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 회)

제 1 편

전쟁은 어느때 일어나는가

제 3 장

1

(2)


오후에 안동수는 개울가에서 전사들과 만났다. 류경수려단장으로부터 여기 35련대 1대대가 훈련에서 앞선 축이 못된다는 말을 들은지라 오늘은 일요일 하루를 여기서 보내기로 결심한 안동수였다.

개울가에서 세면을 하고 목물을 하고 빨래를 하던 병사들이 안동수주위에 모여앉았다.

《난 솔직히 말해서 동무들을 칭찬하자구 온게 아니요. 동무넨 훈련두 앞서지 못하구 체육경길 해두 망꼬리구… 그렇게 한심하다면서?》

안동수가 자그마한 바위돌우에 걸터앉아 두뽐 갸웃한 삭정이 한개를 지시봉처럼 들고 시까스르듯 말했다.

《난 원래 제구실 못하는 사람들하구는 친하지 않는 사람이요. 시시하단 말이요. 누가 좀 말해보오. 왜 1대대가 그런가?》

병사들이 흘끔흘끔 자기들의 뒤에 서있는 대대장과 문화부대대장을 곁눈질해보며 얼굴들이 벌개서 말을 못했다. 대대장과 문화부대대장도 바빠서 눈길을 어디에 둘지 몰라했다.

《보오. 우물쭈물하는거… 어느것 하나 마음드는게 없거던.》

《제가 한마디 하겠습니다.》

옆에 앉았던 하얀 속옷바람의 한 전사가 벌떡 일어났다. 자존심이 상해서 견딜수가 없는 모양이다. 아까 배구장에서 제노라하며 판을 잡던 한세곤이였다.

《조금만 더 참아주십시오. 다음번 체육경기에선 무조건 1등 하겠습니다.》

《믿어지지 않아. 어떻게 1등 한다는거요?》

《옛. 지금보다 훈련을 더 강하게 내밀면…》

《틀렸소.》

안동수는 지시봉으로 허공을 쿡쿡 찔렀다.

《남들은 그때까지 잠을 자겠는가. 남들도 훈련을 강하게 내밀고있단 말이요.》

한세곤은 뻥해서 할말을 못 찾고 머룽머룽 안동수를 쳐다보다가 소리치듯 말했다.

《그래도 이길수 있습니다. 아니, 무조건 이기겠습니다.》

승벽이 이만저만 아닌 전사 같았다.

《좋아. 그럼 체육경기는 믿자구. 그런데 훈련은 왜 그래?》

한세곤은 눈을 껌벅껌벅하다가 거기엔 할말이 없는듯 얼굴이 벌겋게 되여 뒤더수기를 쓸며 주저앉고말았다.

《가만, 동무 이름이 뭐라구?》

한세곤은 다시 벌떡 일어났다.

《옛. 중사 한세곤!》

한세곤은 누군가?》

《옛. 접니다.》

《동문 누구라구?》

한세곤입니다.》

한세곤은 크게 대답하라는줄로 알았는지 목청을 돋구어 소리치듯 대답했다.

와하하하.》

병사들속에서 웃음이 터져올랐다.

《웃지 말라구!》

한세곤이 둘러보며 감때사납게 찔 눈을 흘겼다.

그 모양이 우스운지 또 웃음이 터졌다.

《앉소, 앉소. 내 묻는 뜻은 그게 아니요.》

안동수도 웃으며 한손을 내저었다.

《자, 모두들 이렇게 생각해보오. 가령 나의 경우를 봅시다. 나는 누군가. 안동수이다. 안동수는 누구인가. 조선인민군군관이다. 김일성장군님의 전사다. 김일성장군님을 모신 조선사람이다. 이렇게 말이요. 자 이젠 묻기요. 동문 누구라구?》

안동수는 자기앞 정면에 마주앉아 새물새물 웃고있는 얼굴이 나부죽하고 류달리 눈이 까만 중사에게 물었다.

중사가 벌떡 일어났다.

《옛. 중사 고현빈. 나는 누구인가,

조선인민군 땅크병이다. 장군님의 병사다. 장군님을 모신 조선사람이다.》

안동수는 만족해서 웃었다.

한세곤동무, 알겠소?》

《알았습니다.》

한세곤이 다시 일어서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동무넨 자기를 다 모르는것 같애. 동무네가 방금 말한 그런 사람들이라면 훈련판정성적이 그렇게 락후할수가 있는가. 고현빈동무, 왜 그런것 같소?》

고현빈은 얼굴을 붉혔다. 초생달처럼 휘여진 진한 눈섭과 류달리 동자가 까만 두눈에 반짝반짝 영채가 도는것이 무척 발랄한 성격같았으나 선뜻 대답을 못했다.

