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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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록총정치국장에게서 전화를 받는 순간 연형묵은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눈시울이 더워나고 숨이 가빠올랐다.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
《예, 건강하십니다. 서북부일대에 대한 현지지도를 마치시고 어제밤 평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것이면 만족했다. 연형묵은
《아닌게아니라
《좋은 소식을 전해주어 감사합니다. 그 믿음에 보답하지 못할가봐 어쩐지 겁이 나는군요. 헌데 무슨 일이 있어서 전화를 걸었습니까?》
연형묵은 석연치 않은 어조로 물었다.
조명록의 걸걸한 웃음소리가 수화기판을 울렸다.
《책임비서동무에게 도움받을 일이 좀 생겼구만. 한달음에 달려가서 토론하고싶지만 시간이 없고 또 연형묵동무가 리해하리라 믿기에 전화를 거는거요.》하면서 조명록은 지금 북창에서 전화한다고 알려주었다. 대굴지의 화력발전련합기업소 발전기타빈 보수문제가 제기되여 로동자들과 마주앉아 토론하는 과정에 자강도에 유명한 용접공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는것이다.
연형묵은 군대가 인민경제의 주요전구들에 파견되였다는것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총정치국장까지 솔선 나선것이 희한하게 생각되였다.
《…대형발전기타빈을 우리자체의 힘으로 보수하기로 했소. 알고보니 그 타빈이라는게 여간 까다롭고 말짼 물건이 아니더구만.
그런데 북창동무들이 하는 말이 승리기계공장에 있는 차기선이라는 제관공만은 능히 할수 있다는거요. 흥남비료공장 립상화탑의 심장부인 자동분산기를 제관할 때도 한몫 단단히 했고 그 먼저는 서해갑문을 건설할 때에 우리 식의 수중용접방법을 완성해서 나라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거요. 책임비서동무, 좀 부탁합시다. 거 듣자니 쓸만한 기술자나 인재는 다 책임비서동무가 걷어쥐고있다면서요?》
연형묵은 망설이지 않을수 없었다. 지금 승리기계공장에서는 새로운 첨단제품생산을 위한 설비조립이 완성단계에 이르고있었다. 차기선이라면 지배인이나 당비서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외우던 기능공이 틀림없겠는데 과연 그에게 그럴만한 여유가 있겠는지 우려되였다. 물론 책임비서의 권한으로 임무를 줄수도 있지만 그들에게 맡겨진 생산과제는 발전설비의 보수에 못지 않는 중요한 사업이였다.
게다가 공장은 이즈음 도내의 중소형수력발전소들에서 리용할 발전기제작과업도 맡고있었다. 원래는 대안중기계에서 발전기를 해결받을 계획이였는데 도자체의 힘으로 제작하기로 결의해나섰던것이다.
《알았습니다. 총정치국장동지가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었는데 방도를 찾아보지요.》
통화를 마친 연형묵은 몇가지 제기된 일을 처리하고 곧 도당위원회 청사를 나섰다.
승용차는 갖가지 색조화를 이루며 아빠트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네거리에 이르러 잠간 멎어섰다. 건늠길로 맞들이와 바께쯔, 마대를 손에 쥔 형형색색의 가두녀성들이 지나가고있었다. 공사장으로 지원나가는 자세들이였다.
바께쯔의 손잡이를 두손으로 움켜잡고 갸우뚱갸우뚱 걸음을 옮기는 한 총각애의 모습이 안겨왔다.
나이가 퍽 어려보이는 유치원생총각이였는데 좀 힘들어하는 자세였다. 하지만 그 나이또래의 애들이 항용 그러하듯 소년은 누구의 도움도 바라지 않는 시뜻한 낯색으로 고집스레 바께쯔손잡이를 틀어잡고있었다. 연형묵은 차에서 내려 소년을 도와주고싶었지만 녀인들에게 실례가 될것 같아 그만두었다.
승용차는 다시 공장을 항해 달렸다.
