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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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은채로 몇술 받아넘긴 최칠성은 천천히 눈가죽을 들어올리더니 희미한 눈빛으로 좌우를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의 눈이 강한 빛을 내면서 커졌다.
자기앞에 오매에도 그리던 사령관동지의 영상이 나타났다는것을 깨달은 그는 어깨를 들어일구며 한쪽팔을 내밀었다.
《사령관동지!》
목메게 부르는 최칠성의 고함소리가 초막안의 탁한 공기를 흔들면서 방안에 앉아있던 동무들의 가슴을 울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최칠성의 어깨밑으로 손을 들이밀어 우쩍 그의 허리를 안아일으키시였다.
《사령관동지! 저희들은…》
《수고했소! 최동무! 수고했소.》
최칠성은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그이의 품에 머리를 묻고 눈물을 흘리였다. 최칠성의 떨리는 몸을 힘있게 그러안으신 그이께서는 부드럽고 인자하신 시선으로 눈물이 그칠새없이 흘러내리는 최칠성의 볼을 지켜보시였다. 좌우쪽에 둘러앉았던 전광식이와 또 몇명의 동무들이 사령관동지와 한 대원이 친형제처럼 부둥키고 떨어질줄 모르는 그 장면을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이윽해서 최칠성이 입을 열었다.
《사령관동지, 저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혼자 일어나 앉겠습니다.》
《그래 일어날만 하오?》
《일어나겠습니다. 날이 좀 추워서 그랬습니다.》
그는 두팔을 짚고 몸을 일으키더니 좌우를 둘러보며 무엇을 찾았다.
《영숙동무 어데 갔습니까?》
《저쪽에 있소. 아무 일 없소. 벌써 일어나 앉았소.》
《그리구 내 망태!》
《망태기도 여기 있소. 동무가 쓴 쪽지도 있고…》
《사령관동지! 웅덩마을의 한 어머니가…》
《알겠소, 알겠다니까.》
이때 최칠성은 문득 생각이 나는듯 성급한 동작으로 가슴을 더듬더듬 뒤지더니 글쪽지와 낯익은 명주목도리를 꺼내들었다. 그의 낯빛은 방금전과는 달리 처절하게 이지러졌다.
《그리고 이건 차광수동지가…》
《차동무가?》
《예, 이 쪽지를…》
최칠성은 끝내 말끝을 잇지 못한채 몸을 비틀면서 신음소리를 내였다. 주위에 모여선 사람들도 긴장한 표정을 짓고 그를 주시하였다.
《최동무! 차광수가 뭐라고 했소?》
김일성동지께서는 최칠성을 와락 안아일으키면서 다그쳐 물으시였다. 편지와 명주목도리가 들려있는 최칠성의 손이 허공중에서 와들와들 떨리고 굳게 얼어붙은 입에서는 대답대신 울음이 터져나왔다. 순간 그이께서는 차광수에게 뜻하지 않은 불상사가 생겼음을 직감하시였다.
온몸의 피가 억류되는것 같고 몸이 굳어지시였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혼신의 힘을 다해 마음을 다잡으시고 최칠성에게서 쪽지를 먼저 받아드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최칠성을 잘 치료할데 대한 지시를 주시고 자신의 초막으로 들어가시였다. 초막은 다른 대원들것과 아무것도 다른것이 없었는데 다만 잠자리가 가지런히 두개 마련된것이 달랐다.
하나는 자신의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차 돌아오기로 되여있는 차광수의 잠자리였다. 편지는 뜻밖에 부피가 큰것이였지만 그이께서는 단숨에 읽을 생각으로 펼쳐드시였다. 한데 가슴이 떨려 글줄을 도저히 가려내실수가 없었다. 사실상 초막안이 해빛을 적게 받고있다는 사정도 있었겠지만 그것보다도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전우의 마지막숨결이 깃들어있을 그 글발이 심장을 강하게 흔들어놓았기때문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초막에서 나오시여 사시나무와 봇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걸어가시였다. 피빛으로 물든 석양을 받아 숲속은 아직 어둡지 않았고 때마침 바람도 가뭇 자고있어서 멀리서 나무잎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을수 있었다.
