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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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지휘성원들과 함께 어뜩새벽에 평양을 떠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사위가 훤히 트인 아침녘에야 전선서부에 위치한 군단지휘감시소 산밑에 당도하시였다.

고지로 오르는 급경사를 이룬 길어구에 키가 구척인 구경서군단장과 얼굴이 둥글둥글하고 인상이 부드러워보이는 군단정치위원이 차렷자세로 서있었다. 이슬에 푹 젖은 군복자락과 바지가랭이들에 풀잎들이 붙어있었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 부대는 전연경계근무를 수행하고있습니다. 군단장 구경서.》

군단장의 목소리는 60대를 눈앞에 둔 사람답지 않게 청청했다.

《수고하오. 보고싶었소.》

《우리 군단안의 전체 장병들은 오로지 최고사령관동지의 안녕만을 바라고있습니다.》

《고맙소.》

면사포같이 부드러운 안개발이 산중턱에 드리워져있었고 이슬기가 자르르한 나무잎새들이 새벽기류에 가벼이 떨고있었다. 씁쓰레한 해묵은 가랑잎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새벽잠을 깬 뭇새들이 발성련습을 하는양 겨끔내기로 지저귀였고 정갈한 내물소리는 산천의 부드러운 정서에 여운을 달았다. 아침잠을 깬 대자연이 활달한 경음악으로 마음을 싱그럽게 해주었다.

적초소를 눈앞에 두고있지만 평화로운 환경이 먼저 안겨오는 감시소였다. 그러나 평화를 배태한 그 정적뒤에서 이 땅의 평화를 바라지 않는자들의 몸서리치는 흉계가 꾸며지고있었다.

세계반동들은 제법 호기있게 내걸었던 공화국의 《붕괴론》연착론으로 슬며시 바꾸긴 했지만 압박의 도수를 높이면 공화국이 더이상 버티여내기 힘들것이라는 나름의 판단으로 전쟁연습에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퍼붓고있었다. 하면서도 경수로건설을 미끼로 우리를 회유기만하는 한편 평화에 대한 위장공세로 우리의 사상적진지를 허물어보려고 획책했다.

김정일동지께서 이날 동해안의 공장, 기업소들에 대한 현지지도일정을 변경시켜 전연부대에로 나오신것은 우리의 공세적인 공격전략을 내외에 선언하기 위해서였다.

귀맛좋은 소리를 내며 흐르는 수정처럼 맑은 내가에서 세면도 하고 옷차림도 손질하는 지휘성원들을 바라보시던 그이께서는 웃녘에 보기좋게 드러누운 회백색의 넙적한 바위돌에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자, 모두 여기 와서 요기를 합시다.》

조명록이 게면쩍은 웃음을 지으며 쭈밋거렸다.

《저도 뭘 좀 가져온게 있습니다.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우리 집 로친이 줴기밥을 만들었는데 맛이 어떻겠는지 모르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놀라시였다. 불의에 행군명령을 내리시였는데 어느 여가에 줴기밥을 다 만들수 있었는지 궁금하시였다.

《온 집안을 들볶아댄게 아니요? 그렇다 해도 시간이 모자랐겠는데…》

《며칠전 가족회의에서 로친이 최고사령부 작식대구실을 바루 못한다구 자기비판을 했습니다. 그리군 이렇게 감을 미리 마련해놓았다가 행군명령만 내리면 조립식으로 척척 붙여놓는걸 궁리했습니다. 맛은 신통치 않지만 실속이 있습니다.》

그이께서는 고지식한 내외간의 생활모습을 눈앞에 그려보시며 집사람에게 인사를 전해달라고 이르시였다.

《…그럼 총정치국장동무의 줴기밥부터 들기요. 군단장동무와 정치위원동무도 여기 와서 한덩이씩 쥐오.》

부관에게 줴기밥을 가져오게 하신 그이께서는 모두에게 하나씩 나누어주시였다.

야전식사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승용차행렬은 곧 용수철처럼 타래진 좁은 산협길을 따라 고지정점으로 올랐다.