연형묵은 정문접수에 들려 전화로 도당교환을 찾았다. 자기한테 오는 전화가 있으면 공장으로 돌리라고 지시하고는 곧장 설비조립전투장으로 걸음을 돌렸다.
기술자들과 마주앉아 공정협의회를 진행하고있던 지배인과 당비서가 도당책임비서를 맞이했다.
《발전기를 조립하는 문제가 어떻게 되여가고있소? 군들에서 언제를 다 쌓고 발전기가 오기를 목마르게 기다리고있소.》
연형묵은 누구인가 갖다놓는 의자를 밀어놓으며 강철소재덩이우에 그대로 걸터앉았다. 담배곽을 꺼내들고 둘러선 기술자들에게 한대씩 권했다. 긴장하던 분위기가 삽시에 허물어졌다.
지배인이 발전기제작을 거의 마무리하고 시운전을 하고있다고 보고했다. 역시 승리기계는 능력이 있었다. 기본생산과제를 드티지 않으면서도 부차적인 과업들을 놓치지 않고있었다.
연형묵은 각 단위별로 진척되고있는 발전소건설정형에 대해 알려주며 이제 그곳 발전소들이 돌기 시작하면 자강도가 전기덕을 톡톡히 보게 될것이라고 장담했다.
《동무네가 첨단제품생산을 위한 설비제작에서 성과를 내고있다는 소식을 들었소. 당에서 기대가 크다는걸 명심하오. 지배인, 식량이 떨어진 집들이 태반이지? 그래 무슨 대책을 세웠소?》
목이 밭은 지배인이 당면한 생산과제때문에 크게 낯을 돌리지 못하고있다고 자책어린 소리로 대답했다.
《잘못됐소. 로동자들의 생활상고통을 어쩔수 없는 문제로 여기면서 참고 견디자는 식으로 호소하는건 자기 어깨에 짐을 지지 않겠다는 소리나 같소. 다른 단위들에선 니탄을 대용식품으로 해서 힘든 고비를 넘기고있는데 숱한 기술자, 연구사들이 있으면서 그런것 하나 연구해내지 못하오? 다같이 머리쓰고 다같이 어깨를 들이밀어야 하오.
로동자들이 정양소에서만이라도 배불리 먹을수 있게 해야 하오. 그래야 자기 일터를 더 사랑하고 일하는 보람도 크게 느낄수 있소.》
물론 연형묵은 공장의 책임일군들이 식량문제해결을 위해 뛰고있는 사실을 잘 알고있었다. 당비서자신이 요즘은 부업지에 나가살다싶이 하면서 보리와 강냉이를 적지 않게 수확했고 염소젖을 생산하여 정양하는 로동자들에게 급식시키고있었다. 그러나 만족해서는 안되였다. 한번의 만족이 몇걸음의 답보나 후퇴로 이어질수 있고 혹은 그 만족때문에 자기만을 생각하는 속인이 될수 있었다.
연형묵은 당비서를 향해 류정환직장장의 집에서 더 제기된것이 없는가고 물었다.
《공장에서 관심은 해주고있습니다. 며칠전엔 딸이 왔다갔습니다. 우리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는데 뭐 우리가 받을 인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당비서의 겸양어린 대답이였다.
《예, 아버지의 유언대로 꼭
《아주머니가 편의에 있다고 했던가?》
《남편이 섰던 직장에서 일하겠다고 해서 돌렸습니다.》
지배인이 대답했다. 연형묵은 다르게는 살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바로 그런 로동계급을 믿고
머리우의 확성기에서 생산전투에 떨쳐나선 전체 종업원들을 위해 축하의 노래를 불러드리겠다는 방송원의 인사말과 함께 힘있는 손풍금반주가 울렸다. 세련미가 풍기는 가수의 노래소리가 뒤따랐다. 《높이 들자 붉은기》였다.