《친애하는 김일성동지!》 편지는 이렇게 시작되였다. 첫대목에서 벌써 그이의 호흡이 떡 막히시였다. 차광수는 무엇때문에 다름아닌 나를 향해서 이렇게 공적인 호칭으로 편지의 첫머리를 떼야 했던가. 이전에 친근하게 부르던 그대로 《성주!》 해도 무방할것이고 아니면 《사령관동지!》 해도 이렇게까지는 옹색하지 않을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런것을 오래 따지고있을 겨를이 없었다.
첫머리에서부터 편지는 직발 용건으로 들어갔다.
《이 편지가 정확하게 가닿게 될것인지, 아니면 어떤 우연에 의해 류실되고말것인지 알수 없으나 어쨌든 나는 높은 책임감과 랭철한 사색을 거쳐 써보내게 됩니다. 지금 나는 주영장이 만들어놓은 사설감방안에서 닷새째 심문을 받고있습니다. 이제 하루나 고작해서 이틀후에는 숱한 공산주의자들을 바로 그렇게 한것처럼 흙구뎅이에 꿇어앉혀놓고 최후 심문을 한 다음 죽일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나의 기분은 매우 평온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어떤 우연적이고 뜻밖의 일이 아니기때문입니다. 김일성동지가 이미 나에게 말씀한것처럼 우리는 현재 사면포위에 들어있습니다. 그 사면중 어느 하나라도 뚫지 않고는 우리의 존망이 문제로 되는것입니다. 더구나 나는 주영장을 만나고나서 그 판단이 얼마나 큰 의의를 띠였는가를 더욱더 잘 알게 되였고 그것을 위해서는 그 무엇도 아끼지 말아야겠다는것을 절감하였습니다. 최근 얼마동안 나는 지방통신들을 접수종합하면서 매우 침울한 나날을 보내게 되였으며 그것으로 해서 떠나오기 직전에는 사령관동지도 직접 기분을 느낄만큼 번민에 빠져있었습니다. 문제의 초점은 사령부에 집중되여있다는 그것입니다. 적들은 온 한해동안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유격대사령부를 없애치우지 않으면 안되겠다는데로 생각이 쏠리였습니다. 전략적견지에서 사면을 포위했다는 개개의 세력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미 알고있었고 또 그것이 우리들의 작전에 충분히 참작되였었지만 그들이 바로 지금 우리 사령부를 직접 노리고있다는 점에서 지향이 합치되였다는것은 참말 놀랍고 뜻밖인것입니다.
때문에 나는 자신이 직접 료해해야겠다는 결심을 가지게 되였으며 드디여 사령관동지가 얼마전에 한몸의 위험을 무릅쓰고 우사령을 만났던것과 같은 힘에 부치는 모험을 이번에는 제가 맡아나섰던것입니다. 악에 받쳐 무분별하고 맹목적인 상태에 이른 주영장은 나를 만나자마자 〈너희들의 두령을 끌어오라!〉고 했습니다. 닷새동안 하루에도 몇번씩 거듭된 강박은 오직 이 한마디 요구를 반복했을뿐입니다. 나는 인내성있게 그를 해설설복하고있습니다. 담판은 래일로 끝나며 그 결과는 명백히 둘중의 하나로 됩니다. 내가 주영장을 데리고 사령부로 찾아가든지 아니면 흙구뎅이에 떨어지든지 하는것입니다. 지금 보건대 나는 앞의것이 되리라는 락관을 가집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옳고 진리를 띠고있기때문입니다. 사령관동지! 기쁜 소식을 전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그러나 불미한 나자신이 지금 보낼수 있는 최대의 성의는 이것뿐입니다.
전투적경례를 보냅니다. 10월 28일 밤》
또 하나의 편지는 전광식동무에게 보낸것이였다.