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조선지배전략실현의 전초기지로
미국이 1945년 9월 8일 남조선을 강점하고 식민지통치를 실시한 때로부터 70년이 지나갔다.
지구상의 그 어디에도 조선민족처럼 장장 70년이란 기나긴 세월 외세에 의해 분렬되여 온갖 불행과 고통을 겪고있는 민족은 찾아볼수 없다.
미제침략군의 남조선강점은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의 집중적발로이다.
남조선강점 미군은 미국의 세계지배전략과 조선반도지배전략을 힘으로 안받침하는 물리적실체로서 우리 나라의 남쪽땅을 가로타고앉아 지배와 간섭을 일삼으며 북남관계개선과 조국통일의 방해자로 되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저희들이 마치도 《하느님의 사도》로서 일제의 식민지치하에서 《불행과 고통속에서 헤매이》는 우리 민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땅에 발붙인듯이 온갖 위선적설교를 다하여왔으며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한다는 패말을 버젓이 내들고 조선반도를 랭전이데올로기의 전장으로, 전쟁의 도가니로 만들어놓고도 《성전》의 이름으로 자기를 합리화해오고있다. 또한 조선민족의 분렬정책을 추구하면서도 조선의 통일을 바라는 선의의 조력자로 분칠하기에 애써왔다.
개꼬리는 황모로 될수 없고 자루속의 송곳은 감출수 없듯이 남조선을 타고앉아 식민지지배자로 군림하며 우리 민족에게 온갖 불행과 고통을 들씌워온 악마의 제국-미국의 정체는 절대로 감출수 없다.
침략선 《셔먼》호로부터 까히라, 얄따회담까지
지구상에서 침략과 략탈, 전쟁의 총포소리를 울리지 않고서는 존재할수 없고 살아갈수도 없는것이 미국이다. 미국지배층과 미국독점자본가들의 야망은 전세계를 저들의 성조기로 뒤덮고 세계의 금은보화를 자기들의 손아귀에 틀어쥐는것이다.
원래 미국은 침략과 전쟁을 본성으로 하고있는 제국주의국가이다. 제국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침략전쟁은 독점적고률리윤의 가장 큰 원천으로 되는것이다. 독점적인 고률리윤추구의 자본주의경제법칙은 미국의 대기업들을 침략과 전쟁에로 추동하기마련이며 독점재벌들의 리익을 대표하는 반동적인 미국정부는 전쟁정책일변도로 내달릴수밖에 없는것이다.
1776년 인디안살륙의 피바다우에서 자기의 추악한 몰골을 드러낸 미국이 제창한 《자유와 평등, 인권과 민주주의》는 로골적인 령토확장과 세계지배야망을 미화하는 기만적인 구호였다.
례를 들어 미국은 지난 시기 130여년동안만 해도 자그만치 114회의 침략전쟁과 8 900여회의 크고작은 싸움을 벌려 남의 나라 인민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그 나라 땅을 빼앗아 자기 령토를 15배로 확대한 전적을 가지고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후 오늘까지 세계에서는 수십여차의 크고작은 전쟁들이 있었는데 그가운데서 미국이 끼여들지 않은 전쟁이란 거의 없으며 그중에서도 규모가 큰 침략전쟁은 례외없이 미국에 의해 도발되였다.
침략과 전쟁을 떠나서는 한순간도 살수 없는 미제국주의는 그 조상부터가 침략과 략탈을 통하여 태여났고 그후에도 줄곧 침략과 전쟁만을 일삼아왔다. 때문에 미국의 침략성은 다른 어느 제국주의보다 더 강렬하고 포악한것이 특징적이다.
침략과 략탈로 하여 피로 얼룩진 미국성조기에는 50개의 별이 그려지게 되였다.
미국작가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썼다.