《기동예술선동대요?》
《예.》
《잘 부르는구만. 전문가수 못지 않아. 공장에 저런 재간둥이도 있었소?》
《차선옥이라고… 우리 공장의 이름난 고급선반공입니다. 뜻하지 않은 일로 팔을 심하게 다쳤는데 지금 저렇게 노래를 불러 로동자들을 고무하고있습니다.》
《가만, 그러니 저 동무가 공작기계공장의 차를 구원했다는 그 처녀이겠구만.》
《예, 그렇습니다.》
연형묵은 알릴듯말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승리기계의 소문난 처녀선반공에 대해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한번 만나보려고 별렀는데 올해초엔가 어느 령길에서 팔을 심하게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도인민병원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처녀가 다시 선반을 돌릴수 있게 팔을 원상회복하라고 당부했으나 의학의 힘에도 한계가 있어 처녀는 끝내 한팔을 못쓰는 불구자가 되였다.
하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고 공장에 달려나와 노래로 로동자들을 고무하고있다. 애인이 있을가? 있다면 처녀가 당한 불행을 어떻게 대하고있을가?… 느닷없이 갈마든 생각이였다.
연형묵은 공장기술자들과 이마를 맞대고 발전기의 효률을 높이는 문제를 더 토의하고나서 지배인에게 제관반의 차기선이 지금 무슨 일을 하는가고 물었다.
《제관반장동문 요새 초정밀용접때문에 전투를 벌리고있습니다. 설비조립이 여간 까다롭지 않아서 좀 애를 먹습니다. 전투를 일단락지으면 고급기능공들을 휴양보내기로 당위원회에서 토론했습니다.》
《좋은 생각이요. 후방보장을 도당에서 맡읍시다. 제관반장동무를 한번 만나보기요.》
연형묵은 소재덩이에서 몸을 일으켰다. 일이 바쁜 그에게 또 다른 일감을 맡겨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
현지공연이 끝나자 기동예술선동대원들은 각기 자기가 맡은 현장으로 달려갔다. 당위원회결정에 따라 기동예술선동대원들은 공연을 보장하는것과 함께 현장에 직접 진출하여 생산자대중을 불러일으키는 선동연설을 하게 되여있었다.
방송선전차의 후사경에 얼굴을 마주한 차선옥은 그속에 비낀 어딘가 슬픔이 엿보이는 자기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시름겨운 한숨을 지었다.
방금전 오성산에서 돌아왔다는 조혁의 전보를 받았던것이다. 접때 인민군협주단에서 왔다는 나이많은 군관을 만난 뒤로 모든것이 끝났다고 내심 단정했는데 별안간 전보를 받아보니 마음이 어수선해졌다.
평양에 돌아왔다는 소식외에는 별다른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껏 기다려온것처럼 반가왔고 그것으로 또한 마음이 불안해졌다. 온통 모순투성이였다.
지난해 2월엔가 자기를 찾아왔던 조혁의 모습이 눈앞에 방불히 떠올랐다. 소담한 눈이 강산을 덮으며 미여지게 쏟아지던 날이였다. 조혁은 눈을 하얗게 뒤집어쓴채 공장정문에서 기다렸다. 선옥이 나는듯이 달려나갔다. 조혁은 출장길에 잠간 시간을 냈다면서 다짜고짜 손목을 잡아끌었다.
눈덮인 장자강기슭을 따라 오랜 시간을 걸었다. 강변에서 썰매타기에 여념이 없던 조무래기들이 사라진 뒤여서 호안은 무척 조용했다. 강대안의 숫눈우에 그들의 발자국이 나란히 찍혀졌다.
선옥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샘솟는 환희를 이기지 못하고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고 하얀 눈에 살짝 가리워진 반질반질한 얼음판에 미끄러지며 조혁의 손이 닿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가슴은 부풀고 희망은 넘쳤다. 그러나…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다.