《동무는 무슨 학교를 나왔소?》

《옛. 소학교를 나왔습니다.》

《군대에 입대하기 전엔 무얼 했소?》

《옛. 소학교를 나오군 내내 농사를 지었습니다.》

《농사를 지었다. 군대나오기 전에 땅크를 본 일이 있소?》

《없습니다.》

《그러니 겨우 소학교를 졸업하고 농사나 짓던 사람이 이젠 땅크포장까지 되였으니 이만해도 상당하다 이거겠소?》

고현빈은 벌씬 웃으며 손으로 뒤더수기를 긁적거렸다.

《그런건 아닙니다. 사실 우린 힘껏 훈련하느라고 했는데… 판정기준이 그렇게 높을줄은 몰랐습니다.》

《판정기준이 높다? 동무네들도 그렇게 생각하오?》

안동수는 전사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모두들 그렇다는것인지 어줍게 웃으며 눈길을 아래로 떨구었다. 눈길이 마주칠가봐 저어하는듯했다.

《그럼 동무들은 판정기준을 어떻게 정했으면 좋겠소?》

모두들 역시 어줍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을 못했다.

《대답들을 못하누만. 음… 좋아. 그럼 내 옛말을 하나 해주지.》

안동수는 이러며 지시봉을 모래판에 꾹 박았다.

《옛날… 웃마을과 아래마을에 두 씨름군이 살았소. 아래마을씨름군은 소문난 씨름군이였던 아버지의 씨름수를 그대로 넘겨받았지. 웃마을씨름군은 처음 씨름을 시작한 사람인데 부지런히 씨름수를 연구하면서 훈련을 했소.

마침내 추석날이 와서 씨름경기가 벌어졌지.

아래마을씨름군은 장담을 했소. 이길건 뻔하니까.… 사랑하는 처녀와도 약속을 했지. 이제 씨름에서 이겨 황소를 타면 잔치를 하자고 말이요.

의기양양해서 씨름판에 나섰지. 그런데 이게 웬일이겠소. 정작 샅바를 붙잡고 마주서보니 웃마을씨름군이 왕청같은 씨름수를 쓰는게 아니겠소. 1회전에서 배지기를 뜨려댔는데 웃마을씨름군이 갑자기 획 메둘러치는 바람에 아뿔싸 그만 허양 나가넘어지고만것이요. 야단났소. 이제 2회전까지 지면 황소는 어찌한단 말이요. 처녀와 약속한 잔치는 어떻게 하구…

모래판에 넘어져 눈만 뚜부럭거리던 아래마을씨름군은 벌떡 일어나 심판의 다리를 붙잡고 하소를 했소.

〈경기를 중지해주시오. 저 웃마을씨름군은 너무 왕청같은 수를 씁니다. 그러니 내 저 수에 대비할 수를 찾아서 훈련을 한 다음에 2회전을 합시다.〉》

하하하, 하하하-》

병사들속에서 웃음이 터져올랐다. 안동수가 아래마을씨름군이 으시대던 행동과 처녀에게 이길걸 장담하고 잔치를 약속하던 행동, 씨름판에 벌렁 나가넘어져서 울상해서 눈을 뚜부럭거리다가 벌떡 일어나 심판의 다리를 붙잡고 하소하던 행동을 어찌나 방불하게 흉내내는지 모두들 배를 그러안고 웃어댔다.

하지만 안동수는 웃지 않았다.

《웃지 마오. 그게 어디 웃을 일이요? 황소가 왔다갔다하는 판에… 허허허.》

웃지 말라고 하면서도 안동수자신이 허허 웃자 병사들은 그게 우스워서 또 웃었다.

안동수는 전사들을 둘러보았다.

《보오. 씨름군에겐 황소가 왔다갔다하지만 우리 총든 병사에겐 무엇이 달려있는가. 자기의 운명이 달려있고 조국의 운명이 달려있단 말이요.

지금 저 남조선에서는 미제와 리승만괴뢰도당이 우리를 먹어보자고 미친듯이 발악을 하고있소.

놈들은 올해에 들어와서만도 지금까지 무려 2 600여회에 걸쳐 6만 7천여명의 괴뢰군경과 무장악당들을 우리 공화국북반부로 들이밀었소.

지금도 강원도 양양군 고산봉일대와 황해도 장풍군 송악산, 벽성군 은파산, 옹진반도의 국사봉지역들에서는 매일과 같이 대규모적인 전투가 벌어지고있소.

