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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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동지께서는 고개를 젖히고 시선을 푸른 공간으로 날리시였다. 가슴에는 차츰 얼음장이 스며드는데 그와 함께 전우의 불길같은 열정과 흥분이 그것을 떠밀어내기 위해 필사적인 몸부림을 치고있다.

그이께서는 군복앞섶에 손을 찌르고 가슴을 움켜쥔채 뚜벅뚜벅 걸어나가시였다. 발밑에서는 와삭와삭 마른풀이 밟히였고 허리와 어깨노리에는 나무가지가 턱턱 막아선다.

어느모로 보나 빈틈없는 차광수였다. 위험이 닥쳐왔을 때나 또 그와 반대로 환희에 도취될만 한 그런 때도 다정다감하면서도 랭철한 그의 판단이 안받침되여있었다. 하긴 이토록 비장한 시각에 마지막으로 유언을 대신해서 적은 작문의 편지에 한가닥 그늘도, 한줄기의 한숨도 흘리지 않자니 그 고통인들 오죽했겠는가. 차라리 눈물자국이 그대로 얼룩진 그런것이였던들 이렇게 가슴이 쓰리지 않았을것이다.

《광수, 동무는 왜 이다지도 성미가 모진가. 왜 내 가슴을 이렇게까지 찢어놓고 가는가!》

편지를 쥔 손이 걷잡을수 없이 떨리시였다. 그이께서는 어느덧 진대통이 가로질린 둔덕에 이르시였다.

다음에는 전광식에게 보낸 편지가 나졌다. 그이께서는 그것마저 보시려다가 그만두고 천막쪽으로 발길을 돌리시였다. 마침 전광식이 이깔나무 그늘밑에서 나섰다. 전광식은 멀찍이 떨어져 그이를 보위하고있었던것이다.

《차광수동무가 보낸거요.》

그이께서 편지를 넘겨주시였다.

전광식은 발을 모으고 선채로 편지를 받아 읽기 시작하였다.

그이께서는 가슴이 저리시여 나무밑을 천천히 거니시면서 도저히 믿을래야 믿을수 없는 비보를 다시금 더듬어보시였다.

이윽하여 그이께서 전광식이쪽으로 오셨을 때 전광식은 터슬터슬한 이깔나무그루에 이마를 비비며 어깨를 들먹이고있었다.

《거기엔 뭐라고 썼소?》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사연을 알고싶어서라기보다 비통해하는 그를 얼마간 위로라도 해줘야겠기에 하시는 말씀이였다.

전광식은 고개를 들어 편지를 그이앞에 내밀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편지를 받아 읽으시였다.

전광식동무! 부탁이 있어 몇자 적소.》

그이께서는 성급히 글줄을 더듬으시였다.

《내가 이 글을 쓰다가 어느 시각에 중단하게 될는지 모르기때문에 용건부터 단마디로 적겠소. 우리의 사령관, 우리의 령도자 김일성동지를 잘 모셔주오. 이것은 마지막부탁이면서 또 영원한 부탁이기도 하오. 그이를 모셔야 조국이 있고 우리 민족의 미래가 있고 번영이 있소. 나나 동무나 무엇을 갈망했던가. 20년대에 첫발을 내떼였던 우리 세대가 목마르게 바라고 눈뿌리가 쓰리게 찾은것은 과연 무엇이였던가. 그것은 명백히 우리의 령도자였소. 욕망은 결핍에서 생긴다는 말처럼 우리 민족의 근대사, 더 거슬러올라서 고구려의 후예들이 세기에 세기를 거듭하면서 바랐던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민족을 이끌 령도자가 아니였던가. 근면하고 성실한 우리 민족이, 말그대로 남의 나라에 화살 한대, 돌덩이 하나 날려보내지 못한 우리 선조들이 왜 그렇게 뒤떨어졌으며 치욕의 자욱으로 자기 력사를 어지럽히지 않으면 안되였던가.

