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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선은 정복할수 없는 나라이다

 

 

남조선을 공화국을 점령하기 위한 발판으로 전변시킨 미국은 조선전쟁이후부터 《친미적인 통일》을 실현할 때까지 정전체제를 유지하는것을 대조선정책으로 규정하였다.

미국은 공화국을 적으로 규정하고 공화국의 자주권과 제도를 뒤집어엎으려는 목적밑에 반공화국고립압살책동을 더욱 가증시켜왔다.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은 공화국에 대한 핵공갈을 통하여 더욱 악랄해졌다.

지난 70년동안 미국이 악랄하고 극악한 대조선적대시책동에 매달려왔지만 매번 차례진것은 쓰디쓴 참패뿐이였다.

조국해방전쟁은 물론 그후에 일어난 《푸에블로》호사건 등 미국이 조작한 반공화국모략사건들은 언제나 미국이 공화국에 사죄하고 항복서에 도장을 찍는것으로 막을 내리였다.

미국이 범하고있는 잘못된 대조선적대시정책과 반공화국압살책동들의 비참한 결과들은 미국이 절대로 조선을 정복할수 없다는것을 여실히 증명해주고있다.

 

 

패전의 력사를 쓰게 한 조선전쟁

 

1950년 6월 25일.

38°선 전역에서 남조선군의 공화국침공으로 시작되였으며 미군의 대량투입으로 본격화되고 대규모전쟁으로 확대된 조선전쟁은 미국의 뿌리깊은 대조선적대시정책의 적극적인 실천이였다.

우리 민족에게 그처럼 크나큰 재난과 불행을 강요한 3년간의 전쟁은 철두철미 미국의 대아시아전략집행을 위하여 미리부터 계획된것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 전쟁이 북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되였다고 외곡선전하여왔다.

이것은 도적이 매를 드는것과 같은 궤변이다.

미국대통령 트루맨은 당시 조성된 대내외정황의 난국으로부터의 출로를 새 전쟁도발에서 찾고있었는데 1950년 1월초에 이러한 전쟁도발의 지점으로서 조선반도를 지목하고 전쟁도발을 위한 계획을 기안제출하도록 관계부처에 명령하였다. 이 명령에 따라 진행된 미국무부와 미합동참모본부의 련합모의에서는 《한반도에서 벌리는 투쟁이 파격적인 제3차 세계대전으로 점화될지도 모른다.》는데 의견을 모았고 총체적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할 경우에 취해야 할 특정한 행동을 지시하고 지지하는데 도움이 될 새로운 세계질서(전략적개념)에 대하여 일정한 기본과업을 확립하였다.》(《뉴욕 타임스》 1964년 4월 13일부)

그리하여 이 계획은 1950년 4월 2일 미국가안전보장회의의 검토비준후 그 략칭인 《NSC》에 암호수자 68을 달아 마침내 비밀전략계획으로 완성되였던것이다.

미국은 이와 같은 비밀전략계획에 따라 6. 25전쟁을 도발하고 그것을 밀고나갈 구체적인 방향도 최종적으로 확정하였으며 리승만《정권》으로 하여금 극비밀리에 전쟁준비를 추진하게 하였다. 그리고 전쟁도발직전인 1950년 6월 18일에는 덜레스가 직접 38°선 《국군》진지에 나타나 《제군이 제군의 힘을 시위할 날은 멀지 않았다.》(미국력사학자 메이야 저 《아메리카현대사》)고 《국군》을 고무했고 그보다 앞서 2월에는 맥아더가 리승만을 도꾜로 불러 《북<한>토벌과 <해방>에 관한 11개 조항》을 지시하면서 7월 이전에 공격을 개시할것을 명령하였다. (자료집 《한국동란에 관한 문헌집》)

모험적인 《전격전》으로 공화국북반부를 단숨에 삼키려고 시도하면서 미국은 제국주의침략자들이 력사적으로 써먹은 상투적인 불의의 타격전술인 《일요일 새벽공격전술》을 리용하여 전쟁개시당일 새벽 강력한 포화력의 지원밑에 여러 방향에서 불의의 공격을 개시하여 38°선 이북지역 1~2km나 쳐들어왔다. 공격을 개시하면서 놈들은 《아침은 해주에서 먹고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게 될것》이라고 호언장담하였다.

