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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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덕은 서장놈이 시키는대로 녀편네를 역전 고급려관에 데려다주고 그길로 거리로 달려나왔다. 처음에는 말을 끌고다니다가 걸음이 빠르지 않아 려인숙마당에 매놓고 홀몸으로 거리를 뒤지였다. 정거장앞거리를 두세번 올리훑고 내리훑고 하였지만 세걸의 향방을 알길이 없었다. 송필인지 뭔지 하는 사건때문에 거리를 마음놓고 다닐수도 없어 그는 역에 나가 차시간을 지켰다. 기차는 한쪽으로는 길림, 할빈쪽으로 내려가고 한쪽으로는 함흥, 청진방면에서 들어온다. 막차까지 떠났지만 세걸은 종시 나타나지 않았다. 새벽녘이 되여 그는 맥이 빠져 려인숙으로 돌아왔다.

박흥덕이 라흥경찰서 야마나시서장의 급사로 된것은 달반전이였다.

처음에 그는 차기용이와 약속하기를 라흥에 가서 반유격구를 꾸리기 위해 지주집의 머슴으로 들어가 발을 붙이겠다고 하였다. 박흥덕에게 머슴이란것은 아주 저주로운 일이였고 말만 들어도 이새에서 신물이 날 지경이였다. 머슴살이 10년간에 너무나 지긋지긋하게 괄세를 당했고 고역을 뒤집어썼던것이다. 그러던것이 사령관동지께서 머슴으로 위장하시고 지하공작을 하셨다는 말씀이 있으신 후로는 그것이 큰 영광으로 되였다. 기왕 변신을 하는바치고는 《머슴》이 좋을것이였다. 어색하게 태도를 꾸밀 필요없이 허름한 옷을 꿰입으면 그것으로 다 될것이였다.

그가 라흥에 도착해서 사흘만에 《꼰꼰이네》라는 별명이 붙은 지주 양가의 머슴으로 된것은 마침 기회가 좋은 덕분이라 할수 있었다. 라흥의 그 넓은 벌의 절반이상을 차지한 양가는 최근에 머슴 다섯중에서 셋을 내쫓았다. 하나는 병들어 일을 못하게 되였고 둘은 요시찰인이라는 경찰서의 귀뜀이 있었던것이다. 마침 품팔이군으로 나타난 혈기왕성한 젊은이는 나무짐을 져도 남의 곱은 졌고 새벽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아무 군소리없이 일을 제절로 찾아하였다. 속이 끝없이 엉큼한 박흥덕은 양가의 꼬임에 넘어가는척 하면서 그 집 머슴으로 들어가 매일 뼈가 빠지게 일을 했다. 식전에 마당을 쓸고 외양간을 치고 물을 긷고 그다음에 남들과 같이 밭일을 했다. 밤늦게까지 나무를 패고 여물을 썰고 소갈데 말갈데 다 갔다. 그러면서도 손만 붙이면 기름이 돌게 일을 해서 양가를 흡족하게 만들었다.

《흥! 우리 박흥덕인 하늘 천 하면 가물 현 하는 사람이야.》

열흘이 지나서부터 양가는 근처에 나가 머슴자랑을 하였고 몇달 있다가 옷도 한벌 해준다고 미리부터 인심을 썼다.

박흥덕의 일은 순풍에 돛 단 격으로 매우 순조롭게 미끄러져나갔다. 우선 같이 있는 머슴들을 매일 붙잡고 교양을 들이댈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서른안팎의 견실한 장년들인데 두명은 앞에 집과 식솔이 있었고 새로 데려온 두명은 서른살이 넘은 늙은 총각이였다. 모두가 글장님들이여서 날마다 창문을 가리워놓고 글을 가르쳐주었다. 박흥덕은 머슴들이 지주에게 당하는 계급적차별과 멸시를 알려주었고 고된 로동과 착취에 대해서 깨우쳐주었다.

하루일을 끝내고 머슴들이 한방에 드러누워 잠을 청하게 될 때 박흥덕은 은근한 목소리로 어데서 들었다는 유격대이야기를 꺼내였고 뒤이어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누웠던 자리에서 일어나앉아 경건해진 마음으로 장군님의 활동에 대하여 말할 때면 기름등잔도 없어 먹물속같이 캄캄한 방안에 있으면서도 그들은 밝은 해빛을 보는것 같았다.

양가네 집에 있는것은 이모저모로 활동에 유리하였다.

넓은 땅을 독차지한 그놈은 하루건너 소작인들을 불러들이였는데 가을이 되자부터는 소작인의 출입이 더욱 빈번해졌다. 밤이고 낮이고 양가의 고함소리에 대청이 지렁지렁 울렸다.

박흥덕은 그때마다 소작인들을 끌어당기였다. 날이 갈수록 이것은 양가네 집이 아니라 어떤 혁명조직의 본부처럼 되여갔다.

외형으로는 지주 양가가 큰소리를 탕탕 치고있지만 안속으로는 박흥덕이가 모든것을 틀어쥐게 되였다.

