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 회)

제 1 편

전쟁은 어느때 일어나는가

제 3 장

2

(1)


전기련은 일체 웃음을 잃어버렸다. 땅크운전면허증박탈처벌을 받고 대대후방부 겨울나이준비조에 망라된 후부터 동무들과 말할 용기까지 잃었다. 후방참모가 무얼 묻거나 지시를 할 때면 《알았습니다.》, 《괜찮습니다.》 하는 말들이 전부였다.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오늘도 고추가루를 타러 후방참모를 따라 빈 마대를 메고 터벌터벌 려단후방창고로 향하는 그의 귀전엔 려단참모장이 중대장을 추궁하던 목소리가 송곳처럼 찌르고 들어온다.

《동무, 중대장이 지휘한다는 땅크가 이게 뭐요. 운전수가 기능이 어리고 덤비기 잘한다는걸 알면 사전대책을 세웠어야지. 하긴 입대한지 여섯달밖에 안되는 사람을 놓고 할말이 없지. 아이가 뼈다귀추렴을 하자면 이발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건 어쩔수 없는 법이니까.》

기능어린 전사》, 《덤비기 잘하는 전사》, 《이발도 안 난 아이》가 바로 전기련 자기에 대한 평가의 전부였다.

어제날의 민청열성자, 숱한 민청원들을 교양하고 이끌고 깨우쳐주던 학급민청위원장이 이게 무슨 꼴인가. 각오도 높았던 자기였다. 교육용땅크를 타고 배울 때에도 한손엔 학습장을 쥐고 다른 손엔 조종간을 잡고 하나하나 그야말로 규정대로 운전기술을 터득한 자기였다.

그런데 왜 자꾸 이런 사고를 치게 되는가.

갑자기 앞에서 화물자동차가 빵빵 소리를 내는 바람에 전기련은 깜짝 놀라 닁큼 길옆에 비켜섰다. 화물자동차가 그에게 먼지를 훌 들씌우며 지나갔다. 기분이 없어 화물자동차에 눈을 찔 흘기던 전기련은 다시한번 흠칫 놀랐다.

적재함우에는 바로 그 처녀, 서용숙이가 타고있었던것이다. 다른 한 녀자와 함께 적재함 앞턱에 올려쌓은 자루들을 등지고 기대여섰는데 분명 자기를 유심히 내려다보며 가는것 같았다.

《아니, 저… 서용숙…》

전기련이 이렇게 부르며 손을 쳐드는 사이에 차는 벌써 저쯤 달려갔다.

용숙이! 서용숙이!》

전기련이 따라가며 소리쳤지만 서용숙이는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기만 한다. 그러는 사이 차는 점점 멀어져갔다.

《왜? 누구 아는 사람이 있어?》

길옆의 찔광이나무숲에 들어가 열매들이 탐스럽게 매달린 가지 하나를 꺾어들고 나오던 후방참모가 옆에 다가서며 의아해서 물었다.

전기련은 혹시 후방참모가 서용숙이를 알지 않을가 해서 멀어져가는 차를 손짓했다.

《저… 이 왼쪽에 서있던 처녀를 모르십니까? 서용숙이라고…》

《왼쪽?》

후방참모는 근시안경을 다시 추스르며 화물차쪽을 쳐다보았다.

《왼쪽… 이쪽에 서있던 처녀말이요?》

후방참모가 재삼 확인하듯 손으로 왼쪽을 가리키기까지 하며 되물었다.

《예. 맞습니다.》

《그 동문 리금실인데… 단지휘부식당 취사원 말이지?》

전기련은 대뜸 눈이 둥그래졌다.

리금실이요? 단지휘부식당 취사원?》

《왜 그렇게 놀라오. 그 동무가 마음에 있어서 그러오?》

전기련은 픽 웃었다.

《체, 마음에 있기야 뭐…》

후방참모는 다 알만하다는듯 전기련의 어깨를 툭툭 쳤다.

넘겨다보지 말라구, 이 찔광이 한가지요.》

《?》

전기련은 후방참모가 한손에 들고있는 찔광이나무가지를 멍청히 쳐다보았다.

《찔광이는 먹으면 약이 되지만… 나무엔 이렇게 만만치 않은 가시가 있다네. 날카롭고 굳센 가시이지… 아차하는 순간에… 보게, 이 손가락끝에서 피가 나는거… 그런데루 찔광인 찔리면서도 따먹을수 있지만… 에이, 저 처녀만은 안돼.》

후방참모는 찔광이가 탐스럽게 달린 가지 한개를 기련에게 내밀었다.

기련은 싫다고 도리머리를 하고는 고개를 기웃했다.

(금실이라니… 분명 서용숙이 같은데…)

《얼마나 이악한지 모른다네. 성실하구… 한가지 결함은… 웃을줄 모르는것이라 할가?》

《그래요?》

그러고보면 금실이라는 처녀는 기련이 자기가 알고있는 서용숙의 기질과는 꼭 반대였다.

서용숙은 이악하지도 못했고 마음도 약했다. 대신 경박하다고 할 정도로 웃음이 많았다.

그런데 세상에 그렇게 꼭같이 생긴 처녀도 있는가.

기련은 맥없이 돌아섰다. 스적스적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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