조혁동지를 다시 만난다면 난 뭐라고 대답해야 할가? 모든것을 아름다운 추억속에 묻었다고, 오로지
마치 조혁이가 눈앞에 있는것처럼 가슴이 활랑거렸다.
《전 기타를 타면서 이 선률이 미치는 곳에 바로 나의 행복이 있고 사랑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더는 기타선률을 울릴수 없어요. 일시적인 감정이 생활의 전부가 될수 없다는걸 뒤늦게 깨달았어요.》
영원한 리별에 앞서 한번이라도 더 보고싶은 욕망이 마음속에 숨겨져있었다는 사실이 선옥의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괜한 욕망이야. 깡그리 잊어버려야 해.)
누구인가 찾는 소리에 선옥은 나쁜 장난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어깨를 흠칠 떨었다. 그와 2중창을 하던 녀동무가 제관반에 가지 않는가고 물었다. 한팔을 못쓰는 지금에조차 용접에 대한 희망을 버릴수가 없어 짬만 생기면 아버지를 찾아가는 선옥을 모두가 리해하고있는것이다.
(전보때문에 내 생활의 률조가 헝클어졌어. 어서 아버지에게 가자. 일에 몰두하면 좀 나을거야.)
선옥은 작업복을 갈아입고 제관반으로 향했다.
아버지가 일하는 작업장에 숱한 사람들이 웅기중기 모여있었다. 공장책임일군들뿐아니라 도당책임비서의 얼굴도 보였다.
와- 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검스레한 얼굴의 아버지가 모자를 벗어 무르팍을 감싸더니 도당책임비서가 내미는 담배를 사양없이 받아 불을 붙여물었다. 하고는 용접집게를 이리저리 돌리며 무엇인가 열성껏 설명했다. 보매 기능용접에 대해 자랑하는것 같았다. 아버지의 곁에 쭈그리고앉은 전수백로인도 뒤질세라 아버지의 말을 보태였다.
(도당책임비서동지두 용접에 관심이 있는게지?…)
문득 당비서가 선옥을 띄여보며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아까 말씀드리던 그 동무입니다. 차기선동무의 딸인데 기동예술선동대 핵심입니다.》
선옥은 선홍빛으로 물든 얼굴에 수삽한 웃음을 띠우며 연형묵에게 허리굽혀 인사했다.
《그러니… 차동무의 딸이였구만.》
연형묵은 수척해진 처녀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며 장갑을 끼지 않은 그의 바른손을 잡았다.
《힘들지?》
《일없습니다.》
《힘들겠지. 아까 노래하는걸 들었소. 잘 부르더구만. 그래 수술한 팔이 아프지 않나?》
《괜찮습니다.》
선옥은 자기때문에 분위기가 어두워질것 같아 부러 밝은 인상을 지었다.
《그래두 딸년이라구 이렇게 종종 도와주군 합니다. 한때 용접재간두 좀 배우다나니 그래도 도움이 됩니다.》
차기선이 딸을 자랑하는것이 어색한듯 투실투실한 손으로 목덜미를 쓸었다.
《차동무, 딸이 정말 강계미인이요.》
연형묵은 처녀의 굳어진 팔에 눈길을 주지 않으려고 애쓰며 선옥에게 애인이 있는가고 넌지시 물었다.
선옥은 사뭇 얼굴이 빨개지며 얼른 대답을 못했다.
《예, 있습니다. 인민군협주단 군관이였는데 이젠 다 지나간 일이웨다. 무슨 망녕이 들었는지 이 애가 단념했지요. 전에 총각의 상관도 왔댔는데 애가 허튼소릴 하다나니 성나서 돌아갔습니다.》
낡은 모자를 푹 눌러쓴 전수백이 끼여들며 혀를 찼다.
선옥은 황급히 전수백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잠자코있거라. 첨엔 그녀석이 딴 마음을 품었다고 생각했는데 알구보니 이 애가 스스로 물러선것이였습니다. 후유-》
연형묵은 무엇인가를 짐작한듯 심중한 낯색으로 고개를 끄덕이였다. 선옥의 발그레 물든 갸름한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물러선단 말이지.…》
연형묵은 선옥의 손을 잡아끌며 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다.
