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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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동지께서는 온밤을 꼬박 새우시며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서 새로 제작한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카프》작가편) 제4부-제7부를 보아주시였다.
그이께서 몸소 발기하시여 제작완성되고있는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은 가요 《내 나라 제일로 좋아》를 상으로 하고있는 주체적문학예술의 대표작이였다. 민족과 운명에 관한 문제, 자주성을 민족의 생명으로 보고 온 겨레가 단결하여 민족의 자주성을 옹호하고 실현하여 번영을 이룩해야 한다는 주체의 민족관이 구현된 다부작예술영화는 그대로 조선영화를 대표하는 기념비적걸작이 되여야 했다.
하여 그이께서는 이미전에 나온 최현덕편을 비롯한 여러편의 다부작예술영화의 완성을 두고 매 장면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지도하시였고 한창 제작중인 로동계급편과 《카프》작가편도 밤시간을 짜내시며 보아주시였다.
이번에 만든 영화는 일제통치하의 암담한 세월 수난에 찬 운명로정에서 민족적멸시와 천대를 받던 《카프》작가들이 위대한 태양의 품에서 인생전환을 하고 광명을 받아안게 되는 과정을 형상하고있었다.
영화를 다 보고나시니 날이 훤히 밝았다. 인상깊은 장면들을 다시 주의깊게 살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만하면 창작가들이 영화를 무리없이 만들었다고 생각하시였다. 그러나 얼마간 의견도 있었다.
몇분간 쪽잠에 드시였다가 깨여나신 그이께서는 곧 문성태부부장과 창작가들을 집무실로 부르시였다.
인사를 올리던 문성태가 그이의 존안에 실린 숨길수 없는 피로감을 느꼈는지 얼굴색이 당황해졌다.
《영화를 잘 만들었소. 작가들의 생활과 관련한 영화이고보니 품을 넣은게 알리오. 특색있게 감정조직을 하느라고 애쓴 흔적도 엿보이고… 하지만 일부 장면들은 좀 고쳐야 할것 같소.》
창작가들이 긴장한 시선으로 그이를 우러렀다.
한동안 창밖에 시선을 주시며 사색에 잠겨계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간도에 왔다가 쪽배를 타고 쏘련에 갈 때 노래 《이부슈까》의 선률이 나오는데 분위기에 맞지 않는다고 말씀하시였다.
《…기악곡선정을 잘못했소. 의로운 뜻을 품은 주인공이 서울과 도꾜, 간도지방을 방황하면서 간난신고와 우여곡절을 겪다가 한가닥 희망을 안고 남의 나라인 쏘련으로 가는 장면이 있는데 여기서는 울적한 감정이 나와야 하오. 더우기 그때 당시는 일제의 쏘만국경침입사건으로 정세가 매우 날카롭고 긴장하던 때였소. 그런데 객관적인 정치정세를 고려하지 않고 흐느적이는 수양버들을 노래한 〈이부슈까〉의 선률이 흐르게 하였는데 맞겠는가 하는거요.》
그것은 해당 시기의 정치정세를 고려하지 않고 주인공의 심리를 돋구려는 주관적인 욕망을 앞세운 결과였다.
문성태는 창작가들보다는 그 부문 사업을 지도하는 일군들에게 결함이 있다는것을 느끼며 고개를 수굿했다. 사실 연출가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부슈까》라는 쏘련노래가 있는줄을 알았던 그는 노래의 정서와 주인공의 울적한 십리가 잘 어울린다고만 생각했던것이다.
《그리고 영화에 중국 동북지방에서 일본놈들이 식당에 가서 고전음악을 틀어놓는 장면이 나오는데 무엇을 보여주자는것인지 모르겠소. 일본놈들이 그렇게 유식한 고전음악감상자들이라고 생각하는게 아니요? 수많은 조선녀성들을 성노예로 유괴하고 짐승도 낮을 붉힐 야만행위를 한 놈들에게는 야생적인 선률이 더 어울릴거요.》
김정일동지께서는 물론 창작가들이 영화 한편을 만들기 위해서 기울이는 노력이 크고 또 연구도 많이 하지만 작품자체에 빠져들지 말고 해당 시기의 정치정세를 잘 따져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우리 인민의 지향에 맞고 장면에 어울리는 명곡을 살려 작품의 사상예술성과 정서적감화력을 높이는것과 함께 영화의 모든 화면형상들을 인물성격을 중심으로 하여 조화롭게 결합된 기름진 화면들로 감명깊게 창조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차 한고뿌로 식사를 대신하신 그이께서는 곧 총참모부에서 제기된 정황을 료해하신 다음 외교부일군들을 부르시여 미국과의 대적투쟁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원칙적문제들에 대해 오래동안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뒤따라 전당, 전민, 전국이 철도를 지원하고 철도운수부문에 대한 국가적투자를 늘여 철도수송을 결정적으로 추켜세울데 대한 문제를 토의하는 당중앙위원회와 정무원 책임일군들의 협의회를 지도하시였다.
