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7 회)
14
(1)
세걸은 룡정거리에 들어가서 장두만의 집을 찾았다.
장두만은 한달전에 체포되여 집에 없었다. 무슨 사건이냐 하니 술을 마시고 《민회》간판을 뜯어 둘러메친것때문이라고 하였다. 지난 초봄에 《민생단》간판을 처음 달았을 때도 그렇게 하고 한달동안이나 갇혔던 그였다.
책을 둔데가 어데 있느냐고 물으니 그의 동생은 전혀 모른다고 하였다. 하긴 박기남의 말에 의하면 장두만은 그런 책을 누구도 모르게 땅에 묻어두고있을것이라고 하였던것이다. 하루동안이나 걸려 고방과 울안을 뒤졌지만 전혀 알아낼수 없었다. 이리저리 궁리하던 끝에 그는 먼 친척이라는 핑게를 대고 면회를 해볼 작정을 하였다. 장두만의 식구들과 짜고 경찰서에 찾아갔지만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대로 물러설 세걸이가 아니였다. 용수철처럼 저항이 생기면 더욱더 큰 반발을 일으키는 성미인 그는 박흥덕에게 전할 쪽지와 출판물을 살 돈을 땅에 묻고 거리로 나갔다.
술 한병을 사서 한 반은 꿀꺽꿀꺽 들이키고 한 반은 옷섶에다 훌훌 끼얹고 비칠비칠 갈지자걸음을 쳐서 최경부네 집으로 찾아갔다. 거리에서 강변으로 나앉은 커다란 왜식집인데 양철지붕에 골탄칠을 두껍게 하고 유리덧문에 현관까지 달렸고 마당에는 정교하게 가꾸어진 향나무와 화초밭이 있었다. 눈치를 보며 골목으로 왔다갔다하다가 검은테안경을 낀 최경부놈이 인력거에서 내리는것을 보고 그 집 현관을 향해 삐딱삐딱 걸어들어갔다. 허줄한 로동복차림인 그는 대문을 발로 밀어제끼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야, 이 빌어먹을놈, 그래 려관을 차렸으면 문을 열고 손님을 받을것이지 해가 멀었는데 문은 왜 벌써 닫아, 엉? 사람이 집에서 자기마련이지 그래 개새끼처럼 다리밑에 웅크리고 자라는거냐? 여보! 려관주인! 려관에서 사람을 왜 안 재우느냐 말야, 응? 돈? 자, 여기 돈 있어. 로동잔 돈 없는줄 알아? 사람 나고 돈 났지 돈이 사람 낳았나? 돈 없으면 내 때묻은 바지라도 벗어놓지 않으리, 어서 방을 내놔! 좀 자야 살겠어. 주인 어디 갔어, 엉? 아하, 이놈 도망쳤구나.》
창문으로 최경부놈의 첩이 분떡같은 얼굴을 들고 내다보더니 안방에다 대고 바스라치는 소리를 친다.
유리문이 즈르릉즈르릉 울리더니 뒤방에서 웬 젊은 놈이 가슴을 내밀고 거만하게 팔자걸음으로 나왔다. 최경부놈의 처남이다.
《임마, 여기가 어딘줄 알고 큰소리야. 썩 물러가지 못해?》
《허허, 어디긴 어디야. 사람 재우구 돈버는 려관이지.》
《젊은 자식이 이거 환장을 했나? 야 임마, 눈을 뜨고 똑똑히 봐, 누구네 집인가.》
승마바지를 입은 몸집이 그쯘한 놈이 게다짝을 끌고 현관까지 나와 세걸의 팔을 잡고 밖으로 내끌었다.
《에구, 술이란 물건이 왜 세상에 생겼는지 온 참, 별꼴 다 보겠네. 귀신이 장변을 내서 사나, 저런거나 잡아가지 못하고. 쯧쯧.》
꼬리치마를 휘감은 첩년이 기름이 잘잘 흐르는 머리를 흔들며 방안으로 들어가버린다.