《너의 부모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난 책임비서로서 찬성할수 없구나. 큰아버지로 여긴다면 더구나 동의할수 없다. 일생문제인데 너무 성급히 단정하지 말자.》
연형묵은 선옥의 몽실한 어깨에 손을 얹었다.
《사실 네 아버지에게 볼일이 있어서 왔다. 아버지의 재간이 소문나다나니 이 책임비서가 부탁을 받았지.》
선옥은 놀란 눈길로 아버지를 건너다보았다.
《모두 알다싶이 지금 나라의 전력사정이 매우 긴장하오.
인민군대의 책임일군들이 나에게 부탁하더구만. 북창의 발전설비를 보수해야겠는데 유능한 기능공이 있어야 한다는거요.》
차기선의 거무죽죽한 얼굴이 일순 굳어졌다. 전수백이 서둘러 담배를 비벼끄며 책임비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차동무의 재간을 어떻게 알았는지 이름까지 알려주면서 부탁했소.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차기선은 무겁게 처져내린 눈시울을 껌뻑거리며 무르팍에 걸친 고무판대기에 큼직한 손을 썩썩 비볐다.
《책임비서동지, 일이 바쁜 책임비서동지가 예까지 올 때에야 그만큼 긴장하다는 소리이겠는데 제가 잠을 적게 자면 됩니다. 타빈날개의 용착에 대해 소문을 들어 좀 아는데 아마 그것때문이라고 봅니다. 며칠내로 제가 맡은 제품을 완성하고 북창에 가겠습니다.》
연형묵이 두툼한 입술을 벙싯했다. 공장일군들을 돌아보며 어떻게 생각하는가고 물었다.
《차아바이가 결심하면 되는겁니다. 건강문제가 좀 우려되는데 그건 우리가 맡겠습니다.》
《다 나라를 위한 일인데 뭐 타산할게 있습니까?》
지배인과 당비서가 다같이 대답했다. 전수백이 조력은 자기가 맡겠다고 자처했다.
《…사실이사 우리 선옥이가 제격인데 어쩌겠습니까, 꿩대신 닭이라구 내가 선옥일 대신하겠습니다. 그렇다구 늙은 닭이 꿩의 망신을 시킨다구는 생각지 마시우.》
전수백의 말에 모두가 와 웃음을 터뜨렸다. 연형묵은 한시름 털어버린 기색으로 차기선과 전수백의 손을 잡았다.
《확실히 우리 자강도사람들은 생각하는품이 다릅니다. 선옥이도 그래, 차동무나 아바이도 그래 다 우리
《어마나, 책임비서동지두…》
《큰아버지구실을 좀 하자는게다. 차동무, 잔치상은 이 책임비서가 맡겠소. 예, 그렇게 합시다.》
선옥이 입술을 감치며 고개를 다소곳이 숙였다. 차기선은 딸의 일을 자심하게 관심하는 책임비서가 고마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트라스에 매단 확성기에서 노래소리가 모기소리처럼 작아지더니 녀방송원의 목소리가 울렸다.
《…거듭 알려드리겠습니다. 지금 설비조립전투장에 여섯살 난 한 총각애가 왔습니다.》
얼마간 사이를 두더니 굵직한 목소리가 뒤따랐다. 당비서가 연형묵에게 공장당위원회 부비서라고 귀띔했다.
《생산전투에 떨쳐나선 동지들, 지금 우리 현장에 유치원에 다니는 한 어린애가 찾아왔습니다. 동지들도 한해전 전기로에서 화재가 났을 때 자기 한몸 내대여 설비를 구원한 녀성기능공에 대해 알고있을겁니다. 바로 이 애의 어머니입니다. 몇달째나 화상당한 몸으로 침상에 누워있지만 늘 공장일을 두고 근심하고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아들의 손에 두부모를 들려보냈습니다. 두부 일곱모를 지원하였습니다.…》
감동에 젖은 목소리였다.
