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회)
14
(19)
숲속에 18명의 대오가 정렬하였다.
바람이 나무가지를 흔들자 눈가루가 뽀얗게 날리였다.
맨앞에 서신
한편 선발대로 왕청지구에 먼저 들어갔던 김일룡은 요영구에 가서야 리광을 만날수 있었다. 얼굴이 검실검실하게 탄 리광은 쩍 벌어진 어깨를 돌려세우면서 김일룡을 쳐다보았다.
《김동무, 대대가 다 정렬되였습니다. 왕청에로 련락을 해야 할걸 그러지 않았습니까?》
《요영구에서 먼저 사령부를 맞이합시다.》
김일룡이와 리광은 환영군중이 모여선 산등으로 걸어올라갔다.
맨앞에 이곳 대대가 붉은기를 선두로 정렬해섰고 그뒤로 길량옆에 군중들이 기발과 북을 들고나왔다. 대렬앞으로 걸어가면서 무슨 주의를 주기도 하고 군복이나 자세를 바로잡아주기도 하던 리광이 중간쯤에서 키가 자그마한 한 대원앞에 멎어섰다.
《광천동무도 왔소?》
《네, 어머니와 함께 막 달려왔습니다.》
《어머니도 오셨다?! 그 먼데서…》
《기어이 오셔야겠다기에…》
《잘했습니다. 광천동무는 형을 대신해서
그때 광천이와 시선이 마주친 리광은 광천이의 어깨에 메워진 총으로 얼핏 시선을 가져갔다. 그 순간 리광은 그 총을 추켜들고 푸른 하늘을 쳐다보던 리동천을 상기하였다.
마을쪽에서 세필의 말이 끌리워나왔다.
맨앞에는 갈기가 소담하고 키가 늘씬하나 흰말이고 그다음것은 점박이얼룩말이였으며 세번째것도 그와 비슷하기는 한데 약간 밤색이 진해보이는 날씬한것이였다.
《떠나지 않겠습니까?》
리광이 말고삐를 잡더니 뒤에 대고 소리쳤다. 그러자 김일룡이 세걸에게 무엇을 지시하고있다가 고개를 끄덕여보이더니 역시 말곁으로 다가왔다.
목갑총을 뒤로 돌려놓더니 리광이 민첩한 동작으로 두번째 점박이말 잔등으로 훌쩍 뛰여올랐다. 말허리가 휘청하면서 고삐가 팽팽해지자 눈이 둥그래진 말은 머리를 쳐들고 갈기를 흔들었다. 그런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리광은 혁띠를 바로잡아놓더니 군모를 고쳐쓰고 앞을 내다보았다. 그때 대원 한명이 나서서 흰말의 고삐를 리광에게 넘겨주었다. 고삐를 받아들고 뒤를 돌아다보았을 때 김일룡이 세번째 말에 또 같은 동작으로 올라탔다.
《떠납시다.》
김일룡이 발뒤축으로 말배때기를 긁어올리면서 고삐로 탄력있게 생긴 말엉뎅이를 툭 갈기였다. 말은 훌쩍 땅을 걷어차면서 앞으로 달려나갔다.
장사진을 이루어 정렬해선 유격대대렬과 산등을 한벌 덮은 군중들을 보게 되자 그는 입가에 미소를 그리면서 김일룡을 의미있게 쳐다보고나서 흠칫 몸을 추어올리면서 박차를 가했다.
《쩌!》
말은 땅을 구르면서 산허리를 가로질러 잠시동안에 아득히 동쪽으로 사라져갔다.
이때
《빨리 오게, 이제 멀지 않았어.》
뒤에서 웅얼웅얼하는 대답소리가 바람결에 날아왔다.
해가 서쪽산마루에 올려놓이였을 때 대오는 드디여 요영구 뒤산에 오르게 되였다.
《전동무, 저기 지금 누가 가있습니까?》
《리광동무가 이곳까지 맡아보고있습니다.》
《리광동무는 지금 왕청에 있지 않을가?》
《일룡동무가 그런 사정을 알고 떠났습니다.》
《좋은 곳이요. 아주 마음에 듭니다.》
푸르허로 내떼신 이해의 첫걸음은 그후 곧 4월 25일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는데 잇닿아있었다.
