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 회)
45
새해를 맞으며 당과 국가, 군대의 지도간부들과 함께
빙상관에 대한 현지지도를 마치신 뒤에는 이미전부터 구상하시던 인민예술극장(당시)을 건립할 위치를 확정짓기로 하시였다.
인민예술극장(당시)은 사회주의를 수호하고 최후승리를 이룩하기 위한 투쟁에 과감히 떨쳐나선 굴할줄 모르는 인민에게 안겨주실 선물극장이였다.
보통문을 에돈 승용차는 만수대기슭에 품위있게 들어앉은 만수대의사당건물을 지나 창전거리에 들어섰다.
역시 인민예술극장(당시)의 위치는 만수대기슭이 좋을것 같았다. 그래야 만수대언덕을 중심으로 큼직큼직하게 들어앉은 대기념비적건축물들인 인민대학습당이며 만수대의사당, 만수대예술극장과 조화를 이룰수 있었고 또 인민들이 리용하기에도 편리할것이다.
그런데 오래전에 형성된 창전거리의 건물들이 퍽 낡아보이는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였다. 다가오는 새 세기에는 로화된 거리를 대담하게 들어내고 그곳에 대기념비적건축물들과 어울릴 현대적인 인민의 거리를 일떠세워야겠다고 생각하시였다.
물론 힘들것이다. 그때도 지금과 같은 난관이 계속될수 있고 혹은 적들의 책동이 극도에 달하여 더 혹심한 어려움을 겪을수도 있다. 그러나
승용차는 개선문을 에돌아 모란봉거리에 접어들었다. 국가계획위원회청사 앞도로를 따라 새해공동사설의 기본구호를 앞이마에 내건 화물차들이 줄지어 지나갔다. 적재함들에 파철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새해 첫 전투에 떨쳐나선 수도의 숨결이 느껴졌다.
문득 솜옷을 항 열어제끼고 어른들처럼 뒤짐을 진채 가로등주에 걸린 공동사설의 정신을 반영한 선전화를 쳐다보는 한 총각애의 모습이
앞서 걸어가던 엄마가 뒤를 돌아보며 빨리 오라고 손짓했으나 녀석은 알은체 않고 그림에만 정신이 팔렸다. 미술에 조예가 깊은지 그 자리에 쪼그리고앉더니 채 녹지 않은 눈우에 그림을 그려갔다.
젊은 녀인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아이를 향해 다가갔다. 눈을 부릅뜨며 손목을 잡아끌었으나 애는 막무가내로 버티였다. 종당에는 애를 설복하지 못하고 곁에 앉아 그림그리는것을 지켜보았다.
(허 녀석, 배짱이 보통이 아니군. 어머니의 말도 안 듣다니…)
그러나 수도시민들의 행복상을 보신것으로 마음이 즐거우시였다.
그 순간에
강계에 다녀왔는지, 갔다면 모름지기 하루밤이나 자고 돌아섰을것이다. 희생된 아버지의 당부를 가슴에 새긴 녀인이기에 이를 악물고 다시 억척스레 일감을 잡았을것이다. 그렇게밖에 달리 생각되지 않는 녀인이였다.
일개 가정사에 묻혀 어떤 복락만을 바라는 세속적인 안주인이 아니라 손이 마를새없이 병사들을 위해 일하는 녀인이 바로 이 나라 군인가족들의 모습이였다.
얼마전 류정애는 약속대로
군인가족문제는 결코 소홀히 대할 문제가 아니였다. 녀인들이 하는일없이 집안에서 바가지나 긁는다면 남편들은 물론이고 군인들의 군무생활에도 영향을 미칠수 있었다. 물론 그런 일은 없겠지만 군인가족문제를 방임하면 총대자체가 흔들릴수 있는것이다.
그래서 벌써 오래전에 어머님께서는 군인가족들이 밥가마뚜껑이나 운전하는 안주인이 아니라 남편의 혁명사업을 적극적으로 방조하는 전우가 되여야 한다시며 가족혁명화의 첫 수범을 보여주시였다. 가장 완벽한 군인이면서도 이 나라의 첫 군인가족이 되시여 건군사의 첫 페지를 장식하신 어머님이시였다.
어머님의 숭고한 모범을 본받아 오늘날 군인가족들은 력사에 류례없는 고난의 행군길에서 자기의 본분을 다하고있다. …
당중앙위원회청사 집무실에 들어서신
《총정치국장동무, 인민군대에 군인가족들을 맡아보는 기구가 어떻게 되여있소?》
조명록이 구체적으로 보고드렸다.
《…가족지도를 맡아보는 기구의 권능을 높여야겠소. 인민군대의 건전한 발전과 전투력강화의 견지에서 보아도 군인가족문제는 결코 소홀히 대할 문제가 아니요.》
《알았습니다,
《인차 67려단에 나갈 계획이요. 그 동무들이 이 추운 겨울에도 발전소건설을 중단없이 내민다는데 한번 나가서 군인들을 고무해줘야 할것 같소. 현지에서 군인가족문제를 구체적으로 토론합시다.》
《다시 전화하겠소.》
송수화기를 놓으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