연형묵은 어서 가보자고 이르며 자리에서 먼저 일어섰다.
《남편도 없는 아주머니인데 장기적으로 앓다나니 집안형편이 말이 아닙니다. 멀건 죽물로 때끼를 에우지만 저렇게 종종 생산전투를 지원하고있습니다.》
당비서의 말이였다.
공무직장의 앞공지에 작업복차림의 숱한 사람들이 진을 치고있었다. 웅성거리며 키돋움하던 종업원들이 도당책임비서일행을 알아보며 서둘러 길을 틔워주었다.
숱진 머리칼이 밤송이가시처럼 쭈볏이 일어선 총각애가 방송원처녀에게 손목이 잡힌채 어디론가 당장 도망칠 긴장한 자세로 여윈 몸을 옹크리고있었다.
연형묵은 총각애가 낯익어보였다. 선반우에 놓인 회백색바께쯔에 눈길이 닿는 순간 네거리의 건늠길에서 본 총각애임을 상기할수 있었다.
《이 어려운 때에 두부 한모가 얼마나 큰 량식이 되는지를 모두가 잘 알겁니다.…》 공장당위원회 부비서의 목소리였다.
《소년은 두부를 가지고 오면서 너무 배고파서 귀쪽을 떼먹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한모쯤 먹어도 일없지 않을가 하고 생각했으나 어머니를 욕되게 하는것 같아 이를 사려물고 참았다는겁니다.》
로동모를 쓴 나이지숙한 녀인이 겁먹은 눈길로 두리번거리는 애앞에 주춤주춤 다가서더니 무릎을 꿇었다. 애를 품에 꼭 껴안았다. 눈가에서 눈물이 바그그 끓어올랐다. 총각애는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듯 샐쭉이 웃으며 녀인의 목을 그러안았다.
《우리 옆집에 사는 복만이라는 애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복만이네 집에선 대용식품으로 끼니를 에웠답니다. 그런데 이렇게…》
울음소리들이 났다.
총각애는 헤벌쭉 웃더니 시틋한 낯색으로 자기는 일없다고 응대했다.
《…아동단노래를 부르면서 참았어요. 내가 쪼꼼 먹은걸 어머니한테 대주지 말라요.》
연형묵은 가슴이 뭉클했다. 아직은 세상물정을 모르는 나이이지만 이 고난속에서 자강도아이들은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키가 부쩍부쩍 커가고있는것이다. 집에 데려다키우는 부모없는 아이들도 생각이 총알처럼 여물어 공사장이나 농촌을 지원하는 로친의 일손을 곧잘 돕군 한다. 아니, 이 나라의 모든 애들이 다 그렇게 나라를 받들고있었다.…
《용타, 용해.》
연형묵은 총각애를 닁큼 안아올렸다. 겁석했다.
《어머니에게 전해라. 이 책임비서에게도 두부 한모가 차례졌다구 말이다.》
《정말이나요?》
애의 눈이 새별처럼 반짝였다.
《그럼!》
가벼이 탄성을 올리던 총각애가 노래를 불러도 되는가고 물었다. 어머니가 그렇게 하라고 당부했다는것이다.
연형묵의 품에서 벗어난 소년은 방송원에게서 마이크를 받아쥐더니 한동안 눈을 깜빡거리며 생각을 굴렸다. 갑자기 목청을 돋구었다.
둥둥 둥둥 출전북을 울려라
펄펄 펄펄 기발높이 날려라
…
와- 웃음이 터졌다. 그러나 이내 사람들은 정숙해졌고 총각애가 부르는 노래를 합창으로 받아넘겼다.
자연 오락회무대가 펼쳐졌다.
선옥이도 노래를 불렀다.
(이게 자강도사람들이다.
연형묵의 생각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