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회)
서 장
희망과 좌절은 엇바꿔 다가들며 사람들의 가슴을 조이고 끓게 하고 가랑잎처럼 타들게 하였다.
《5. 30선거》에서 리승만이 대패했다는 소식은 《북진》광신자들의 함몰을 의미하는 서곡처럼 들리여져 밝은 희망의 미소를 던져주었고 뒤미처 6월 7일 발표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호소문은 싸움이 없고 분렬이 없는 내 나라 내 인민의 행복이 안겨지는 감격의 기슭에로 사람들을 이끌어갔다. 오는 8월 5일~8월 6일사이에 전조선적인 남북총선거를 실시하고 해방 5돐 기념일에는
그 시각 도꾜에는 미극동군
6월 19일 평양에서는 《력사적조국통일촉진제의에 대하여》라는
덜레스는 《공산주의와의 타협이나 양보를 거부하여야 한다》는것을 엄숙히 강조하였고 리승만은 《공산주의자들이 사멸》하게끔 《열전》을 하겠다는 맹약을 다졌다.
이날 오후 도꾜의 궁성앞 광장에서는 미극동군의 대열병식이 거행되였다. 3만여명의 보병과 3백여대의 비행기, 수백문의 포와 땅크들이 맥아더와 죤슨, 브랫들리가 서있는 열병대앞으로 지나갔다. 모든 포와 장갑화력기재들이 산뜻하게 도색을 마쳤고 술과 계집과 도박에 미쳐 마약환자처럼 시들어가던 미국군인들이 비맞은 뒤의 독버섯처럼 기가 올라 행진하였다. 머지 않아 《미국의 번영을 위한
대지는 화끈 달아올랐다. 례없이 무더운 날씨가 련일 계속되였다. 노랗게 타드는 하늘가에서는 때때로 얼레구름이 얼씬하다가는 사라지군 했다. 땅도 타고 사람들의 가슴도 탔다.
이해 여름의 땡볕이 지독스럽게 뜨거운것은 정세탓이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동해안의 공업지구시찰을 나갔던 김책은 그 량자가 다 겹친탓인지 그렇지 않아도 철색의 얼굴이 아예 거멓게 그슬려 돌아왔다. 해방직후부터 늘 쓰고다니던 중절모도 별반 도움을 주지 못한듯싶었다. 김책의 출장일정을 아는 사람들은 계획날자를 앞당겨 온 그의 출현을 두고 별의별 억측을 다 붙였다. 대개가 불길한 추측들이였다. 그 추측들은 하나같이 덜레스의 이번 행각과 맥아더와 죤슨, 브랫들리를 둘러싼 도꾜의 움직임과 결부시켜 보는것들이였다.
차에 올라서도
《좀 쉬다가 들어갑시다.》
《덜레스가 맥아더를 다시 만난다는것때문에 온것이겠지요?》
《네,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김책은 발치아래 아롱다롱 그려지는 포도넌출그림자에 시선을 떨구었다. 동그랗고 네모지고 밝기도 하고 어둡기도 한 복잡한 무늬들이 해득하기 어려운 도형처럼 얼른거렸다.
《김책동문 어떻게 생각합니까?》
《제 말입니까?》
김책은 무엇에 떠박질리운 사람처럼 고개를 쳐들었다.
《저는 이번 덜레스의 움직임이 리승만괴뢰군의 북벌준비에 대한 마지막 검열이고 동시에 그 수행에 대한 지령하달외에 다른것이란 있을수 없다고 보고있습니다. 도꾜에 나타난 미국방장관이나 합동참모본부의장이라는자들 역시 그 준비와 진행에 대하여 맥아더와 최종토론을 하기 위한 목적때문에 왔을것입니다.》
《그건 옳습니다.》
《하지만 김책동무로서는 다른 각도에서 분석해볼수도 있잖습니까. 가령 워싱톤의 제스츄어나 선전에 따라 론리를 전개하자는것입니다. 실례로 덜레스의 행각을 〈5. 30선거〉에서의 실패로 미쳐난 리승만의 광증을 진정시킨다던가 다르게는 인기를 잃어버린 리승만대신 새로운 주구를 택하기 위한것이라던가로 볼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도꾜에 날아든자들의 목적에 대해서는 그들의 말대로 일본과 강화조약을 체결하여 막대한 군사적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위라고 보던지… 작년도에 우리를 어째보려다가 호되게 맞았으니 정신을 좀 차리지 않았겠는가.》
《위안이라?!…》
김책은 가슴이 쓰렸다. 그리고보면
맥아더는 6월 6일 일본의 공산당 공직간부들을 추방하는것까지로 병참후방기지로서 일본의 《치안확보》를 완료했다. 일본의 모든 로조와 민주세력을 지하에 몰아넣음으로써 맥아더는 철도와 군수산업공장들을 자기 손아귀에 틀어쥐였다. 이번 대열병식을 계기로 미극동군의 전투동원준비도 끝냈다. 리승만은 남조선 유격대에 대한 《토벌》작전도 끝냈고 《5. 30선거》를 계기로 반대파인사들을 《숙청》감금하는 놀음도 끝냈다. 마파람에 산불처럼 퍼져나가는 이 사태앞에 필사적인 노력과 인내성으로 평화공세를 하였으나 그 모두가 허사로 되고말았다. 6월 7일 호소문도 6월 19일 결정서도 그자들에게는 약자의 애원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네들의 계획은 이미 오래전부터 확고한 결심으로 굳어진것이기때문이다.
