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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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박기남이와 리광이 앉고 문켠으로 송필이 앉았다.

경찰서에서 탈출하게 된 경위와 그후에 혁명조직의 도움으로 근거지에 무사히 들어오게 된데 대해서 송필이 방금 설명을 끝내였다. 둥글넙적한 철색얼굴에 수염이 한벌 내돋았고 눈빛은 어딘지 모르게 음울한 기운이 돌았으며 온몸에 피로가 실린것이 알리였다. 서른을 넘긴 송필은 성격이 매우 진중하여서 말 한마디한마디를 새겨서 하였고 또 새겨서 들었다.

그는 서울에서 고학을 하다가 그만두고 1926년도에 간도로 왔는데 그후 곧 《만주총국》에 가담하였다. 두세차례의 검거선풍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그는 용케 빠질수 있었다. 작년겨울에 체포되였다가 증거불충분으로 가석방되였는데 지난 9월에 재차 체포되였던것이다. 《당재건운동》 한다는것이 별로 한것도 없는데 소문만 크게 났다고 본인도 후회하였다.

박기남은 송필에 대해서 별로 아는것이 없었다. 다만 몇해전에 자기가 서대문에 가기전에 연길근방에 송아무개가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위기에서 대담하게 빠져나온 송필을 극진히 대하였다.

《바로 이런 경우를 구사일생이라고 할수 있을겁니다. 여하튼 오늘은 푹 쉬고 차차 사업에 착수해야 하겠습니다.》

박기남은 리광을 쳐다보면서 그렇게 하는것이 응당하지 않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원래 과묵한 리광은 별로 다른 의견이 없다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리고나서 《무장을 들고 나타났던 괴한 3명》은 어데 갔느냐고 송필에게 물었다. 송필은 이미부터 알고있던 친구들인데 뿔뿔이 흩어져 다시 만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리광은 고개를 한번 기웃거리고 알겠다고, 그럴수 있을것이라고 하고는 다시 묻지 않았다.

송필은 왜 그런지 눈물이 글썽해져서 긴 한숨을 내쉬였다.

박기남에게는 그것이 아주 자연스럽게 보이였다. 놈들의 손탁에서 빠진다는것도 헐한 일이 아니지만 물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이틀을 굶어 퉁퉁 부은 다리를 끌고 근거지에 찾아오게 되였으니 안도의 숨이 나갈만도 한것이다.

《준엄한 혁명의 시기에는 누구나 그러하지만 공산주의자의 경우에는 자기의 진지를 고수하기 위해서 걸음마다 생명을 내걸어야 하니까요.》

신문지를 뜯어 담배를 말면서 박기남은 혼자소리를 하였다.

그러나 그가 노린 효과는 충분히 달성되였다.

송필은 한쪽눈을 치켜올리면서 리광을 곁눈질해보았다.

《저같은 사람의 경우는 좀 특이한 경로를 가지고있는것 같습니다. 별다른것이 아닌데 그저 몇배로 피로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신적이 아니고 육신적인것이라면 그닥 견디기 힘든것도 아니지요. 자, 그럼 피로를 풀어야지요.》

《괜찮습니다. 이렇게 우리까지 마주앉게 되니 여간 편안하지 않습니다.》

그때 문밖에서 발구르는 소리가 나더니 유격대원 한명이 나타났다.

절도있는 동작으로 경례를 붙이고 리광에게 보고를 하였다. 황가촌에 와서 쌀을 사겠다던 구국군병사 두사람이 돈을 주지 않고 내빼는것을 체포하였다고 하였다.

《동무네가 체포하였소?》

리광은 못마땅하다는 투로 물었다.

《아닙니다. 적위대에서 붙잡아 데려왔습니다.》

《잘했소. 우리에게 피해를 주려는것은 무자비하게 눌러놔야 되오.》

박기남이 끼여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리광이도 자리에서 일어나 유격대원에게로 다가가며 물었다.

《그래 동무네가 잘 알아보았소? 쌀을 사러온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식량이 곤난해서 좀 거저 얻기를 바라는것인지. 그 사람들도 우리 구역에 들어올 때부터는 우리의 질서를 알고있겠는데…》

그것까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젊은 유격대원은 웃으면서 뒤덜미로 손을 가져갔다.

알아보나마나 뻔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략탈입니다. 그보다 더 문제로 되는것은 우리에 대한 그들의 멸시입니다.》

박기남은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였다.

《박동무는…》

이렇게 불러놓고 리광은 진한 눈섭을 치켜올리며 송필이가 이 자리에 있어 괴롭다는 눈치를 보이였다. 그의 표정을 읽고 모를리 없는 박기남은 자기의 정당성을 보이기 위해 더 도도한 기세로 나왔다. 하는수없이 리광은 뒤를 이어대였다.

《우리는 그들을 적대시해서는 안됩니다. 한동무, 동문 돌아가시오. 내 곧 가겠소.》

유격대원은 경례를 붙이고 돌아나갔다.