여가시간에는 각 부문에서 제기된 문건들을 검토하시고 해당한 결론을 주시였다.
조선인민군협주단 공훈합창단(당시)의 앞으로의 공연활동과 관련한 대책안도 보아주시였다. 세계적인 음악예술단체들과의 교류를 적극화하기 위한 문제, 음악교육기관들에서 능력있는 성악배우들을 선발하며 다른 예술단체들에서 창작력량과 배우, 연주가들을 새로 보강하는 문제들이였다.
그이께서는 보다 중요한것은 소속관계를 변화시키는것이라고 보시였다. 첫 합창음악회를 준비할데 대한 과업을 주실 때부터 생각해오시던 문제였는데 시대가 요구하고 인민이 바라는 보다 높은 단계의 음악전을 벌리기 위해서는 현존소속관계로는 제한이 많았다. 공훈합창단(당시)의 노래가 전체 군대와 인민의 기치가 되고 투쟁의 불길이 되자면 결정적으로 그에 맞는 지위를 차지해야 했다.
이제는 누구나가 인민군공훈합창단(당시)노래가 온 나라를 위대한 승리에로 부르는 그이의 신호총성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 합창울림이 높을수록 나라가 들끓을것이며 합창처럼 단결되고 위력한 힘으로 강성국가의 돌파구를 열어제낄수 있는것이다.
협의회를 마치고 집무실로 돌아오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연형묵 자강도당책임비서를 전화로 찾으시였다.
연형묵은 강계승리기계공장에서 전화를 받았다.
인사를 드리는 연형묵의 목소리는 그리움에 젖어있었다.
《나는 건강하오. 헌데 목소리가 변했구만. 잠을 설친게 아니요?》
《장군님, 전 쇠덩이처럼 단단합니다.》
《건강관리를 잘해야겠소. 허담이도 건강을 장담하다가 먼저 갔는데 끝까지 혁명에 충실하려면 몸이 든든해야 하오. 내 말을 명심해주오. 연형묵동무, 지금 자강도에서 진행하고있는 인민군예술선전대 공연에 대한 반향이 어떻소?》
《장군님, 우리 로동계급은 이번에 수천톤의 식량을 받은것보다 더 값있고 무게있는 정신적량식을 받아안았습니다. 식량이 아무리 귀하다 한들 노래에 비할수 없다는것을 새삼스레 깨달았습니다. 지금 인민군대동무들이 승리기계공장에서 공연을 하고있습니다.》
아닌게아니라 수화기에서 웅글은 노래소리가 흐르고있었다.
《쓰러진 로동자들이 많다는데 그들도 공연을 관람하오?》
《운신할수 있는 동무들은 다 나왔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느 방에서 전화를 받는가고 다시 물으시였다. 공장초급당비서의 사무실이라는 대답에 송수화기를 창문쪽에 바투 대라고 하시였다.
노래소리가 증폭되였다.
…
이 행복 주시려고 우리의 수령님
빈터우에 건국의 첫 삽을 뜨셨네
…
그이께서 이번 공연종목에 《우리는 빈터에서 시작하였네》의 노래를 꼭 넣으라고 강조하시였는데 보매 로동계급의 심장을 움켜잡은것 같았다.
《책임비서동무, 내 한가지 부탁할게 있소. 거기 승리기계공장에 딸을 군관한테 시집보낸 공무직장장동무가 있을게요. 딸이 단소를 잘 분다고 했소. 설맞이공연에 참가했다가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은적도 있소.…》
《예, 류정환이라고 오랜 기능공이고 또 로력영웅입니다.》
감격한 목소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놀라시였다. 다음순간 왜서인지 자신께서 만나신 군인가족이 영웅의 딸이라는것이 당연하게 생각되시였다. 군인가족의 영웅적소행은 결코 우연한것이 아니였다. 그런 훌륭한 가정적바탕이 있기에 녀인은 령도자의 격정을 심장에 새길수 있는것이고 군인들을 위해 자기를 바치는것을 응당한 본분으로 여길수 있었던것이다.