오늘 있게 된다는 맥아더 덜레스, 죤슨, 브랫들리의 회담, 그 회담은 이제까지의 모든 움직임에 대한 총화로 마지막 결속으로 될것이다.
김책은 초조해졌다.
그러나 김책은 말할수 없었다.
《룡옥이로구나.》
최현이를 신통히 닮은 여섯살잡이 처녀애는 얼굴에 보조개를 짓고 숫된 웃음을 머금은채
《뭘 했기에 이렇게 젖었느냐?》
《군사놀이하고 목욕했어요. 땀나서.》
《오늘은
《해해. 난
《녀자야 간호병이 좋지 않느냐?》
《난 싫어싫어.》
룡옥은 살래살래 머리를 저었다.
《그런데 난 저것이 네건줄로 알았구나.》
《간호원누나가 군사놀이를 한다니까 만들어줬어요.》
《그 가방안에건 약품이냐?》
《저- 동생한테 주려고 포도를…》
생기롭게 빛나던 룡옥이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동생이 밤에 그냥 아파서 울었어. 엄마도 꼬박 못잤어. 나도 못자고.》
《그래 어디 아파서 그러는지 모르겠느냐?》
《아부지 보고파서 그러지뭐. 그래서 그앤 그냥 아빠 아빠 했는데 그런것두 모르구 의사선생님들은 자꾸만 아프게 주사를 찔러요.
《룡옥이도 아부지 보고프니?》
《응! 아니 난 일없어. 동생이…》
흐렸던 얼굴같지 않게 룡옥이의 눈이 죄스럽게 반짝이고 얼굴이 감빛으로 달아올랐다.
《룡옥아, 그렇다면 아버지 오게 하자꾸나.》
《정말?! 아이 좋아.
룡옥은
《아부지 오게 한것 엄마한테 대주지 말어.》
《왜?》
《엄마가 욕해. 엄만 아버지가 게서 오면 나쁜놈들이 쳐온다고 했어.》
《으음, 알겠다. 그래 네 말대로 하자.》
《그러니 엄마말 거짓부리지?》
《아니다. 엄마 말이 옳다.》
《그럼 아버진 어떻게 오나?》
천진한 소녀의 눈에 근심이 함뿍 끼였다.
《걱정말어라. 다른 경비대아저씨들이 있지 않니.》
《아니 난 알아.
《허허, 그래 그렇다 하자꾸나.》
《아니 참,
《룡옥인 밥먹었느냐?》
《나 병원가서 먹을래. 엄마가 자꾸 일루 온다구 욕해.》
《일없다. 여기서 먹자. 엄마한테는 내 말하마.》
《최현동문 철호동무가 입원했는데도 아직 한번도 못와봤소?》
《그 동문 지금 신경이 칼끝처럼 되여있을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 동무를 부르실 작정입니까?》
《한번 와 보게 해야겠소.》
《그러고보면 제가 너무 신경과민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정세때문에 좀 당황했던것 같습니다.》
《허허, 그건 당황이 아니라 긴장입니다. 하긴 동무가 되돌아선것은 잘된것 같지 않습니다. 갑시다.》
《저 한가지 말씀드릴게 있습니다.》
김책은 사업상이야기는 여기서 끝을 보자고 마음먹었다.
《제가 이번 걸음에 생각해본것인데 아무래도 인민경제계획을 일부 조절해야 할것 같습니다.》
《어떤 면에서?》
《군수산업에 대한 지표를 좀더 늘쿠자는것입니다. 수출품중에서도 군수산업에 필요되는것들은 제한하고…》
김책은 말끝을 흐렸다.
《안은 생각해봅시다. 그러나 그것은 급한것이 아닙니다. 나는 이번에 정부의 명의로 남조선의 극우익인사까지 망라하는 회담개최를 제기하자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가능성여부는 더 론하지 맙시다. 이제는 가능성을 찾는것이 아니라 만들어야 된다고 봅니다. 지금이야말로 평화를 위한 노력과 인내성이 최대로 발휘되여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적들의 전쟁도발책동을 막는 일이라면 설사 그것이 희생으로 되고 손해가 되더라도 해야 합니다. 인민경제계획에 대하여 말한다면 생산을 높이는것으로 변경은 있을수 있지만 계획된 건설과 생산의 중지란 있을수 없습니다.》
이날 도꾜에 도착한 덜레스는 려정의 피곤을 풀 생각도 하지 않은채 땅크의 무한궤도자국이 채 지워지지 않은 궁성앞 광장을 걸쳐 맥아더를 찾아갔다. 이미 맥아더의 방에 와있던 죤슨과 브랫들리가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덜레스는 열병식기록필림을 보지 않겠는가고 하는 브랫들리의 물음에 《건 무엇때문에》라는 쌀쌀한 대답을 던지고 맥아더에게 극히 실무적으로 말했다.
《난 우리의 토론이 오래 걸리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는 대통령과의 통신결속시간을 물어보았다. 아무런 필기도구와 목책도 없이 차잔만 댕그랗게 놓인 차탁을 마주하고 극히 실무적으로 진행된 《4자회담》은 마지막에 한장의 전신문용지를 펼치는것으로 끝났다. 5년전 원자탄 투하를 지령할 때와 같이 특급 암호문으로 된 전신문에 네사람은 각기 자기식으로 수표를 하였다.
죤 포스터 덜레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