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 회)
제 2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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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표정에는 장차 국제당에서 있을수 있는 말썽에 미리 대처하자는 호의도 엿보였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그자신의 말과 같이 조국도 사랑하고 혁명도 사랑하지만 너무 오래동안 조국현실과 멀리 떨어져서 혁명의 일반적원리문제에 대해서만 말하고 사색하는데 버릇이 되여 조국의 생동한 표상은 적지 않게 희미해진듯한 느낌도 들었다.
김혁이의 얼굴이 또다시 떠오르시였다. 그가 이 자리에 있다면 저 김광렬의 모습에서 자기의 지난시절을 읽어볼것이고 무엇인가 태를 치고 짓태울것만 같은 심중의 고백을 터뜨렸을것이라는 생각이 드시였다. 바로
《광렬동무.》
《뭘 자꾸 씁니까? 나하고 이야기를 합시다. 이 이야기는 순수 리론문제도 아니고 말마디에 대한 문제도 아닙니다. 우리 혁명, 우리 조국의 운명에 대한 문제입니다. 광렬동무가 쓰지 않는다고 그것을 기억 못하겠습니까?》
김광렬은
그리고는 만나서 벌써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전혀 볼수 없었던 웃음을 처음으로 히죽이 웃었다. 그것은 놀라운 인상이였다. 그렇게 딱딱해보이는 사람이 그런 웃음을 지을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할수없는, 마치 장난꾸러기와 같은 순진한 웃음이였다. 웃는 바람에 웃이 한대가 빠진것이 드러나서 그의 인상을 더 부드럽게 해주었다.
《이거 보겠습니까?》
김광렬은
《내 머리가 무엇때문에 이렇게 굳어졌는지 압니까? 바로 1920년 2차대회에서 국제공산당에 가입할수 있는 스물한가지 조건을 결정하지 않았습니까? 일국일당제원칙도 그속에 있지요. 조선공산당이 제명된것도 그 조건에 걸렸지요. 그러다나니 내 머리는 그 21개조로 꽉 들어차버렸습니다. 허허허, 그래 말씀하시오. 나도 혁명을 잘하자는것이지 원칙의 준수자체를 목적으로 삼자는것은 아닙니다.》
그다음은 한결 말이 잘 통하는듯 하였다.
《복잡한 론쟁이 필요없습니다. 실천은 진리의 시금석입니다. 동무도 아까 말했지요. 일제는 림박한 중국침략을 앞두고 조선사람들과 중국사람들의 사이를 리간시키려고 갖은 책동과 모략을 다하고있습니다. 그런 실례는 허다합니다. 일제는 중국인민들의
김광렬은 안경알속에서 의심쩍은듯한 눈매를 까딱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듣고있었다. 때로는 고개를 떨구기도 하고 때로는 눈길을 돌리기도 하였다. 대체로 그런 때는 그가
자기가 한 말이나 주장이 직접 분석될 때는 얼굴이 벌개져서 안절부절하다가 문득 생각난듯이 차를 따라놓기도 하였다.
이야기는 반나절 가까이나 걸렸다. 김광렬은 미안한 표정을 짓기도 하였으나 어느덧
마감에 그는 벌떡 일어나며
《
광범한 인민대중의 힘을 묶어세워 일제를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전개한다는것은 참으로 통쾌합니다. 조선공산주의자들의 혁명적무장이 태여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과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나는
《나는 그 해답을 기다렸다가 행동할수는 없습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우리 조직들이 파괴당하고있고 많은 사람들이 갈길 몰라 헤매다가 체포되고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나는 이길로 곧장 동만으로 나가야 하겠습니다.》
《물론 해답을 기다릴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자체로서 세울수 있는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그러나 동만으로 당장 나가는 문제만은 며칠동안만이라도 기다려주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무엇때문입니까?》
《지금 간도일대의 정세는 교하정도가 아닙니다. 거기에는 직접 일제령사관경찰과 헌병들이 날뛰기때문에 대단히 위험합니다. 우리가 먼저 내보낸 사람도 있는데 그 사람의 통보를 기다려보는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렇다면 동만일대에 대한 그 통보를 될수록 기다려봅시다. 그리고 내가 할빈을 떠난 다음 필요할 때마다 이자 나와 함께 온 한영애동무와 련계를 계속 가져주십시오.》
김광렬은
《참 고맙습니다. 그럼 오늘중으로라도 자료를 종합해보겠습니다.》
《뭐 고마울게 있습니까? 사실은 내가 신세를 지는셈인데…》
《아닙니다. 사실…》
김광렬은 수집음을 타는 소녀처럼 잠시 쭈밋거리더니 별안간 노기어린 목소리를 터뜨렸다.
《여기에 별의별것들이 다 왔댔습니다. 자기야말로 조선공산당을 대표하는 사람이라고 우쭐대면서 비굴하게 눈치를 슬슬 보며 상상하기 어려운 초혁명적인 언사를 휘둘렀습니다. 그리고 자기야말로 국제당로선에 충실하다는것을 인정해달라고 애걸했습니다. 나는 그때마다 조선말을 할수 없었습니다. 화요파나 엠엘파의 많은자들이 아마 김광렬이라는 사람이 리해성 없고 돌로 깎아놓은것처럼 딱딱하고 랭정하던
《청이요?!》
《청이라 할지 권고라 할지. 모스크바에 국제당에서 운영하는 공산대학이 있는데 그곳에서 공부하고싶은 생각은 없습니까? 내 보기엔 성주동무가 아주 적격자입니다.》
《그러니 류학을 가라는 소리군요?》
《예. 지금같이 정세가 어수선할 때 안전한 곳에서 공부를 더 하는것도 나쁘지 않지요.》
허나 지금
《가고싶어도 지금은 갈수 없습니다.》
그밖에는 더 다른 말씀을 하고싶지 않으시였으나
《날 생각하는 그 마음은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나 파괴된 조직을 두고, 신음하는 민족을 잠시나마 잊고 내가 어디로 가며 만약 간다고 하여도 편안히 발편잠을 자겠습니까. 난 이럴 때일수록 모스크바가 아니라 인민들속에 들어가겠습니다. 민중은 나의 대학이고 인민은 나의 변함없는 선생입니다. 그들속에 혁명실천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풀수 있는 열쇠도 방도도 있습니다.》
《이제야 조선이 진정한 애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