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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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날 다섯개의 조로 나뉘여 포위를 뚫을 고리를 찾기 위해 정찰을 떠났다. 김일성동지께서도 지형을 익히실겸 정황도 좀 살펴야겠다고 하며 친히 길을 떠나시였다. 김일룡이와 진일만이 그이를 호위하였다.

날이 저물자 송덕형네 조만 내놓고 정찰조들은 다 돌아왔다.

그들은 모두 눈덩어리처럼 된데다가 기진맥진해있었다. 줄곧 눈속을 기여다녀야 했던것이다. 어디서나 적이 나타났다. 산등성이를 하나 넘기 위해서도 몇시간씩 배밀이로 기여야 하였다.

자청해서 길을 틔워보겠다던 마령감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방안에서는 토론이 벌어졌다. 어떻게 하면 포위를 뚫겠는가 하는것이였다. 정찰결과를 하나하나 종합하고있던 전광식은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모두다 암담한 소식뿐이였다.

그런대로 적정만은 명백해졌다. 부대는 직경 약 5km를 두고 포위되여있었다. 유격대가 안에 들어있다는것을 알고 그렇게 한것인지 여러개 방면으로 밀려다니던것들이 우연히 한곳에 모이게 되였는지 그것만은 아직 딱히 알수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들은 불을 피워놓고 시간을 보내면서 그 어떤 명령을 기다리는듯하였다.

비행기는 날이 밝자부터 날개를 개울거리며 무엇을 찾고있었다.

《자! 동무들, 토론 좀 해봅시다. 송덕형동무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사태는 뻔하지 않소?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는 포위되였소. 적어도 몇겹으로 이루어진 포위진속에 들어있소. 이런 형편에서 어떻게 우리가 사령관동지께서 구상하신 구국군과의 련계를 가지며 또 우리자신이 어떻게 사령관동지를 모시고 무사히 빠져나갈 출로를 찾을것인가?》

가슴과 어깨가 화락하니 젖었지만 전광식은 웃동을 벗지도 않고 앉아 조급하게 서둘렀다. 숫제 자기 옷이 젖었고 그때문에 몸이 몹시 끈끈하다는것을 의식할 경황조차 없었다. 누구나 이 사태가 사령관동지의 신변과 관련되여있고 따라서 조선혁명의 전도와 관련되여있는 엄중한 정황이라는것을 느끼고있다. 그런것만큼 사령관동지께서 들어오시기전에 빈틈없이 대책을 세워야 하였다. 전광식이 조급해하는것 못지 않게 방안에 들어앉은 모든 사람의 얼굴에도 안타깝게 시간을 재는 자취가 력력히 떠올랐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초조하면 할수록 방안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기만 하였다. 무슨 문제든지 지어 세계혁명과 같은 거창한 문제를 두고서도 앞을 다투어 일어나서는 자기의 주장을 서슴없이 내놓군 하던 동무들이건만 누구하나 먼저 입을 떼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도 조용하고 감정의 굴곡을 깊이 감출줄 알던 전광식의 미간이 신경질적으로 파르르 떨렸다. 그가 보건대 무겁게 잦아드는 이 방안의 공기 역시 수만의 적병에 의한 부대의 포위만 못지 않게 엄중한 하나의 정황이였다. 이것은 준엄한 객관적정황을 그대로 반영하고있다. 그만큼 출로를 뚫을 가능성이 적거나 아직은 좋은 생각의 실마리조차 찾아낸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였다.

《동무들, 문제를 벌려놓지 말고 본질적인것만 압축해서 제기해야겠습니다. 우선 당면해서 우리가 풀어야 할것은 이 포위를 어떻게 뚫고나가겠는가 하는것입니다. 다른 문제는 번거롭게 생각하지 맙시다. 당면한 문제의 본질은 이것입니다.》

전광식은 평소에 높지 않던 목소리를 더 죽여서 마치 귀속말이라도 하듯 말하였다. 그러나 그 낮은 목소리는 고르롭지 못했고 턱없이 크게 들리기까지 하였다.