6. 25전쟁이 일어난 바로 그날 미국의 첩보기관 성원인 작가 죤 간자는 일본의 닛꼬에서 유람중이였는데 그뒤에서 잠간 뒤떨어졌던 맥아더사령부의 한 고관은 급히 뛰여와서 그에게 《비그 뉴스이다. 한국군이 이북을 공격하였다.》(죤 간자 《맥아더의 수수께끼》)라고 하였고 《국군》의 한 장교는 《24일 밤 륙군부대는 25일 새벽을 기하여 38°선을 돌파, 이북에 대한 군사행동을 개시하라는 비밀명령을 받았다.》(일본단행본 《아메리카의 죄악》 1953년판)라고 실토하였다.

사태가 이러하였기에 《공산군은 공격을 받고야 결정적인 반격을 가하기로 결심》(홍콩주간지 《화이스탄 에코노미크 레뷰》)하고 《…38°선 전 전선에서 2㎞내지 3㎞ 후퇴했다가 반격에로 넘어갔다.》(미국력사학자 메이야 저 《아메리카 현대사》)고 했던것이다.

침략자들의 불의의 침공으로 말미암아 조성된 엄중한 사태와 관련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적들에게 모험적인 전쟁책동을 즉시 중지할것을 요구하면서 만일 이 무모한 침공을 즉시 중지하지 않는다면 공화국정부와 군대와 인민은 결정적인 대책을 취하게 될것이며 동시에 이 모험적인 전쟁행위로 하여 발생되는 모든 후과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지게 되리라는것을 엄중히 경고하였다.

공화국정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전쟁도발자로서의 자신의 정체를 가리우고 오히려 북이 먼저 공격해왔다고 진실을 외곡하면서 미군을 전쟁에 들이밀 흉계를 꾸미면서 전쟁의 불길을 더욱 확대하는 길로 나아갔다.

리승만괴뢰군이 38°선 전역에서 북침공격을 감행하자 서울주재 미국대사였던 무쵸는 기다렸다는듯이 본국에 전보문을 날리였으며 전보문을 받은 미국무장관 애치슨은 미차관보와 함께 《북조선군대가 오늘 새벽에 여러 지점들에서 한국을 침략하였다.》는 전보문을 유엔주재 미국대표에게 쥐여주며 유엔에 《제소》할것을 지시하였다.

제놈들의 각본에 따라 긴급소집된 유엔안보리사회에서 미국은 쏘련대표가 참석하지 못한 기회에 거수기를 발동하여 《유엔 각 회원국은 무장공격을 격퇴하고 이 지역의 국제평화와 안전을 회복하기 위해 남조선에 필요한 원조를 제공》할것이라는 《결의》를 억지로 통과시켰다.

이렇게 되여 미국은 유엔의 간판밑에 15개의 추종국가군대들을 망라한 력사상 첫 다국적무력인 미군주도하의 《유엔군》을 조선전쟁에 끌어들이게 되였다.

미국은 조선전쟁을 도발하면서 공화국의 전 지역을 단숨에 삼켜볼 심산으로 남조선전선에 자기 륙군의 3분의 1, 공군의 5분의 1 그리고 태평양함대의 대부분을 투입하였고 이것으로도 부족하여 《유엔군》명목하에 15개의 추종국가군대까지 끌어들여 남조선군까지 합하면 무려 2백여만명에 달하는 병력을 밀어넣었다. 그리고 거액의 군사비를 투입하여 전쟁력사에서 일찌기 볼수 없던 가장 잔인하고 야만적인 전쟁을 벌리였다.

그러나 미국은 위대한 수령을 모신 조선인민이 얼마나 강의한 의지를 지니고 얼마나 거대한 힘을 발휘하는가를 미처 알지 못하였다.