《성조기의 흰줄은 검은빛으로 칠해야 하며 별들은 해골들과 둘씩 포개놓은 뼈다귀로 바꾸어져야 할것이다.》
북아메리카주에서 인디안의 피를 먹고 자라난 승냥이무리 미국은 19세기 초엽부터 아시아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하였으며 아시아침략에서 군사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조선에 대한 침략가능성을 타진하기 시작하였다.
《세계를 지배하려는자는 아시아대륙을 정복하여야 하며 아시아를 제압하려는자는 조선을 타고앉아야 한다.》
이 말은 그때 당시 미국이 조선을 아시아대륙침략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여겼다는것을 말해준다.
미국의 한 고위인물은 자기의 저서 《루즈벨트와 로일전쟁》에서 미국이 1860년대부터 70년대에 동아시아에서 자기의 해군기지쟁취문제를 심의하였을 때 벌써 조선을 미래의 근거지의 하나로 점찍어놓았다고 지적하였다.
미국은 이보다 썩 앞서 아시아에서 군사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조선을 발판으로, 군사교두보로 삼고 아시아와 나아가서 전세계에 대한 지배야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벌써 19세기 30년대부터 《동방의 은둔국》 조선에 탐욕의 눈길을 돌리였다.
동방에 대한 침략행각에 나섰던 미국정부의 특별사무관 에드먼드 로버트는 본국으로부터 조선침략의 가능성을 조사하라는 임무를 받고 그를 수행한 후 1834년 5월 13일 국무장관에게 보낸 보고에서 조선과의 강도적무역의 길을 틔울수 있는 현실적가능성이 있다는것을 지적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 미국자본가들은 도이췰란드선교사를 고용하여 그를 조선에 잠입시켜 침략의 길을 직접 닦게 하려는 음모까지 꾸미였다. 그리고 1845년 2월 미국회 하원 의원이며 하원해군위원회 위원장인 프란트가 국회하원에 《조선개방안》을 정식 제출하는것으로부터 조선에 대한 침략정책이 작성되였다.
19세기 60년대에 이르러 미국은 조선침략을 더욱 서둘렀다.
그것은 첫째로, 미국이 지리적위치로 보아 아시아대륙의 입구에 놓여있는 조선은 아시아대륙을 침략하는 가장 중요한 군사전략기지로 삼을수 있으며 둘째로, 자연부원이 풍부한 조선을 장차 저들의 상품시장으로, 원료공급기지로 만들수 있다는것을 타산하였기때문이였다.
미국은 1866년 8월 조선침략의 첫 선견대로 침략선 《셔먼》호를 조선에 침입시켰다.
침략선 《셔먼》호의 침입은 조선에 대한 미국의 첫 무력침략행위였으며 이로 하여 조선에 대한 미국의 피비린내나는 침략의 력사가 시작되였다.
미국은 《셔먼》호의 조선에 대한 침략을 통하여 조선봉건정부를 굴복시켜 예속적인 불평등조약을 체결하여 조선침략의 길을 터놓으려고 하였지만 미국의 기대와는 달리 《셔먼》호는
미국은 《셔먼》호사건에서 교훈을 찾을 대신 1868년에는 《쉐난도아》호와 《챠이나》호를 또다시 조선령해에 침입시켰다. 1871년에는 5척의 군함과 80여문의 포, 1 230명의 병력으로 된 《조선원정대》라는것을 강화도에 침입시켜 조선봉건정부를 힘으로 누르고 개방요구조건을 기어이 성사시키려고 하였으나 조선인민의 된타격을 받고 줄행랑을 놓고말았다.
조선력사에서는 1871년에 있은 이 사건을 신미양요라고 기록하고있다.
미국은 조선침략에서 실패를 거듭하였지만 자기의 침략야망을 버리지 않고 조선을 집어삼키기 위해 더욱더 교활하게 책동하였다.
