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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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털외투깃을 잔뜩 일궈세운 하라는 발이 시려서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였다. 도수높은 안경알에는 입김이 불리워 앞을 잘 내다볼수 없었다. 숲속에는 관동군부대들과 라남19사단 간도림시파견대가 꽉 들어찼다.

그들은 지금 이른바 일석이조라는 호리모도작전을 벌리고있는것이였다. 로흑산을 포위하면 구국군부대와 유격대지휘부를 단꺼번에 잡아치우게 된다는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 동기작전을 성공시키려고 하였다.

사방에서 나무찍는 소리가 나고 여기저기서 꽥꽥경질적인 고함소리가 들리였다. 하라는 우등불이 타오르기를 기다리면서 호리모도가 들어있는 천막으로 절뚝절뚝 다리를 절며 걸어갔다. 그 천막은 마침 웅뎅이 있는 곳에 위치하고있어서 눈보라가 그리 심하지 않았다. 바깥에 나서니 맵짠 바람이 볼을 에이는듯하였다. 그는 아픔을 덜기 위해 되도록 발끝에 힘을 주면서 걸었다.

하라군은 북극바람을 처음 마셔보는가?》

얼굴이 꺼멓게 된 호리모도란 놈이 무릎에 펼쳤던 지도를 접으면서 수염이 한벌 내돋은 조개턱을 쳐들었다.

북극바람만 처음이 아니라 여기서 벌어지는 모든것이 처음이지요.》

《일본도로 사람의 목을 단번에 끊어내치는것 같은것은 더구나 처음 보겠군.》

호리모도놈은 주머니에서 무엇을 꺼내 입에 넣더니 질근질근 씹으며 롱을 걸었다.

《집 한채 없는 혹한의 산중에 이렇게 인구밀도가 높은것도 처음 보는 판이지요.》

《당신은 행복하오. 나같은 사람은 목을 내걸고 이 고생을 하고있지만 당신은 구경을 하면서 돈벌이를 하는것이 아니요. 한책을 써내면 꽤 쓸만한 별장 하나쯤 마련하게 되는가? 우리 군인들에 비하면 수지가 맞고 안전하고 참 좋은 일거리야.》

《그건 그렇다치고…》

하라는 더 이야기를 끌고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만 있을수도 없었다.

《도대체 무적황군은 언제쯤 가야 적이라는걸 만나보게 되는가요? 이를테면 공산군 말이요.》

《아주 못 만나게 될수도 있을걸.》

《그렇다면…》

그렇다면이 아니라 완전소멸된 적을 어데 가서 만날수 있겠소?》

하하하하, 하하하하.》

야유하는건가?》

세모난 호리모도놈의 눈이 적의에 차서 번뜩이였다.

그때 천막밖에서 인적기가 났다.

《누구야? 들어와!》

키가 호리호리한 하사관 한놈이 손에 비둘기 한마리를 움켜쥐고 용수철에서 튕기는것처럼 팔딱팔딱 팔다리를 놀려 경례를 붙이더니 호리모도앞으로 다가갔다.

《죽었는가?》

《아닙니다. 대좌님, 좀 얼떨떨해졌습니다.》

목을 한껏 움츠린 회색비둘기는 머리를 일궈세우지 못하고 눈만 머룩거리고있다.

《굉장한 추윈걸. 몇돈가?》

《령하 42돕니다. 대좌님, 그래서 이걸 따스한데 두어야겠길래…》

《할수 없지, 통신을 띄우지 못할밖에. 설사 네가 밤낮 품에 끼고있었다 해도 공중에 날려놓으면야 그만이 아닌가?》

《당분간 따스한데 가있다 오면 어떻겠습니까?》

《바보같은것, 뒤로 돌아 앞으로 갓!》

멍청해졌던 놈이 화닥닥 정신이 들어 절도있게 경례를 붙이고 돌아나갔다.

《그래 하라군은 빨찌산대장을 직접 목격했다는게 정말인가?》

호리모도놈은 벌써 이 말을 한달어간에 네댓번이나 하였다.

하긴 호리모도놈만 그런것이 아니라 그가 만나본 관동군사령부의 장군급들도 그렇고 라남사단의 모모한자들이 다 그러했었다. 역겨워 난 하라는 담배를 풀풀 피우면서 시답지 않게 대답하였다.

