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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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으로 이해의 마지막날이였다. 대원들은 산막에서 그동안 군정학습을 하였다.

많은 문제들이 토론되였다. 조선인민의 민족해방투쟁에서 이해를 어떻게 특징지을수 있을것인가? 항일무장투쟁을 가일층 발전시키기 위해서 당면하게는 무엇을 해야 할것인가?

해방지구근거지를 앞으로 어떻게 더 강화하며 보위할것인가?

이러한 문제들을 놓고 모두 자기 견해들을 내놓았다.

저녁식사를 끝내고나서 김일성동지께서는 오늘로 토론을 결속짓자고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방안을 한번 둘러보시였다.

좁은 방안에 빽빽이 들어앉았다. 벽에는 기름등잔이 걸리고 문틈으로는 눈이 내리덮인 산등이 내다보이였다.

모두 숨을 죽이고 사령관동지의 말씀을 기다리였다. 그이께서는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말씀을 시작하시였다. 그이의 정중한 음성이 정적에 잠기였던 방안을 가볍게 울리였다.

《1932년, 이해를 우리가 어떻게 걸어왔습니까? 우리는 이해가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영광스러운 해라는것을 서슴없이 말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해 봄에 온 세상앞에 조선공산주의자들의 결의를 표명하는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였습니다. 일제침략자들을 무장으로써 소탕할데 대한 이 단호한 선언은 조선인민의 민족해방투쟁에서 새로운 시기를 열어놓았습니다. 우리가 안도의 숲속에서 대렬을 편성하고 그 이름을 반일인민유격대라고 선포하게 된 그 시각부터 우리 인민은 일제침략자에 대한 단호한 심판자로 되였으며 자기 민족을 자기의 손으로 해방할데 대한 확고한 각오와 힘을 가진 민족으로 되였습니다. 동시에 이때로부터 식민지민족해방투쟁이 자체의 힘으로 하나의 독자적인 혁명력량으로 자라나게 되였습니다. 우리가 추켜든 이 기치는 제국주의략탈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던 식민지체계에 대한 파탄이 시작되고있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며 이 길에서 인류는 전시대가 빚어내였던 커다란 불행-식민지압박에 대한 재난을 벗어던지게 되였습니다. 이렇듯 이해에 우리는 그 누구도 가보지 못한 초행길에 대담하게 들어서게 되였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가장 엄혹한 시련을 이겨내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습니다. 땅에 떨어진 우리 혁명의 씨앗은 싹을 내밀자마자 모진 바람과 추위를 이겨내야 했습니다. 광풍은 사정없이 불어닥쳤고 추위는 땅을 갈라놓았습니다. 그러나 싹은 그 모든것을 이겨내면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잠간 말씀을 중단하시였다.

방안공기는 긴장되여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몇마디로 표현하신 김일성동지의 말씀은 그 끝없이 넓고 깊은 사색으로 하여 모든 사람의 넋을 일시에 사로잡고말았다.

전광식이도 김일룡이도 그리고 한흥권 등이 방안에 앉은 모두가 안도의 숲속에서 첫 대오를 편성했던 그 대렬에 서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는 차광수만이 없다.

별로 특이한것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4월 25일 한낮이 좀 기운 그 시각에 횡대로 늘어섰던 그 대오가 그토록 위대한 력사의 한 시기를 구획지을줄 그들은 미처 몰랐었다.

그때 그들은 모두 총을 들어야겠다는 열망이 비로소 실현되였다는것과 상상했던것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정렬해섰다는것 그리고 사령관동지의 연설이 처음부터 끝까지 격동에 넘쳐있었다는것과 그로하여 모두의 가슴이 한없이 높뛰였다는것을 기억하고있을뿐이였다. 하기는 위대한 력사적사변들모두가 그때그때는 별로 특이한것 같이 느껴지지 않는것처럼 이때도 바로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던것이다.

방안 여기저기서 높은 숨소리가 들리였다.

전광식은 그 무엇이 가슴을 쾅쾅 두드리고있음을 느끼였다. 그는 참기 어려워 손을 들어 가슴을 누르며 고개를 돌렸다. 옆에 앉은 한흥권이도 어깨를 들먹이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활짝 열어제낀 창문을 거쳐 아득한 산발을 굽어보기도 하시고 나무그루가 빽빽이 들어선 울창한 숲속을 내다보기도 하시며 이 한해에 걸어온 로정들에 하나하나 의의를 부여하시였다.

《엄혹한 시련의 한해였다.》라는 그 한마디 말씀에는 실로 형용키 어려운 가지가지 사연이 깃들어있었다.

김일성동지의 시야에는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흘렀다.

가시덤불, 바위벽, 물창, 아무거나 닥치는대로 밟고나가는 발들, 칡넝쿨로 가로세로 동이였던 차기용의 그 신, 손가락같이 굵게 새끼를 꼬아 미투리를 만들어 신은 최칠성의 그 험한 발.

그것이 지나고나니 이번에는 맨발로 배칠배칠 언덕을 걸어올라가는 천상데기의 다섯살짜리 계집애가 나타났다.