미국의 조선침략정책은 1901년에 대통령직을 차지한 시어더 루즈벨트에 의해 계속되였다. 바로 이 시기 그의 대외정책자문팀에 의해 그후 오늘까지도 미국이 추구하고있는 일종의 대외정책교리가 나오게 되였다. 그 내용은 한마디로 세계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으로 구분되는데 미국은 해양세력에 속하며 해양세력인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자면 대륙세력과 대결해야 한다는것이였다. 이 교리에 의해 섬나라로서 해양세력에 속하는 영국, 일본과 손을 잡고 유럽과 아시아대륙을 각각 장악해야 한다는 미국의 세계지배전략이 고안되였다.
이러한 지정학적견지에서 볼 때 륙지로는 아시아대륙과 직접 잇닿아있고 바다로는 태평양과 련결된 조선반도는 아시아태평양의 그 어느 지역, 그 어느 나라와도 련계를 가지는데 매우 유리하였다. 또한 조선반도는 태평양연안의 해양세력에 있어서는 대륙에로 침투해 들어오는 관문이였으며 아시아대륙의 대륙세력에게 있어서는 해양에로 나가는 출구였다.
로일전쟁당시 미국이 일본에 상당히 많은 전쟁자금을 지원해주어 대국들의 각축전마당이였던 조선반도에서 로씨야세력을 밀어내게 한것은 다름아닌 이러한 대외정책교리와 세계지배전략을 조선침략정책에 적용한것이였다. 말하자면 미국은 해양세력인 일본과 손을 잡고 대륙세력인 로씨야의 남진, 해양진출을 가로막아 아시아침략을 위한 발판을 닦으려고 하였던것이다.
미국은 일본을 내세워 1876년 조선봉건정부에 첫 예속적불평등조약인 강화도조약을 체결하게 한 후인 1882년 인천의 제물포에서 침략적이며 예속적인 조미조약을 체결하였다. 이어 미국은 1905년 7월 29일 일본의 조선강점을 인정하는 대신 일본은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식민지지배를 인정하고 그 어떤 간섭도 하지 않겠다는것을 약속한 가쯔라-타프트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일본이 렬강들의 아무런 간섭을 받음이 없이 조선을 자기의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수 있는 유리한 국제적조건을 지어주었다. 미국은 우리 나라에서 수많은 금은보화를 략탈해가는 한편 선교사들을 대대적으로 침입시켜 사상문화적침략도 강화하였다. 1910년당시 조선에 와있던 외국인선교사 총 453명중 미국인선교사는 306명이나 되였다.
특히 조선에 대한 미국의 지배주의적인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것은 제2차 세계대전시기였다.
1942년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전후세계구조연구위원회라는 기구를 조작하고 그를 통하여 조선이 독립하려면 미국의 신식민주의적체계내에서 독립해야 한다는 이른바 《조선독립방안》이라는것을 꾸며냈다.
조선에 대한 신식민주의적인 통치안이 조작된데 기초하여 루즈벨트는 1943년 3월 워싱톤에서 영국외무상 이든과 진행한 전후처리문제에 대한 회담에서 조선은 4개 나라의 관리밑에서 통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1943년 11월 까히라회담에서는 일본의 지배하에 있던 조선에 대하여 즉시 독립이 아니라 《적당한 시기》에 독립이 허용될것이라는 조건을 붙이였다.
그후 테헤란회담에서는 《조선인민이 완전한 독립을 얻기 전에 약 40년간의 후견기간을 필요로 한다.》고 하였으며 1945년 2월에 열린 얄따회담에서도 조선의 경우 적어도 20~30년간의 후견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미국은 그 명분으로 일제의 식민지통치하에 있던 조선민족이 《자치능력》을 가지고있지 못하기때문에 강대국의 관리하에서 《자치능력》을 키운 다음 조선에 독립을 부여한다는 얼빠진 나발을 불어댔다.
