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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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늘씬하고 등이 약간 구부정한 진봉남은 음울한 눈으로 땅을 내려다보며 걸었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눈보라와 숲속이다. 날씨는 살을 에이는듯 한데도 이마에서는 땀이 비오듯 하였다. 가슴에서는 겨불이 이글이글 타는것 같고 입안은 바삭바삭 말라들었다.
그는 허리를 굽혀 땅에서 눈을 움켜 입안에 밀어넣었다. 더운지 찬지 감각조차 알수 없지만 어쨌든 입안이 한동안 얼얼하더니 목으로부터 가슴으로, 그다음은 명치끝으로 무엇이 빡 금을 그으며 내려가는것이 알리였다. 그러자 금시 가슴이 열리는것 같고 숨이 나갔다. 굵고 진한 입김이 어깨너머로 연기처럼 훅훅 날아넘어간다. 눈섭과 털모자채양에 성에가 하얗게 불렸다. 눈을 감았다가는 잘 떠지지도 않고 앞이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거의 무표정한 얼굴을 들고 다리를 절뚝절뚝 절면서 줄곧 앞으로만 걸어나갔다. 배가 고파 허리를 펼수 없었다. 그런데다가 발을 얼구어 한걸음을 내디딘다는것이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 몰랐다. 걸음을 옮길적마다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찌륵찌륵 아픔이 미쳐왔다.
그보다 몇걸음 앞에서는 키가 늘씬한 용택이가 역시 발을 절며 걸어가고있었다.
부대는 벌써 사흘째 굶으며 행군을 계속하고있었다. 적들의 추격은 예상했던것보다 몇배나 더 집요했고 전투는 가렬하였다.
그것은 이미 예측한것이였다.
산과 들에 온통 새까맣게 일본군대가 뒤덮였다. 그중에도 가장 악착스러운것은 라남사단이였다. 그것들은 하루에도 두세차례 얻어맞으면서도 그냥 따라왔다.
진봉남은 차차 멀어져가는 선두대렬을 바라보다가 또 걸음을 내뗐다.
그러나 발이 말을 들어주지 않아 몇걸음 디뚝디뚝하다가 끝내 눈우에 털썩 주저앉아버리고말았다. 전광식이 달려왔다.
《진동무, 기운을 내오. 좀더 가서 휴식합시다.》
《괜찮습니다. 곧 가겠습니다. 신을 좀 손질해 신고…》
전광식은 고개 하나를 넘어 안전한곳이 있을테니 그곳까지 참고 가자고 하였다.
진봉남은 눈속에서 발을 들어 바위등에 올려놓았다. 앞코가 쭉 째진 로동화는 볼꼴이 못되였다. 눈이 잔뜩 들어가서 말박만하니 부풀어올랐다. 새끼로 가로세로 동이였던것이 풀리고 처져 발목에 뭉테기가 졌다. 진봉남은 절망적인 눈길로 그것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가에 쓴웃음을 짓고 드디여 새끼를 풀기 시작하였다. 발싸개끝에는 피가 내배였는데 그것마저 얼어서 꽛꽛해졌다. 진봉남의 발을 무릎에 올려놓고 전광식은 새끼를 다시 감아주었다.
잠시후 그들은 다시 걸었다. 전광식이 진봉남의 한쪽팔을 어깨에 메고 거의 끌다싶이하며 걸었다.
령마루에 가까와지자 바람은 더 기승을 부리면서 땅에서 눈을 말고 올라가서는 봉우리며 숲이며 골짜기들을 전혀 가려볼수 없게 전체 공간을 휘저어 모두다 몽롱하게 만들어놓는다. 검고 번들거리는 얼굴을 들고 진봉남은 하늘을 향해 빙그레 웃었다.
《이것이 고작 다냐? 무슨 심술이냐, 도대체!》
걸음을 멈추고 팔로 눈앞을 문지르면서 웅얼거리였지만 옆에 붙어선 전광식이마저 그가 무어라고 말하는지 듣지 못하였다.
산을 넘어 휴식하게 되였다.
잠간 휴식인줄 알았더니 숙영을 하게 된다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