《술이 왜 어쨌소? 당신네가 나 술 사먹였소?》
《술도 낟알물이야. 정 그러다간 뼈대도 추지 못할테니 어서 나가! 여기가 푸주간인줄 아니?》
내끄는것을 밀치며 세걸은 욱 하고 달려나가면서 현관문에 어깨를 찧었다.
《쟁가당!》
현관문의 유리가 부서져 땅우에 쫙 흩어졌다.
방안에서 자지러진 첩년의 비명이 길게 울리더니 뒤미처 하오리를 입은 최경부놈이 마루를 쿵쿵 구르며 급히 나왔다. 안경이 번뜩하더니 껄찍한 욕설이 울안을 울렸다.
《칙쇼! 그 미친놈을 늘씬하니 쳐서 저기 도랑에다 끌어내쳐라!》
현관에 세워두었던 격검채를 들고 최경부놈이 마당으로 나왔다.
《금년엔 신수가 사나운 해니까 별것이 다 가택에 침입하는 판이구나.》
그놈은 배를 내밀며 목을 뒤로 제끼면서 격검채를 내밀었다. 옆에 따라나왔던 첩년이 그것을 받아 승마바지에게 넘겨주며 낯을 찡그리였다.
《영평의 아버님두 어느날인가 머슴을 살던 놈이 술을 처먹고 와서 행패를 놓더니만 몇달후에 그렇게 됐다고 하잖아요?》
《닥치지 못할가! 말만 해도 치가 떨린다. 공연한 소릴 해가지고 기분나쁘게. 에익, 녀편네들이란건 그저 모두… 아버지나 그 애가 그렇게 된건 술이 아니라 공산주의때문이다. 공산주의와 대일본, 소작인과 지주, 피압박자와 권력자가 싸우고있는거야.》
처남놈이 격검채를 받아들고 악악 기합을 넣으며 한발이나 되는것을 이리저리 휘둘러대였다. 정수리를 내리치기도 하고 다리를 후리기도 하였다. 세걸은 우정 더 비칠비칠하며 이리 비키고 저리 피하면서 날아드는것마다 받아쥐였다.
《야 이놈 봐라, 이자식이 록록치 않다. 흥!》
약이 바짝 오른 처남놈은 현관앞에 놓인 운동화를 갈아신더니 팔을 걷어올리고 단단히 잡도리를 하고 달려들었다.
《이자식, 너 죽어봐라, 매란 말만 들었지 맞아는 못 봤구나.》
《왜 때려? 어? 이 미친개같은 자식, 네겐 법도 없느냐? 돈내고 잠자자는데 때려? 그래 사람 치는데가 려관이야?》
처남놈은 격검채를 머리우까지 들어올렸다가 휘파람소리가 나게 세걸의 정수리를 향해 내리후렸다. 세걸은 재빨리 몸을 비키였다. 격검채가 어깨에 빗맞고 튕겨나면서 현관 외등에 가 딱 하고 맞았다. 우유빛외등갓이 콩가루가 되여 비오듯 흩어졌다.
《저놈, 저걸, 야! 사냥총을 내오라!》
총이라는 바람에 정신 번쩍 든 세걸은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척 하면서 다리를 꼬고 벽에 머리를 찧으며 쿵 나가쓰러졌다.
기다렸다는듯이 최경부놈이 달려들어 잔등을 내리밟았다.
《잘 친다. 이 개놈들!》
《그놈을 묶어라!》
최경부놈은 급히 현관으로 들어가 벽에 걸린 전화에 매달렸다.
끄륵끄륵소리가 나더니 뭐라뭐라 하고나서 《빨리!》 하는 명령조의 고함소리가 흘러나왔다.
최경부놈이 포승줄을 내왔다. 세걸은 못 견디는척 하고 팔을 묶이웠다. 잠시후 자전거소리가 나더니 대문안으로 순사 한놈이 칼을 철거덕거리며 들어섰다.
