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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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 가까와오면서 재색의 무거운 구름이 하늘을 메우기 시작했다. 지글거리딘 한여름철의
군단지휘부의 전체 군인들과 기념사진을 찍으신
《제당골이라고 여기 지휘부에서 70리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있습니다.》
《세골령을 넘어야겠구만.》
《예, 하지만 령길이 몹시 험한데다가 오후에는 큰비가 내릴것이 예견되고있습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그만두셔야 할것 같습니다.》
정치위원이 안타까운 어조로 말씀드렸다. 그제서야 군단장도 지나치게 욕심을 부린줄 알았는지 슬그머니 눈길을 떨구었다.
《무더위에 시원한 샤와를 맞는셈치고 가보기요. 예술선전대가 진지를 차지했다는데 현지에 가보는게 옳지.》
야전승용차행렬은 군단지휘부를 떠났다.
작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사슴뿔같은 번개불이 연방 컴컴한 구름장들을 찢어발겼다. 비발이 점점 굵어졌다.
무한궤도자리가 우둘투둘한 진창길이 차행군을 방해했다. 차바퀴들에서 휘뿌려지는 흙탕이 길녘의 키낮은 수풀을 후려쳤다. 한찰나 어지러워졌던 수풀들이 세찬 비발에 인차 본래의 청초한 모습을 되찾으며 흥그러이 설레였다.
세골령은 중서부산악지대에서 높고 험한 령들중의 하나이다. 거악한 뫼부리를 휘감으며 회백색구름속으로 사라진 령길을 따르느라면 마치 옛
심진성에게도 낯익은 령이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군관으로 제발된 그는 세골령을 넘어 전선서부의 통신소대에 배치되였고 부대의 통신보장임무를 수행하면서 부지런히 령을 넘나들다가 그 분수령에서 전승의 기쁨을 맞이했었다. 그때보다는 도로가 퍽 넓어졌지만 급경사와 아츠러운 굽이만은 그대로였다.
심진성은 군복웃주머니를 더듬어 손바닥만 한 수첩을 꺼내들었다.
수첩장을 펼치던 손이 가장자리를 접은 페지에서 멎었다. 붉은색으로 진하게 밑줄을 그은 연필흔적이 눈에 띄였다. 며칠전 공훈합창단(당시) 지휘성원들과 창작가들에게 주신
모든것으로 미루어보아 공훈합창단(당시)에서 제기된 문제의 근본원인은 바로 자기에게 있었다. 한마디로 심진성의 무책임성이 낳은 과오였다. 그래서 수첩장에 뼈아픈 자기반성수의 글을 남겼고 수첩을 펼칠 때마다 먼저 띄여보라고 귀를 접어두었던것이다.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과오였다.
순조로이 령길을 내린 야전승용차행렬은 골짝사이의 산협도로를 따라 기세좋게 달렸다. 한껏 대지를 후려갈기던 작달비가 언뜻 는개로 변하여 어혈진 수풀을 어루쓸었다.
앞차가 속력을 죽이며 서서히 멈춰섰다.
심진성은 다른 지휘성원들과 함께 급히
엷은 안개가 뭉게뭉게 감치며 필필이 흘렀다. 방송선전차의 확성기를 통해 울리는 노래소리가 주위에 가득차있었다. 여러대의 대렬차 적재함을 서로 맞붙여만든 화선무대가 멀리로 보였다.
안개발이 성기여지며 공연하는 선전대원들과 무대를 둘러싸고 립추의 여지가 없이 빼곡이 둘러앉은 군인들의 모습이 보다 선명해졌다. 그들의 몸에서 나는 김이 뽀얗게 서려돌았다.
손풍금반주에 맞춘 남성예술선전대원의 정서짙은 노래소리가 길녘의 산야를 어루더듬었다. 금잔디 밟으며 첫걸음 떼고 애국가 들으며 자란 조국이 하도 소중하여 손에 총을 잡았다는 노래였다. 깃을 비다듬으며 쉼없이 찧고 까불던 새들도 노래소리에 심취되였는지 침묵을 지켰다. 비에 말쑥이 씻긴 검푸른 절벽에 노래소리가 부딪치며 메아리쳤다.