불시에 김창문이가 더는 참을수 없다는듯이 내쏘았다. 여느때는 말이 없고 지명을 해도 토론하기를 몹시 거북해하던 동무였다. 그런 그가 야무진 목소리로 성급하게 부르짖었다.

《첫째로, 우리가 알아야 할것은 벌써부터 이런 정황이 있을수도 있다는것을 예견하지 못한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곤난이 있을것이다, 추위와 굶주림이 엄습할것이며 때로는 적들에 의해 위험한 정황에 빠질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막연하게 생각해서는 안될것입니다. 우리들은 우리들끼리 있는것이 아니라 사령관동지를 모시고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최대의 경각성이 필요하며 안전이 요구되는것입니다. 둘째로, 이미 나타난 징조에 대해 과학적이고 현실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은 그것입니다. 벌써 적들이 나타났다는것을 알았을 때 적어도 사령부만은 안전한 곳으로 모실 가능성이 있었고 또 응당 모셔야 했을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령관동지와 함께 다닌다는 한가지 기쁨에 도취해버렸습니다. 셋째로는 바로 이 방안에서 벌어지고있는 우유부단한 분위기입니다. 내 생각에는 우리가운데 아직도 그 어떤 요행수를 기다리는 경향이 있지 않는가 생각됩니다.》

《이제 와서 그런것을 따져봐야 별수 없지 않소?》 하고 한흥권이 자리를 고쳐앉으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그럼 전광식동무 말대로 문제는 어떻게 이 고비를 넘기는가 그것부터 토론합시다. 내 생각엔 이런 형편에서 어떻게 희생을 적게 내는가 하는것만이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희생은 있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그것을 주저한다면 더욱더 엄중한 사태에 이르게 될것입니다. 그렇지만 동무들, 절대로 우울해질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이런것에 대해서 각오가 되여있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김일성동지께서 부엌문을 열고 들어서신것은 이무렵이였다. 보초에게서 정찰조들이 돌아온 정형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데리고 갔던 김일룡을 송덕형이네 조를 마중하러 보내고 혼자 들어서다가 김창문의 날카로운 토론을 들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조용히 아궁앞으로 가시여 먼저 연기를 피워올리는 등걸을 방고래앞으로 깊숙이 밀어넣고 벌건 숯불을 한아궁 끌어내시였다. 웃옷을 벗으니 엉켜붙었던 눈이 터실터실 떨어지면서 -- 하고 김을 뿜어올리였다.

신도 화락하니 젖었다. 그이께서는 천천히 털모자와 웃옷을 가마목에 얹으시고나서 불앞에 앉아 신을 벗으시였다.

(하기는 사태가 간단하지는 않지. 어디 우리 동무들이 이 한해에 축적한 힘과 지혜를 가지고 이 엄중한 사태를 어떻게 돌파하는지 좀 들어볼가.…)

그이께서는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뇌이시였다. 이글이글 타는 숯불앞에 두손을 펼치니 아른아른 피여오르는 아지랑이모양의 김과 불기운우에 방금 보고 온 어수선한 정황들이 가로세로 얽히여 소용도는것만 같으시였다.

(좋은 일이지. 나도 이렇게 생각하고… 또 우리 동무들도 생각하고… 지금은 지난 한해의 우리 사업을 두고 혁명의 국면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킬 각도에서 총화도 해보고 이 지점에서 앞으로 나갈 방책을 토의해볼 때가 되기도 했어.)

눈보라가 사납게 울부짖으며 부엌문이 덜컹거릴 때마다 불그림자가 커다랗게 너울거리며 춤을 춘다.

우-우 귀전을 울리는 바람소리, 설레이며 몸부림치는 밀림의 울부짖음.

어느덧 그이의 안광에는 따뜻한 아지랑이무늬대신 여태까지 뚫고 헤쳐오신 무수한 산봉우리들과 아득한 눈길이 떠오르시였다.