제2차 세계대전후 제국주의진영의 우두머리로 등장한 미국의 세계지배전략에서 조선은 특별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미국에 있어서 조선은 단순히 잉여상품투하지나 전략자원의 공급기지로서만 요구된것이 아니라 쏘련이나 중국을 반대하며 아시아대륙을 침략하기 위한 교두보로, 나아가서 세계제패를 위한 전략적요충지로 필요한것이였다.
여기로부터 미국은 조선을 세계제패를 위한 저들의 주되는 전략적요충지로 만들려는 계획밑에 전후처리문제를 기회로 1945년에 38°선을 경계로 인위적으로 조선을 분렬시켜놓고 남조선을 강점하였다. 조선반도를 두 부분으로 동강낸 38°선은 국제협정에 의한것도 아니며 그것은 철저히 미국의 세계지배전략의 중요고리의 하나인 대조선침략정책의 산물로 생겨난것이였다.
이렇게 되여 전후 미국에 있어서 조선반도는 아시아대륙에 대한 지배를 좌우하는 필수적전제로, 미국의 군사전략적기초로 자리잡게 되였다.
미국은 남조선에 신식민주의적인 군사파쑈통치기구를 확립한 다음 그것을 발판으로 하여 전 조선을 무력으로 강점하기 위한 북침전쟁계획을 짜놓고 본격적인 전쟁준비를 다그쳤으며 남조선을 식민지군사기지로 전변시켜놓았다.
조선반도를 통채로 틀어쥐려는 미국의 오랜 야망은 드디여 1950년 6월 25일 북침전쟁의 불집을 터뜨리는것으로써 실천행동에 옮겨지게 되였다.
그러나 조선전쟁은 미국의 예상과는 너무나 다르게 진행되였다. 전 조선을 타고앉으려던 미국의 침략기도는 여지없이 깨여졌으며 미국은 부득이 정전이라는 영예롭지 못한 길을 모색하지 않을수 없었으며 자기 력사에 일찌기 없었던 패전의 수치를 맛보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던것이다.
미국은 조선침략전쟁에서 당한 참패에서 교훈을 찾을 대신 조선에 대한 침략적야망을 버리지 않았다. 정전후 미국은 조선의 분렬을 고정화하는 한편 남조선에 전술 및 전략핵무기를 비롯한 방대한 침략무력을 끌어들여 남조선을 핵전초기지로, 핵화약고로 전변시켜놓았을뿐아니라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적인 전쟁연습을 해마다 끊임없이 감행하면서 새 전쟁준비를 강화하였다. 다른 한편 미국은 일본반동정부를 남조선군사《정권》과 결탁시키고 미국, 일본, 남조선3각군사동맹을 강화하는 길로 나아갔다.
미국이 일본을 앞세워 조선침략에 리용하는것은 동북아시아에 대한 패권을 노린것이였다. 일본이 이에 편승하는것은 과거 전범국으로서 재무장할수 없는 처지에서 다시금 군사대국으로 변신하여 이웃나라들을 또다시 침략하기 위한 몸부림이였다.
미국과 일본당국은 과거사를 조금도 반성하지 않고 백여년전의 침략음모 즉 1905년의 타프트-가쯔라협정을 오늘날에 와서도 또다시 재현하면서 조선반도에 긴장과 전쟁분위기를 조성하고있다.
미국의 대조선침략정책은 단순히 어제오늘의 정세변화에 따라 수립된 정책이 아니라 뿌리깊은 미국의 조선반도지배야욕에 그 바탕을 두고있으며 미국의 세계지배전략을 실현하는데서 중요한 고리의 하나로 되여있는것이다.
백수십년의 력사를 가지고있는 미국의 조선침략정책은 저들의 세계지배전략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는것이며 그 수행방법에서는 변화가 있었지만 조선을 발판으로 아시아, 태평양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실현하려는 본질에서는 달라진것이 없다.
우리 민족이 수십년간 당하고있는 민족분렬의 불행과 고통, 조선반도의 평화를 파괴하는 모든 행위들은 미국의 세계지배전략과 대조선적대시정책에서 초래된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