조선인민은 망국노의 멍에를 쓰고 시들어가던 어제날의 조선사람이 결코 아니였다. 해방후 비록 5년밖에 안되는 짧은 기간이지만 위대한 수령님의 품속에서 나라의 주인으로 자라 자기 운명을 자기 손에 튼튼히 틀어쥐고 인민이 주인된 조국의 귀중함을 심장으로 깨달은 인민이였다.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50년 6월 25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비상회의를 여시고 조선인민군과 조선인민경비대에 적들의 무력침공을 저지시키고 즉시 결정적인 반공격으로 넘어갈것을 명령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전략전술적지휘밑에 우리 군대와 인민은 서울해방작전, 대전해방작전, 안동해방전투, 락동강도하전투, 주문진해전을 비롯한 수많은 작전들과 전투들에서 침략자들에게 섬멸적타격을 가하고 전쟁개시후 한달 남짓한 기간내에 남조선령토의 90%이상과 인구의 92%이상을 해방하는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다.

적들은 전쟁을 도발하자마자 된타격을 받고 남쪽으로 줄행랑을 놓았다.

전쟁발발 3일만에 서울이 해방되고 10만명의 적군주력이 분쇄되였을 때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미국신문들은 《…많은 미국군사고문들은 한강을 헤염쳐서 건느지 않으면 안되였다. 서울남방도로에서 두어깨에 배낭을 걸머지고 자기 생명을 구하려고 도망하는 남조선 내무장관의 당황한 모습도 보였다.》라고 보도하였다.

《상승사단》이라고 하던 미24사단의 선견대인 스미스특공대는 오산계선에서 인민군대의 강력한 타격을 받고 순식간에 풍지박산났다.

당시 미군사고문들이 평하였듯이 《오산의 비극》으로 《미군의 비극적인 패주의 첫막》이 열렸다. 《불퇴의 선》이라고 장담하던 금강방어진지도 어느 한 나라의 군사평론가의 말처럼 《가을바람이 수수밭을 건너가듯》 돌파당하였다.

미24사단은 대전에서 독안에 든 쥐신세가 되여 포위섬멸되고 병사복을 갈아입고 살구멍을 찾던 사단장 띤은 인민군대의 나어린 병사에게 사로잡혀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였다. 미8군사령관이였던 워커는 인민군 척후부대의 매복에 걸려 황천객이 되고말았다.

미해병대 제1사단 사단장이였던 스미스는 조선전쟁에서 자기 병사들을 모조리 황천객으로 만들어놓은것으로 하여 무덤장군이라는 별명을 얻어가지게 되였다.

조선전쟁사에는 《바다우에 떠다니는 섬》이라고 불리우던 미국의 중순양함 《볼티모》호가 주문진앞바다에서 단 4척의 조선인민군 해군 어뢰정들의 맹렬한 공격에 의해 수장된것도 기록되여있다. 이것은 세계해전사의 기적으로 되고있다.

조선전선에서 미군은 사병들의 집단적인 탈주를 막을 능력도 상실하였다.

당시 미해군 검사총장 맥울리프는 공식발언에서 1952년말까지 《조선전쟁개시이래 미해군의 탈주병만도 4만 6 000명에 달한다.》고 했다. 미륙군에서는 월평균 2만명, 때로는 하루 3 000명의 탈주병이 생겨났다. 미국의 어느 한 비밀보고서에는 《지난 조선전쟁은 미국이 패하고 미국의 장성들이 제일 많이 죽고 철직된 전쟁으로 특징지어진다. 김일성장군의 전법이 얼마나 유명한지 3년간의 전쟁에서 그 전법에 걸려 패한 죄로 여러명의 〈유엔군〉사령관들과 미8군사령관들이 교체되였다. 마지막에는 들이밀 장성이 없었다. 〈이름난 원수〉라고 하던 맥아더와 아이젠하워도 그 전법에 걸려 패하고말았다.》라고 씌여있다.

미국이 그 무슨 《영예로운 정전》의 목적을 달성해보려고 수많은 군사비와 군수물자를 탕진하면서 세계전쟁사에서 일찌기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가장 야수적인 전쟁수단과 방법을 다 썼으나 날이 갈수록 더더욱 돌이킬수 없는 군사, 정치, 도덕적패배를 면할수 없었다.

마침내 미국은 패자의 신세가 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기와 유엔기를 서로 마주세워놓고 정전협정에 도장을 누르지 않을수 없었다.