《영웅에게 내가 전선시찰의 길에서 딸과 사위를 만났다고 전해주오. 훌륭한 군인가족이요. 혼자서 숱한 돼지를 기르고 새땅을 개간해서 군인들의 식생활을 보태는데 솔직히 감동이 컸소.》
왜서인지 연형묵이 얼른 응대하지 못하고 즘자렸다. 대답을 기다리시였다.
《…장군님, 직장장동문 지금 림종을 앞두고있습니다. 불치의 병을 앓으면서도 장군님께서 주신 과업을 수행하기 전에는 죽을 권리가 없다면서… 공장을 떠나지 않고있습니다. 오늘도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공연관람에 나왔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딸이 알고있소?》
그이께서 다우쳐물으시였다.
《예, 하지만 병이 더 악화된줄은… 직장장동무가 바라지 않습니다.》
《그렇구만.…》
그러니 직장장의 생명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소리이다. 미지의 불행과 접하고 괴로움을 겪게 될 류정애의 모습이 보이시는듯했다. 그런 남모르는 아픔을 안고있으면서도 내색없이 군인들을 위해 자기를 바치는 그에게 고무적인 말을 더 해주지 못한것이 저으기 후회되시였다.
《…기력이 딸려서 남들처럼 노래를 부르지 못하고 울기만 합니다. 〈우리는 빈터에서 시작하였네〉의 노래가 그 동무의 지정곡이였습니다.》
아마 영웅도 음악을 사랑했던것 같다. 예술소조공연때마다 가슴에 영웅메달을 달고 그 노래를 즐겨부르며 수령님을 믿고 따라선 길을 긍지높이 돌이켜보았을것이다. 가슴이 묵직해지시였다.
《책임비서동무, 영웅이 요구하지 않는다 해도 딸에게 꼭 소식을 알려주오. 그렇다 해도 딸은 결코 맥없이 주저앉지 않을거요. 아버지가 사랑하던 노래를 부르면서 아버지가 바라던 길을 끝까지 걸어갈거요.》
직장장의 지정곡이라는 그 노래가 계속 수화기판을 울렸다. 쇠약한 몸이지만 기대곁을 떠나지 않고 남은 기력을 깡그리 생산전투에 쏟아붓는 영웅의 모습이 그이께서 만나시였던 군인가족의 감스레한 얼굴과 어울려 눈앞에 환영으로 그려졌다.
연형묵에게 인민군예술선전대가 자강도에 며칠 더 머무르면서 공연을 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신데 대해 알려주신 그이께서는 통화를 마치시였다. 했으나 어두운 심경을 가실수 없으시였다. 수화기를 통해 울리던 노래소리가 귀전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동통을 참느라 이를 악무는 영웅직장장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으시였다.
애써 아픈 마음을 달래시며 집무를 보시였다.
밤이 다가왔다. 바닥없이 깊어갔다.
공훈합창단(당시)에서 새로 창작했다는 노래를 들으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승리기계공장 로동계급의 심장을 울린 《우리는 빈터에서 시작하였네》의 노래에 생각이 미치시였다.
잠간 잊으시였던 마음속 괴로움이 다시 찾아들었다. 아무래도 이밤을 그대로는 지나보낼것 같지 못하시였다. 전화로 전상근단장을 찾으시였다.
《합창단동무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있소?》
전상근이 종합훈련장에서 관통훈련을 하고있다고 말씀드렸다.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 들어줄수 있겠소?》
《최고사령관동지!…》
전상근의 놀란 음성이 수화기판을 울렸다.
《사실 노래를 좀 듣고싶어서 늦은걸 알면서도 전화를 걸었소.》
《최고사령관동지, 우리는 지금 최고사령관동지를 모시고 공연할 순간을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있습니다.》
《나도 동무들이 보고싶소. 지휘성원들과 함께 나가겠으니 극장에서 만납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곧 집무실을 나서시였다.
밤거리는 조용했다. 희미한 어둠속에 거밋거밋한 형체를 드러낸 높고낮은 건물들이 혼곤히 잠든듯했다. 찬기운을 실은 가을바람에 가로수들이 잠들지 못하고 뒤채이였다.
널직한 마당에 정중한 자세로 서있는 조명록과 심진성의 모습이 승용차의 불빛에 확 드러났다.
그이께서는 지휘성원들의 인사를 받으시며 너무 늦게 불러서 안됐다고 량해를 구하시였다.
