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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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시쯤 되자 뻔질나게 병졸들이 오가고 호리모도놈이 왝왝 고함을 질렀다. 우등불을 놓기는 했지만 추워서 오금을 쓸수 없는 하라는 다시 자기 천막쪽으로 가서 개털외투를 또 한장 뒤집어쓰고 기름불에 마주앉았다. 그는 썼다.

《…허공에다 대고 주먹을 이해안으로 공산유격대를 같다. 벌써 만 석달째 관동군의 대부대가 백두산줄기의 량기슭과 주요 릉선을 따라 진격하고있다. 내가 려순이나 심양이나 또는 서울, 라남, 회령 등지에서 만난 그 숱한 일본고관들은 모두 같은 소리를 하였다. 〈이해안으로 공산유격대를 소멸한다〉고. 그러나 나는 아직 소멸당한 공산군의 단 한명의 시체도 목격하지 못했다. 황군은 눈에 불을 켜고 맹렬한 기세로 돌진하고있었다. 비행기도 동원되였고 수백수천의 수송수단이 자기의 최고성능을 내서 질주하였다. 수만명에게 쥐여진 총에서 탄환이 쉴새없이 발사되였다. 아마도 일본본국의 몇배에 달하는 면적의 숲속과 바위틈과 풀숲에 총탄이 뿌려졌다. 결과는 무엇인가? 령이다. 사태가 이쯤되면 일단 리성을 가다듬고 이런 의문을 제기해볼 필요가 있을것이다.

〈일본군이 진격하고있는 그앞에 전선이 있는가?〉

〈일본군이 발사하는 그 총구앞에 적이 있는가?〉

이것은 엄청난 지어는 황당하게 들릴수 있는 질문이겠지만 어쨌든 그것이 현실적일것이다. 왜냐하면 일본군은 한번도 전선을 형성한 전투서렬에 서보지 못했으며 진격하는 그앞에서 점령해야 할만 한 령토나 진지를 발견하지 못했기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것은 전선이 없는 전투이다. 과녁이 없는 발사이다. 이것은 수수깽이를 둘러메고 군사놀이를 하는 일여덟살짜리 아이들에게도 명백한것이지만 우리의 현역장군들에게는 리해되지 않고있다.…》

옆에서 《꽝.》 하고 총소리가 났다. 하라는 만년필을 쥔채로 천막을 들치고 달려나가 무슨 일인가고 물었다. 누런 이를 드러내놓고 세명의 병사가 각기 다른 음성으로 웃었다.

조선령감을혼내주었지요. 머리에 총대를 올려놓고 쐈습니다. 그래도 워낙 신경이 둔한 령감이라 눈도 깜짝 않습니다. 히히히.》

관둬, 관둬. 너희들은 그 령감앞에서 너희들의 신경이 건전치 못하다는걸 지금 보여주고있는거야.》

쓰겁게 한마디 던진 하라는 천막으로 되돌아와 쪼그리고 앉아 또 썼다.

《바로 저렇다. 바보가 자기를 바보라고 자각하게 되면 벌써 그는 바보가 아닐것이다. 참을수 없을만큼 저렬하다. 아시아대륙의 동쪽에 남북으로 내리처진 반도, 조선을 전부 전선이라고 선포할수 있는가? 조선인을 전부 적병이라고 선포할수 있는가? 그렇게 할수 있다면 무엇때문에 구태여 백두산줄기에서만 옥작거리고있는가. 또 그렇다치더라도 2천만을 적으로 인정한 참모부가 불과 십여만을 동원했다는것이 비례가 너무나 벌어지지 않는가. 이것은 명치유신을 거쳐서 흠뻑 문명해졌다는 일본이 금비둘기를 활대끝에 앉히고 뛰여가던 시절로 되돌아가는것이나 아닌가. 지난봄 쪼각달이 걸렸던 그밤, 분명히 가래나무라고 기억되는 그 숲속에서 나는 이런 말을 들었었다. 〈당신의 손으로 조선공산주의자들은 자기 손으로 일제를 타도하고 자기 조국을 해방하였다는 특종기사를 쓸수 있게 하겠소.〉

나는 생각한다. 인간자체는 절대로 공정할수 없다고. 나- 하라도 야마도민족의 편에 설 때만 어느정도의 견해와 립장을 세울수 있을것이다. 그렇다면 일본군의 전과와 승리의 보도를 적는 그때라야만 나는 기뻐할 권리가 있는것이다. 일본은 불가극복의 힘과 대치해 허덕이고있는것 같다. 불을 지르고 총탄을 퍼부으면 생명을 가진 모든것이 쓰러질것이라고 믿는것, 이것이 큰 오산이다. 불이 지나가면 새싹은 더 잘 자라지 않는가.…》

하라는 글을 쓰다말고 눈보라가 불어닥치는 밖으로 또 나왔다. 아무리 적었대야 그 누구에게도 읽힐수 없는것이다. 그저 습관적으로 쓰는것이다. 그는 소용돌이속에 휘감겨돌아가는 하나의 모래알을 련상하였다. 리치로 보아서는 물밑에 가라앉아야 하지만 끝없이 그것은 거품을 타고 떠돌고있는것이다. 그 천막안에서 서투른 조선말이 흘러나왔다.

《령감이나 유격대 보면 여기 알려야 한다. 그래야 살려주겠다. 거짓말하면 목을 베겠다. 알았는가?》

참모부 저쪽에서는 아직도 왁작 떠들고있었다. 허공에다 대고 휘두를 또하나의 요란한 《주먹》이 마련되고있을것이다.

두고보자, 호리모도 말대로 직경 4키로 원을 몇겹으로 포위한 그안에 과연 무엇이 있을것인가? 아흔아홉번의 실패를 인정하면서도 단 한번의 성공을 담보할수 있는가 보자.

《아이구!》

왼쪽 천막안에서 누군가가 발을 부둥키고 신음소리를 낸다. 그것이 그 어떤 불길한 징조처럼 하라의 귀를 몹시 거슬렸다.

그는 낯을 찡그리며 돌아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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