《적대시하는것은 우리들의 립장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적들이 그것을 바라는것이라는것을 박동무도 잘 알지 않습니까. 그들의 부정면만 볼것이 아니라 긍정면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반일구국군일반을 보고 대해야지 개별적병사들의 락후한 측면을 보고 전체를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그들을 배척할것이 아니라 그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참을성있게 혁명적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그들은 일제를 반대하는 무장력량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립장을 리해하지 않고 배척한다면 그들이 어데로 가겠습니까? 갈데는 명백하지 않습니까. 설사 그들이 우리에게서 얼마간의 식량을 가져간다칩시다. 또 그에 대해서 리해가 짧은 우리 사람들속에서 불만이 있다칩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반제통일전선의 원칙에서 물러나 아무렇게나 흥분되는대로 처리할수는 없는것입니다. 알아보면 다 빠개지겠지만 그들은 식량이 매우 곤난하다는것이 명백합니다.》

리광의 말이 끝나자 박기남은 얼굴을 붉히고 돌아섰다.

《구국군들이 반공으로 나오고 따라서 우리를 반대하는 립장이 개별적병사에게만 국한된 락후한 측면이라고 볼수 있을가요?》

《물론 그것은 개별적이 아닙니다. 그들의 경향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가 그들을 설복하고 그들에게 영향을 주어야 한다는것이 아닙니까.》

《그들은 본질에 있어서 민족부르죠아지의 리익을 대변하는 군대이고 그의 잔여세력입니다. 그 점을 념두에 두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쨌든 우리의 혁명군중이 그들에게 피해를 당하면서까지 손을 내밀 필요야 없지 않습니까? 뺨을 얻어맞으면서 통일전선하자, 그것이 무슨 통일전선입니까? 나는 그 사람들에게 단단히 징벌하는것으로써 대답해야 한다고 봅니다. 나에게 위임해주십시오. 나는 그 략탈자의 버릇을 당장 떼놓겠습니다.》

박동무!》

엄격한 낯을 짓고 리광이 박기남이앞으로 한걸음 나서며 소리를 질렀다.

그때 인적기가 나더니 이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누구요?》

응답이 있게 되자 문이 덜컥 열리면서 세걸이가 불쑥 나타났다.

기가 눌렸던 박기남은 세걸에게 달려나가면서 환성을 질렀다.

《오! 무사히 돌아왔군요.》

그는 너무 반가와 어쩔줄 모르면서 손을 잡고 오래 흔들었다.

뒤따라 리광이 악수를 하였다. 그는 방금 흥분했던것이 가라앉지 않아 붉어진 얼굴로 부자연스럽게 웃었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송필이 일어섰다.

그때 세걸은 룡정거리 광고판에 나붙은 그 얼굴과 아주 비슷하다는 생각이 피뜩 들었다. 세걸은 보자기를 들추어 곰팡내가 물씬 풍기는 《쏘베트헌법》 책상우에 내놓았다.

《수고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박기남은 어린애모양 기뻐하면서 얄팍한 소책자를 두손으로 받쳐들고 방안을 왔다갔다하였다.

리광동지! 우리 혁명지구에 쏘베트를 내오는것이 어떻습니까? 우리가 이제 와서 꼼뮨으로 될수 없다는것은 명백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더 말할것 없이 쏘베트입니다.》

《쏘베트요?》

쏘베트에 대해서 박기남은 벌써 여러번 말했었다. 그때마다 리광은 응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것을 내와야겠다는 필요도 느껴본적이 없고 따라서 그것을 현실에 적용해보겠다는 생각을 해본적도 없었다. 박기남은 누가 동의하거나말거나 쏘베트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벌려놓다가 세걸에게 다가가서 그 책이 어떻게 되였는가고 물었다. 그러자 세걸은 능청스러운 웃음을 띠면서 보자기를 헤쳐 자그마한 책 한권을 박기남이 앞으로 밀어내놓았다.

《〈빨찌산전투경험집〉. 옳습니다. 이겁니다. 바로 이겁니다.》

걸상에서 일어난 박기남은 책장을 벌컥벌컥 뒤지면서 고개를 끄떡이였다.

《성공입니다. 이것을 가져가면 아마 부대에서 대환영을 할겁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집에 있었나요?》

《네, 그저 그러루 되였습니다.》

사연을 밝히자면 한두마디로는 될것 같지 않아 세걸은 얼버무려 넘기고말았다.

세걸동무는 참 솜씨가 대단합니다. 제가 신세를 갚아야겠는데 어떻게 할가요?》

《신세는 차차 갚도록 합시다.》

한껏 만족해진 세걸은 《쏘베트헌법》 다시 집어들고 방안을 왔다갔다하는 박기남을 바라보면서 그것이 전광식이로 바뀌여진 장면을 상상해보았다.

그 이튿날 세걸은 박흥덕이 있는 라흥을 향해 산줄기를 타고 부지런히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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