몸져누운 늙은이, 총에 맞았다는 독립군청년, 구두발에 채워 다리를 절뚝거리던 마령감의 뒤모습…

《…우리는 초행길이였던 까닭에 난관을 더 많이 겪었을수도 있습니다. 간혹 어떤 때는 더 에돌았을수도 있고 또 능히 피할수도 있는 험한 길을 걷게 되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총체적으로 볼 때 어쨌든 우리는 자기 로정을 곧바로 걸어왔으며 멀리 앞으로 나아갔고 하나의 봉우리에 오르게 되였습니다. 두만강지구, 압록강지구 그리고 북부조선일대에 널린 무수한 지대들, 함흥, 원산, 청진, 웅기 그리고 탄광, 광산, 림업지대들에 우리의 손이 미쳐갔습니다. 여기 모인 우리 18명이 핵심이 되여 안도의 숲속에서 렬을 짓기 시작한 우리의 대오는 왕청, 연길, 화룡, 훈춘으로 그리고 리혁동무가 나가있는 북부지구에, 저 멀리 리홍광동무가 있는 압록강과 서부지구에로 뻗어갔습니다. 가는 곳마다에 중대, 대대가 나왔습니다. 또한 넓은 해방지구유격구를 확보하였고 그 두리를 반유격구로 튼튼히 둘러쌌습니다. 우리의 조직망은 촘촘한 그물처럼 우리 땅을 뒤덮었습니다. 우리는 또한 자기들도 놀랄만큼 자랐습니다. 어데를 가나 뭇별처럼 흩어져 빛을 내고있는 우리 동무들은 자기 할일을 거침없이 해나가고있습니다. 차기용을 선두로 끝없이 뒤에 잇대선 탄부들, 최칠성, 박흥덕의 뒤에 선 수많은 빈농민과 머슴들, 영숙이를 비롯한 녀동무들 그리고 리광, 최진동동무들을 앞세운 전국각지에 나가있는 공작원동무들. 그들은 자기들도 자라고있지만 오늘의 한 세대를 키워내고있으며 로동자, 농민을 각성시키고있습니다. 이리하여 반혁명의 공격에 혁명의 반공격이 시작되였습니다. 적들은 이에 대해서 비명을 지르게 되였습니다. 적들자신이 우리를 인정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습니다. 언젠가 동무들이 토론하면서 〈공산당선언〉 첫머리를 인용해서 말했다고 하지만 구태여 그에 비유해서 말한다면 지금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일체 력량을 우리를 말살하는데 돌리고있습니다. 우리 유격대를 가리켜 적들은 〈공산군〉이다, 〈공산비적〉이다 하고 떠들어대고있지만 결국은 일제의 모든 통치력량과 정치적세력이 우리를 반대하기 위해 련합되였다는것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두가지 결론을 지을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우리의 존재가 이미 적들에게마저 확고히 인정되였다는 사실이며 둘째는 이미 놈들이 우리를 타승해낼수 없는 력량으로 자라났다는것을 인정한 그것입니다. 전동무, 그 신문을 어쨌습니까? 세걸동무가 구해온것이 있었지요?》

전광식이 진일만에게 그 《동아일보》 어떻게 했느냐고 묻자 진일만이가 웃주머니에서 보풀이 인 신문 한장을 꺼내 방바닥에 펼쳐놓았다.

《자! 이것이요, 〈총을 든 김일성공산군 출현, 두만강류역에 공산지구 형성…〉》

널름거리는 등불빛을 받아 신문장은 번뜩번뜩하였다.

기사원문은 절반이상이나 삭제당하여 꺼먼 동판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편집자들의 세심한 고려에 의해서 활자와 지면이 극력 축소되였음에도 불구하고 력사상 새로운 사건에 대한 첫 보도로서의 응당한 비중은 잃지 않고있다.

전동무, 한번 기사를 읽어보시오.》

전광식은 신문장을 등잔불에 비쳐들고 류창하게 원문을 내리읽었다.

《동무들! 어떻습니까? 우리가 이해에 해놓은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겸손하게만 말하기 위해 아무것도 한 일이 없고 그저 내처 숲속과 눈길을 걷기만 했다고 해야겠습니까? 아닙니다. 절대로 그렇게 말할수 없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이렇게는 말해야 합니다. 조선민족은 일제침략자들에 의해 수십년전에 강점당하여 대수난을 겪고있으며 마침내는 민족존망의 위기에 놓이게 되였다. 조국을 빼앗기고 고향을 잃은 많은 사람들이 정처없이 길을 떠나 흩어지는 슬픈 력사가 시작되였었다. 그러나 우리 인민은 이해부터 침략자를 타도하기 위한 혁명전쟁을 시작하였으며 그로 인하여 력사는 새로운 고비에 들어서게 되였다. 이런 정도로 말입니다. 우리는 벌써 싹이 아니라 한돌기 년륜을 감아놓은 나무로 되였습니다. 땅속깊이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었습니다. 폭풍과 눈보라는 계속 불어칠것이지만 이미 대지를 힘있게 움켜잡은 뿌리는 끄떡않고 그루를 떠받들고있습니다. 간혹 가지가 꺾이고 잎도 뜯길것이지만 나무는 창공을 향해 기운차게 자라오를것입니다. 동무들! 때가 되였습니다. 지체하지 말고 새해에는 근거지로 들어갑시다.…》

그이께서 고개를 돌리면서 힘있게 말씀하시자 등잔불이 꿈틀 놀라는것처럼 불꼬리를 흔들었다.