이미 소사하에서 예견했던것처럼 이 한해의 시련의 정도는 가혹성에 있어서 또 처절성에 있어서 도저히 상상이 미칠수 없는것이였지만 그때마다 이를 악물고 고난을 이겨내였다. 암초도 에돌아야 하였고 폭풍도 뚫어야 하였다. 바다는 배 한척을 금시 삼켜버릴것처럼 산더미같은 파도를 날라왔지만 그래도 배는 끝내 이 한해의 대안에 이르게 되였다.
《전광식동무, 기분이 어떻습니까?》
뒤를 돌아보며 전광식에게 문득 한마디 하시였다.
전광식은 한걸음 나서며 웃는 낯으로 쳐다보며 대답하였다.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그럴거요. 이런 경우에는 통쾌하다고 해야지. 자, 보시오. 하늘은 재빛으로 물들고 대지는 흰눈에 덮이였습니다. 음산한 하늘과 거치른 땅이 저끝에 맞닿아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해에 저 땅우에 보람찬 한해의 자국을 남기였습니다. 피어린 자국이였고 또한 귀중한 자국들이였습니다. 어떻습니까? 저 땅에 새해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것 같습니까?》
전광식은 눈을 빛내이면서 한걸음 더 앞으로 나섰다.
《우리 인민의 영웅서사시가 저우에 적혀질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옳습니다. 좀더 간고할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보다 더 영광스러운 자국을 남기게 될것입니다.》
말씀을 끝내신
그렇다, 이해에 혁명이 자랐고 대오가 늘어났으며 동무들도 몰라보게 자랐다. 근거지가 생겨나고 적들의 기도가 걸음마다 파탄되였다. 그 모든것들은 다 좋고 매우 통쾌하다. 하지만
어찌보면 새해-1933년에 있게 될 그 로정을 미리 그려보시는것 같기도 하고 또 어찌보면 지금 멀리 떨어져있는 차기용이, 박흥덕이, 리혁이를 비롯한 많은 동무들을 생각하시는것 같기도 하셨다. 그보다도 이미 우리곁에 없게 된 차광수동무, 최창걸동무, 리동천동무에 대하여 생각하고계실는지도 모를것이였다.
그때 문득 전광식은 다시 만나뵈올수 없게 된
《말이 온다!》
고개를 번쩍 들며 전광식이 앞산기슭을 바라보았다. 말을 타고 달려오는것은 리광이와 김일룡이라는것을 대번에 알수 있었다.
《붉은기를 내드오!》
전광식의 목소리가 찬바람을 흔들며 산마루로 울려갔다. 그는 곧 권총을 빼들고 신호총을 한방 쏘았다.
눈바람을 헤가르며 총소리가 야무지게 메아리쳐 울려갔다.
달려오던 말이 멈칫 서서 잠시 있더니 그쪽에서 신호총소리가 마주 울려왔다.
리광은 고삐를 당겨 말을 세우고 산마루를 올려다보았다. 검은 그림자가 산발에 총총히 잇대여 보이고 그 맨앞에 붉은기가 힘차게 나붓기고있다. 노을빛을 받은 붉은기는 찬란한 빛을 뿌리면서 한걸음씩 밑으로 내려왔다.
흰말의 고삐를 훌쩍 집어던지며 리광은 《쩌!》하고 소리를 치면서 박차를 가했다. 흰말은 굽을 들어올려 공중 일어섰다. 떨어지면서 붉은기쪽을 향해 살같이 달려올라갔다. 그뒤를 따라 리광이와 김일룡이 올라갔다.
바람이 계속 불었다. 맵짠 바람은 나무가지들을 흔들고 얼굴에 눈을 끼얹었다. 하지만 차디찬 그 바람속에는 어딘지 모르게 벌써 다가올 봄기운이 스며있었다.
흰말에 앉으신
대오가 언덕에 오르자 군중들이 환호를 올리며 마중나왔다.
흰말을 앞세우고 말들이 달려갔다.
사람들 가까이에 이르자
《저 어머닌 누굽니까?》
군중들속을 헤가르며 한 녀인이 앞으로 허둥지둥 걸어나왔다.
《리동천동무 어머닙니다.》
《동천동무 어머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