목격하다뿐인가, 한참동안 이야기도 나누었는걸.》

《하하, 거 대단한 사변이야. 력사적이라고 말할수 있어.》

《과장없이 말해서 대일본제국의 운명이 조선빨찌산대장의 손안에 들어있더군.》

《자네 그런 말을 해도 해당 기관에서 가만 놔두는가?》

《나야 본걸 말하지만 보지도 못한 어른들이 호기심을 가지는것이 사실은 더 죄에 걸릴걸.》

《하지만 어쨌든 하라군도 야마도족이 아닌가?》

《앞으로 그걸 후회하지 않게 되기를 나는 바라고있소.》

《그래 금년의 가장 큰 특종뉴스에 당신의 사건을 추천해야겠구먼?》

《내 사건이라고 해서는 정확한 표현이 될수 없지. 하지만 빨찌산대장 김일성장군이 대일본제국에 선전포고를 했다는건 첫번째에 꼽을만 한 뉴스겠지. 어찌면 력사적으로 보아도 가장 큰 사변의 하나라고 볼수 있지 않을가.》

《너무 과장하는게 아닌가? 당신은 매양 립장이 똑똑치 못한 발언을 하고있구만. 주의하는것이 좋겠어.》

《글쎄 두고보면 알 일이지. 피차 속단을 피하는게 좋을것 같네.》

대체로 얼굴이 삼각이 졌다고 할수 있는 호리모도가 속이 삐뚤어져서 상을 찡그리는데 뚱뚱보참모가 훌쩍 천막문을 들치고 나타났다. 그놈은 들어서는 참 동상자가 어제보다 배나 더 불었다고 보고하면서 체구에 비해 무척 작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바보같은것들! 불에 마주앉아서 얼어죽는거야 상관인들 책임질수 있는가. 그러니 다리절름발이가 한개 련대나 되는셈이군.》

《그건 그렇다치고 대좌나리는 지금 공격목표가 도대체 어디요?》

얼굴이 둥근 하라는 상대편을 경멸하는 눈길로 바라보며 좀 꼬인투로 물었다.

《공격목표? 그거야 명백하지. 공산주의지!》

이때 호리모도는 유격대를 완전포위했다는 확고한 자료를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하하하.》

《또 조롱하는가? 여보, 다시한번 그따위 소리 하면 내가 당신을 공격목표로 삼고 칼을 뽑겠소.》

호리모도는 허리에 매달린 굵직한 일본도를 곁눈질해보았다.

《군대야 이데야를 공격하자는것이 본분이 아니니까 목표물이 육안으로 보일것 아니요?》

《군대는 체육가들과 달라서 목표물보다 명령을 더 중요시하는거야.》

하라는 웃으려다 말았다. 목적에 대한 단순성, 그것만은 실로 경탄할만 하다.

어찌면 그렇게도 판에 박은듯이 모두 똑같은지 몰랐다. 이때까지 그가 본 일본군고관나리들이 대체로 모두 이 모양이였다.

《바라건대 모두 건강하기를…》

그는 이렇게 말하려다 말고 웃으며 돌아나왔다.

그는 자기 천막으로 돌아오면서 여기저기서 울리는 신음소리를 들었다. 약 1주일전부터 손발을 얼구는 병사들이 급격히 많이 생겼다. 귀가 얼어서 솥에 쪄낸 무우처럼 진물이 질질 나는것은 보통이였다.

참모부쪽에서 왁작 떠들어나가보니 숱한것들이 둘러앉아 《포로》 심문한다고 야단이였다. 천막안에 고개를 들이밀어보니 《포로》는 60살가량 되였을 누덕누덕한 덧저고리를 입은 조선로인이였다. 눈은 검다기보다 푸르스름하고 매우 리지적인 얼굴을 가졌다. 이쪽저쪽에서 위협도 하고 얼리기도 했지만 그들은 완강성이 특징인 조선로인 하나를 당해내지 못하였다.

《난 공산주의가 뭔지 알지도 못하오.》

《유격대란것은 본 일도 없는가?》

《의지가지할데 없어서 산에서 부대를 일구고 사냥을 해서 목숨을 부지해가는 사람이요. 죽인대도 모르는건 모른다고 하지 별수 없소.》

성이 마가인 산막로인은 이런 투로 대답하면서 끝내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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