《이걸 데려다 콩밥을 먹여 버릇을 떼놓아. 술을 먹었으면 고이 잘것이지 망할놈. 이건 사회질서문란죄에 가택침입죄, 공무집행방해죄, 인권유린, 절도미수, 폭행 여하튼 아무데다 다 걸수 있다.》
《흥! 죄가 많기도 하다.》
세걸은 웃음집이 흔들리는것을 겨우 참았다.
경찰서에 끌려간 세걸은 그런데서 의례히 치르어야 할 절차를 밟게 되였다. 류치장은 규모가 컸다.
사흘만에야 장두만을 알아내였다. 상대편을 믿게 하기 위해 무척 애를 써서 닷새째 되는 날 쪽지가 건너왔다.
《9월단풍》이라는 넉자의 암호가 적혔다.
그날밤에 경찰서에서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큰 《정치범》이 도망쳤다는것이다. 독감방에 들어있던 송필이라는 《당재건준비위원회》 계통의 한 거물이 감옥으로 호송도중에 도망쳤다는것이다. 재밤중에 온 거리가 깨져나갈듯이 총소리가 울렸다. 무장경찰대가 시내 골목골목을 샅샅이 뒤지였다. 산에도 한벌 덮이였다.
다음날 또 한번 그따위짓을 하면 한 10년동안 콩밥을 먹이겠다는 경고를 받고 세걸은 석방되여 나왔다. 광고판마다 나붙은 신문에는 송필이라는 공산주의자의 사진이 나고 탈옥사건이 크게 소개되였다. 《송국도중의 거물급공산주의자 탈주, 목하 산중을 수색추적중》이라는 제목밑에는 검은 선으로 기사내용을 둘러서 눈에 띄게 표식까지 하였다.
유개차에 실어 송국도중 복면한 무장괴한이 3명 나타나 호송경찰 2명을 쏴넘어뜨리고 감쪽같이 사라졌다는것이다.
거리와 골목마다에는 경찰과 헌병들이 눈을 까뒤집고 가는 사람, 오는 사람을 조사하였다. 그러거나말거나 세걸은 이리저리 골목길을 돌아 거리를 빠져 강기슭으로 나갔다.
《성공!》
세걸은 고함을 치고싶었다. 그는 그길로 장두만네 집에 찾아가 동생에게 쪽지를 내뵈고 단풍나무밑을 파보자고 하였다. 마당귀에 자그마한 단풍나무가 있었는데 그밑에 단지 하나가 묻혀있었다. 곰팡내가 물씬 풍기는 단지안에서 수십권의 공산주의서적이 나왔다. 그중에는 《빨찌산전투경험집》이라는것도 있었고 박기남이 부탁하던 《쏘베트헌법》도 있었다.
해가 서산에 걸렸을 때 그는 길을 떠났다. 이제는 직발 라흥으로 가느니보다 영평에 들렸다가 안전한 산길을 타고 갈 생각을 했다. 거침없이 하나의 성공을 이루었다면 다음에는 필시 꼬이는 일이 하나쯤은 닥치리라는 예감이 온것이다. 그는 으슥한 골목으로 빠질가 하다가 그것이 오히려 재미없을것 같아 우정 역전거리로 나갔다. 《인단》, 《로도안약》, 《중장탕》, 《청춘리발관》, 《부어라선술집》, 《전당포》, 《오케레코드》 등등의 간판이 어깨를 맞대고 선 상점거리로 걸어나왔다.
그는 고서점으로 들어가 출판물을 샀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매일신문》 그리고 《중앙공론》, 《경제》 같은것을 닥치는대로 집어들었다. 그는 책방 한구석에 사람들이 보는데 앉아서 도배지로 쓰겠다고 하면서 책가위를 뜯어내 버렸다. 보따리에 한꾸레미 사멘 그는 학용품상점에 들어갔다.
동무들에게 줄 선물을 사고싶었다.
돈이 얼마 남지 않아 학습장을 한 열권 사기로 하였다.