《자강도에 들어간 인민군예술선전대가 노래포성을 힘차게 울리는것 같소. 로동계급이 혁명군가를 생의 불사약으로 받아안는다고 하오.》
연형묵에게서 전해들은 영웅직장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려다가 분위기를 무겁게 할것 같아 그만두시였다.
《수화기를 통해 예술선전대원들과 로동계급이 합창으로 부르는 노래를 들으니 우리 수령님 생각이 간절해지더구만. 그래서 동무들과 함께 공훈합창단(당시)노래를 들어보자고 이렇게 불렀소.》
현관쪽에서 전상근단장과 유진수부단장이 바삐 뛰여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반가움을 느끼시며 그들의 인사에 답례하시였다.
《모두 힘들어하지 않소?》
《아닙니다. 한시바삐 최고사령관동지를 모시고싶어 벌써 무대를 차지했습니다.》
전상근단장의 대답이였다.
《그럼 마음을 놓아도 되겠구만.》 하시며 그이께서는 《우리는 빈터에서 시작하였네》의 노래를 할수 있겠는가고 물으시였다.
《최고사령관동지, 우리 합창단은 일당백합창단입니다. 어떤 노래나 다 준비되여있습니다.》
《일당백이라, 옳소. 공훈합창단(당시)은 언제나 일당백으로 준비되여있어야 하오. 하지만 오늘은… 〈우리는 빈터에서 시작하였네〉, 그 노래하나만 요청하자구.》
관람석에 들어서시자 만세의 환호가 터졌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만하라고 손짓하시며 앞자리에 앉으시였다.
곧 정숙이 보장되더니 지휘자의 손짓에 따라 관현악서주가 울리기 시작했다.
홍성훈이 선창을 했다. 웅장한 울림의 합창이 고조를 이루었다. 가수들은 그이의 심중에 깃든 하많은 사연을 알길이 없었으나 바로 자기들이 부르는 노래속에 시련을 겪는 나라의 모습이 비껴있음을 모르지 않기에 무한한 감정을 다하여 노래상을 살렸다.
노래가 끝났다. 장내에 숭엄한 정적이 깃들었다.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유진수를 불러 노래를 다시한번 들어보자고 요청하시였다.
관현악의 반주에 실리며 합창음이 더욱 열렬해졌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탁자우에 두손을 올려놓으신채 합창대에서 노래하는 가수들을 여겨보시였다, 입속으로 노래의 구절을 음미하시며 조용히 따라부르시였다.
해방된 조국땅에 건국의 첫삽을 뜨시던 수령님의 영상이 눈앞에 삼삼히 어려오시였다. 청소한 새 조국건설의 기슭에서, 나사못 하나 변변한것이 없었던 빈터나 다름없는 이 땅에서 수령님께서는 과연 무엇을 믿고 인민을 불러일으키시였던가.… 그이의 생각이시였다.
빈터?… 그렇다. 갓 해방을 맞이한 이 땅은 분명 빈터였다. 40년간의 일제식민지통치가 남긴것은 없는것보다 못한 세기적인 락후와 빈궁의 잔재뿐이였다. 하지만 수령님께서는 인민의 가슴속에 타번지는 애국열의를 믿으시며 건국의 첫삽을 뜨시였다.
빈터?… 아니, 나라는 빈터였지만 수령님을 따라 거연히 일어서던 인민의 정신은 결코 빈터가 아니였다. 그 정신이 새 민주조선의 앞길에 번영을 안아왔고 자주적인민의 탄생을 세상에 알린것이다.
…
포화에 불타버린 페허우에서
우리는 맨손으로 시작하였네
…
재난을 당한 땅, 재먼지만 일던 페허, 벽돌 한장 성한것이 없어 반토굴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사람들, 폭격에 마사지고 불타버리고 파헤쳐진 이 땅은 또다시 빈터로 되였지만 수령님을 따라서면 행복의 만리가 온다는 철석의 신념이 로동계급의 심장에 불을 달았다. 바로 그들을 믿으시고 수령님께서는 밤이나 낮이나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시며 천리마의 새 기적을 불러오시였다.
