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 회)
제 5 장
《천 우 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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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어느 한 절간에서 《천우협》을 조직하는 모임이 벌어지고있었다. 산속의 빈 절간이지만 만약의 경우를 예견하여 조선옷으로 변장한 여러명의 왜놈들이 주변을 감시하고있었다.
어둑시그레하고 곰팡내가 풍기는 판도방의 상좌에는 도야마 미쯔루와 오까모도 류노스께가 앉아있고 좌우에 두줄로 갈리여 랑인과 자객 등 수십명의 야꾸쨔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는데 그들의 옷차림이 해괴망칙하였다. 일본하오리를 입은 놈, 조선바지저고리를 입은 놈, 양복을 입은 놈, 우에만 양복을 걸치고 밑에는 풍덩한 조선바지를 입은 놈 등 십인십색이였다.
도야마가 열띤 어조로 일장훈시를 하고있었다.
《…이상 〈천우협〉의 성립을 선포하는바이다. 천우협은 현양사의 하부조직으로서 현양사의 헌칙을 준수하여야 한다.》
도야마는 손을 들어 벽에 붙인 《현양사》의 헌칙을 가리켜보였다.
일본의 깡패들인 야꾸쨔들은 고개를 돌려 헌칙에 눈길을 주었다.
《현양사헌칙
제1조. 황실을 경재할것.
제2조. 본국을 애중할것.
제3조. 국민의 리익을 고수할것.》
도야마는 자못 근엄한 눈으로 야꾸쨔들을 일별하고나서 헌칙을 설명하였다.
《에, 제1조 황실을 경재한다는것은 천황페하에게 충실하라는것이며 제2조 본국을 애중하라는것은 현인신인 만세일계의 천황과 황실이 만든 이 야마도민족을 사랑하라는것이며 제3조 국민의 리익을 고수하라는것은 야마도민족을 위해서는 타민족을 희생해도 좋다는것이다.
이 헌칙에 준하여 너희들의 당면목적은 일청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다는것이며 최종목적은 조선반도에서 청국세력을 내밀고 조선을 우리의 독점적지배지, 즉 식민지화하는것이다. 이를 위해 첩보, 모략, 살인, 방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 알았는가!》
《하!》
일동은 엄숙하게 고개를 숙여 호응을 표시했다.
《너희들의 두령은 다나까이며…》
목례하는 다나까는 우악스럽게 생긴 놈팽이였다.
《너희들의 현지지휘는 여기 앉아계시는 오까모도 류노스께선생이 할것이다.》
《천우협》의 야꾸쨔들이 오까모도에게 경의를 표시하는 속에 미야께는 류달리 기쁨에 겨워 싱글벙글하였다.
그런데 말석에 앉은 이제 스무살도 될가말가한 애숭이 하나가 무표정한 기색으로, 하지만 두눈을 쪼프리고 상좌의 도야마며 오까모도를 살펴보고있었는데 그는 《현양사》의 초대사장인 히로오까 고따로의 조카인 우찌다 료헤이란 놈팽이였다. 대륙진출에 대한 야망을 안고 《천우협》에 참가한 놈은 조선에서 밀정으로서의 경험을 쌓은 후 1901년에 최대의 간첩모략단체인 《흑룡회》를 조직하게 되며 로일전쟁, 조선병합, 괴뢰만주국의 성립 등 일본의 대륙침략의 흑막에서 암약하는 우익계의 두목으로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그러나 아직은 이 어린 승냥이에게 눈길을 돌리는 사람이 없었다.
《에, 그러면…》
도야마가 할 말이 있으면 하라는 식으로 곁에 있는 오까모도에게 고개를 돌렸다.
오까모도는 그에게 가볍게 사의를 표하고나서 입을 열었다.
《도야마사주께서 죄다 말씀하셨기에 저는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지금 움직이지 않고있는 전봉준의 동학농민군이 재궐기하여 조선정부를 반대하는 싸움을 벌리도록 그들에게 기름을 끼얹어야겠다는것입니다. 다이나마이트를 비롯한 폭약, 무기, 자금 등을 그들에게 시급히 공급하며 필요하다면 우리들자신이 그의 휘하에서 싸워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동학농민군이 우리 일본과 합작하고있다는 인상을 빨리 조선정부에 주어 그들이 청국에 원병하도록 해야 할것입니다.》
야꾸쨔들이 과시 현명한 생각이라고 서로 얼굴을 돌아보는 속에 도야마도 한마디 하였다.
《오까모도선생이 아주 중요한 발언을 하였소. 폭약 같은것은 여기 조선의 광산에서도 구할수 있는것이고 무기를 빨리 일본에서 실어오도록 합시다. 하지만 몇자루의 총이면 되지 그들을 전면 무장시키면 안된다는것이요.》
쉼없이 밀려왔다밀려가는 잔파도로 모래불은 마를새가 없었다.
양복차림에 구두를 신은 오까모도가 미야께와 우찌다와 함께 모래불가를 거닐며 그들에게 차후지시를 주고있었다.
《자네들은 곧 폭약을 가지고 전봉준이를 만나야 하겠네. 어떻게 해서든 그들속에 들어가 그들을 내란에로 부추겨야 하네.》
어린 우찌다 료헤이가 부모의 슬하를 떠나기 섭섭해하는 어린 아이마냥 응석기어린 소리로 물었다.
《한성엔 오래 계시겠습니까?》
《나도 모르겠네. 그곳엔 그곳대로 일이 있으니까.》
《기다리겠습니다.》
미야께가 절절하게 하는 말을 들은 오까모도는 잠시 발길을 멈추고 미야께와 우찌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런데 매사에 조심해야 하네. 조선놈들은 력대적으로 우리 일본사람들에게 적대감을 가지고있다네.》
그러자 미야께가 주먹을 내흔들며 기고만장하여 떠들어대였다.
《여차하면 쳐갈기지요. 내 혼자서두 조선놈 수십명은
《참, 자네 류꾸에 있을 때 가라데를 배웠다구 했지. 이제 그 솜씨를 쓸데가 많을걸세.》
우찌다가 말사이에 끼여들었다.
《우선 저부터 좀 배워야겠습니다.》
오까모도가 말했다.
《참, 우찌다군도 청국의 소림파격술이며 로씨야의 쌈뽀를 배웠다고 했지.》
미야께가 제꺽 우찌다를 두둔해나섰다.
《요전날 보니 우찌다군의 격술솜씨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제 가라데까지 겸비하면 무서울게 없을겝니다.》
《아무튼 좋네. 야마도다마시이를 당할자 없이 해야 하네.》
《하!》
두놈은 목을 꺾으며 오까모도에게 경의를 나타냈다.
《자, 그럼.》
소형증기선에 다달은 오까모도는 그우에 올라탔다.
미야께와 우찌다는 각이 되게 허리를 꺾었다.
증기선은 바다로 미끄러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