김정일동지께서 감시소에 들어서시자 어깨가 쩍 버그러지고 총알처럼 여물어보이는 군인이 채랑채랑한 목소리로 경계근무수행정형에 대해 보고드렸다.

정황을 청취하신 그이께서는 작전대앞에 다가서시였다.

명주필같은 안개바다가 서해안지구의 넓은 벌에 펼쳐져있었다. 동켠의 크고작은 련봉들을 박차며 금방 솟구쳐오른 아침해가 누리에 따스한 빛을 뿌리고있었다. 해빛을 받은 산봉우리와 내천들이 무수히 반짝거리고 그 따스함에 잠을 깬 자연이 소연히 설레였다.

군단장으로부터 방어지대의 지형지물과 력량배치상태를 보고받으신 그이께서는 적들의 침략기도를 짓부시는데서 전략적의의를 가지는 과업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시였다.

《…351고지와 대덕산에 가서도 이야기했지만 적들은 지난 시기보다 전연초소를 더 늘이고있소. 이것은 우리가 해이된 틈을 리용해서 들이치겠다는 의미요. 적들이 덤벼들면 동무들은 놈들의 침략책동을 여지없이 짓뭉개버리고 공격성과를 확대할수 있도록 지배적고지를 강화해야 하오.》

《알았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구경서가 지시봉을 내리우며 박력있게 대답올렸다.

미동이 느껴지는 습한 바람이 불어오자 위장망의 나무잎새들에 매달려있던 투명한 이슬방울이 작전대우에 후두둑 떨어졌다.

김정일동지의 어깨와 잠바깃에도 물방울이 떨어지며 유표한 자국을 남겼다.

《놈들이 정 불질을 원한다면 진짜불맛을 보여줘야 하오. 그때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을 성취해야 하오.》

그이께서는 지휘소의 위장그물이며 은페호를 둘러보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전쟁이 터지면 군단장들이 위치하고있는 이 전방지휘소도 불바다가 될거요. 하지만 동무들은 하늘이 무너져도 산다는 든든한 배짱을 가지고 전투지휘를 해야 하오. 다시말해서 〈호인〉이 아니라 진짜배기 싸움군이 되여야 한다는 소리요. 싸움마당에서는 림기응변하고 기묘한 전술을 쓸줄 알아야 적을 제압할수 있소.》

그이께서는 문득 누구에게라없이 빤필로브에 대해서 아는가고 물으시였다. 그이의 시선이 진중한 기색을 짓고있는 심진성의 얼굴에서 멎었다.

심진성은 군관학교시절에 밤을 밝혀가며 읽어보았던 이전 쏘련의 중편소설 《월로꼴람스크대로 상기했다.

《…쏘도전쟁시기 이전 쏘련의 사단장이였던 빤필로브는 전투지휘를 잘한것으로 하여 쏘련전쟁사의 한페지에 남은 지휘관입니다. 모스크바방위시에 적들의 박격포사격장소와 그 방향을 확정하기 위해 현지에 나갔다가 전사하였습니다.》

심진성의 대답에 김정일동지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작전대를 두손으로 짚으시며 열정적인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빤필로브는 자기의 지휘소를 항상 전투마당에 접근시키고 모든것을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정황을 판단하였고 전투를 빈틈없이 조직지휘하였소. 지휘관의 용감성과 희생성, 헌신성은 병사들의 전투적사기를 높여주는데 큰 영향을 주게 되오.

수령님께서는 언제인가 빤필로브에 대해 교시하시면서 지휘관들은 언제나 주타격방향을 장악하고 부대를 지휘해야 한다고 강조하시였소. 싸움에서는 주타격방향을 어떻게 정하고 전략전술적의도를 실현하는가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오.

군단장동무, 부대의 싸움준비완성에서 걸린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그이께서는 긴장한 분위기를 일소하는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여유있는 시선으로 구경서의 네모진 철빛얼굴을 바라보시였다.