지금 인민은 원쑤들의 악랄한 책동으로 또다시 허리띠를 조이며 힘겨운 행군을 하고있다. 수령님께서 맡기고가신 인민을 배불리 먹이지 못하시는 죄스러움과 안타까움이 김정일동지의 가슴속에 아픔을 날랐다. 이런 때에 수령님께서 계셨으면 얼마나 큰 힘이 되겠는가!…
존안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고난과 시련을 겪는 나라의 현실이 그이의 눈앞에 비껴들며 계속 눈물을 자아냈다. 배우들이 보면 가슴아파할것 같아 고개를 수굿하시였으나 괴로운 마음만은 도무지 진정하실수 없었다.
아니, 오늘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 해도 수령님께서 건국의 첫삽을 뜨시던 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원쑤들의 압박공세가 더욱 악랄해지고 자연재해가 아무리 엄혹하다 해도 당과 대중의 일심단결이 있는 한 우리는 기어이 승리할것이며 수령님의 념원을 이 땅우에 반드시 꽃피우게 될것이다.…
천천히 일어서시였다. 마음속으로 합창을 지휘하는 자신을 의식하시였다. 또다시 손수건으로 눈굽을 찍으시였다.
배우들의 흐느낌소리가 노래소리에 엇섞여 들렸다. 뜨거운 눈물이 줄닿는 그이의 존안을 우러르며 모두가 소리내여 울고있었다. 조명록과 심진성이도 두볼로 흐르는 눈물을 걷잡지 못한채 그이를 우러러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제힘으로 우리의 식대로
이 땅에 주체조국 높이 세웠네
그렇다. 우리는 우리의 식대로 반드시 이 땅우에 주체의 강국을 일떠세울것이다.
《가요 〈우리는 빈터에서 시작하였네〉가 나온지도 20년이 가까와오고 그것을 지은 작가나 작곡가도 다 세상을 떠났지만 노래는 지금도 사람들에게 커다란 감흥을 주고있소.》
공연이 끝난 뒤에 김정일동지께서 하신 말씀이시였다.
《나는 오늘 그 노래를 들으면서 우리 수령님을 생각했소. 벽돌 한장 성한것이 없던 이 땅에 공업화의 기적을 불러오시고 인민을 잘살게 하시려고 한평생 찬눈비를 다 맞으신 수령님을 생각하니 눈물이 나오는것을 어쩔수 없었소.
수령님께서는 해방직후 령이나 다름없는 빈터에서 건국의 첫삽을 뜨시였고 그날부터 장장 수십성상 오로지 조국의 륭성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불면불휴하시며 마침내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을 일떠세우시였소. 이 땅에는 수령님의 거룩하신 발자취가 어려있지 않은 곳이 없고 우리 인민의 생활 그 어느 면에나 수령님의 친어버이사랑과 은정이 어려있지 않은데가 없소.
그런데… 수령님께서 맡기고가신 인민이 오늘 고난의 행군이라는 전대미문의 난관을 겪고있소. 그래서 더 눈물이 났소. 하지만 나는 두려워하지 않소. 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렵지만, 터놓고말해서 농사도 잘 안되고 공장도 멎어섰지만 수령님의 슬하에서 혁명을 배우고 자력갱생의 철리를 깨달은 수령님의 전사, 제자들이 있어 어떤 난관도 무섭지 않소. 오늘 공훈합창단(당시)이 부른 노래는 승리를 확신하는 인민만이 부를수 있는 노래요.》
《최고사령관동지…》
조명록이 목이 꽉 메여 다음말을 잇지 못했다. 가까스로 자기를 다잡으며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오늘 왜 그 노래를 요청하시였는지 비로소 깨달았다고 말씀드렸다.
《고맙소. 우리 조국과 인민을 위해 더 힘차게 일합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흔연히 웃으시며 허리에 손을 얹으시였다. 뒤켠에 서있는 인민군협주단 창작지도일군들에게 시선을 주시였다.
《오늘 공훈합창단(당시)동무들이 노래를 잘 불렀소. 모두에게 감사를 줍니다. 그들이 너무 무리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소.》
《최고사령관동지, 행복한 밤이였습니다.》
유진수가 감격한 목소리로 대답올렸다.
《그렇다니 나도 기쁘오. 자, 이만합시다. 난 갈데가 있어서 먼저 자리를 뜨겠소.》
《장군님, 너무 늦었습니다.》
조명록이 한걸음 나서며 황급히 말씀올렸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소.》
김정일동지께서는 빨리 들어가서 눈을 붙이라고 이르시며 대기실을 나서시였다. 조만간에 동터올, 아직은 어둠에 잠긴 미명의 하늘을 바라보시며 승용차에 오르시였다.
지휘성원들은 경건한 자세로 멀어져가는 승용차를 향해 거수경례를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