교체작업을 강행하였으며 6월에는 국제원자력기구 관리리사회가 조선의 군사대상들을 개방할것을 요구하면서 조선에 대한 《기술협조》를 중단할것을 공포한 《제재결의》에 대응하여 국제원자력기구에서 즉시 탈퇴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였다.

조선의 국제원자력기구탈퇴조치는 《조선핵문제》를 집요하게 걸고들면서 분별없이 날뛰여온 미국과 그 추종세력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타격을 안긴 단호한 조치였으며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수호한 결정적인 자위적조치, 조선의 주체적인 핵동력공업을 그 어떤 구속도 받음이 없이 자유롭게 발전시킬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현명한 조치였다.

공화국의 단호한 립장과 국제원자력기구에서의 탈퇴로 하여 궁지에 몰린 미국은 핵무기전파방지조약이 파기되는것이 두려워 대통령특사로 전 대통령 카터를 평양에 보내여 조미대화의 문을 두드리지 않을수 없었다.

그리하여 전쟁직전에 이르렀던 조선반도정세는 순간에 완화의 길에 들어서게 되였으며 조미회담의 새로운 국면이 열리였다.

그후 1994년 8월부터 10월사이에 제3단계 조미회담이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2차에 걸쳐 진행되였다.

제1단계와 제2단계 회담은 조미쌍방이 서로 핵문제와 관련한 원칙적립장들을 밝히고 큰 선에서 협상의 테두리를 확정한 과정이였다면 제3단계 회담은 핵문제를 일괄타결하기 위하여 쌍방이 각기 실제적으로 가닿아야 할 종착점들을 확정하고 그 실현에서 나서는 실무적문제들을 합의하여 회담을 결속짓는 과정이였다.

제3단계 1차회담은 관례에 따라 제네바주재 조미 쌍방대표부들에서 번갈아 가며 모두 40여시간에 걸쳐 공식 및 비공식적으로 진행되였다.

미국측은 회담 첫시작부터 조선을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 얽어매놓고 기어이 압살하려는 음흉한 기도밑에 조선측이 받아들일수 없는 제안만을 회담탁우에 올려놓았다.

미국은 조선의 핵활동을 영구동결하라고 하면서 그를 위하여 조선의 평화적핵활동을 완전히 중단시킬데 대한 5가지 항목을 내놓고 그것을 두달동안에 실행하라는 강도적인 요구를 들고나왔다. 그렇게만 하면 미국은 저들이 경수로제공담보도 주고 보상대책도 점차 강구해나가며 외교관계설정문제도 단계적으로 추진해보겠다는 식으로 조선측을 적당히 얼려넘기려고 하였다. 이것은 조선이 먼저 핵동결을 하면 그에 따른 보상을 생각이나 해보자는 식의 음흉한 제안이였다.

미국측의 이러한 일방적이며 부당한 제안은 조선측의 강경한 립장에 의하여 실현되지 못하였다.

공화국대표단은 미국측의 부당한 요구를 일축해버리고 공약에는 공약으로, 행동에는 행동으로 대처한다는 립장을 확고히 견지하면서 경수로제공담보와 보상담보를 받아내는데 중심을 두고 사리정연한 론거로 미국을 피동에 몰아넣었다.

그리하여 며칠간의 치렬한 론전끝에 경수로제공담보와 보상담보를 문건으로 고착시킬데 대한 조미합의성명이 채택되였다.

합의성명을 통하여 조선은 핵무기전파방지조약의 성원국으로 남아있을 용의를 표시한것 하나를 가지고 미국으로부터 경수로제공담보와 대용에네르기보상, 조미사이의 전반적정치, 경제관계의 개선공약, 조선에 대한 핵위협제거의 담보를 받아냈다.

3단계 1차조미회담결과가 발표되자 미국과 일본, 서유럽나라들 그리고 남조선의 출판물들은 《대미교섭에서 올린 북조선의 득점은 김정일외교의 커다란 승리》, 《북조선 새 지도부의 첫 대미외교에서의 성공작》 등의 표제들을 달고 조선의 승리를 대서특필하였다.

미국신문 《뉴욕 타임스》는 《제네바합의는 평양 새 지도부의 명예를 훼손시켜보려던 워싱톤과 서울 매파들의 기도를 꺾어놓았다.》고 강조하였으며 영국의 BBC방송은 《외교에서는 북조선이 득점한셈이다. 제네바합의는 분명히 북조선의 커다란 승리이다.》라고 전하였다.

지어 미국의 한 신문은 회담결과를 론평하면서 《미국은 유일초대국이지만 북조선에 대해서는 압력을 가할만 한 힘이 없다. 이렇게 놓고보면 결국 미국과 함께 북조선도 세계적인 강국이 된셈이다.》라고 지적하였다.

참으로 3단계 1차조미회담은 조선의 존엄과 대외적권위를 비상히 높였으며 경수로문제를 핵문제해결의 관건적요소로 눌러놓고 미국이 경수로를 책임지고 보장한다는 의무를 지워놓음으로써 앞으로 미국이 이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을수 없게 주객관적환경을 마련해놓았다는데 그 의의가 있었다.