그때 일시에 고개를 들어 그이께로 시선을 집중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환희에 넘친 동무들의 얼굴을 보며 만족하게 웃으시였다. 그때 전광식은 갑자기 눈굽이 뜨거워짐을 느끼면서 고개를 떨어뜨리였다. 그가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김일룡이와 한흥권을 보았을 때 그들의 눈굽에도 뜨거운것이 맺혀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계속하여 근거지에 의거하여 또 한해를 대담하게 밀고나아갈데 대하여 자세히 말씀하시였다.

모임을 끝내고 김일성동지께서 밖으로 나오시였을 때도 방안에서는 아직 전광식의 흥분된 목소리가 울리였다.

달빛이 흘렀다. 눈이 두텁게 내려덮인 소나무가지와 숲속 저쪽으로 사라오솔길우에도 달빛이 은은하게 비치였다.

바람이 눈가루를 휘말아올리였다.

밤은 깊어가고 날씨는 더욱더 맵짜졌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그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신채 뒤짐을 지고 뚜벅뚜벅 눈우를 걸으시였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또한 휴식의 한때를 보낼 때도 그이께서는 언제나 이렇게 숲속을 거닐기를 좋아하시였다.

조국은 신음하면서 지금 또 한해를 보내고있다.

제야의 종소리도, 푸짐한 식탁도 없이 그저 멍이 든 몸뚱이를 꽉 부둥킨채 서서히 새해를 맞이하고있다.

멍에에 시달린 몸이 곤드라진 바다기슭 가대기군네 집에서, 무릎걸음으로 질통을 쳐낸 탄군들이 잠든 밥집에서, 고콜불밑에 굶은 식구가 한구들 드러누운 화전민의 방바닥에서 밤은 깊어가고있다. 래일이면 교수대에 오를 젊은이의 잠들지 못하는 감방마루바닥우로, 불에 탄 집터우에 다시 기둥을 일궈세운 근거지마을앞으로, 밤길을 걷는 유격대원들의 듬직한 발등으로 이해의 마지막밤이 흘러가고있다.

양지촌뒤 번번한 잔디언덕에도 눈이 덮이였고 달빛은 흐르리라, 느릅나무 한그루 서있던 그 언덕에도 밤은 깊어가고 바람은 불고있으리라, 동생들은 지금쯤 어느 집 웃방에서 무엇을 생각하며 이밤을 보내고있는지, 혹은 제각기 따로 이밤을 지내는지, 그렇지 않으면 이때만을 위해 철주가 찾아가 어린 동생의 말동무라도 해주고나 있는지, 만경대의 할머님께서는 이 한해의 마지막날에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아직도 돌아오지 못할 때인줄 번연히 아시면서도 해저문 길가에 나서서 행여나 아들과 손자들이 돌아오지 않나 해서 이마에 손을 얹고 내다보실것이다.

(할머니! 이제 꼭 나라를 찾고 돌아가겠습니다. 새해에도 부디부디 몸성히 계십시오.)

가슴이 쩡 울리는 순간 그이께서는 고개를 드시였다. 뚜렷이 나타났던 할머님의 주름진 얼굴은 간곳없고 무겁게 가지를 내리드린 나무그루가 마주서있다.

숲속 멀리까지 걸어오신것이다.

눈에 덮인 산발과 나무가지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계시던 그이께서는 아버님께서 들려주시던 시구절을 외우시였다.


남산의 저 푸른 소나무가

눈서리에 파묻혀서

천신만고 괴롬받다가

양춘을 다시 만나 소생할줄을

동무야 알겠느냐


바람은 세차게 분다.

골짜기를 빠져나온 회오리바람은 나무를 넘어뜨릴것처럼 기승을 부리였다. 그러나 아름드리나무는 가지를 떨면서 모로 기울어졌다가는 다시 일어서군 한다.

나무가지들은 힘겨운듯이 솨- 솨- 소리를 내고있다.

모진 계절은 생존의 온갖 불리한것들, 추위, 바람, 그밖의 모든것을 총동원해가지고 하나의 생명을 앗아내려고 악을 쓰고있다.

하지만 억센 생명은 지심을 움켜쥔 뿌리로써 땅의 진을 빨아올리고있으며 껍질과 잎으로는 해빛과 대기의 자양을 쉴새없이 받아들이고있다. 하여 나무는 엄혹한 그속에서 거목을 이룰 한돌기의 년륜을 마련하고있다.

그렇다! 년륜은 바로 이런 추운 겨울에 생기는 법이다. 그것이 없이야 무슨 나무라고 할수 있겠는가!

1932년은 바야흐로 조국과 혁명과 그리고 이 나무에 그리고 또 모든것에 한돌기의 굵직한 선을 돌려감으면서 흘러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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