아근 사오십리 군중들의 동향과 적들의 움직임을 손금처럼 알아보게 되였다. 련락을 가져오는 소작인들은 양가에게 욕을 먹으면서 굽석굽석 절을 하며 왔다가군 하였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한걸음 더 깊이 들어갈 계교를 꾸미였다.

하루는 양가가 리발하러 갈 차비를 하고 나섰다. 리발관은 한 십분 걸어가면 될 거리에 있었지만 그에게는 요새 그것이 큰 골치거리였다.

《주인님, 제가 면도를 해드릴가요?》

박흥덕은 턱을 슬슬 만지면서 웃었다.

《네가 면도를 할줄 아느냐?》

회색세루두루마기에 단장을 받쳐든 양가가 한쪽눈을 치켜올렸다.

《네! 이전에 우리 동네에선 리발쟁이가 없어서 제가 다 했었습니다요.》

《그게 정말이냐? 하기야 흥덕인 손재주가 이만저만이 아니니까.》

《속는셈치고 한번 해보면 아실겁니다.》

《하긴 그렇긴 하다만 그래 잡은것이 있느냐?》

양가가 리발관에 가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까닭을 박흥덕은 며칠전에 알게 되였다. 그 까닭은 전날에 건너마을 최승원이라는 지주가 있었는데 리발을 하다가 울대뼈를 면도칼로 썩 베내깔려서 걸상에 앉은 채 몸을 꼬고 즉사하고말았기때문이다.

후에 알고보니 그 리발쟁이의 아버지가 최가의 빚을 지고 물지 못하다가 매를 맞고 앓아죽었는데 그 앙갚음을 하였던것이다.

양가도 그런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고 장담을 할수 없었다. 양가 그자신이 짐작하건대도 최가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길어나는 머리를 어쩌는수 없어 마지못해 한달에 한번정도 리발을 하고는 면도를 서툰대로 자작하였다. 양가가 그 사건에 얼마나 겁을 먹었던지 머리가 길어지면 며칠씩 련달아 꿈자리마저 좋지 않은 형편이 되였다.

양가는 단장을 마루우에 세워놓고 담배를 붙여물었다.

《그래 과연 네가 리발을 할수 있단 말이지?》

《그만두세요. 촌에서 막머리나 깎던건데 제가 어떻게 점잖은분의 리발을 함부로 하겠나요.》

박흥덕은 슬쩍 한번 비틀어놓았다.

《야! 흥덕아, 그럴거 없다. 점잖은거야 사람이 점잖지 머리카락이 점잖을거야 뭐 있겠니, 한번 해봐라.》

이렇게 되여 박흥덕은 유리문이 달린 사랑방에 초록색비로도 회전의자를 내다놓고 양가를 올려앉히였다. 양가는 마음을 써서 안방에 걸렸던 큰 체경을 내오게 하고 광목천을 끊어 신감으로 앞치마를 만들고 리발기와 면도칼, 빗, 솔 등속도 다 새로 사오게 했다. 박흥덕은 시간을 끌면서 숱이 성글고 반은 희여진 머리를 조심스럽게 깎았다.

《이놈의 대가리가 어떻게 생겨먹은것인지 우는 빠지고 턱밑은 무성하단 말이여.》

면도를 하려고 목을 젖히게 되였을 때 양가는 불안을 감추지 못하면서 군소리를 하였다. 아닌게아니라 머리를 꺼꾸로 세웠으면 좋을만치 우는 벗어지고 아래는 구레나릇이 엉키였다.

제법 수건을 더운물에 잠갔다가 뜨끈뜨끈한것을 턱에 대여 홧홧한 수염의 순을 죽여놓고 칼질을 하였다. 가죽띠에 철썩철썩 칼을 문대서 목으로 가져갈 때 양가는 눈을 지릅뜨고 무섭게 올려다보았다.

《눈을 감으세요. 올려다만 보니까 손이 떨려 칼질을 하겠나요.》

《어서 잘 좀 해주려무나.》

양가의 음성은 신음소리같이 떨렸다.

지주, 머슴, 그것을 생각하면 아닌게아니라 독한 마음도 들지 않는것도 아니지만 그는 웃으며 참아야 하였다.

《야 흥덕이, 네가 참 재간덩인 재간덩이다.》

양가는 개기름이 번지르르하고 둥글둥글한 얼굴을 거울에 비쳐보며 기뻐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그로부터 며칠후 양가는 이곳 야마나시경찰서장놈과 술추렴을 하다가 《사설리발관》 자랑을 한바탕 하였다. 최가의 불상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있던 야마나시는 귀맛이 부쩍 당기였다.

사랑방에서 리발을 몇번 하고난 그놈은 다짜고짜로 박흥덕을 서장의 급사로 채용하겠으니 내놓으라고 하였다.

양가는 얼마간 뻗치다가 자기 리발을 맡아해준다는 조건부로 가슴이 알알한대로 박흥덕을주기로 하였다.

박흥덕은 무릎을 쳤다.