빈번히 오랑캐들이 밀려들어 가산을 치고 부녀를 겁탈하며 식민지노예의 코뚜레를 꿰였소. 보통문앞에서 작도로 목을 잘리우고 일본도에 끊기운 오른팔대신에 왼팔을 추켜든 렬사가 〈독립만세!〉 마지막 말을 아물구기도전에 허리가 끊기였소. 연해주, 북지, 상해, 미국, 일본 등 조선사람이 있는 곳마다에서 일어났던 각종 단체와 의분에 찬 운동들은 왜 배를 가르고 창자를 쥐여뿌려도 아무 소용이 없었는가. 이를테면 인간의 리성과 감성의 능력을 통털어 들어일구어 기운이 미치는껏 싸워봤지만 이것도 저것도 다 부질없는짓으로 된것은 무엇때문인가. 그것은 우리 민족을 이끌어줄 령도자가 없었기때문이였소. 한데 우리는 이제 와서 이 시대의 요구와 겨레의 갈망을 한몸에 지닌 김일성동지를 직접 모시게 되였소. 동무나 나나 우리는 누구보다도 김일성동지를 잘 알고있소. 나는 현재 운동자들이 필요했던 모든 곳을 다 가보았고 동서고금의 서적과 만날만 한 인사들도 다 만나보았소. 그리고 또 우리가 가고있는 이 혁명의 길이 우리 대에 조국해방을 이룩할수 있겠는지 아니면 계속해서 우리의 후대들의 일로 넘어가게 될는지 그것도 아직은 모르오. 모든것이 미지수요. 그러나 하나만은 명백한데 그것은 김일성동지를 령도자로 모셔야 우리 혁명이 승리할수 있고 우리 민족의 장래가 열린다는 그것이요. 내가 김일성동지를 모시고 따르는것은 그이가 지닌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끝없는 믿음이요. 이 점에서 누구도 그이를 따르지 못한다고 나는 단언하오. 인간에게 뿌리를 둔 그 리념, 그 판단, 그 의지, 그 예견, 그것은 실로 무한대하며 참으로 위대한것이요. 사랑은 그토록 뜨겁고 믿음은 그토록 깊고 너그러우며 의지는 그토록 드놀지 않고 배반에 대해서는 그토록 무자비한 여기에 사람들을 자석처럼 강하게 끌어당기는 비범한 성품과 힘이 있소. 한마디로 말해서 령도자-수령 그렇게밖에 달리 표현할수 없는것을 나는 김일성, 그이에게서 발견하였소. 이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라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그이를 그렇게 보고있고 따르고있다는것으로 하여 우리를 그토록 영예롭고 긍지에 넘치게 하는것이 아니겠소. 김일성-그이는 우리가 모신 령도자이며 우리의 피로 고동치는 심장의 소유자요. 때문에 우리가 그이를 보위하고 그이의 안녕을 지키는것은 너무나도 응당한것이며 조선혁명가의 최대의 과업이고 영예요. 이 영예를 내것까지 동무가 맡아주오. 부탁이요. 이것이 내가 말하려는 요점의 전부요. 전광식동무! 믿어주오. 내 평소에 마음속 깊이 간직한대로 숨지는 마지막순간에 그 장소가 흙구뎅이건 교수대이건 불붙는 장작더미우이건 관계없이 나는 주저없이 명확하게 〈김일성동지 만세!〉 소리높이 웨칠것이요.

잘있소. 전우들에게 우리 유격대의 경례를 보내오.》

여기까지 단숨에 내리읽으신 그이께서 편지를 와락 움켜 가슴에 비비면서 비분을 터치시였다.

《광수!》

그이의 비통한 음성이 정적이 깃든 숲속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진대통을 그러안으시더니 몸을 떠시였다. 가슴에 안긴것이 그대로 차광수의 시신인것처럼 그렇게 그러안고 어깨를 들먹이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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