《최고사령관동지, 지금 부대에서는 싸움준비를 완성하기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종합전술훈련장을 설비하고있습니다. 그리고 기동기술기재의 경상적동원준비에 절실히 필요한 전기문제를 풀기 위해 자체발전소건설에도 힘을 넣고있습니다.》

안개가 말끔히 가셔지며 고지아래의 넓은 벌판과 들쑹날쑹한 산봉우리들, 크고작은 하천들이 명료히 드러났다. 댕기처럼 뻗어간 실개천이 해빛을 안고 반짝거렸다.

군단당위원회의 결정과 호소에 따라 각 사, 려단들에서도 실정에 맞게 전력문제를 풀기 위한 전투에 진입하였습니다. 현재 67려단이 맨앞장에서 달리고있습니다.》

《려단장이 누구요?》

《저… 김호삼이라고 군단관하 사단장, 려단장들가운데서 제일 젊은 지휘관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아직은 만난적이 없는 려단장의 이름을 나직이 외우시였다.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자면 무엇보다 전력문제를 풀어야 하오. 도처에 자체발전소를 건설하는것이 중요하오. 싸움준비를 완성하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수령님의 강국건설념원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중요한 사업이요. 오늘은 힘들더라도 래일엔 꼭 그 덕을 보게 될거요.

하지만 욕망이 크다고 다 실현되는게 아니요. 문제는 군인대중을 어떻게 동원하는가에 달려있소. 늘 강조하지만 우리 당은 언제나 사상만능론을 주장하고있소.》

정치위원이 긴장한 자세로 그이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군단에서 숱한 일감을 벌려놓았으니 힘들거요. 게다가 인민군대의 주업인 훈련도 놓치지 말아야지, 부업도 해야지… 고생이 많지?》

군단일군들이 서로 눈길을 마주쳤다.

《최고사령관동지, 솔직히 말씀드리면 하나에서부터 열, 백까지 다 자체로 해결하자니 좀 힘이 듭니다. 어떤 때엔 괜히 일판만 크게 벌려놓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없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군인들의 정신력을 발동시키기 위한 사업에 관심을 돌려야 하오. 군단에서 예술소조활동을 활발히 벌리고있다는 보고를 받았소.》

정치위원의 두릿한 얼굴에 웃음이 벙글 비꼈다.

《전형단위에 힘을 집중하고 그 모범을 일반화하고있습니다.》

《생활화하는것이 중요하오. 그러면 온 부대가 흥성거리고 일자리도 푹푹 날게요.》

《최고사령관동지, 알았습니다.》

군단정치위원이 대답올렸다.

구경서군단장이 정치위원을 슬쩍 곁눈질하며 저어하는 목소리로 한가지 말씀드릴것이 있다고 보고드렸다.

《최고사령관동지, 사실 우리 군단예술선전대가 공연을 잘합니다. 린접부대 군인들도 부러워합니다. 며칠전엔 구월산유원지건설에 동원된 부대를 선전대공연으로 지원포를 쏴주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믿음에 겨운 시선으로 정치위원을 바라보시였다.

《지금 그 동무들은 악조건을 이겨내면서 최고사령관의 명령을 수행하고있소. 그런 거창한 공사는 혁명적군인정신을 지닌 우리 군인들이 아니면 엄두도 못 낼거요. 예술선전대공연으로 린접을 지원했다니 나도 반갑소.》

그이께서는 인차 전군적인 예술선전대경연이 있다는데 준비가 다 됐는가고 물으시였다.

《지금 군단종합훈련장에 나가 공연활동을 보장하면서 경연준비를 다그치고있습니다.》

정치위원의 대답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좋은 일이라고 치하하시며 심진성에게 시선을 주시였다.

《다른 단위의 예술선전대들은 지휘부구내에서 맴돌면서 경연준비에 몰두한다는데 여기 동무들은 훈련장에 나가서 공연활동을 벌리고있다는구만. 이런 동무들의 공연이야 마다하면 안되지?》

《알았습니다.》

심진성이 조용하면서도 감동에 젖은 목소리로 대답올렸다.

조명록총정치국장도 마치 자기가 영광을 받아안은것처럼 싱글벙글하며 령장의 축복을 받은 군단일군들을 격려의 눈빛으로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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