놈들이 옹노에 보기좋게 걸려든것이다. 그는 반제동맹조직을 뭇는 한편 적들속에 깊이 들어가 놈들을 옴짝못하게 그러쥘 생각을 했던것이다. 놈들의 턱밑에 안타깨비처럼 바싹 들어붙은 박흥덕은 본격적으로 사업을 펼치였다. 경찰서 비품인 허름한 자전거를 고쳐다 타고 철거덕철거덕 소리를 내며 라흥거리를 밤이고 낮이고 돌아다니였다. 한쪽 바지가랭이를 잔뜩 걷어올린 그는 술집에도 가고 포목상에도 가고 몇십리 아근의 구장네 집도 찾아가고 안 가는데가 없었다.

반제동맹, 청년회, 부녀회조직이 일제통치의 밑바닥을 섬유에 기름이 침투해들어가듯 퍼져들어갔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루에 세네명의 리발을 하여야 하였다. 순사놈들을 슬슬 구슬리면 무엇이나 알아낼수 있었다. 계장이나 과장줄은 약간 경각성이 있기는 하지만 워낙 건방져서 이가 잘 들지 않지만 부서장급이나 되면 어느것이나 물씬물씬하였다.

그럭저럭하다나니 라흥의 모모한자들이 모두 경찰서뒤 목욕탕과 잇닿은 숙직실로 모여들었다. 코수염을 자랑하는 아다찌경찰대장놈도 오고 이곳 관동군파견대 중좌 스기노란놈도 왔다. 또한 이 지구를 통과하게 되는 동녕경찰서장놈도 말을 타고 지나다가 하루 묵으면서 들리기도 하였다.

박흥덕은 며칠밤을 새면서 바닥에 널마루를 깔고 천장과 벽에 도배를 하여 멀끔하게 방을 꾸려놓았다. 술이 거나한 아다찌경찰대장놈이 수세미오이처럼 길다란 머리를 꿋꿋이 세워가지고 박차를 절렁절렁 울리며 복도로 걸어들어왔다. 박흥덕은 재빨리 문을 열어놓고 머리가 무릎에 닿을만치 고개를 숙이였다.

구두솔처럼 턱이 시꺼먼 그놈은 박흥덕의 아래우를 한참 훑어보다가 걸상에 올라앉았다.

《나처럼 수염이 많이 자랐습니다.》

《어? 뭐냐?》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아 박흥덕은 손시늉으로 의사를 나타내였다. 아다찌란놈은 오직 《공산당》이라는것과 몇개의 이 근방 지명인 로흑산이나 동녕 정도를 겨우 번져놓는 형편이였다.

칼을 두축이나 가죽띠에 문대가면서 오래동안 면도를 하였다.

손짓, 몸짓을 해가며 박흥덕은 왜 이렇게 수염이 자랐느냐고 하자 그놈은 산에 공산당이 많아서 그것을 잡으러 다니느라고 리발할새가 없다고 하였다. 어디에 공산당이 그렇게 많은가 하니 백두산줄기에는 온통 공산당의 군대가 덮였다고 하였다. 눈으로 봤느냐고 하니 보지는 못하고 찌릉찌릉하는 전화로 들었다고 하면서 손가락으로 귀를 가리키며 웃었다. 박흥덕은 손가락으로 볼을 슬쩍 다쳐주며 웃지 말라고 하였다. 웃으면 칼이 목을 베게 된다고 하니 대번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옴짝을 못하였다.

이런 식으로 박흥덕은 적정을 살피며 혁명조직들을 꾸렸다.

사령관동지의 지시대로 줄을 길게 늘여놓고 큰 고기를 잡도록 준비하였다. 각계층을 죄다 조직에 묶기 위해 행상군도 려관업자도 술장사도 여하튼 일제를 반대하겠다면 다 끌어들이였다.

가장 큰 문제는 이렇게 하다가 혹시 밀정이 기여들어오지 않겠는가 하는것인데 그것은 하야시라는 감찰계장놈한테 맥을 떠보군 하면 되였다. 밀정일가 의심되는 놈을 우정 나쁜놈이라고 듣는데서 욕질을 하면 하야시는 당장 얼굴색에 나타내군 하였다.

경찰서에 들어가자부터 농촌공작은 믿음직한 두 농민에게 맡기고 주로 그는 군대와 경찰의 움직임을 탐지하여 통신처에 련락을 띄우군 하였다. 일이 이렇게 활기를 띠였는데 딱 한가지 걸린것은 이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것이고 다음은 유격대소식을 알수 없는 그것이였다.

끌끌한 청년들을 뽑아 유격대로 보낼 생각도 있었지만 그에 대해서는 지시받은것이 없었고 악질지주나 주구들을 슬슬 청산해놓기는 하지만 그것도 끈이 길면 어느때든지 탄로날것만 같았다.

그럭저럭 지나면서 영평에 통신을 띄워볼가 하는 차에 야마나시가 갑자기 길을 떠나자고 하였다. 녀편네를 일본에 보내겠는데 말에 태워 룡정거리까지 끌어다달라고 하였다. 성질이 괴벽한 이놈은 자동차를 타면 녀편네가 류산을 한다면서 이 놀음을 끝내 내리먹였던것이다.

세걸이를 종시 만날수 없었던 박흥덕은 이튿날 빈말을 끌고 맥없이 라흥을 향해 길을 떠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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