그때 그는 문득 영숙이 생각에 났다. 갖가지 학습장이며 교과서며 주산, 먹, 붓 등이 진렬된 유리장우로 쌍까풀진 눈을 가진 영숙이의 갸름한 얼굴이 휙 나타났다 사라졌다.
세걸은 무겁지도 않은 보따리를 공연히 옮겨잡으며 턱을 슬슬 문질렀다. 최칠성이보다 영숙이 생각부터 났다는것이 좀 쑥스러워 얼굴이 화끈해짐을 느끼였다.
영숙이에게 손거울이라도 하나 사다줄가 하다가 그만두었다. 이것저것 고르다가 좀 부피가 두텁고 자그마하면서도 곱게 가위를 씌운 수첩을 샀다. 노래수첩으로 쓰면 좋을듯하였다. 그는 꾸레미를 펼치고 그것은 따로 싸서 신문지갈피에 찔러넣었다.
상점을 나서니 해가 서산에 기울었다. 그는 거리를 빠지기 위해 바삐 걸었다. 정거장쪽으로 꺾어드는 산쪽에는 일본군대의 병영이 있었다. 기왕이면 좀 보고 갈 생각이 나서 그쪽으로 꺾어드는데 맞은편에서 키가 큰 군마 한필이 보도를 울리며 다가왔다. 관복을 으리으리하게 차린 경찰고관놈이 목을 꿋꿋이 세우고 회색만또자락을 뒤로 날리며 오고있었다.
그뒤에 말이 또 한필 따라왔다. 키가 작은 토종말인데 모포를 뒤집어쓴 일본녀편네가 량쪽에 트렁크를 매달고 그우에 허리를 굽히고 올라앉았다.
고삐를 끌고오는것은 박흥덕이 비슷하였다. 발을 약간 벌려디디는것이라든지 어깨를 기울떡거리는것이 그와 신통히도 같았다. 설사 같은 사람이 있어 빗본 경우라 하더라도 다정한 전우를 회상한다는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였다. 그는 마부한테서 눈을 떼지 않고 그냥 앞으로 걸어나갔다.
허름한 중절모자를 눌러쓰고 아래우 검정로동복을 입고 흔들흔들 걸어오는것은 틀림없이 박흥덕이였다.
(아! 박흥덕이가 이런데 어떻게 나타났을가?)
세걸은 그것이 박흥덕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걸음을 멈추고 말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 순간 벌씬 웃는 박흥덕의 얼굴이 보이였다. 그쪽에서도 알아본것이다.
《아니, 여보! 길을 가려면 똑똑히 가구려. 말 가는데 서있으면 어떡허우.》
박흥덕은 역시 머리가 잘 돌았다. 뻥해진 세걸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머밋머밋하다가 굽석 고개를 숙여보이였다.
《잘못했수다. 그런데 여보시우.》
세걸이도 비위는 박흥덕이 못지 않았다.
《라흥으로 가자면 이쪽으로 가서 차를 타면 됩니까?》
《옳소!》
의미있게 박흥덕은 또 한번 웃어보이며 눈을 끔뻑하였다. 말은 잠시동안에 벽돌담장이 높이 쌓이고 그우에 전기줄까지 늘인 어마어마한 곳으로 들어가버렸다.
그것으로 짧은 연극의 막은 털썩 내려졌다.
《세상에 별일도 많다. 이런데서 만날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거리를 벗어나서 길가의 버드나무밑에 쭈그리고앉아 세걸은 담배를 피웠다.
아무리 공작상 필요가 있다 하더라도 왜놈의 녀편네 마부가 될수 없는 박흥덕이가 아닌가. 웃으면서 눈을 끔뻑거리는것을 보아서는 의심할것은 못되지만 그래도 어딘지 모르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세걸은 길가에 앉아 박흥덕을 여기서 만날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예정했던대로 라흥에 가서 만날것인가를 생각해보았다.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그는 영평에 들렸다가 다시 라흥으로 가기로 하고 급히 거리를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