병사들이 합창으로 노래를 받아넘겼다. 대자연과 어울린 조국에 대한 애틋한 정이 먼 하늘가로 흘러갔다.
곡목이 바뀌며 혼성2중창으로 부르는 《병사는 벼이삭 설레이는 소리를 듣네》의 노래소리가 울렸다.
노래의 간주속에 무대에 나온 두명의 시랑송자들이 유격구밭이랑에 씨앗과 피를 함께 묻던 처창즈의 정신으로 군민이 힘을 합쳐 우리의 사회주의대지에 황금이삭이 주렁지게 하자고 호소했다.
노래가사의 내용이며 정서짙은 곡상은 분명 풍년든 이 나라의 가을을 형상했으나
《당정책을 민감하게 반영했소. 공연이 사상적대가 서고 내용도 좋소. 노래소리들이 풍만하고 감정정서가 짙은게 선전대의 성악력량이 괜찮은것 같소.》
《예술선전대의 성악지도원동무가 2. 16예술상수상자입니다. 다른 단위들에서도 욕심내는 동무입니다.》
정치위원의 대답에
《…인재를 아껴야 하오. 가수들이 아무리 바탕이 있어도 성악지도를 잘하지 못하면 재간을 다 발휘할수 없소.》
자연의 미소인듯 한줄기의 해빛이 산구릉에 닿고있었다.
《음악예술은
심진성은 당황해났다. 어떻게 대답올릴지 몰라 망설이며 도움을 바라는 눈길로 곁에 선 지휘성원들을 성급히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들 역시 호기심어린 낯빛들이였다.
《저-
말이 자꾸 길어지는것이 안타까와 그는 입안소리로 중얼거리다가 어줍게 웃었다.
《빙 에돌긴 했지만 틀리지 않소. 음악은 우리에게 있어서 혁명과 건설의 힘있는 무기라고 할수 있소.》
잠시 말씀을 끊으시며 지휘성원들을 둘러보시였다.
《나도 힘들 때가 많소. 그때마다 음악을 들으면서 힘을 얻군 하오. 내가 인민군협주단 공훈합창단(당시)을 중시하는것은 바로 그들이 부르는 군가에 우리의 사상과 신념이 있고 우리 혁명이 걸어온 자랑찬 력사가 있으며 승리를 기약하는 래일이 비껴있기때문이요. 우리에게는 남들이 가질수 없는 우리 식 철학, 조선식음악철학이 있소.》
가설무대에 여러명의 남녀배우들이 나서더니 우리의 총창우에 평화가 있다고 격조높이 웨치고있었다. 준엄한 싸움을 눈앞에 둔 오늘날 병사들에게 요구되는것은 사탕알이 아니라 총탄이라고, 그 총탄으로 평화를 사수하겠다는 랑송소리가 해빛이 퍼지는 대기속에 쩡쩡 울렸다.
노래 《혁명의
《보오, 저 동무들이 지금 공연을 통해 당의 사상을 전하고있소. 배불리 먹는것도 좋지만 삶의 터전을 지키는게 더 중요하다고 외우고있소. 저 소리를 그대로 자강도 로동계급에게 전해줍시다.》
《전선시찰보도에 내가 이곳 부대의 예술선전대공연을 관람했다는 내용을 포함시켜야겠소. 전시가요들을 집중편집해서 혁명적인 음악공세를 들이댑시다. 우리의 변함없는 혁명적공격로선, 혁명적대결전략을 그 노래들에 반영합시다.》
《알았습니다,
심진성이 자세를 바로하며 강개한 어조로 대답올렸다.
문득 그는
우리를 압박하기 위한 적들의 광란적인 전쟁연습책동이 극도에 달하여 일촉즉발의 엄중한 정세가 대두했던 때였다.
그때에도
우리의 집중적인 군가포화에 얼혼이 나간 적들은 조선에서 당장 전쟁이 터진다고 아우성을 치며 남조선에 있던 미군가족들을 부랴부랴 본토로 빼돌리느라 야단법석했다.…
《어서 가서 저 동무들의 공연성과를 축하해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