그때도 눈이 이렇게 강산을 덮었었다. 압록강에는 물소리도 없었고 새들도 날아넘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비끼지 않은 얼어붙은 강우로 바람만이 거슬러 불고있었다. 마른풀대들이 모로 눕고 날이 선 눈가루들이 안개를 일구며 볼을 스치였다. 정작 강판에 발을 들여놓으셨을 때는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이께서는 뒤로 돌아서시였다. 만경대에 잇닿아있을 한가닥 오솔길이 산굽이를 돌아 아득히 사라졌다. 눈덮인 산들, 바람에 떨고있는 나무가지들, 오솔길, 그것이 눈으로 볼수 있는 조국땅의 전부였다. 그러나 그것들은 못견디게 시선을 잡고 놓지 않았다.

이제 가면 언제 다시 저 땅을 밟아볼수 있을가.

그이께서는 뒤걸음질을 하며 물기어린 눈으로 먼산을 바라보시였다.

바람은 사납게 불어 강바닥을 훑으며 거슬러올랐다.

그이께서는 한걸음한걸음 내떼여 어느사이에 강 한복판에 이르시였다. 보선에 고무신을 신은 발이 눈에 푹푹 빠져 눈우에 발자국이 뚜렷이 찍히였다.

그이께서는 주먹을 쥐고 걸음을 옮겨놓으면서 그 언젠가 이 나루터에서 들은적이 있었던 노래를 입속으로 부르시였다.


압록강의 푸른 물아 조국산천아

고향땅에 돌아갈 날 과연 언젤가

죽어도 잊지 못할 소원이 있어

내 나라를 찾고서야 돌아가리라


(언제 다시 이 땅을 밟을수 있을가. 내가 자라나고 선조의 무덤이 있는 이 땅에 다시 돌아올 날은 과연 언제일가.)

가슴을 움켜쥐신 그이께서는 다시 뒤를 한번 돌아보시고는 터벅터벅 걸음을 내떼시였다. 자국은 아득히 저편까지 잇닿았는데 휘익 한줄기 바람이 불어 눈보라가 산허리를 휘감고 돌아갔다.

《조국이여! 고향이여! 잘 있으라. 내 기어이 너를 찾으리라.》

갑자기 방안에서 한흥권의 거쉰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명상에서 깨여나서 고개를 드시였다.

《나는 더 길게 말할것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일분일초가 귀중합니다. 이때 우리가 주저한다면 조선혁명을 파국에 몰아넣게 될수도 있단 말입니다. 빨리 행동합시다. 이밤을 새면 그때는…》

뒤를 채 맺기전에 누군가가어성을 높이였다. 김일룡이였다. 그 역시 평소에 말이 적은 편이지마는 이런 중요한 모퉁이에서는 자기 립장을 결정적으로 드러내놓군 하였다.

《나는 한동무의 말을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나를 돌파구를 뚫는 결사대에 넣어주시오. 나는 그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겠습니다. 참되게 살줄 알았다면 적절한 시기에 참되게 죽을줄도 알아야 할것입니다. 사람은 온 생애를 총화하는 마지막순간이 중요하다는것을 나는 잘 알고있습니다. 한평생을 혁명을 하다가도 죽는 순간에 잔등에 탄알을 받고 쓰러진다면 그것은 비겁한자로, 배신자로 될것이며 그와 반대로 큰 공로없이 싸우다가도 가슴에 적탄을 받고 장렬한 최후를 맞이할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그는 잘 싸웠다고 할수 있을겁니다.》

방안에서는 높은 숨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우- 바람이 불었다. 모래알같은 눈이 벽을 때리고 지나간다. 멀지 않은 곳에서 굶주린 승냥이 우는 소리가 들리였다. 처음에는 한두놈이 우는것 같더니 이윽해서 무리를 지어 꺼이꺼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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