미군사고문단장 로버트놈은 지난 7월 괴뢰군참모총장 채병덕놈과 괴뢰군1사단장 김석원놈에게 〈금번 단행할 북침은 머지않아 일으킬 내전을 위한 좋은 시험대〉 라고 하면서 〈적과 접촉함으로써 산지식을 얻을수 있는것이다.〉 라고 지껄였소.

전쟁은 어느 시각에 터질지 누구도 모르오. 생각해보오. 적들이 당장 기여드는데 그 아래마을씨름군처럼 〈내 아직 준비가 안됐으니 훈련을 더한 다음에 전쟁을 하자.〉 하고 말하겠는가.》

전사들은 이번엔 누구도 웃지 못했다.

안동수는 그들을 둘러보며 절절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 조선사람들은 예로부터 슬기롭고 문명하고 용감한 민족으로 존엄을 떨쳐왔소. 그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고 얽매이기 싫어하는 자주성이 강한 민족이란 말이요. 무를 중시하고 애국심이 높고… 그래서 단군조선때부터 동방의 강국으로 이름이 높았댔소. 그런데 부패무능한 봉건통치배들때문에 나라가 점점 쇠퇴몰락하기 시작했지. 옳바른 령도자를 모시지 못했기때문에 그처럼 슬기롭고 용감한 민족이지만 끝내는 왜놈들에게 나라까지 빼앗기게 되였단 말이요.

그래서 동무들도 나도 지난날 나라없는 식민지노예의 피눈물속에 죽지 못해 살아왔소.

그러던 우리들이 오늘은 어엿한 나라의 주인들이 되였소.

이게 뉘덕인지야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그처럼 강대하다던 일제를 때려부시고 5천년력사에서 처음으로 인민의 나라를 세워주시였단 말이요. 왜놈들이 도망치면서 그처럼 다 파괴해놓았지만… 우리 인민들을 이끌어 몇해사이에 거의다 복구해놓구… 세상에서 제일 잘사는 나라로 일떠세우고계시오.

동무들, 우린 바로 이처럼 위대한분을 모시고있소. 이런분을 모신 존엄높은 조선민족이란 말이요.

두려울게 뭐가 있고 못할게 뭐가 있겠소.

장군님만 잘 모시구 장군님께서 하라시는대로만 하면 그 어떤 원쑤가 달려들어도 쳐부실수 있고 더 행복하게 잘살수가 있다는건 우리가 체험으로 터득한 불변의 진리요. 어떻소? 그렇지 않소?》

《그렇습니다.》

병사들의 우렁찬 대답소리가 내가를 쩌렁하게 울리였다.

《장군님께서는 동무들에게 땅크를 맡겨주시였소. 누군 운전수, 누군 포장, 누군 장탄수… 어제날 소학교도 변변히 다니지 못한 동무들을 믿고 이런 땅크를 맡겨주시면서 장군님께서 바라신게 뭐겠소.

장군님께서 우리 부대에 찾아오시여 주신 말씀들을 한번 돌이켜봅시다.

지난해 9월 16일에 오셨을 때는 짧은 시일안에 땅크운전기술을 배울데 대하여 말씀하시였소. 11월 14일에는 어떤 난관앞에서도 굴할줄 모르는 강한 의지를 키우며 땅크기술을 빨리 배우고 전투기술기재를 아끼고 사랑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소.

올해 5월 25일에는 친히 현지에서 우리 땅크병들의 훈련을 지도하시면서 우리 나라 지형조건에 맞게 훈련을 진행하며 땅크지휘관들을 많이 키워내고 땅크를 잘 관리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소. 장군님의 말씀을 관철하자면 무엇보다도 자기 맡은 임무에 정통해야 하오.

운전수는 그 어떤 조건에서도 우리 나라 지형조건에 맞게 산악이면 산악, 습지면 습지, 그 어디건 단숨에 뚫고나갈수 있게 준비하고 포장은 그 어떤 불리한 정황에서도 백발백중하는것이며 장탄수는 몇백몇천발의 포탄도 총탄다루듯 가볍게 신속정확히 장탄할수 있게 준비하는것이요.

다시말하지만 우린 장군님을 모신 조선의 땅크병들이요. 그래 그 훈련목표를 점령 못하겠는가?》

《할수 있습니다. 아니, 하겠습니다.》

또다시 우렁찬 대답소리.

《옳소, 우린 반드시 해내야 하오. 신심을 가지고 달라붙으면 못할게 없소. 오늘 못하면 래일 한다, 래일엔 꼭 한다. 이런 관점은 버려야 하오. 래일은 늦소. 알겠소?》

《알았습니다.》

안동수는 그럼 다시 만나자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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