제3단계 2차조미회담은 1994년 9월 23일부터 10월 21일까지 근 한달동안이나 진행되였다.

조선대표단은 미국측이 경수로공약을 실천에 옮기도록 하기위한 행동조치들을 확정하고 그것을 동시행동의 원칙에서 구체적으로 맞물려놓기 위한 방향에서 회담에 진입하였다.

지금까지 조미회담에서 계속 일방적인 양보만을 했다고 국내의 비난을 받아온 미국측도 이번 회담에서만은 기어이 조선의 양보를 받아내려고 안깐힘을 다하였다.

그리하여 회담은 첫시작부터 치렬한 대결전으로 번져졌다.

회담이 얼마나 간고하게 벌어졌는가 하는것은 한달동안에 무려 120여시간에 걸쳐 40여차례의 전원회담과 단장접촉, 실무협상이 진행되였으며 미국측 단장이 회담도중 두번씩이나 워싱톤에 갔다오지 않으면 안되였다는 사실 그리고 회담이 어려운 고비들을 수없이 넘기면서 때로는 교착상태에 빠지기도 하고 지어는 결렬될번 한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는 사실들이 잘 말해주고있다.

미국측은 회담이 시작되자 안팎으로 조선을 위협하면서 저들의 요구조건을 실현해보려고 하였다.

미국은 조미회담과 시기를 맞추어 조선반도주변에 방대한 무력을 집중시키며 군사적소동을 벌리였으며 강경보수세력들은 《조미협상이 미국의 요구대로 타결되지 않을 경우 북조선에 대해 군사력을 사용할것》이라고 공공연히 위협해나섰다. 그리고 유엔과 국제원자력기구는 공화국에 《특별사찰》을 촉구하는 《결의》들을 채택하였고 남조선당국과 일본은 조선이 《특별사찰》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경수로를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고 떠들었다.

조선측은 미국측의 강도적인 요구에 대처하여 즉시 반격으로 넘어갔다.

조선대표단은 《특별사찰》은 꿈도 꾸지 말라, 과거해명은 우리도 하자는것인데 그러자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예측할수 없으며 그런 조건에서 우리는 그대로 앉아있을수 없다, 그 기간에 우리는 우리대로 자기의 독자적인 핵활동을 계속하지 않을수 없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조선측의 강경한 제안에 미국측에서는 혼란이 일어나고 론쟁이 분분하였다. 그들앞에는 과거가 중요하냐, 현재, 미래가 중요하냐 하는 문제가 나섰던것이다. 미국은 과거해명은 뒤로 미루더라도 그보다 더 중요한 현재와 미래를 막지 않으면 안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였다.

미국은 《특별사찰》을 통하여 과거해명이 선행되여야 경수로계약을 체결할수 있다고 하던 종전의 립장에서 대폭 후퇴할수밖에 없었다.

조선측은 완강한 투쟁을 벌리여 미국이 매해 50만t의 대용에네르기를 보상하도록 만들어놓았다.

결국 한달가까이 진행된 회담에서 조선대표단은 자기의 요구를 관철함으로써 3단계 조미회담을 승리로 장식하였다.

1994년 10월 20일 미국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지도자》라고 최대의 존경을 표시하면서 그이께 경수로제공과 대용에네르기보장을 담보하는 미합중국 대통령 클린톤의 담보서한을 드리였다.

국교관계도 없는 적대국이며 조선을 압살하려고 기승을 부리던 미국으로부터 대통령의 담보서한을 받아낸것은 반만년민족사에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는 력사적사변이였다.

미국대통령 클린톤이 담보서한을 보내온 다음날인 10월 21일에 조미기본합의문이 발표되였다.

조미기본합의문에서 조선이 흑연감속로와 그 관련시설들의 동결과 해체, 비핵화의지표명, 핵전파방지조약복귀를 담보한 대가로 미국은 2003년까지 총 200만kw발전능력의 경수로발전소(약 40억US$)제공과 매해 50만t의 중유납입, 무역 및 투자장벽의 완화와 련락사무소 설치, 국가관계수립 등을 약속하였다.

조미기본합의문의 채택으로 근 1년 반에 걸쳐 진행된 격렬한 조미회담들에서 론의되여오던 모든 문제들이 최종합의되고 20세기말의 조미핵대결전은 조선의 승리로 빛나게 결속되게 되였다.

그것은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과 핵압살책동을 좌절시키고 핵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수 있는 기초를 마련한 력사적사변이였다.

미국대통령의 담보서한을 받아내고 조미기본합의문이 채택됨으로써 《유일초대국》으로 자처하던 미국의 오만성은 여지없이 꺾어지고 공화국의 존엄과 위력이 온 세상에 과시되게 되였다.

조미기본합의문이 채택된것과 관련하여 전세계는 《가장 큰 승리는 북조선》, 《북조선의 외교적승리》, 《조선이 100% 승리한 문건》이라고 격찬하였으며 미국신문 《뉴욕 타임스》는 《제네바조미협상에서 가장 큰 승리는 북조선의 김정일령도자가 거두었다.》고 지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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