《유엔군》 총사령관 클라크는 《… 나는 력사상 승리하지 못하고 정전협정에 조인한 최초의 미군사령관》이라는 영예롭지 못한 이름을 띠게 되였다고 통탄하면서 《본관은 이 시간에 있어서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적(인민군대를 말함)이 패배당하지 않은채로 그리고 이전보다 더 강력하고 위협적인 존재로 남아있다는 의미에서 패배를 한셈이다.》라고 실토하였다.

전쟁 3년간에 미국이 입은 손실은 미군 40만명이상을 포함한 도합 156만 7천여명의 병력과 항공기 1만 2천여대, 함정 564척에 달하였다. 이를 두고 미국의 출판물들까지도 《그것은 미국의 겪은 패배가운데서도 최악의 패배였다.》고 아우성을 쳤다.

미합동참모본부 의장 브랫들리는 《잘못 고른 시간에 잘못 고른 장소에서 잘못 고른 적에 대한 잘못한 전쟁》이였다고 자백하였는가 하면 전 미국방장관 마샬도 《신화는 깨여지고말았다. 우리는 남들이 생각했던것처럼 그렇게 강대한 나라가 아니였다.》고 실토하였다.

조선전쟁이야말로 미국이 출현하여 처음으로 겪어야 했던 너무도 엄청난 비극으로 되였으며 세계제국주의우두머리의 멸망의 길을 열어놓은 계기, 침략과 략탈을 일삼으면서 불을 즐기고 피를 즐기며 전쟁을 즐겨오던 미국에게 처음으로 내리막길, 멸망의 길을 열어준 특기할 사변이였다.

공화국인민은 조국해방전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쟁취함으로써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미국의 코대를 꺾어놓고 그 《강대성》에 대한 신화를 산산이 깨뜨려버렸으며 미제국주의자들이 내리막길에 들어서는 시초를 열어놓았다.

이때로부터 미국은 하강선의 궤도를 따라 줄달음치게 되였다.

최근년간 미국은 지난 조선전쟁에서 저들이 당한 참패를 《승리》로 둔갑시켜보려고 어리석은 광대극을 곧잘 연출하여 세상사람들의 조소를 받고있다.

2012년 미국회에서는 지난 조선전쟁에서 미군 3만 6 000여명이 죽고 10만여명이 부상당했다는것, 조선전쟁을 더이상 《잊혀진 전쟁》으로 되게 하지 말고 기억하며 전쟁에 참가한 병사들을 찬양하여야 한다는것을 골자로 하는 그 무슨 《결의안》이라는것을 채택하였다.

미호전계층은 6. 25전쟁은 원래 저들이 《이긴 전쟁》이였지만 제2차 세계대전과 윁남전쟁사이에 끼여있어 《잊혀진 전쟁》으로 불리워왔다는 어처구니없는 궤변도 내돌리는가 하면 이제는 이 전쟁을 《잊혀진 승리》로 다시 평가할 때가 되였다는 황당한 수작도 하고있다.

조선전쟁은 미국이 결코 크고작은 침략전쟁을 하도 많이 감행하여 전쟁사에서 실수로 빼놓은것도 아니고 《승리》로 기록된것은 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잊혀진 승리》라고 떠올리려는것은 철면피한 날조극일뿐이다.

미국이 조선전쟁에 대하여 지금껏 입을 열기를 꺼려한것은 조선전쟁에서 당한 참패가 너무도 크고 망신스러워 그것을 상기하면 악몽밖에 생길것이 없었기때문에 차라리 잊어버리는것이 낫겠다고 자체위안을 한데서 찾은 궁여지책이였다.

입밖에 내기조차 저어하던 1950년대의 조선전쟁을 난데없이 《잊혀진 승리》로 둔갑시켜 선전하는것은 그때 당한 쓰디쓴 참패에서 교훈을 찾을 대신 그것을 어떻게 하나 만회하고 침략야망을 기어이 이루어보겠다는 흑심의 발로가 아닐수 없다.

력사는 공정한 심판관이다. 누가 조선전쟁에서 승리하고 누가 참패를 당하였는가 하는것은 이미 력사가 확증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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